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나타 쇼요는 원래 바보다.


2.

히나타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훌쩍훌쩍 울며 걷고 있다.

왜 우냐면 카게야마를 봤으니까.


3.

30분 전 히나타는 마음속이 새콤달콤했다. 카게야마도 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자꾸 내 손목을 장난으로 만지니까, 가끔 내 무릎도 만지니까, 그리고 내가 쓰는 데오도란트도 따라서 쓰니까, 그리고 카게야마가 여자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난 카게야마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고 남자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30분 전 히나타는 시내에서 새 모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봄이 왔으니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는 이유가 반, 페도라에 스웨이드 재킷을 입은 음료수 광고 모델을 보고 카게야마가 “저런 것도 멋있네” 했다는 이유가 반이었다. …후자의 반이 조금 더 컸다.

30분 전 히나타는 집 가는 차를 타려고 전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전철역 근처에는 러브호텔 거리가 있었는데 거길 지나는 경로가 가장 빨라서 히나타는 그 거리를 지나갔다. 취한 사람들이나 안 취한 사람들이 러브호텔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했는데, 촌스러운 파란 잠바를 입은 남자 하나도 누군가와 함께 나왔다. 카게야마나 입을 법한 촌스러운 잠바다 싶었는데 진짜 카게야마였다. 히나타는 그 자리에 딱 굳었다. 카게야마도 히나타를 발견했는데, 그런 카게야마 옆에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히나타는 아닌 남자가 있었다.

카게야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슥 들더니 “어~.” 하고, 멋없이 인사했다.

그래서 히나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어어~”하고 똑같이 손을 쓱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했다.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마주친 것마냥.

그러고 카게야마는 지나가고, 히나타는 멍하니 서 있다가 멍하니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전철역과 멀리 떨어진 거리였고 어느새 30분이 지났고 어느새 펑펑 울고 있었다.


4.

배가 고프다.

조금 정신이 들고 보니 30분 동안 사람 많은 번화가를 눈물 줄줄 흘리면서 걸어다닌 후다. 꺼억꺼억 소리도 냈던 것 같다.

히나타는 우선 티슈를 꺼내 눈물, 콧물, 침부터 닦는다. 어쩌다 침까지 흘렸는지는 스스로도 미스터리다. 

저녁때인데다 열렬히 우느라 기력을 소진했다. 배가 많이 고프다. 히나타는 밥을 먹기로 한다.

우동은 별로다. 규동도 별로다. 히나타는 눈에 보이는 음식점을 하나하나 지나치며 걷는다. 걷다 보니 어째 다 별로다. 맛있어 보이질 않는다. 그제야 히나타는 깨닫는다. 내가 입맛이 없는 거구나.

입맛이 없어본 적이 생전 처음이라 히나타는 당황한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나타날 때까지 찾겠다는 생각으로 히나타는 열심히 걷는다. 그러나 그런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전혀 식욕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배가 점점 고파진다. 머리까지 멍해진다. 같은 식당들 앞을 히나타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몇 번이고 지나친다. 그러다 깨닫는다. 지쳐 쓰러지기 싫으면 아무거나 먹어야겠다. 아무리 찾아도 먹고 싶은 음식 따윈 나타나지 않겠구나.

때마침 히나타의 눈앞에는 ‘680円~’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680엔이면 싸다. 히나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가게로 들어간다. 입간판에 쓰인 가게 이름과 메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채다.


5.

히나타는 우선 털썩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빨간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이 묻는다. 

“你想要什么呢?”

그제야 주변을 보니 메뉴판에 처음 보는 한자가 가득하다. 힉, 히나타는 바짝 언다. 히나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종업원이 묻는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

이미 히나타는 얼어버린 후다. 종업원이 인기 메뉴를 설명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 저걸로요.”

히나타는 벽에 크게 붙은 특선 메뉴의 이름을 가리킨다.

“이것만요?”

종업원이 되묻는다. 별 뜻 없이 물은 말인데도 히나타는 또 한차례 바짝 얼어, 옆에 있는 다른 메뉴의 이름을 가리킨다.

