[※미션! 《학생회의가 있는데 지각을!》


난생 처음으로 지각을 하게 된 당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괜찮은 변명을 생각해 내세요!


성공시 약간의 잔소리와 3일간의 근신. 인간미+1


실패시 ???


미션 클리어 보상 ???]


자. 일단 정신부터 차려보자. 회빙환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입으로 소리내어 ‘상태창!’ 하고 외쳐보지 않은 10대는 없을 것이다. 누나만해도 가끔 허공에 대고 상태창 좀 나와 달라며 울부짖곤 했으니 회빙환물을 한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남여노소 불문하고 한번쯤은 이런 상황을 가정해 봤을 것이다.


"아니 근데 진짜 될 줄은 몰랐지..."


쇼파에 누워서 상태창을 한번 더 꼼꼼히 살폈다. '지각을 하게 된'이라니, 아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대체 등교시간이 언제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아직 상황파악도 덜 됐는데 덥석 받을 수는 없어서 핸드폰이 혼자 울도록 무음으로 바꾸고 아예 엎어 두었다.


그리고 '근신'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다. 아니 군대나 직장도 아니고 학생이 웬 근신. 교칙이 아무리 엄해도 벌점이나 받고 말지 '근신'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냐고.


"상태창. 얘, 그러니까 이 몸 주인 특성이나 뭐, 그런 것도 보여줄 수 있어?"


....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오케이. 상태창이랑 대화는 안되고.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데, 상태창에서도 봤듯이 학교는 가야겠고, 적당한 변명을 생각해서 지각 건을 잘 넘겨야 한다. 뭐, 생판 모르는 시대와 장소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긴 한데, 이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맞겠지?


"...일단 밥부터 먹고."


국밥을 주문하면서 몇 가지 알아봤는데 시간대는 원래 내 세상과 동일했다. 내 세상이라고 선을 긋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곳이 평행세계인 것 같기 때문이다.


도, 시 단위 지명은 같았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이름이 달랐다. 산하남고도 산하고로 공학이 되었고. 부모님과 누나 전화번호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으니 이곳에서의 나의 가족은 가족이라는 형태로 묶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빙의 한 이 친구의 이름은 고테이였다. 지갑에서 학생증을 발견해서 알게 된 인정사항으로는 이름, 생년월일, 재학중인 학교까지이다. 그리고 방의 책상에서 2-1 이라고 교실도 알아내었다.


"휘광고...휘광고..."


깍두기를 씹으며 익숙한 학교 이름을 되뇌었다.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


'휘광고? 미친, 개 오글거려. 왜 애들 이름도 고요, 믿음, 사랑, 이런걸로 해버리지.'

'오. 좋은걸?'


"케엑-"


씹다 만 깍두기가 입에서 탈출했다. 생각났다. 휘광고는.


"누나 소설?"


그럼 여기가 누나 소설 속 세계라는 건가. 누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는 자주 들어서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꽤 잘 알고있다. 메인 캐릭터 다섯명이 이리저리 엮이는, 우정을 빙자한 사랑..까지는 아니고 '이런게 우정이라면 난 친구 없어.' 라는 댓글이 매화마다 달리는 내용이다.


고테이 책상에서 노트를 뽑아 한 장을 찢어서 알고 있는 정보를 써보았다. 일단 메인 캐릭터 이름은 [고요 믿음 가람 천둥 사랑]이다. 뭐더라, 누구는 전교 회장이고 누구는 전교1등이고, 누구는 검도부 주장이고 그랬는데...당장 이름과 매칭시키기는 어려웠고, 딱히 필요 하지도 않은 정보인듯 해 넘어갔다.


누나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팬픽이어서도 있지만 만화 겸 애니인 [어서오세요, 모란고교 사교부에.]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창작물의 설정을 따라 누나의 휘광고도 학교가 으리으리한 대신 학비가 어마어마했다.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급이냐고 물었더니 누나는 무책임하게 '걍 사립. 국제고는 아닌데 애들 수준은 그정도일듯? 몰라 국제고를 가봤어야 알지.' 하고 답했다.


