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토스, 세상이란 곳은 어떤 건가?"
"각종 음모와 범죄와 악의와 욕망이 도사리는 곳이지. 누구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 사람들은 악독하고, 잔인해. 손에 넣어도 만족하질 못해."
"아아, 그런가. 굉장히 멋진 곳이로군!"


얼른 바깥에 나가고 싶다! 천진하게 중얼대며 손에 든 책들을 어루만지는 카라마츠에게 바르바토스는 질렸다는듯 혀를 내두른다. "네, 네. 내가 이렇게 말해줘도 못알아듣는 나쁜 아이에게는 하나마루 삐삐같은건 절대 주지 않을거라구요. 정말이지, 바깥같은델 나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너같은 얼빠진 녀석들은 바로 휩쓸려서 악용당하거나 상처만 받을 뿐이라고. 너희 형제들은 약과라니까."
"우리 형제들? 아아, 모두 멋진 녀석들이라고? 아름답고, 강하고. 모두 나보다 똑똑해. 같은 형제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너도... .....라고. ....가 아냐."
"응? 뭐라고 했나. 바르바토스."
"아무것도 아냐. 그러고보니 슬슬 간식시간이네. 애들좀 데려와줄래?"
"알겠다!"


공방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바르바토스는 머리를 되짚으며 한숨을 내쉰다. ....바깥에 내보내달라니. 그런 거.... 될리가 없잖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바르바토스의 입장에서 볼 때 인형들은 자기들 생각보다 나약하고, 잘 부숴졌다. 카라마츠의 완벽은 튼튼함과 기동성이 아닌 오직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그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관리가 필요했다. 매번 고치는 것도, 그 부품을 구해오는 것도 바르바토스에게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까다롭기 짝이 없다. 자신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 접질러온다던지, 기행을 벌여 귀한 부품을 멋대로 망가뜨리는가 하면, 그 외의 문제로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는 녀석들을 보면 바르바토스는 이미 죽은 남자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이름하야 양육이라는 형태로 이뤄지는 바르바토스의 열정을 착취당하는 노동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바르바토스가 계속해서 이 인형들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그들을 이루고 있는 영혼의 조각들이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였기에. 때문에 카라마츠가 바깥에 나가고 싶은 열망을 드러낼 때 바르바토스는 상당한 곤란에 직면해 있었다.


결국 인형의 존재는 끝까지 [카라마츠]를 내 손에서 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바르바토스의 눈이 변화하더니 세로동공의 차가운 눈동자에 고요히 청색의 불꽃이 타오른다. 이빨도 기분 탓인지 송곳니가 더 날카롭게 두드러진 것만 같아.


더이상 잃고 싶지 않다는 갈망에 사로잡혀 점점 사고회로가 처음 마음먹었던 때와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악마의 속마음을 비웃듯 그저 난로의 장작불만 불꽃을 이따금씩 튀기며 침묵하고 있었다.


.


"~~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상은 그렇다는군!"
"히에엑, 뭐야. 인간들은 다 그래? 징그럽게."
"난 나갈 생각따위 애초에도 없었어. 어차피 나같은 건 괴상하다고 금방 배척하려 들게 뻔하고."


카라마츠의 말에 새파랗게 질리는 토도마츠. 이치마츠는 관심없다는듯이 구석에 가서 몸을 웅크린다. 쵸로마츠는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특유의 심각한 얼굴로 눈꺼풀을 씰룩이며 말을 꺼낸다.


"바르바토스는 원래 그렇게밖에 얘기 안하잖아. 그 녀석 말 다 곧이 듣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는 태어나고서 이곳을 한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정보나 지식도 안의 책이나 라디오가 전부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우리는 인간을 모방한 존재야. 그렇다면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것도 존재의의를 확립할 좋은 방법이라고..."


"또, 또 시작했다. 자의식 폭팔. 너는 늘 말이 많아, 쵸로마츠. 우리를 그렇게까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해? 그저 유희로 만든 장난감이라고. 모방이래봐야 그 수준밖에 안된다고. 우리들이 진짜 인간이 될 수는 없어. 섹스도 못하잖아?"


"섹스같은 추잡한 소리 집어치울래, 오소마츠! ....나는 내가 그냥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 우리를 만든 제작자는 우리를 통해 뭔가의 가능성을 확인하려 본 걸지도 모른다고. 그걸 찾는게 우리의 목적이라고! 나는 확신해!"


