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제 인생 첫번째 팬픽(이라는 이름의 괴작) 완결입니다.

- 기다려주신 분들, 혹여 계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 미도리야 이즈쿠 군 7월 15일 생일 축하합니다.

- 살다살다 캐릭터 생일을 챙기는 날이 올 줄이야... 

- 그런데 제가 이렇게 TS에 환장하는 건, 처음 접한 게 원작이 아닌 TS한 팬아트인 것도 있지만, 좋아하는 캐릭터 커플의 2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건 화를 내는 게 옳다고 봐."


 여학생들의 의견은 생각보다 쉽게 뭉쳤다.

  

 연인사이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남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고, 여린 신체에 흔적을 남기는 건 무척 나쁜 짓임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미도리야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쿠 군, 너무 만만하게 보이면 안 돼!"

 "이즈쿠 쨩이 너무 착한 것도 문제야."

 "확실하게 화를 내고, 이러지 마라고 말씀해야 해요."

 "자기 입으로 강아지라고 했으면, 엄연히 주인 말을 따라야지."

 "개 교육은 초장에 잡아야 하는 거야!"


 어느새 토도로키는 여자애들에게 '개' 취급을 당했고, 미도리야를 향한 조언은 조금씩 반려동물 훈련과 엇비슷하게 흘러갔다. 미도리야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일순 혼란에 빠졌다. 괜찮은 건가? 이거 괜찮은 거 맞지? 도움 받고자 듣고 있는 상담이 도리어 미도리야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토도로키 군은 강아지인 척하는 맹수야. 물리면 진짜 죽어!"

 "주, 죽지는 않아..."

 "생명이 끝난다는 게 아니라, 자칫 데쿠 군 인생이 말려든단 소리야."

 "아니, 그, 목 좀 물린다고 내 인생이 말려들지는..."

 "어휴, 요 순둥이야!"


 우라라카가 미도리야의 머리를 꼬옥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다른 친구들도 동정이 그윽한 눈빛으로 미도리야를 바라봤다. 창피한 꼴 당해놓곤 토도로키 편을 들고 있다. 아마 미도리야는 본인이 하는 말이 토도로키를 은연중에 편든다는 걸 모르고 있을 거다. 미도리야는 공부나 학업에 똑부러지지만, 이상하게 본인과 관련된 일에는 유난히 맹하거나 자신감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서 남을 최대한 좋게 보려는 호인 중 호인이다.


 "어쨌건 토도로키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


 지로의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주입식 교육 같은 점심시간도 끝났다. 미도리야는 야오요로즈가 창조한 커다란 밴드로 뒷목의 상처를 가렸다. ,마침 다음 시간이 히어로 기초학 실습인데, 동경의 대상인 올마이트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잠시 잊고 있던 우리한 통증과 화끈거리는 수치심이 밴드 안에서 뭉술뭉술 피어올랐다.


 '말을 하라고는 해도...' 


 교실로 돌아가는 길, 미도리야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아침부터 점심시간 내내 토도로키를 피해다녔는데, 이제 와서 토도로키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하라니, 그게 가능했으면 목 물렸을 때 벌써 했을 거다. 갑갑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목덜미로 손이 올라갔다. 아차 싶은 순간, 손가락이 닿자마자 생경하고 아리한 통증이 떠올랐다. 


 "으으으..."

 

미도리야는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며 답답한 신음을 토했다.


 ---


 실습시간, 여학생들은 미도리야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수업하러 온 올마이트가 당황할 정도로 철벽이었다.


 "미도리야 소녀? 이게 무슨..."

 "올마이트 선생님! 이게 최선이에요!"

 "서둘러 수업합시다!"

 "조 짜야 하지요? 야, 누가 제비뽑기 챙겨 와!"


  그리고 남학생들도 은근슬쩍 토도로키와 미도리야 사이를 멀리 떨어트렸다. 이번 실습은 2인 1조로 두 팀씩 전투 훈련을 한다. 각 팀은 히어로와 사이드킥 역할을 분담하여 서로를 도와주는 협업 연습이었다. A반은 올마이트가 지시하기도 전에 알아서 제비뽑기를 진행했다. 


 "미도리야 먼저!"

 

 키리시마가 상자를 내밀었다. 미도리야가 뽑은 건 C였다. 그 뒤로 차례차례 출석번호 순대로 제비를 뽑았다. A가 나오고, H가 나오고, D가 나오고, E가 나왔다. 어느새 토도로키 바로 앞 자리 토코야미 차례까지 왔다. 토코야미는 H로, 아스이와 짝이 되었다. 