일단은 이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고테이의 몸에 빙의 한 채 등교는 해야겠는데 고테이가 평소 어떤 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했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를 연기하기 막막했다. 게다가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가 물음표라는 점에서 조심스러워졌다.


이 친구의 생기부에 기록이 남지 않으며, 등교해서 몸을 사릴 수 있는 방법.


"아픈 척 밖에 없네."


계획이 딱 섰다.




10시쯤 택시를 타고 휘광고등학교로 가 정문에서 내렸다. 학교는 말 그대로 으리으리했다. 누나가 이런 학교를 상상하며 글을 썼단 말이지. 이 학교를 1년이나 다닌 친구이니 처음 와 보는 것처럼 너무 두리번거리지는 말아야지, 했다가도 문을 열고 새로운 공간에 발을 들일때마다 지나치게 화려한 탓에 동공이 확장되었다. 학교라기보단 호텔이나 엄청 비싼 아파트의 로비 같았다.


고테이가 학교에서 인망이 두터운지 몇시간 폰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전화며 문자며 오십여통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아픈 곳 없이 멀쩡하지만 알리바이를 위해 병원에 들러 두통, 목 감기 약을 처방받고 포도당 링거도 맞았다. 이제 하교전까지 아픈 척만 잘 하면 될 것이다.


"죄송, 크흠, 합니다."


말을 줄여야하니 목이 따끔한 척, 쉰 소리를 꾸며냈다. 어설프게 콜록거려봤자 꾀병 같아 보일 뿐이었다. 평소 행실이 얼마나 올바르고 모범적이었으면 선생님께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조퇴를 하겠냐고 물어봐 주셨다.


상태창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딱히 위기라고 할 것도 없는데, 게다가 근신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렇다면 변명을 해야 할 대상이 담임선생님이 아닌 것이다. 대체 누굴까.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수업중인 교실에 난입했다. 스무명 언저리의 시선들이 동시에 뒷문으로 들어오는 내게 향했다.


"죄송합니다."


역시나 쉬어버린 목소리로 수업중이던 역사 선생님께 사과드리자 어서 앉으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언뜻 보아하니 수업 중에 군소리를 하며 시간을 때우는 분위기는 아닌듯 했다. 가끔 선생님들도 수업하기 지겨우면 먼저 잡담을 꺼내곤 하지 않나? 우리학교만 그런가...학생이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거든 괜찮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대장내시경 썰까지 이어지는 게 국룰 아니냐고. 그런데 휘광고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수업이 이어졌고 종이 울릴 때까지 잡답은 일절 없었다.




"야, 고테이. 왜 연락이 안돼!"


쉬는 시간이 되자 마자 몇몇이 다가왔다.


"...미안."

"와...괜찮냐?"


웬만큼 인성 파탄 난 놈이 아닌 이상 괜찮냐고 물어보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만큼 아픈 척을 하자 핸드폰은 장식이냐고 역정을 내던 친구들이 잠잠해졌다.


"고테이 왔어?"


뒷문으로 누가 들어와서 고테이를 찾았다. 명찰의 이름부터 확인했다.


[감사랑]


누나의 메인캐중 한명이다.


"너 왜 연락을...어디 아프냐?"

"목이 좀..."


감사랑과는 교실 밖으로 나와 대화했다. 복도 벽에 나른하게 기대자 못 믿을 기현상을 본 사람처럼 눈이 커졌다. 아픈 사람을 처음 보는건지(물론 나는 아픈 척이지만), 아니면 고테이가 한번도 약한모습을 보인 적 없는 인간이라 그런 지는 아직 판단불가이다. 그래도 나는 보편적인 인간을 기준으로 컨셉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이라 꼿꼿하게 몸을 세우진 않았다.


"와...살다살다 고테이가 아프다고 티 내는 건 또 처음이네. 아님 감기가 아니라 죽을병 걸린 거 아니야? 이모는 뭐라셔."