“저, 저것도요.”

“红烧茄子하고 凉拌猪头肉이요.”

“네, 그, 그거요.”

히나타가 대답하자 종업원이 주방에 주문을 넣는다.


6.

그러고 나자 히나타는 맥이 탁 풀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뭘 파는지도 모를 식당에 들어와 뭔지도 모를 음식을 먹게 되었다. 눈가와 코는 퉁퉁 부었고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닌 탓에 머리카락도 까치집이다. 낯선 문자의 메뉴판과 낯선 화려한 무늬 벽지에 둘러싸여, 히나타는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훌쩍, 히나타는 한번 코를 푼다. 눈물은 진작 멈췄는데 콧물은 계속 난다.


7.

주문한 지 1분쯤 되었을까, 요리 하나가 먼저 나온다. 큼직큼직하게 썬 고기와 야채에 갈색 소스를 끼얹어 버무린 요리가 옥색 플라스틱 접시에 담겨 있다. 고기는 돼지고기 같다.

한입 먹는다. 그러자, 차갑다.

그리고 짭짤하고 시큼하다.

맛은 있는데.

히나타는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

훌쩍훌쩍 눈물을 삼키며 히나타는 우물거린다. 차갑고 시큼하다. 환절기라 난방을 틀지 않은 가게 안은 영 공기가 시리고, 이 날씨에 혼자 앉아 콧물을 닦으며 냉채를 우물거리는 히나타 쇼요는 영 처량하고….

그러다, 두 번째 요리가 나온다.


8.

붉다.

희고 둥근 접시에 붉은 튀김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다. 끈적한 붉은 소스 덕에 색이 먹음직스러운데 대체 무엇을 튀긴 튀김인지는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다. 

어쨌든 따끈해 보여 식욕이 돈다. 히나타는 한 덩어리를 젓가락으로 집는다. 어지간해서는 한입에 넣기 힘들 크기다. 히나타는 입을 쩌억 벌리고 튀김을 집어넣는다.

“흐아 따 뜨뜨 뜨뜨뜨뜨뜨…!”

히나타는 허둥지둥 차가운 물을 입에 부어넣는다. 서둘러 식혔지만 이미 입천장이 홀라당 데어버린 후다. 깨물자마자 튀김이 속에 머금었던 뜨거운 즙이 뿜어져나온 탓이다.

난 바보야. 

난 맨날 바보야.

찬물과 섞여 밍밍해진 튀김을 씹어 삼키면서 히나타는 그렇게 생각한다.


9.

두 번째 덩어리.

히나타는 앞니로 살짝 베어문다.

달고 짜고 매콤하고 기름지고 바삭하고 그리고, 후끈후끈하다.

천천히 식히면서 조심조심 먹자, 좀전에 입천장을 벗겨버렸던 튀김의 속살은 버섯보다 말랑하고 토란보다 촉촉하고 난로처럼 후끈하다.

소스는 갈색에 붉은기가 도는 색이다. 붉은기는 고추에서 나온 듯하다. 흰 접시에는 튀김에서 배어나온 붉은 고추기름이 고여 있다. 보기만 해도 뜨끈한 그 맛이 입에도 감돈다.

볼이 따끈해진다. 삼키자 속도 따듯해진다.

여태 추웠다는 사실을 히나타는 이제야 깨닫는다.

몸이 점점 녹는다. 

한 입 더 먹으며 히나타는 또 깨닫는다. 가지구나.


10.

후끈후끈 바삭바삭 달짝지근 말캉말캉.


11.

히나타가 세 덩어리째를 우물거리는데 전화가 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뭔데.”

히나타는 불퉁하게 말한다.

“저녁 먹자.”

카게야마가 말한다.

“나 벌써 먹고 있는데.”

그러니까 썩 꺼져, 라는 뜻을 담아 히나타는 말한다.

“어디서 먹는데?”

“몰라, 시내에, 중국어 간판 있는 데.”

“혼자?”

“혼자면 뭐.”


사이.


