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파수꾼 거주지-

카오스게이트가 사라지고 20일이 지났다.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시신들과 넘쳐나는 환자들에 임시로 세워둔 막사는 이미 포화 상태였다. 출동했던 아베스타 단원 중 상당수가 다치거나 사망했다. 실종된 아베스타 단원들도 있었지만 수색까지 동원하기엔 구호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밀려드는 환자에 셰이크리아 사제들도 눈코 뜰새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칼도르, 아직이야? 인원이 너무 부족해. 이러다 우리가 과로로 먼저 죽겠다고!”

굴딩은 초췌해진 얼굴로 칼도르에게 항의했다.

“이곳 저곳에 전갈을 날려 도움을 청했으니 곧 연락이 오겠지. 조금만 더 버텨 굴딩.”

“맞네. 나도 셰이크리아 교단에 연락을 해두었네. 구호물품들이 오고 있을거야”

옆에 서 있던 페데리코도 굴딩의 불만을 이해하는 듯 했다.

“굴딩, 새벽에 마고한테 연통이 왔어. 라미가 도착한거 같더군. 인력에 보탬이 될거야.”

열 아베스타 부럽지 않게 전력이 될 라미가 온다는 소식에 굴딩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때였다.

“어이~ 굴딩! 그렇게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여자가 안생긴다구!”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던가. 마침 라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칼도르는 멀리서 굴딩을 놀리며 장난끼 어린 얼굴오 걸어오고 있는 라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어떤 자식이야? 누가 못생겼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못생겼다는 말에 발끈한 굴딩은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라미를 보고 찌푸린 얼굴을 활짝 폈다.

“아니! 라미잖아!!”

굴딩은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라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라미도 굴딩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먼발치에서 고 모습을 보던 페데리코는 알수 없는 화가 치솟는게 느껴졌지만 바로 앞까지 온 라미에게 페데리코는 짐짓 태연한척 인사를 건넸다..

“아, 라미. 자네가 왔다는 소식은 들었네.”

하지만 라미는 페데리코의 인사에 눈인사만 나누고 곧장 칼도르에게 다가갔다.

“칼도르, 전갈받고 바로 왔어. 오는 길에 보니 큰 전투였던 것 같네.. 도울 일이 있으면 말만 해. 바로 투입가능한 싱싱한 인력이 여기 왔으니~”

“고맙네. 그럼 오늘은 막사에 급한 환자들을 좀 옮겨주는 일을 해주게. 치료가 다 끝난 환자들은오늘 칼리자마을로 후송할 생각이야. 빈 자리에 아직 임시 막사 안으로 못 옮긴 환자들을 옮겨주게. 그리고 며칠 내로 수색팀을 꾸려 실종된 단원들을 찾으러 갈 걸세. 그때까진 힘을 좀 비축해 두게.”

기다렸다는 듯 자신에게 일을 배정하는 칼도르를 보며 눈을 휘게 떴다.

“칼도르~ 속보이게, 오마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정 해주는거 아니야?”

“하핫, 들켯나? 일손이 부족했는데 너무 타이밍이 좋게 온 자네 탓을 하게나. 아 그리고 굴딩과 페데리코 사제와 같이 가면 될 걸세. 환자는 페데리코 사제가 전담하고 있거든.“

  옆에 있던 굴딩은 왜 또 나냐는 표정으로 칼도르를 노려봤지만, 그 눈빛은 칼도르에게 닿지 못했다. 페대리코의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라미는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여기서 페데리코와 같이 일하게 될 줄 몰랐던 라미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배당받은 일은 해야지 어쩌겠어. 라고 생각했다.

“칼도르, 그럼 다녀올게. 어이! 굴딩, 놀 생각 하지 말고 일하러 가자!”

라미는 페데리코를 의식하며 굴딩의 팔을 잡아 끌고 환자가 있는 막사로 향했다. 그 뒤를 페데리코가 따라 걸었다.

“그나저나, 굴딩. 2달 동안 연애에는 진전 없어? 나 가기 전까지만 해도 애태우던 데런 아가씨가 있었던거 같은데?”