"언제나 재미없는 얘기. ....뭐, 나도 이딴 방 안에 처박혀 있기보단. 좀 색다른 걸 찾아보고 싶지만 말이야. 예를 들어 이 여자, 정말로 이런걸 안에 넣을 수 있는거야? 엄청 신기하잖아." 오소마츠가 빨간 책을 뒤적이며 심드렁하게 말을 잇는다. "숭고한 목적을 찾느니, 뭐니 난 관심 없다구. 지금 순간이 재미있으면 그만이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잖아. 그렇다고 네가 목적을 찾느니 마니 하는걸 방해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은 안하고 있네요. 하지만 우리 여섯형제잖아? 우리끼리도 충분하지 않아? 난 이대로가 즐거운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무안하게 등을 돌리면,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어느새 또 자기들끼리 붙어서 요란스레 소동을 벌이고 있다.


"무슨 얘기하고 있어? 나는 야구할래, 야구! 토도마츠, 머리로 하는 야구 할래? 네가 야구공해!!!"
"으, 싫어! 하고 싶으면 혼자해, 쥬시마츠 형!"


금세 떠들석해진 방 안.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대는 쥬시마츠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토도마츠. 오소마츠도 끼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이치마츠는 멀찍이 떨어져 구석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바닥을 노려보고 있을 뿐.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를 위로하듯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카라마츠.... 하고 중얼대며 뒤를 돌아본다.


"쵸로마츠.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브라쟈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지만. 우선 우리 둘이서 바깥을 알아가다 보면 브라쟈들에게 알려줄 것도 생기지 않겠는가? 안그런가, 나의 형제여."


"뭐, 그러네. 너에게는 가끔씩 놀란다니까.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아도 이따금 좋은 위로를 날릴줄도 알고. ....별로 신경쓰지 않아, 저녀석들 반응따윈. 하지만 나는 정말로 알고 싶은 걸.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 생각대로인지. 또 우리와 인간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카라마츠."


아아.... 물론이다. 분명 나간다면 알 수 있을거야. 쵸로마츠의 말은 조금 어려워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카라마츠는 그저 쵸로마츠가 저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고마웠다. 항상 모든 일에서 뒤로 밀려나있던 카라마츠가 지금만큼은 쵸로마츠의 우선순위가 된 것만 같아서 카라마츠는 행복해서 문 밖의 모험을 떠날 생각에 젖어 있었다.




"약속이다, 카라마츠. 꼭 같이 나가기야."


바르바토스에게서 안 돼, 라는 말을 접하기까진.


"뭐, 뭐라고 했는가. 바르바토스."
"안~~돼. 다시 한번 말해줄까? 소리가 잘 안들린 것 같으니. 절~~~대 안돼.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어."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안되니까 안그래도 잘 안돌아가는 머리 굴릴 생각 마, 카라마츠. 형제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에게 네 소중한 다리나 얼굴이 망가져도 좋아? 그 때는 나도 없어서 아무도 네가 망가지고 깨져도 도와주지 않아. 그대로 쓰레기통 직행이라고! 네가, 나가버리면 난 다시는 너랑 만나지 않을테니까! 책 읽는걸 들어주는 일도 두번 다시 없어! 나랑 다시는 못만난다고!! 그래도 좋아?"


뭔가 말하고 싶지만 입을 억지로 다문 카라마츠가 눈썹을 내리고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바르바토스를 올려다본다. 아, 난 또 뭔가 잘못 말한 건가. 흔치않게 이빨까지 드러내며 절대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르바토스에게 평소의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안....하다. 바르바토스. 널 떠난다는 소리는 아니였어. 지금껏 나에게 늘 상냥해왔던 너다. 정말 소중한 친구야.... 네가 그렇게 싫어한다면 나는 밖에 나가지 않을 거다."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바르바토스의 말에 고개를 몇번 까딱인 카라마츠를 냉정하게 푸른 불꽃이 이글대는 눈으로 노려보던 바르바토스가 분노를 거두고 한풀 꺾인 얼굴로 미안해. 화내서. 하지만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슬퍼.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무릎을 꿇고 카라마츠를 껴안는다. 순순히 그 팔에 매달리며 카라마츠는 눈 앞의 바르바토스로 머릿속이 가득차 바깥풍경의 설렘도, 호기심도 전부 잊어버린다. 물론이다. 널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 바르바토스.


이제 카라마츠의 속은 텅 비어있다.


"바르바토스가 안된다고 한다. 같이 가는 건 무리일 것 같군. 쵸로마츠."
"뭐? 너 약속했잖아. 같이 보러 가자고...."
"아마 너도 허락되지 않을거다. 쵸로마츠. 섣불리 나갔다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바르바토스는 화나면 굉장히 무섭다고."


쵸로마츠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곧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이윽고 특징적으로 내려간 입꼬리를 더욱 낮게 아래로 축 늘어뜨리더니 카라마츠에게 따진다.


"아니, 안될 게 당연하잖아! 그녀석이 우리 좋을대로 굴게 해주는 줄 알아? 바르바토스는 악마야! 허가해줄리가 없어! 몰래 나가는게 당연한데, 왜 졸졸 묻는대로 얘기해버린거야? 나까지 못나가게 됐잖아.. 나참...."