 "토, 토도로키는 가장 마지막에!"

 "와, 와아! 그러면 내 차례네?"


 키리시마와 하가쿠레의 어색한 웃음이 제비 뽑으려는 토도로키의 손을 막았다. 뭐가 싸했다. 왜 토도로키 차례가 될 때까지 C가 나오지 않는 거지? 심지어 하가쿠레마저 C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차례는 바쿠고와 미네타, 야오요로즈였다. 그러나 바쿠고와 미네타도 C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같은 조가 되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반전이었지만, 이제 미도리야에게 남은 희망은 야오요로즈였다. 반 아이들은 부디 야오요로즈가 미네타를 도울 마지막 희망이길 바랐다. 그 의지를 마음에 품은 야오요로즈 역시 표정이 비장했다.


 "...F에요."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고, 토도로키는 여유롭게 남은 제비를 뽑았다.


 "내가 C야."

 

 토도로키가 보란 듯이 제비를 보였다. 


 "나 소름 돋았어..."


 아시도가 팔뚝을 쓸며 정색했다. 맹수의 주인 향한 본능은 제비뽑기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연질색한 반 친구들을 슥 보던 토도로키는 덤덤히 미도리야 옆으로 갔다. 미도리야는 불쌍할 정도로 어깨를 흠칫 떨었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이건 수업이고, 토도로키는 어떤 속임수도 없이, 오히려 누가 봐도 토도로키에게 불리한 제비뽑기였음에도 이렇게 확실하게 미도리야 옆자리를 차지할 자격을 손에 넣었다. 강아지 탈을 쓴 맹수는 주인 옆에 있음에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으쓱함이 가득했다.


 "저기, 이제 수업 진행해도 될까?"


 사정을 모르는 올마이트만 일종의 소외감을 느꼈다. 


 ---

 

 "맹수가 아니라, 지능범 아닐까?"


 일주일 뒤, 우라라카가 미도리야에게 넌지시 말했다. 함께 음료수를 사러 나온 미도리야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가 오른쪽 볼살을 아프지 않게 꼬집혔다. 미도리야의 구불구불 수풀 우거진 머리는 여전히 단발이고, 오른쪽엔 빨갛고 하얀 머리핀이 꽂혀 있다. 남자 교복 입던 시절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잘 어울렸다.


 "어어, 지능범?"

 

 미도리야가 이이다가 부탁한 오렌지 주스를 꺼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또 새로운 동전을 넣었다. 이번에 자판기에서 나온 건 딸기우유 두 개였다. 하나는 토도로키가 부탁한 거고, 다른 하나는 미도리야가 마실 거다. 토도로키가 제 음료 대신 사다주는 답례로 얻어먹는 거였다.


 "뭔가, 으응, 좀, 그러니까..."


 우라라카는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순둥이한테 무어라 말을 해야 이해할지. 미도리야는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만큼 머리도 좋고, 분석력도 있다. 그런데도 우라라카가 말하기 곤란한 건, 그렇게 머리가 좋은데도 저에게 덫을 치는 강아지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순둥한 주인 때문일 거다.


 둘은 음료 네 개를 챙기고 교실로 돌아갔다. 이이다와 토도로키에게 부탁한 음료와 잔돈을 건넸다. 이이다는 그 자리에서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연료를 채우는 로봇 같았다. 우라라카는 페트병 뚜껑을 돌려 한 모금 꿀꺽 마셨다. 토도로키는 우유곽에 붙어있는 빨대 비닐을 벗기고, 그걸 구멍에 꽂았다. 그리고 그걸 저가 마시지 않고 미도리야에게 내밀었다.


 "내, 내가 해도 되는데..."

 "네가 가서 사왔잖아. 이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래도 내가 얻어 마시는 건데..."

 "싫어?"


 내밀어진 우유가 기운없이 축 쳐졌다. 미도리야는 그런 거 아니라며 우유를 받았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싫은 거 아니야. 그냥, 어어, 이런 거 잘 안 해봐서 그래. 누가 나한테 음료수 마시라고 이렇게 뚜껑 따주거나 빨대 꽂아서 주는 거 처음이거든! 특히 남자가 이렇게 해주는 건 처음이라서..."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참으로 순진하다, 귀엽다, 저 순둥이, 라고 흐뭇하게 지켜봤을 터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말을 토도로키 앞에서 하면 아니 되었다. 제 목덜미 물린 것도 잊어버린 거 아냐? 한 발치 떨어져서 지켜보던 지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미도리야도 내 거 해줘."