"...말 안드렸, 크흠."

"야, 그 상태로 회장선배 찾아가도 되겠냐? 너 연락두절이라고 학생회애들 존나 털렸다던데."


학생 하나 없으면 없는대로 진행하면 되지 털릴 건 또 뭐람. 슬금슬금 불안함이 엄습했다.


"...회장 선배."

"그래."


그래가 아니라 친구야. 이름이 뭔지 좀 알려줄래. 학생회인데 회장 이름도 모르고 반도 모르면 이상하잖니?


감사랑에게 간절한 눈빛을 쏘아 보냈더니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유의미한 정보를 주었다.


"아. 신믿음 존나 빡쳤던데. 걔한테 안 들키게 숨어...오. 들켰네. 수고."


감사랑은 내 뒤편을 보더니 등을 돌려 자기 반으로 쏙 들어갔다. 그때, 눈앞에 팝업창이 떴다.


[이름: 감사랑

나이: 18세. 휘광고등학교 2학년 2반.

특징: 고테이의 소꿉친구.]


이후로는 역시나 더 채워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수상한 공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신믿음. 부리부리한 눈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저 친구도 누나의 메인 캐중 한명이다.


"야. 장난해? 시발 폰은 장식이야? 어디 치여서 손이 부러졌나 했는데 멀쩡하다?"


친구야 입이 험하구나.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같은 기세에 쫄아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하지만 험한 입과는 다르게 주먹질을 한다거나 정강이를 걷어차지는 않았다. 대신 불쑥 뻗어온 손이 이마를 짚었다.


"열 있냐?"

"...해열제 먹었어."

"목 상태 환상이네. 근데 아픈 건 머리랑 목이면서 문자는 왜 못쳤냐고."

"미안해."

"됐다. 몸상태는."

"목 아픈 거 빼곤 괜,크흠,찮아."


독서부가 아니라 연극부에 들어갔어야 했나. 물론 우리학교에는 연극부가 없지만.


"선배는 뭐라셔."

"...아직 안 가봤는데."

"와...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아니. 왜. 뭐가 문제인데.


"다음 쉬는 시간에 가야지."

"근신으로 끝나면 다행이게."


아! 근신 용어가 여기서 등장했다. 그렇다면 변명을 해야 할 상대는 학생회장이란 뜻이다. 역시 만화 기반 소설 속 아니랄까봐 학생회장이 근신도 내리네.


종이 울렸다. 학교답지 않은 건물과 다르게 종소리는 현실 세계의 학교 종소리였다. 신믿음은 할 말이 더 남은 듯 입을 달싹이다가 한숨만 남기고 교실로 들어갔다. 역시 신믿음이 등을 보이자 마자 상태창이 떴다.


[이름: 신믿음

나이: 18세. 휘광고등학교 2학년 2반.

특징: 방송부. 차기 방송부장.]


3교시는 수학이었다. 수학은 학교마다 수업 난이도 편차가 있을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휘광고는 난도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풀이하는 문제들을 보아하니 <블랙레벨> 문제집이나 경찰대,사관학교 기출문제 난이도 정도였다. 고테이의 몸에 내가 들어와서인지 고테이가 공부를 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 그래. 이게 학교지. 산하남고 애들은 교과서 문제도 안 풀어와서 선생님들은 개념만 가르치거나 자습으로 돌리는데 드디어 휘광고에서 수업다운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덕에 50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지금 이렇게 3학년 교실이 있는 3층에 올라왔다.


학생회장은 3층으로 올라오기 전에 2층 중앙 복도에 붙은 게시판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신학기를 맞이해 학생회장이 신입생들에게 쓴 인사말이 게시판에 붙어있던 덕이다.


3학년 1반 뒷문 앞에 서자 선배들의 흥미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3학년 교실이니까 들어 가지도 못하고, 목만 넣어서 부를 수도 없고. 곤란하던 차에 구세주처럼 누군가가 대신 학생회장을 불러주었다.


