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후에 외전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기간은.. 언젠가.. 여유가 나는 대로..)


*

 첫 기차는 늦은 오전 부터 있었다. 피터는 기차에 오르며 심호흡을 하고는 역무원에게 부탁해 충전해둔 핸드폰을 켰다. 오, 그럼 그렇지. 아마 피터의 인생에서 가장 부재중 전화를 많이 받아봤을 것이다. 토니부터 배너, 캡틴까지? 사고를 제대로 친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키드, 어디야?' 

'밤비를 데리고 어디로 사라진거야? 아니지 네가 납치당한건가? 사실 cctv 봤어. 무슨 생각이야?' 

'이거 천둥신 양반이 알면 큰일나.' 

'젠장. 대체 어디서 소식을 듣고.' 

'겨우 진정시켰어. 위치추적기 꺼논건 나중에 얘기해. 내일 내로 돌아와.' 

 피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제 선택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로키는 혼자서라도 토르를 떠나려 했겠지. 그렇게 되면 로키를 이렇게 다시 데리고 가는 것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피터는 빠른 이동을 위해 기차에서 내려 몰래 수트를 장착했다. 건물 사이로 직접 이동하는게 빠를 것이다. 로키는 저를 가볍게 드는 피터를 의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얌전히 매달렸다.

 * 

 토르는 간신히 분노를 참고있는 것 처럼 보였다. 토니는 건물에 벼락만 내리꽃지 말라며 계속해 속으로 빌고 있었다. 전기가 튀는 몸으로 피터를 바라보던 토르는 곧장 그를 해칠 것 처럼 아주 위험하게 느껴졌다. 여차하면 주변의 어벤져스 멤버들은 토르를 막기 위해 언제든 달려들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막아선 것은 어벤져스의 멤버들이 아닌 로키였다. 피터의 품에 안겨 있다가 얌전히 내려온 로키가 처음 내뱉은 한마디는 그것 뿐이었다.

 "피터는 잘못없어 토르. 내가 나가게 해달라고 억지 쓴거야." 

 로키는 피터를 보호하려는 것 마냥 그 앞에 서며 말했다. 여전히 모자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키는 토르가 말 없이 서있자 모자와 안경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벗었다. 난데없이 건물에 빠져나간 것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저도 이 모습으로 이렇게 까지 오래 있어본 것이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토르에게는 유난히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일전에 이 모습의 거인들은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라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을 줄곧 괴롭혀 왔던 정체성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낸 까닭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갖은 생각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변장용 도구들이 없어지자 새빨간 눈과 서슬퍼런 피부, 작게 솟아오른 뿔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로키는 아무 반응이 없는 토르에게 겁이 났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나 기억 돌아왔어 토르. 근데 그와 동시에 모습도 이렇게 변해서.. 네가 싫어할까봐. 마력도 바닥나서 모습도 못바꿔. 그토록 원하던 동생의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했겠네. 하하." 

 로키는 횡설수설 하며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았다. 토르가 실망하거나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짓고있을까 로키는 차마 토르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말하던 도중 고개를 숙였지만 토르가 내내 말이 없자 결국 로키는 불안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주한 얼굴은 놀랍게도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토르였다.

 "토르, 내가 이런 모습이라 놀랐어? 마법은 아니여도 시약 제조를 하면 한동안이라도 어떻게든 될거야. 그러니까." 

"기억이 돌아왔다 했느냐." 

 토르는 로키의 얼굴에 애틋하게 손을 얹으며 물었다. 로키는 아주 어릴 적을 빼고는 토르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조심스레 토르의 손에 제 두 손을 얹고서 로키는 빨간 눈동자를 부딪히며 답했다.

 "열병을 앓고난 이 후 돌아왔어."

 토르는 로키의 대답에 이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확신했다. 서늘한 로키의 체온, 진실을 고할 때면 긴장하여 작게 떨리는 오른쪽 속눈썹. 토르는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 조차 못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또 너를 잃은 줄 알고 난.…"

 토르는 로키가 부서질 것 같다 느끼도록 힘껏 껴안았다. 로키는 토르의 품에 얼떨떨하게 안겨서는 서럽게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토르의 등을 토닥였다. 