 토도로키가 아직 뜯지 않은 딸기우유 하나를 내밀었다. 우라라카가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는 거야?' 라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노려봄에도, 토도로키는 미도리야만을 눈에 담았다.


 "내가 미도리야 안 부끄럽게 자주 해줄게. 그러니까 미도리야도 나한테 해줘서, 익숙해지면 되잖아."

 "그, 그런가?"

 "응."

 "그렇구나. 응, 그러네. 그럼 부끄럽지만, 실례할게."


 미도리야가 수줍게 웃으며 토도로키 몫의 우유에 빨대를 꽂아줬다. 저 지능범 새끼, 우라라카의 어이가 대기권 너머로 날아갔다. 둘은 서로 우유를 교환해 먹으면서, 평소랑 다를 바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수업 이야기, 어제 본 TV 프로그램, 지금 마시고 있는 딸기우유 곽에 그려진 그림 같은 시시콜콜한 것.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뒷목을 깨문 날로부터 1주일. 


 반을 들썩이게 했던 그 사건 이후, 당사자 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왔다. 


 물론 뒷목 물린 첫날과 이틑날은 미도리야가 빽 소리를 지르며 토도로키는 피했다.  하지만 미도리야 뒷목에 남긴 토도로키의 치혈과 울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면서, 둘의 관계도 전처럼 돌아왔다. 쉬이 용서될 일이 아니었기에, 우라라카가 미도리야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미도리야의 의기양양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있지, 내가 '안 돼!라고 말했어.]

 [...뭐?]

 [목 깨물면 싫다고 말했더니, 토도로키 군이 미안하다고 했어. 토도로키 군은 그냥 내가 캇쨩 때문에 생각도 없이 머리를 자르려는 게 싫었대. 그래서 내가 안 자르고 기르겠다고 하니까 좋아해줬어. 이제 화해했어!]

 

 만족스럽게 경과를 보고하는 미도리야와 달리, 우라라카는 수천 번 떠오르는 딴죽을 억지로 참으며 잘 되었다고 어색하게 웃었다. 미친개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충고한 건 자신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진짜 주인과 개 같은 관계가 되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쁜 건 나쁘다, 싫은 건 싫다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화를 내라는 거였지, 조그마한 포메라니안 혼내듯 그렇게 귀엽게 '안 돼!'라고 말하란 게 아니었다.


 거기다, 우라라카와 아스이가 자르지 말고 길러보라고 권했을 때고 고집했던 짧은 머리를, 토도로키의 한 마디에 기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맹수가 결국 제 주인의 머리끝에 남아있던 다른 수컷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미도리야는 결국 토도로키의 수에 휘말렸다.


 하지만 토도로키는 평소처럼, 미도리야가 남장을 했던 때와 다를 바 없이 대했다.


 '그땐 그냥 욱해서 깨문 건가?'


 지능범이니, 강아지 흉내 내는 맹수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냥 미도리야가 바쿠고에게 휘둘리는 게 화가 나서 욱한 마음에 깨문 걸 수 있단 추측에 힘이 더해갔다. 토도로키는 그때 이후론 쉽게 미도리야의 몸에 접촉 다운 접촉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는 건, 중간중간 토도로키가 보이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래, 아까 우유 빨대 꽂아서 건넨 것처럼. 하지만 이것도 잘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남장하고 다녔을 때도 과자를 입 벌려 얻어먹고, 둘이 같이 하교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페트병 물도 같이 나눠 마셨다.


 '섣불리 판단한 걸까.'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토도로키의 살벌한 눈빛은 쉬이 잊혀지지 않지만, 우라라카는 반신반의한 기분을 어쩌지 못한 채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를 바라봤다.


 "미도리야, 근데 왜 내가 선물한 초커 안 해?"

 

 딸기우유 다 마신 강아지가 희고 붉은 레이스가 얽힌 초커의 행방을 물었다.

  

 "그, 그게, 예쁘긴 한데, 학교에 하고 오기엔 조금 부끄러워서..."

 "부끄러울 수록 자주 해야지."

 "그렇긴 한데, 사실 액세서리 하는 건 어색해서, 전에 했던 까만 초커는 목소리 숨긴다고 했지만."


 미도리야는 그렇게 예쁜 액새서리를 제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원채 꾸미는 거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게 많이 낯설다고. 그래서 토도로키가 사준 머리핀도 처음엔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지금은 주변에서 어울린다고 많이 칭찬해줘서 용기 내 즐겨 하게 되었다.