“너 왜 우냐?”

카게야마가 묻는다.

“안 울거든.”

히나타가 내쏜다.


사이.


“거기 맛있어?”

“뭐?”

“맛있냐고, 지금 너 있는 거기.”

“뭐야, 맛있는데, 왜.”

“그럼 간다.”

“뭐?”

“나도 거기서 저녁 먹으러 간다고.”

“…뭐?”

니가 여기 왜 오냐 이 못돼먹은 거지발싸개야, 라고 히나타가 화를 낼 틈도 주지 않고 카게야마는 뚝 전화를 끊는다.


12.

우물우물 네 덩어리째를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히나타가 카게야마에게 화를 낼 이유는 없다.

사귀는 사이도 아닐뿐더러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히나타가 멋대로 기대했을 뿐이다.

역시 난 바보야. 히나타는 생각한다.

가지가 영 맛이 없다. 튀김옷은 맛있는데. 소스도 맛있는데. 하면서 히나타는 우물우물. 

그러다 카게야마를 생각하니 또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카게야마가 도착하기도 전에 다 먹어버릴까 봐 히나타는 먹는 속도를 한참 늦춘다.


13.

쩔렁 종소리가 울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카게야마다. 촌스러운 파란 잠바를 보기만 해도 히나타는 화가 난다.

“왜 굳이 여기로 와서 먹는데?”

“너 보려고.”

카게야마가 시원하게 대답하자 히나타는 말문이 막힌다.

“어… 어.”

“이거 뭐야?”

“가지.”

“나도 이거 먹을래.”

종업원이 오자 카게야마는 접시를 가리키며 히나타와 같은 것을 주문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 쪽으로 접시를 민다.

“그거 나오는 데 오래 걸려….”

“그래?”

“어… 그니까 먼저 먹으라고, 이거…. 이따 나오면 나 몇 개 주고….”

그러자 카게야마는 사양 없이 젓가락을 들고 히나타의 가지튀김을 집어든다.


14.

한입 크게 베어물더니, 카게야마는 조금 전의 히나타처럼 곧바로 찬물을 찾는다. 좀전보다 식어서 입을 데이지는 않은 듯하다. 홀랑 입천장 데어버리기나 하지, 하고 히나타는 쪼잔한 저주를 퍼붓는다.

“맛있네.”

카게야마가 말한다. 히나타는 고개만 끄덕인다.

카게야마는 한 입 베어물어 먹고, 조금 식혔다가 나머지를 한번에 입에 넣어 먹는다.

카게야마를 빤히 보다가 히나타도 그렇게 먹어 본다. 먼저 한입. 그리고 나머지는 한입에. 

그러자 맛있다. 깨작깨작 여러 입에 나눠 먹을 때보다 훨씬 맛있다. 달큰한 가지 즙이 허투루 버려지지 않고 입에 고여, 매콤하고 짭짤한 녹말 소스와 함께 입안에서 어울린다.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기분좋다. 후아 하고 히나타는 더운 숨을 뱉는다.

카게야마를 보니 볼이 발갛다. 맵고 기름진 음식은 몸을 금세 덥힌다.

히나타는 자기 볼도 손등으로 만져 본다. 화끈하다. 고춧기름 때문이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고.

배가 불러서 몸이 더워진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도 아닐지도 모르고.


15.

“그래서, 왜 울었는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카게야마가 툭 묻는다. 

“뭐… 왜… 네가 알 바냐?”

우물거리면서, 히나타는 빈정이 상해 되묻는다. 따끈한 고춧기름이 도는 음식 덕에 좀전보단 마음이 풀려 있다.

“너 아까 거짓말 했잖아, 안 운다고.”

“그게 뭐.”

“너 원래 거짓말 안 하잖아. 근데 왜 거짓말 했어?”

“무슨 상관인데?”

“걱정되잖아, 내가.”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양철 냄비로 한 대 땅 치고 싶어진다. 야 이 자식아. 야, 너는, 진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냐? 넌 네가 목소리 좋은 거 알아 몰라? 잘생긴 것도 알아, 몰라? ….