"로키, 날 떠나지 말아다오. 이렇게 부탁하마. 내 곁에 있어주렴. 나 역시 네 곁을 떠나지 않으마."   

 로키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윽고 작게 떨렸다. 말 없이 끌어안고서는 놓아줄 줄은 모르던 꼬맹이 토르는 이제 솔직하게 고백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로키는 아이처럼 울고있는 토르를 다독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토르 이 바보야. 여기에 다른 사람 있는데 그만 울어." 

 토르 너와 나는 이미 훌쩍 커버려 아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울고있는 널 보자니 어쩌면 우린 아직도 그 옛날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아. 사실 우리는 원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게 아닐까? 울면서 끌어안는게 표현의 전부였던 네가 이젠 말로 까지 고백하는 걸 보니 우리 둘이 서로 많이 변한 것은 맞지만, 울고있는 그 멍청한 표정은 그 날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내 말 듣고 있어?" 

 로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 토르 때문에 전전긍긍 한 것이 꼭 바보처럼 느껴졌다. 한 나라의 국왕이 바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며 로키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이 토르 오딘슨.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멍청이 로키 오딘슨이 너무 웃겨서 로키는 울고있는 토르를 껴안은 채 웃다가 새어나오는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두 명 다 멍청해서 안 웃을 수가 없어. 안 그래 토르? 로키는 다정하게 토르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로키는 토르의 대답 대신 돌아오는 입맞춤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다정한 입맞춤에도 두 신의 눈물은 여전히 멈출 줄을 몰랐다. 토니는 의외의 상황에 입이 떡 벌어져라 눈 앞의 광경을 계속해 바라보는 중이었다. 겁이라고는 상실해버린 것 만 같은 저 왕에게 눈물이라는게 있을 줄이야. 피터가 대체 무슨 이유로 로키를 데려가겠나는 토니의 항변에 토르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었다.

 '그렇다면 로키가 원해서 떠났다는 것이오?' 

 영상을 보며 내내 토르가 아무 말도 않길래 변명하듯 내놓은 답변에 토니는 입을 다물었더랬다. 순간적으로 토르의 표정에는 어떠한 체념과 아픔이 보여서 토니는 솔직히 말해 할 말을 잃었다. 화가 난 것 처럼 보이는 유난히 깔린 목소리와 위압감 속에서 스쳐지나간 그 표정은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음을 토니는 재차 확인했다. 놀랍게도 저 표정은 처음 로키가 돌아오고나서, 토르를 못알아 보던 로키를 확인하던 것 과 같은 표정이었다. 토르는 로키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키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아니 그 보다도 더. 

'로키가 진정 원해서 한 일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오?'

 토르는 문지기의 말을 떠올렸다. 로키가 기억을 떠올리길 망설이고 있다는 말. 저를 떠날 것 처럼 굴던 로키의 모습과 그 말이 맞물려선 어릴 적 이 후로 그리 크게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란 감정에 토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로키가 없는 세상은 이미 충분히 끔찍했는데,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버텨내야 한다는 것인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차 로키를 놓아줄 수 없었다. 하지만 로키가 영영 자신을 놓아주길 원한다면? 토르는 어떻게든 되찾아 곁에 두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역시 망설임을 가지고 말았다. 그러니, 겨우 겉모습이 조금 변한 것 정도로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던 동생을 보며 토르는 그 걱정을 접었다.

 '확실하게 해.' 

 발키리의 말이 맞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에는 이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마음은 한번 확인하는 정도로 그쳐선 안되었다. 로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시켜 주어야만 했다. 어쩌면 사랑이 익숙하지 않았을 로키에게 당연히 했어야 할 일 일테다.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했던 토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반대로 로키에겐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이었으리라. 