 

 "선물 받은 게 다 예뻐서, 솔직히 나랑 안 어울리는 감도..."

 "미도리야는 뭐든 어울려."

 "으, 으아아..."


 토도로키가 정색하고, 미도리야가 당황하면서도 얼굴을 붉혔다. 설탕에 캬라멜 섞어 마카롱에다 바른 뒤에 마쉬멜로를 녹여 붙이고 흠뻑 녹인 초콜릿을 한껏 부운 듯한 달콤하고 진득한 분위기가 퍼져갔다. 야, 누가 내 입에다 하바네로 한 병 뿌려주라, 카미나리가 피눈물을 삼키며 가슴을 쾅쾅 쳤다. 옆에 있던 미네타는 진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같이 가볼래?"

 

 내가 그 초커 산 가게에.

 

 "기말시험 코앞이니까, 공부할 겸 만나자."

 "잉?"

 "전에 박람회 갔던 것처럼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고 들리면 되네. 그 가게, 초커만 파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팔아. 너한테 어울리는 게 얼마나 많은지 직접 보면 되잖아. "

 "아, 아니야! 그런 멋진 델 내가 어떻게...!"

 "나도 갔는데, 네가 못 갈 이유가 없지."

 

 토도로키는 아주 자연스럽게 주말 약속을 잡았다. 미도리야는 얼떨결에 수긍했고, 뒷목을 적절하게 가린 머리칼이 제 주인의 엉성한 고갯짓 따라 흔들렸다. 토도로키는 제 붉고 하얀 색이 장식된 미도리야의 수풀 같은 머리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누가 보아도 멋있는 미남의 미소는 이상하게 오싹해서,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교실을 보다 서늘하게 만들었다.

 

 ---


 그리고 주말을 보낸 다음 날.


 "......"

 "......"

 "데, 데쿠 군?"


 반갑게 인사하고도 모자란 아침 시간, 우라라카는 교실 문 앞에 굳은 채 선 미도리야를 보고 기함을 했다. 우라라카뿐만이 아니라, 같이 수다 떨던 아스이나 아시도, 아니, 그냥 반 전체가 미도리야를 향해 놀란 시선을 던졌다. 차마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굳어버린 미도리야는 결국 두 팔로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가려진 얼굴과 두 팔 아래, 목덜미 여기저기에 붙은 반창고가 낯익으면서 낯설었다. 그로도 모자라서 이 더운 여름에 손수건까지 둘렀다. 그래, 날이 더운 탓에, 밴드 하나는 제대로 붙지도 않아서, 달랑달랑 반쯤 떨어진 아래로 새빨간 잇자국이 까꿍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툭, 더운 날에도 생기 잃지 않았던 오지로의 큰 꼬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랫턱도 쩍 벌려졌다.


 "토, 토도로키 군! 야 이, 저 , 개새...!"

 "으아아! 우라라카!"

 "진정해, 우라라카! 그래도 욕은 안 돼!"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욕설을 퍼붓고 달려드려는 우라라카를 가까스로 막았다. 그 사이 아스이가 미도리야를 자리로 안내했다. 가는 내내 미도리야는 훌쩍거렸고, 친구들은 목덜미에 있는 밴드와 손수건 때문에 차마 동정의 눈길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미네타가 음흉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바쿠고한테 얻어 맞았다.


 "그러니까 네가 데쿠라고 불리는 거다!"


 바쿠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미도리야를 욕했다. 키리시마는 그게 왜 미도리야 잘못이냐고 바쿠고를 말렸다. 


 "저 괴물 같은 놈한테 빈틈을 그렇게 쳐보였는데, 안 당하고 남아? 저건 평생 당하고 살 팔자야!"

 "넌 진짜 소꿉친구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게."

 "이즈쿠 쨩,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스이의 커다란 손이 미도리야의 등을 조심히 쓸었다. 미도리야는 코를 훌쩍였다.


 "그게..."


 주말에 같이 시내에 나가서,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근처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약속했던 액세사리 가게에 가서 여러가지를 구경했다. 토도로키 말대로 가게에는 여자손님이 많았고, 초커 말고도 다양한 액세사리를 팔았다. 그러면서 토도로키가 이전에 고민했던 다른 장신구를 바구니에 담아 구매했다고 한다. 그때 미도리야는 목에 선물 받은 붉고 하얀 초커를 차고 있었고, 계산하던 점원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고, 미도리야는 또 평소처럼 그렇지 않다고 쑥스러워했다. 