“왜, 왜 울어?”

카게야마가 당황해서 묻는다.


16.

“너, 어, 너 이 자식, 그럴래?”

“뭐? 내가 뭐.”

“네가 오늘 자꾸 시비 걸잖아.”

“내가 무슨 시비를 걸었다고.”

“저녁 같이 먹자고 하고.”

“그건 시비가 아니잖아.”

“왜 우냐고 하고.”

“그것도 시비 아니잖아.”

“나 걱정했다고 하고….”

“그것도 시비 아닌데.”

“그게 왜 시비 건 게 아니야, 이 새끼야. 이 드럽고 치사한 새끼야, 너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몰라, 어?”

“뭐, 뭐야, 뭔데.”

둔하게 더듬거리는 카게야마의 말에 히나타는 참지 못하고 빽 소리친다.

“너 이 자식,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폭탄발언을 하는 와중에도 가게에서 소리지르면 민폐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히나타는 ‘너 이’까지만 크게 말하고 그 뒷말은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성질머리만 가득 담아서.


17.

한번 말을 터트리자 욱 하고 속에서 치민다.

“맨날 내 무릎 만지고. 씻을 때 나 빤히 쳐다보고. 이 새끼야, 너 다 알면서 일부러 괴롭히는 거지. 설레라고. 나 놀리는 게 재밌냐? 어? 뒤통수도 동그란 게…. 뒤통수도 동글동글한 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언어중추 어딘가가 고장나, 할 말이 하나도 혀끝으로 나오질 않는다. 이 뒤통수도 동그란 게, 하는 말만 히나타는 몇 번이고 힘주어 외친다.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비난의 말이기라도 한 양.

카게야마는 그런 히나타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묻는다.

“히나타.”

“왜.”

“너 나 좋아하냐?”

히나타는 새삼스레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다.

“왜, 어쩔래! 몰랐냐? 그럼 이제 알게 됐네. 그래 나 너 좋아하는데, 그래서 어쩔 건데!”

그 말을 듣고 카게야마는 튀김 소스만큼이나 붉게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그리고 음식 주문하는 말투처럼 멋대가리없게, 한 마디를 내뱉는다.

“나도 너 좋아하는데.”

히나타는 열을 내다 말고 멈춰서 어색하게 굳어버린다.

“…어?”


18.

“나왔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때마침 탁, 두 접시째의 가지튀김이 식탁에 놓인다.

“….”

“….”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머쓱하게 요리를 바라보다가,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다시 집는다.

“아, 이건 또…. 왜 이렇게 뜨거워….”

히나타는 괜히 혼잣말을 하며 튀김을 우물거린다. 그러다 흘긋, 카게야마를 보고 말한다.

“야, 근데… 네가 나를… 왜 좋아해?”

“뭐, 뭐? 무슨 소리야.”

“아니, 너… 아까… 그거… 그 사람 있잖아.”

“아, 아까 그 사람? 모르는 사람인데?”

“어엉?”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가 히나타의 입에서 튀어나간다.

“근데 너 아까 그 사람이랑 거기서 나왔잖아.”

“응….”

“한 거 아니야?”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랑 했어?”

“응.”

“왜 해, 모르는 사람이랑?”

“어…. 그냥…. 하려고 만나서 했는데…. 배고플 때 밥 먹는 거에 이유가 있어?”

히나타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눈을 껌벅인다.

“너 변태냐?”

“…뭐 하면 변태인데?”

“이상한 거… 음….”

그러나 카게야마가 그 사람과 무엇을 했는지 일일이 따져 묻기는 절대로 싫다. 히나타는 말문이 막혔다. 눈만 껌벅일 뿐이다.

그런 히나타의 눈치를 보며 카게야마가 말한다.

“하지 말라면 안 할게….”

그러면서 카게야마가 젓가락을 놓고 손을 테이블에 올린다. 때마침 배불러져서 놓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 손목 예쁘다고 자랑하려고 그런 것일까.