 로키, 떠나지 말아다오. 내 곁에 있어주렴. 부탁이다. 

토르는 기억 저편에 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로키가 없어진 줄 알고 엉엉 울었던 그 날. 토르는 그 때 처럼 북받친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을 잃는 건, 지독하게도 뼈아픈 경험이어서 또 다시 잃고 싶지 않다는 갈망을 만들어 내었다. 로키의 서늘한 체온과 새까만 머리칼, 솔직하지 못한 말투. 그 모든 것이 생생했고 미치도록 그리웠다. 다시 돌아온 로키의 겉모습이 조금 바뀐 것이야 중요하지 않았다. 로키가 살아있는 것 만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토르는 이미 충분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못다한 사랑도 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토르는 충분했다.

 "로키 네가 있다면 내 삶은 가득차는 구나. 너 하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하단다."

 로키는 토르의 말에 눈물을 닦아내고는 웃음을 지었다. 붉어진 눈가로 로키는 예쁘게도 웃었다. 

"떠나려 해서 미안해. 영영 떠나려던거 아니야. 놀래키려고 그런거야. 이러지 않으면 형이 이렇게 까지 우는 거 구경할 날이 없을 것 아냐."

 "여전히 짖궃구나 로키." 

 토르는 씨익 웃는 로키를 따라 웃었다.

 "알잖아. 내가 형 골탕 먹이는 일 좋아하는거." 

 토르는 로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자신보다는 서늘할 지 언정 살아있음을 알려는 로키의 미지근한 온기가 토르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조그맣게 솟아오른 뿔도 아주 귀여웠다. 새빨간 루비 같은 눈도, 초록빛 눈동자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로키, 돌아가자꾸나. 우리들의 집으로. 날 따라올테냐." 

"이번엔 나 안놓고 갈거지?" 

  토르는 대답 대신 로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시금 돌아오는 입술에 로키는 가볍게 제 입술을 맞부딫혔다. 

"이제 너도 바빠지겠구나. 왕비로서 해야할 일이 많을 거다." 

"잠깐만, 왕비라고? 토르 그게 무슨 소리... " 

 토르는 로키가 말을 더 잇기도 전에 로키를 안은 채로 건물 밖으로 날아갔다. 토니는 토르가 창문을 깨고 들어오지 않도록 토르 전용 자동 유리창을 만들어 놓은 참이었고 그건 지금 이 상황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토니는 자신의 선경지명에 내심 감탄하였다. 신 들이란 하나같이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군. 홀로 잘됐다는 듯이 웃는 배너를 이해 할 수 없어 몇초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토니는 피터를 불러 밥이나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겸사겸사 위치추적기 이야기도 할 겸. 

 재건 된 아스가르드는 나쁘지 않았다. 백성들이 모두 돌아와 지내기 까지는 좀 더 정비가 필요했지만, 지구에서 지구인으로 살기 위해선 변장을 할 수 밖에 없는 로키로서는 이곳이 좋다고 밖엔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마법도 안되니 토르를 도와 몸 쓰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 무리일테고 로키에게 주어진 임무란 산처럼 쌓인 서류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거 지나치게 많은 것 같지 않아?"

 "전하께서 왕제님 돌보랴, 기억 되찾을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갑자기 없어져서 찾아다니느라 그 동안 밀린 업무입니다. 참고로 저는 오늘부터 휴가 나갑니다."

"휴가라니. 이 많은 걸 나 혼자 다하라고?" 

 로키의 표정이 경악으로 들어찼다. 사흘 밤낮은 꼬박 새야 겨우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키리는 그러든 말든 이제 해방이라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서는 단호하게 답했다. 

"네." 

 토르는 대체 그동안 뭘한거야? 라고 쏘아 붙이려다가도 어떻게 보면 이 사단을 낸 건 결국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이었기에 로키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백성들은 아직 데려오지 않은 상태라지만 국정을 돌보는 몇몇 대신들은 업무 차 아스가르드에 와 있는 상태였으므로 로키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낸 채로 돌아 다닐 수는 없었다. 발키리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는 서류를 모두 맡겼겠지. 