"반고요. 고테이 왔다."


창가에 앉아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노란 머리가 씨익 웃었다. 신믿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눈빛이 형형했다. 그 선배를 향해 감사의 뜻으로 까딱, 목례했다.


"...미친건가?"


어. 뭐 실수했나. 노란 머리 선배의 이름을 확인하고 싶어도 교복 셔츠만 입고 있어서 명찰이 안보였다. 그나저나 반고요는 언제 나오는 거야. 노란 머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교실에서 조금 물러나 반고요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록 반고요는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종이 울렸다.


"불렀는데 안 나왔다고?"

"응."

"그래서?"

"...그래서라니?"

"너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신믿음을 붙잡고 한시간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아픈 사람 취급이다.


"그냥 조퇴를 하든가."

"그건, 좀..."


아직 미션을 끝내지 못했으니까.


"조퇴도 안할거면서 이러고 있을 시간 있어?"

"......"

"학생회실은 3학년 교실이랑 더 가깝잖아."


신믿음이 준 단서가 컸다. 어디인지 모를 학생회실로 무작정 가는 동안 머리를 굴려서 내린 결론은 하나다. 무조건 하교전까지 꾀병을 들켜서는 안된다.


건물이 워낙 넓다 보니 학생회실을 찾는 데만 십여 분이 걸렸다. 학생회실은 옆건물 3층에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교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고풍스러운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덜컹,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자 정면에 한사람이 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서양의 궁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학생회실은 지금까지 가 본 휘광고의 어느 곳보다 화려했다. 교무실도 이정도는 아니었으니 학생회의 권력과 지위가 짐작이 갔다.


"안녕하세-크흠,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 바짝 기는 게 좋겠지.


"안녕."


반고요는 높이 쌓인 서류 틈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아침에는, 죄송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상태창에는 괜찮은 변명을 생각하라고 했지만 그 변명을 꼭 입밖으로 꺼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꾀병 외에는 할말이 없었다. 신믿음 말대로 아무리 아파도 등교전에 문자한통은 보내야 했다. 보아하니 휘광고는 핸드폰도 안 걷던데, 학생회의에는 늦었어도 병원에서 사정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는 게 상식일테다. 진짜 고테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


반고요가 고개를 들었다. 차분하게, 혹은 나른하게 뜬 눈이 고테이의 위아래를 찬찬이 훑었다.


"몸상태가 많이 안 좋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반고요가 손에서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언가 바라는게 있는 것 같은데, 그래, 대충 어떤 건지 예상은 가는데.


"죄송합니다."


싫다고, 그런 거.


[※미션! 《학생회의가 있는데 지각을!》


난생 처음으로 지각을 하게 된 당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괜찮은 변명을 생각해 내세요!


성공시 약간의 잔소리와 3일간의 근신. 인간미+1


실패시 학생회장의 알싸한 찜질 ]



MISsION! IMPoSsIbal!

2. 그래서 근신이 뭔데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반고요와 눈을 맞췄다. 선배들이 딱 싫어할 태도다. 반고요도 산하남고 선배들이랑 별반 다를 바 없는지 눈썹이 움찔했다.


"신선하네. 테이 너한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

"점심시간 끝나면 조퇴해. 선생님껜 내가 말씀드릴게."


소설 속 학생회장한테는 그런 권한도 있군요.


말못할 빈정거림은 삼키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알지. 넌 항상 괜찮잖아."

"......"

"그래도 조퇴해."


뭐, 나야 땡큐지. 꾀병부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말이다.


"네."


반고요는 다시 회장님 의자에서 등을 떼고 종이 뭉치로 시선을 내렸다.


"테이야."

"네."

"내가 피곤해서 그런데, 빨리 좀 엎드릴래?"