히나타는 멍해져서 카게야마의 손목을 만진다. 자기도 모르게.

“너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이랑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수 있어?”

“어….”

“내가… 나하고만 하자고 하면… 그럴 수 있어?”

카게야마는 잠시 숨을 멈춘다. 눈이 마구 흔들린다.

“…대답 못 하네. 싫으면 됐고….”

“…아니, …좋아서….”

사이.

“…야, 너, 나…. 진짜 좋아해?”

히나타가 묻자, 카게야마는 주먹을 꽉 쥔다. 그리고 속삭인다.

“…네 허벅지 엄청 만지고 싶어….”

더없이 끈적한 목소리로.

이 자식 엄청난 변태 아닐까…?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서, 히나타는 좌석에서 엉덩이를 살짝 미끄러트린다. 

그렇게 해서 다리를 조금 더 앞으로 내민다.

맞은편에 앉은 카게야마 쪽으로.


19.

카게야마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 보지만, 허벅지에 손이 닿기에는 터무니없이 거리가 모자란다. 카게야마는 아쉬워하며 다시 손을 테이블에 올린다.

대신 카게야마는 자신의 종아리를 히나타의 종아리에 댄다. 빳빳한 면바지를 입고 있는데도 댄 순간 카게야마의 다리가 뜨겁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맞닿은 다리가 스르륵, 미끄러진다. 어루만지듯이.

히나타는 등에 소름이 쫙 돋는다.

자기 다리로 히나타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카게야마는 태연히 젓가락을 집는다. 종업원들에게 수상해 보이지 않기 위한 위장일까,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차분히 우물우물 먹는다.

테이블 밑으로는 히나타의 다리에 살을 부비면서. 핥듯이 곳곳에 닿으면서.

카게야마의 눈동자는 송곳처럼 빤히 히나타를 보고 있다.

“너…. 진짜 나를 좋아하고…. 진짜 변태구나.”

“그런가….”

하며 카게야마가 입술을 핥는다. 입술은 달아올라 새빨갛다.


20.

오늘 카게야마가 다른 사람하고 섹스한 거랑 카게야마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

상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상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고 히나타는 생각한다.

오늘 파란 잠바를 입은 카게야마 옆에 서 있던 그 남자가 어쩐지 이젠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상관 없지 않나 카게야마가 날 좋아한다는데.


21.

히나타는 원래 바보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 잘 포착하기도 한다.


22.

“근데 카게야마, 너 아까 왜… 그랬어?”

“뭘?”

“아까 나랑 마주쳤을 때…. ‘어~’ 하고 인사한 거….”

“그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게 말이 되냐? 그냥 모른 척을 하든가…. 왜 그딴 식으로 인사를 하는데, 사람 속 뒤집어지게….”

“그럼 넌 왜 ‘어어~’ 했는데?”

“…그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똑같잖아….”

“그, 그런가….”

히나타는 몽롱해진다. 카게야마의 왼손 손목을, 자신의 왼손 손끝으로 어루만지면서.

물론 두 사람의 오른손은 각자 젓가락을 놀리느라 바쁘다. 아직 먹어야 할 튀김이 잔뜩 남았다.

짜고 달콤하고 맵고.

후끈후끈하고.


23.

“한 잔, 해?”

“어?”

카게야마의 말에 히나타는 눈을 껌벅인다. 술 먹고 싶으면 술 먹자고 하면 되지 저 어색한 말투는 갑자기 뭐야?

다음 순간 히나타는 깨닫는다. 아, 이건 그거구나. “오늘 나와 한잔 하지 않겠어?” 류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대사를 따라하려고 했던 거다.

카게야마 이 멍청이…


24.

히나타 쇼요는 대식가고,

카게야마 토비오도 대식가라서,

둘은 마주보고 앉아 아주 많은 안주를 먹어치울 것이다.

그리고 취했다가,

어느새 나란히 앉았다가,

못 이기는 척,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집으로 같이 가주게 될 것이다.

따끈한 요리를 아주 많이 먹고 나서.

트위터 @eggacc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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