"우선 제일 급한 서류는 이거에요. 확인해 보시죠." 

 발키리가 서류 뭉치에서 상단 부분을 잠시 휘적거리더니 다른 왕국에서 온 서신을 꺼내었다. 상당히 격식을 차린 모양새였고 정성스럽게도 갖춰진 행태가 로키에게 익숙했다. 함선에서도 비슷한 걸 본 기억이 있었다. 그 때는 엉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긴 했지만 어쨌든.

 "바나헤임에서 온... 청혼이로군." 

"벌써 세번째에요."

 로키는 서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잠시 내려놓고는 '나보고 어쩌라는건데?' 라는 표정으로 발키리를 바라보았다. 발키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런 걸 설마 묻는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세번째라 함은 이미 두번은 거절했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로키가 홀로 돌아오지 않던 해에 한번, 그 뒤로 2년뒤에 한번. 그리고 지금까지. 총 세번이었다. 이 후는 서신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토르도 혼인을 할 때가 되었지. 사실 좀 늦은 감도 있지만." 

"그래요. 그러니 혼담을 거부하는 서신이나 빨리 작성해주세요. 곧 있을 국혼 진행이 급한거 아시잖아요. 아스가르드를 완전히 재건한 후 열릴 축하 연회와 함께 진행할 에정이니." 

 발키리의 재촉에 로키는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가 서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가 눈을 데르륵 굴렸다가 이내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로키가 한숨을 깊게 내쉬자 발키리도 따라서 한숨을 쉬었다. 또 뭐가 문제람. 

"거절해도 괜찮을까. 토르는 지금의 내 모습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건 토르 뿐 일 거 아냐. 애초에 나랑 결혼한다는 게..." 

"전하는 모든 영광을 왕제님, 그러니까 예비 왕비와 함께 하길 원하세요."

 토르가 원하는 건 그것 뿐이야. 로키는 힐끗 눈을 옮겨 발키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제발 삽질 좀 그만해. 라는 말이 얼굴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자리를 다시 고쳐잡고서, 로키는 서신에 대한 답장을 쓰기 위해 펜과 종이를 꺼냈다. 

"…  아직도 토르에게서 도망치길 원해?"

 곁에 있어달라며 울던 토르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사실 그 말은 로키가 가장 하고싶은 말이었다. 내 곁에 있어줘 토르. 네 곁에 계속해 머물고 싶어. 온전히 나만 바라봐줘. 너를 사랑하는 나를 알아줘. 널 좋아해 토르. 이 세상 그 누구 보다도 널 사랑한다고 단언할 수 있어. 과거의 로키는 자신의 수 많은 외침을 함구하곤 했다. 이 마음이 거절 당할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젠 아닐테지. 내가 형을 더 사랑했고 그래서 늘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우린..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하고 있구나. 

"아니."

 아니야. 로키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도망도 지쳤어. 로키는 허탈하게 웃음을 내뱉었다. 서신에 대한 답장은 아주 금방이면 끝날 것 같았다. 최대한 예의바르게 보이도록 갖은 미사여구는 가져다 쓰겠지만, 어려운 결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정해진 답을 그럴 듯한 말들로 포장해 욱여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그러면 왕비님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이제 연회 준비가 막바지라서 그 동안 정신없이 일했으니 오늘은 정말 쉬려구요."

 로키는 저를 왕비라 부르는 소리에 왜인지 모를 부끄러움이 솟아올라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어감이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동시에 그 단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바쁘게 서류를 보는 척 하며 고개를 앝게 숙인 로키는 발키리에게 이만 가보라며 손을 저었다. 

"왕비님 지금 당장 얼굴이 파랄지 언정 부끄러워서 달아오른 건 티가 다 나네요. 거짓말이 이리 서툴러서야 원."