"내...내탓인가. ....그렇군. 미안하다."


"됐어. 별로. 생각해보면 순순히 나갈 수 있도록 바르바토스가 아무런 대책도 생각해두지 않을리가 없지. 좀 더 고민해보지 않으면 어차피 보통 방법으로는 못 나가. ....그래서, 너는 만약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나갈거야?"


그 질문에 카라마츠의 머리속이 새하얗게 물든다. 어쩌지.... 나간다고 하면 바르바토스를 버리는 게 돼... 그렇다고 쵸로마츠와의 약속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언제나 두 개 이상의 생각이 교차할 때 사고가 정지하는 것이 카라마츠의 특성이였다. 그것을 쵸로마츠는 미심쩍은 얼굴로 대답을 재촉하듯 팔짱을 끼고 대기하고 있다.


"나는....쵸로마츠.... 그러니까."


쵸로마츠의 눈이 실망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본척도 않고 뒤돌아 나갈 때 카라마츠는 어깨를 푹 숙이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땅만 보고 있었다. 한참 후 어느새 들어왔는지 바르바토스의 손길이 카라마츠의 머리에 얹혀져 있고 카라마츠는 위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바르바토스에게 안긴다. 카라마츠가 한 팔에 쏙 안기는 바르바토스의 품 안은 카라마츠가 낙담하고 슬퍼질 때마다 자주 의지하는 비밀스러운 아지트이자 일종의 대피처였다.


"바르바토스... 한 가지 물어도 될까."
"뭔데."
"나는 모두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은 온통 모두를 슬프게 해."
"그래?"
"응......"
"너는 아픈 그대로 괜찮아. 카라마츠. 변하지 않은 채로 있어도. 내가 있으니까, 네가 상처받게 된다면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치료해주는 걸로 좋아."
"그걸로 되는건가."
"응. 형제들도, 나도 네게 소중한 존재잖아. 쵸로마츠는 지금 그저 아주 잠시 화가 났을 뿐이야. 곧 원래대로 돌아올거라고."
"나 때문에 화가 난 거다. 쵸로마츠는. 내가 바르바토스에게 말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별 일 아니야. 잊어버려. 쵸로마츠도 이 방을 떠나지 않을 거야. 예전처럼 같이 행복하게 지내는거야. 안심하고 잠들렴, 카라마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것만 생각하렴."


카라마츠의 의식이 혼미해지고 어딘가로 사고가 떠날 즈음, 악마는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소중한 장난감은 장난감 통 안에 언제까지고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인형은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닌 인형은 언제까지고 생각을 멈출 것이다.


다음 날 바르바토스는 여러가지 새 책을 들여오고, 본 적도 없는 보드게임을 구해오고, 옷장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옷으로 꽉꽉 채워놓았다.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새로 나타난 놀이에 흠뻑 빠져 바깥은 곧 잊어버렸고 금방 바르바토스가 원한 일상은 돌아왔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그 일기장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카라마츠는 한창 바느질에 열을 올리던 중이였고, 예전 인형을 만들던 공방에는 예쁜 실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것들을 찾아가는 것에 재미를 들이던 카라마츠는 다락방까지 출입하게 되고, 먼지가 쌓이고 쥐들이 돌아다녀 형제들도 더러운걸 질색하는 바르바토스도 다니지 않는 다락방에는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먼지를 걷어내며 여기저기를 확인하던 카라마츠의 머리로 선반 위의 한 책이 떨어졌고 저도 모르게 눈꺼풀을 닫고 몸을 웅크린 카라마츠의 앞에 펼쳐진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오래되어 변색된 갈색의 앞표지에는 '198x년' 이라고 적혀 있고, 안에는 누렇게 뜬 종이에 누군가의 글씨로 첫 페이지가 채워져 있다.


'오늘 시장에 나갔다가 늙은 노파에게서 이 공책을 샀다. 별로 믿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글을 쓰면 본인 외에는 읽을 수 없다고 하더군. 사기가 아닌가 싶었지만, 악마도 사신도 있는 세계다. 이런 마술이 있어도 놀랍지 않지. 어쩌면 그 노파도 마녀일지도 모르겠다. 진실 이상으로 사기도 많다지만, 요즘 세상에서 이런 순진한 사기도 드문 일이군. 늙은 숙녀에게 선물을 한다는 기분으로 흥미로 사버렸다. 바르바토스가 읽지 않는다면 좋겠는데. 조금 창피하니까.'