“하하핫! 벌써 2달전 인데 내가 아직까지 질질 끌소냐! 하룻밤 뜨거운 사랑을 나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툭 건들자 마자 나오는 굴딩의 연애 이야기에, 역시 알기 쉬운 캐릭터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뒤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 오고 있던 페데리코는 순간 얼굴이 빨게 지는 게 느껴졌다.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자랑하듯 내뱉다니.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으며 희희낙락 서로 웃고 떠드는 두 사람 때문에 짜증이 치솟았다.

“자네, 그런 이야기를 숙녀 앞에서 그렇게 막 뱉다니 교양이 없군.”

짜증이 치솟은 페데리코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툭 내뱉고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보게, 사제나으리. 교양은 태어날 적에 이미 죽 끓여 먹은지 오래라네. 그리고 여기 숙녀가 어디 있나? 여기 못생긴 검은 매 한 마리를 이야기 하는 건가?”

못생긴 검은 매라고 칭해진 라미는 샐쭉해진 눈으로 굴딩을 쳐다보았다.

“뭐 임마! 못생긴 검은 매? 이 세상에 너보다 못생긴 검은 매가 있을라구.. 굴딩은 눈이 없었네, 없어.”

“내 눈은 그녀만 바라보면 되니, 못생긴 검은 매를 볼 눈은 없어도 될거 같은데~”

“아? 그러셔? 차칭 그녀도 과연 너만 볼 눈이 있을가 모르겠네~~”

티격태격 다시 둘만 이야기를 나누자 페데리코는 점점 더 얼굴이 붉어졌다. 어제 일로 라미에게 미움받는 기분이었다. 페데리코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굴딩과 착 붙어서 걸어가는 라미가 못마땅했다. 모든 사내들한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터치를 하다니. 뭔지 모를 소유욕과 억울함이 동시에 들었다. 지금 그녀의 손이 와있어야 할 곳은 자신의 팔 이었어야 한다고.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느 자신이 한심해졌다. 제대로 해명도 하지 못하고 말도 더듬고 그렇게 그녀를 새벽녘에 보내 버렸던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굴딩을 친구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도, 사심이 있어 스킨십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친근함의 표시일 뿐. 근데 자신은 알면서도 이렇게 질투심이 타오르다니. 가슴에 뜨끈한 기운이 터질듯했다.

뒤를 슬쩍 본 라미는 페데리코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수록 더 굴딩에게 장난을 걸고 굴딩에게만 말을 걸었다. 그를 자극시키고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그를 원하는 만큼 그도 나를 원하는지. 그리고 조금 더 굴딩에게 터치하는 횟수가 많아지자 페데리코의 얼굴은 터터질 듯 빨게졌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히는 것이 보였다.

됐다, 이정도면.   

.

.

.

오후 내내 굴딩과 티격태격하며 환자를 옮겼더니 몸도 정신도 피곤했다. 페데리코는 그런 우리를 보다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멀찌감치 떨어져 환자치료에 전념했다. 하지만 힐끗힐끗 쳐다보는 페데리코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페데리코를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더 괴롭힐 수도 없었다. 밤잠도 설치고 식사도 자주 걸렀더니 어지러움에 휘청하고 쓰러질 뻔 했다. 마침 칼도르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라미, 오늘은 이만하게. 벌써 저녁식사시간도 꼬박 지났어. 페이튼에 당도한지 하루도 안되었는데 이쯤해서 쉬는게 좋겠네. 자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안그래도 휴식이 필요했던 라미는 칼도르의 말에 생기가 돌았다.

“아,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오늘은 좀 피곤하네.”

옆이 있던 굴딩도 그말에 주섬주섬 퇴근할 준비를 했다.

“굴딩, 자네는 잠깐 나랑 수색조 구성회의를 좀 해야해서 퇴근 좀 더 이따 하게.”

순간 썩어가는 굴딩의 표정을 보며 꼬시다는 표정으로 바라본 라미였다.

“페데, 몸이 안좋아서 그런데 숙소까지 좀 데려다 줄래?”

페데라고 불리자마자 굳어있던 표정이 살짝 펴진 페데리코가 끄덕였다.

"알겠네. 가지"


.

.

.



라미에르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