쯧. 역시 선배라는 존재들은 툭하면 엎드려라 박아라 지랄이다. 에휴, 별 볼 일 없는 산하고 독토부(*독서토론부)도 그 지랄인데 이 황제의 집무실같은 공간에서 가장 상석에 앉아, 멋대로 학생을 조퇴 시킬 권력이 있는 학생회장님께서 엎드리라면 엎드려야지 별 수 있나.


느릿느릿 마이를 벗고 바닥에 손을 짚어 엎드렸다. 학비 비싼 학교 다 부질없다. 순간 상태창이 업데이트 되며 물음표로 뜨던 부분이 글자로 채워졌다. 고테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반고요에게 뜨겁게 찜질을 당할듯 했다.


반고요는 내가 엎드려 있건 말건 본인 일 하기 바빴다. 빠르게 글자를 쓰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노트북 타자를 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후우..."


생각보다 고테이의 체력이 별로였다. 산하고에서 단련된 나는 더 버티고 싶었지만 지금 빙의중인 고테이는 자꾸만 팔이 떨려왔다.


"연락 못할 사정이 뭐였을까."

"......"

"너라서, 네가 이런 적이 처음이라서 우리 모두 걱정 많이 했어."

"아, 예, 죄송합니다?"


앗. 실수. 걱정했다면서 아픈 애를 이렇게 꼽을 주는 게 꼴불견이라 나도 모르게 한껏 비꼬는 투가 튀어나갔다. 나도 찔끔 놀라고, 반고요도 놀란 듯하다. 아님 빡친건가. 바퀴가 뒤로 밀리고 반고요가 엎드려 있는 내 앞으로 걸어왔다.


걷어 차려나. 차기만 해. 아주 뒹굴뒹굴 굴러서 문짝까지 굴러 가야지.


"일어나봐."


뺨 때리려나. 때리기만 해. 확 스핀 돌면서 나가 떨어져-


이마에 차가운 손이 닿았다.


"...지천둥이 너 많이 아픈 것 같다더니, 진짜네."


반고요가 앉아있던 책상에서 진동이 울렸다. 시간을 보아하니 엎드려 있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있었다.


"바로 하교해. 오늘 일 그냥은 넘어갈 수 없어서 학생회 내부적으로 비공식 징계를 내릴 거야. 앞으로 3일간 근신이야."

"넵."

"가봐."

"가보겠습니다."


허리를 꾸벅여 인사 한 뒤 마이를 챙겨 나왔다. 넥타이를 풀고 땀에 젖은 셔츠를 펄럭였다. 그러니까 근신 그게 대체 뭐냐고.


[※미션! 《학생회의가 있는데 지각을!》

미션 성공! 3일간의 근신, 인간미 획득.


미션 클리어 보상: 집으로. 34:50:27]


미션 성공이다. 뒤에 저 숫자는 1초씩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인듯 하다. 돌려 보내주긴 하는구나. 과학적으로 설명 못할 상황이지만 빠르게 납득했다.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다들 그러려니 하며 깔끔히 보내주었다. 학교 앞에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동안 집에서 먹을 점심도 주문했다. 내가 주문하긴 했어도 먹는 건 고테이니까 돈 좀 써도 되겠지. 한번 더 국밥? 아니면 제육볶음? 보쌈도 먹고 싶은데.


"후배님."


훅 다가온 사람과 함께 바람이 훅 끼쳐왔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상대를 확인하자 아까 그 노란 머리다. 이번엔 마이를 입고 있어서 명찰을 볼 수 있었다.


[지천둥]


어. 얘가 지천둥이구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아, 난 또 우리 후배님이 급격히 시력이 나빠졌나 했지."

"...아까는 죄송-"

"됐어, 됐어. 조퇴?"

"네."


지천둥의 등 뒤로 택시가 멈춰 섰다. 고개를 까딱이며 지천둥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팔이 붙잡혔다.


"회장이 뭐래."

"3일 근신 받았습니다."

"뭐야. 그럼 동아리도 못 오잖아! 아, 씹새끼-"


지천둥은 혀를 차고 욕을 하더니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붙잡혔던 팔을 털고 택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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