 발키리는 놀리는 것 마냥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로키는 발키리가 얄미워 잠시간 씩씩 거리다가 다시금 서신을 펼쳐들었다. 세번째, 라고. 남들은 받고 싶어 안달난 멋진 여신의 청혼을 토르는 이미 두번이나 거절했다지. 이 여신은 토르가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무리 아스가르드가 옛 영광으로 찬란했다 한들 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처음 부터 시작해야하는 가난한 왕국에 불과한데, 이렇게 까지 꾸준히도 청혼을 하다니 그건 토르가 어지간히도 좋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청혼은 세번째 마저 거절을 당한채 끝을 맺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더 좋은 인연을 만날 기회일 수도 있는거지."

 로키는 조심스레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저희는 이 청혼을 받아들 일 수 없습니다. 현재 아스가르드 국왕에게는 이미 사랑을 약속한 상대가 있으며 그 자와 빠른 시일 내에 국혼을 올릴 예정입니다...' 

 로키는 제가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정말이지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애초에 이 서신에 대한 답장은 토르가 쓰는 것이 맞았으나 토르는 며칠 전 부터 아스가르드와 지구에 관한 협정 문제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로키가 알기로는 토르는 오늘 곧 있으면 열릴 연회 문제로 잠시 토니와 회의를 가질 것이라 했다. 토르가 그 전부터 떠나기 싫다고 얼마나 어리광을 피우던지. 로키를 안은 채로 놓아줄 생각을 못했다. 발키리와 헤임달은 토르가 저 상태로 로키를 안은 채 협정에 나설까 안절부절 하며 토르를 재촉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토르가 그냥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내자 마자 결국 화가 난 발키리가 칼을 꺼내드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로키는 저를 안은 채로 놓아줄 생각을 못하던 토르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토르가 정성스럽게도 여며주던 녹색 숄을 가슴으로 소중히 끌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보고싶어 토르."

 겨우 며칠을 못본 것 뿐이었는데 로키는 토르가 보고싶었다. 들판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담은 것만 같은 찬란한 금발, 바다의 정수를 끌어모은 것 같은 푸른 눈, 뜨겁다 느껴질 정도로 높은 체온. 잠깐 사이에 그 모든 것이 그리웠다. 평생 안보고 살 생각도 했었다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토르가, 보고싶어. 

"나도 그랬단다, 로키."

 로키는 숄에 입을 가볍게 올린 채로 눈을 감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토르가 장난기가 섞인 얼굴을 하고는 로키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토르가 분신마법을 쓸 줄도 알았던가? 그렇다기엔 로키는 토르에게 마법을 가르친 기억이 없었다. 마법엔 관심도 없던 토르가 갑자기 로키 만큼의 생생한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있는건 진짜 토르라는게 더 신빙성 있는 사실이었다. 

"뭐,뭐야. 일은 어쩌고 여기에 있어?" 

"흐음, 토니가 급하게 회의를 미루어서 말이지. 잠시 시간이 생겨 와봤단다." 

"… 어디부터 보고있었어?" 

"발키에게 왕비라 불리고선 창피해하던 때 부터라 하면 답변이 되겠느냐."

 로키는 다시한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왔으면 티를 내!" 

"글쎄, 네가 당황하는 모습도 재밌으니 말이다."

 토르는 책상을 에둘러 걸으며 옆으로 이동했다. 로키는 토르가 제 옆으로 오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의자가 옆으로 향하도록 고쳐앉았다. 토르는 로키가 앉아있는 의자에 바로 한쪽 무릎을 꿇어 안고는 로키의 손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토르는 고개를 들어 로키의 눈을 응시했다. 루비처럼 빨간 눈은 아주 진귀한 보석 처럼 빛났다. 토르가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저는 위에서 토르를 내려다 보는 경험이 나름 희귀하다면 희귀한 편인지라 로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얌전히 토르가 하는 행동을 기다렸다. 

"이 말은 연회장에서 하려했다만…  네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구나."