 "그래서, 저녁엔 토도로키 군 집에 가서, 흑, 저녁 얻어 먹었는데..."

 "이즈쿠 쨩, 토도로키 쨩 집에 갔어?"


 아스이가 큰 눈을 깜빡였다. 호랑이 굴에 제발로 들어간 격이었다.


 "으, 응. 집에 토도로키 군 누나도 계셨어."

  

 미도리야가 올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았던 후유미는 미도리야의 풍부한 가슴을 보고 비명을 질렀고, 대강의 사정을 알게 된 뒤엔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와서 잘 되었다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그리고 제 남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거한 한상차림까지 얻어 먹었다.


 "그, 그리고, 방에 가서..."

 "토도로키 군 방?"

 "야이 미친 놈아! 데쿠 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덮쳤어? 결국 저지른 거야? 우라라카가 저를 잡고 있던 남학생들을 밀치고 씩씩 거친 숨을 내뿜었다.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을..."

 

 일찌감치 먼저 와 있던 토도로키가 억울하다며 중얼거렸다. 옆에 같이 있던 이이다가 두 팔을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며 토도로키를 질타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야! 미도리야 군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마치 고장난 로봇처럼 같은 말만 버벅거렸다. 그만큼 이이다도 미도리야의 목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안 덮쳤어. 방에 들어가서 그날 산 액세사리만 착용했어."

 "근데 목에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아앙? 이거 보자보자하니까 바쿠고 군보다 더 저질이잖아!" 

 "우라라카, 말이 심하네. 난 바쿠고처럼 이유없이 상대를 괴롭히지 않아."

 "저 새끼들이! 왜 가만히 나까지 들먹거려!"


 바쿠고가 뾰족 선 머리칼 만큼 성질을 부렸다.


 "그럼 데쿠 군 목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아무리 봐도 토도로키 군이 한 거잖아!"

 "내가 한 건 맞지만 이유 없이 한 거 아니야."

 

 토도로키는 떳떳하게 고개 들고 저가 했다고 밝혔다. 이유가 있든 없든 해선 안 될 짓이것만, 저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머리를 붙잡고 책상에 쿵쿵 박았다.  저 행동은 충분히 이해가 가서,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미도리야가 또 자기랑은 안 어울린다고 말해서, 혼 냈어."


 색이 다른 초커랑 목걸이 몇 개를 샀는데, 거울 앞에서 직접 착용해본 미도리야가 저한테 이렇게 예쁜 건 안 어울린다고 또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이런 건 예쁜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자기를 비하하는 태도에. 토도로키는 화가 났고,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다.

 

 "그리고 싫었으면 미도리야가 거절했겠지."

 "하, 하지 말라고 했어!"

 "싫다고는 안 했어."


 목에 액세서리를 채울 때마다, 토도로키는 이를 세워 살짝살짝 찍었다. 처음에는 정말 부정적인 말만 하는 미도리야를 혼내기 위해서였다. 소중한 친구가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단단히 가르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닿는 부드러운 피부, 코로 들어오는 살내음, 혹여 도망칠라 두 팔에 잡아둔 작은 몸의 움찔거림이 마약보다 더한 중독성을 안겨 쉬이 멈출 수 없었다. 


 거기다 이를 박을 때마다 들리는 불규칙한 심장소리가 무척 기분 좋았다.

 

 "...그러니까 미도리야 책임도 있어."


 토도로키는 그 날 저와 미도리야 단 둘이 있었던 일을 그렇게 세세하고, 정확하게 말했다.


 "......"

 "......"

 "......"

 

유에이 고등학교 히어로과 1학년 A반.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정적에 휩싸였다.


 "...어, 어어, 으음, 그래..."


 반에서 가장 사람 좋기로 유명한 키리시마가 중재를 포기했다. 정확히는 미도리야와 토도로키 사이에 끼어드는 걸 이 순간부로 포기했다. 저기에 빠지면 맹수한테 잡아 먹힌다. 맹수는 또 저렇게 무의식적으로 제 주인 된 먹이에 침을 발라두었다.


 하하, 하, 하하아, 키리시마의 어색한 미소는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미도리야는 땅에 머리를 박듯 푹 숙였고,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로 삐져나온 목덜미엔 체인을 이어놓은 듯한 치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벗지도 못하는 목줄은 미도리야의 목덜미를 완전히 파고들었다. 


  


목마른 덕후가 우물 파는 곳

느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