아? 익숙한 인물의 표기에 카라마츠는 살짝 입을 벌린다. 바르바토스가 아는 사람인가? 표지를 들어봐도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빨리 페이지를 넘겨서 뒷표지까지 확인해도 달리 주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답을 대신하듯 사진 몇장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 일을 한지도 n년차. 공방이 완공됐다. 공방을 만드는데 돈까지 지원해주신 스승님께는 정말 감사하고 있다. 퍼펙트한 나만의 공간. 고독으로 사로잡힌 나의 영혼의 안식처....feat. 바르바토스....'


그 사진을 주워서 촛불에 비춰보면 공방 안의 인형들과 작업장이 비쳐진다. 나머지 한장은 낯설지만, MK 인형공방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아, 이곳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일기장의 주인은 곧 이 공방의 주인인 것이다.


예전에 바르바토스가 넌지시 말해준 이곳의 이름을 카라마츠는 알고 있다. 그 이름을 이곳에서 다시 볼 줄은 몰랐다. 어느 시점부터 그는 무언가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을 그만두었으니. 뭔가에 쫓기듯 초조한 것도 같았다. 바깥세상에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날을 세웠다. 






바르바토스에게 비밀을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는 것을 예전에 배운 카라마츠는 다락방의 잡동사니에서 주운 그 갈색의 일기장을 숨겨두기로 했다. 어쩌면 바르바토스를 아는 이 남자도 그걸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비밀의 일기장을 만들어둔 걸 보면 분명 바르바토스와 가까운 이였을 것이 틀림없다.


형제들에게는 보여줘도 될까. 아니, 요즘 형제들은 전보다 더 쌀쌀맞아져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무시로 일관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도 반응해주지 않는군. 가치르 치네조 바오 선생님 말로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애정을 표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는데. 언젠가는 이 작은 행동이 형제들의 굳은 마음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며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에게도 자주 이 말을 행하고 있었다. 그 때 이후로 확연히 무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브라쟈. 어쩌면 이걸 보여주면 쵸로마츠도 다시 웃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쵸로마츠. 할 말이 있다."
"힉..... 누구!? ....아, 너야? 뭐야. 용건만 말해. 바쁘니까."


한창 티비의 예쁜 여성을 뚫어져라 보던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부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비디오를 숨기다가 카라마츠란 걸 확인하고는 다시 쌀쌀맞은 얼굴로 돌아간다. 역시, 그 때의 화가 풀리지 않은걸까.


"그....아니. 바쁘다면 돌아가지. 나중에 보여줘도 될 일이고...."
"이미 너 때문에 맥이 끊겼다고. 됐으니까 뭔데. 바쁘니까 빨리 보여주고 끝내."
"훗, 너도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다. 이게 뭔지 아나? 바르바토스와 친분이 있었던 누군가의 일기장이다. 굉장히 놀라운 얘기들이 들어있었다."
"뭐, 그게 옛날 이 집 주인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거야? ....그런걸 어디서 찾았어. 이 방에 다른 것은...."
"다락방."
"......다락방이라고?"
"다락방에서 찾았다. 그곳은 잡동사니밖에 없고 더러워 아무도 찾지않는 방이다. 색실을 찾아다니다가 들어갔다만, 이걸 발견했군."
"......그런 게 아직도 숨겨져 있었다니. 바르바토스는 집에 관한 질문은 전부 피해버리잖아."
"아아. 바깥세상의 이야기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부 바르바토스는 피하고 있다. .....그렇지만, 너는 계속 바깥에 나가고 싶어했지."
"그랬었지만.....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고 지식도 부족해서. 나는... .....설마."
"......미안하지만, 나는 바르바토스에게 지금껏 도움을 받은 일이 많다. 나갈 수 없어. 그가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너라면. 이 일기장을 토대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쵸로마츠. 그 때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했다."


쵸로마츠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보더니, 이윽고 카라마츠에게서 받은 일기장을 꼭 껴안는다. "....바보냐.... 내가 멋대로 화풀이 했을 뿐인데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는 거냐고.... 내 신경질따위 무시해버리면 그만인데 너는...... ....카라마츠."
"응, 쵸로마츠."
"다시 한번 묻자. ...나랑 같이 나갈 생각 있어?"
".....미안하다."
".....그런가, 알았어. 그래도...나, 나간다면."


네가 좋아할만한 풍경을 가득 담아올테니까, 하고 쵸로마츠가 울것같은 얼굴로 웃는다. 인형은 울지 못하지만. 카라마츠도 괜히 마음이 찡해져서 쵸로마츠를 지긋이 바라본다.


"네게 행운을 빌겠다, 쵸로마츠."
"응!"


그렇게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그 때까지의 묵은 감정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네시간 전까지는.


야! 이 병신차남 새꺄!! 백지잖아! 장난하냐? 하고 쵸로마츠가 뜨개질을 하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씩씩거리며 일기장을 던져버리기 전까진.


[쓴 본인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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