 토르의 난데없는 애정표현에 로키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사카아르에 있을 때 변했다는 것이 느껴진 토르 조차 적응을 못할 지경이었는데 지금의 토르는 더 심했다. 

"로키, 나와 결혼해다오. 비록 부족한 형이지만 너와 평생을 함께 하는 걸 허락해 주겠느냐."

 로키는 토르가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결혼식 이주일도 안남았어. 새삼 이제 와서 고백이라니. 토르 너 정말 바보구나. 이런 멍청한 사람이 아스가르드의 왕이라니. 똑똑한 왕비라도 있어야 백성들이 안심하겠네. 안그래? 

"로키? 왜 울고있느냐. 또 내가 말 실수라도.." 

"…  아. "

 로키? 토르는 다정하게 로키의 눈물을 닦아주며 제 품에 안겨 웅얼거리기 시작하는 그에게 되물었다. 울음에 말이 짓이겨져 한껏 뭉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로키가 끝내 확실하게 내뱉은 한마디는 아주 선명히 들렸다.

 "좋다고. 나도 좋아, 토르." 

 로키는 토르의 품에서 잠시 빠져나와 그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아당겼다. 갑작스런 키스에도 토르는 자연스럽게 로키의 머리를 쓸며 혀를 엮어갔다. 짧게 떨어지길 반복하던 입술은 자석처럼 다시 맞붙었다. 로키는 어릴 적 토르와 놀다가도 툭 하면 울던 것 처럼, 아주 어렸던 그 날 마냥 펑펑 울었다. 그땐 마냥 서러워서 울었던 것 같은데, 로키는 지금 제가 왜 울고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지금도 서러워 우는 것일지 모르지. 그 때의 토르는 울고있는 제게 되려 화를 내다가도 지금 처럼 눈물을 닦아주느라 바빴다. 

 평생 그 옛날 처럼 형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았어.

이 온기와 다정한 손길 모두 다시는 닿지 못할 것 같았어. 

 계속해 키스 해달라 조르는 로키는 하루종일 울음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일이 많아보였지만 토르는 나중 일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토르는 로키를 번쩍 안아들었다. 왕비를 위로해 주는 것도 왕이 할 일 아니겠는가. 토르는 발키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로키의 집무실을 나섰다. 

"후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업무지." 

"발키리 한테 혼나도 난 몰라."

 로키는 눈가가 발개진 상태로 답했다. 발키리의 혈압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연인의 오랜 재회를 발키리가 깊은 아량으로 이해해주는 수 밖에. 로키는 그저 왕비로서 업무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확실히 하란 건 분명 발키리 당신이었소. 토르는 로키를 침실로 데려가며 속으로 대답했다. 

  아스가르드의 연회겸 국회는 며칠 미뤄질지도 몰랐다. 바보 왕과 울보 왕비가 너무도 바쁜 탓에 슬프게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 끝에 재회한 연인을 우리가 배려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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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앙 드디어 끝났다! 이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네요 사실 글은 글 대로 다 써놨는데 중간에 날라가서 다시 쓰느라 ... 저번주에 올릴 걸 이제 올린..ㅠㅠ 그 사이 캡마도 보고 난생 처음 밤샘 작업도 하고 하루에 4번이나 장소를 옮겨다니며 일도 해보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글이 이렇게 까지 쓰고 싶기는 처음이야! 오늘은 드디어 쉬는 날이라 올릴 수 있게 되었네요. (내일은 또 하루종일 작업 하러 갑니다.. 괴로웟) 시리즈로 이렇게 까지 글 써보는게 또 오랜만이라 즐거웠어요. 아마 외전 두편 정도 나중에 시간 내면 더 쓸 것 같아요 국혼을 올린 로키와 토르의 신혼생활 이야기 쓰고 싶어져서 ㅎㅎㅎ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날도 갑자기 추워지고 이러는데 감기 조심하세요!(왜냐면 제가 이미 걸렸기에..) 따뜻하고 행복한 나날 들 되시길 바라요.  

마블, 토르로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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