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정말 날씨가 괜찮습니다, 이 상서.”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 여름은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덥더니 올해는 우리가 아는 여름 같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국왕에게 직접 하는 업무보고를 마치고 퇴궐하는 길이었다. 관료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걸으며 사소한 얘기를 나누었다. 한여름의 햇빛 아래에서 얇은 천으로 만든 여름용 공복을 입어도 등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있지만, 작년 여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은 말 그대로 끔찍한 더위였다. 비도 오지 않는 고온 현상에 과일이 충분히 달아지지 않을 정도였다. 유독 달콤한 과일을 먹고 싶어하던 지훈에게도 고생, 쌍둥이를 임신한 지훈을 돌보던 관린도 고생, 부부를 지켜보는 모두에게도 고생이던 여름이었다.

“아이고, 작년 여름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강 상서가 정말 고생하셨지요.”

“저도 저지만 저하들께서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세자 저하가 그렇게 어리실 때도 입맛 투정을 한 번을 안 하셨는데 입덧에 장사 없었지요. 비 저하가 발만 동동 구르시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이 상서는 또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습니까.”

“그저 모두 무탈하시기만 빌었지요. 저만 그랬겠습니까? 모든 국민의 마음이 같았을 것입니다.”

“그럼요, 그럼요! 그게 벌써 일 년이 더 지났다니 시간이 참 빠릅니다. 다음 달에 아기씨들의 돌이 아닙니까? 폐하께서 무엇이든 아끼지 말고 가장 귀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천관부에서 온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하하, 그럼 염치없게 기대를 해 볼까요?”

 

 

 

국혼을 치른 해 12월, 결혼하고 세 번째 히트사이클에 드디어 왕세자 부부는 쌍둥이를 가졌다. 후사를 걱정하여 서두른 국혼인 만큼 온 나라가 다시 한번 기뻐할 일이었다. 심지어 우성 알파 여자아이와 우성 오메가 남자아이 쌍둥이였다. 전통적으로 려국은 쌍둥이를 길한 징조로 여겨왔고 성별이 다르거나 형질이 다른 쌍둥이는 해와 달을 한 번에 얻은 격이라 큰 축복이라 했다.

왕족의 삶이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서, 영화나 드라마처럼 깜짝 놀라거나 감동적인 이벤트로 예고 없이 임신을 알게 되는 장면이란 없었다. 지훈의 히트사이클이 끝나고 나면 궁의가 매번 임신 여부가 포함된 간단한 검사를 했다. 꼭 임신 여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질 발현 이후에 히트사이클마다 억제제를 먹었으므로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보는 검사였다. 지훈은 익숙하게 검사를 받았지만, 관린은 이럴 때 왕족의 몸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느껴 문득 낯설기도 했다. 관린은 임신도 하지 않고 히트사이클도 겪지 않는 알파의 몸이라 정기적인 건강검진 정도만 받으면 되었지만, 평범하게 살던 오메가나 베타가 왕실에 들어온다면 저런 부분에서도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훈의 임신은 세 번째 히트사이클 뒤의 검사에서 바로 알려졌다.

“세자 저하, 회임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초기라 불안정하니 한 달 후에 다시 검사하겠습니다.”

“…어?”

“감축드립니다, 세자 저하. 감축드립니다, 비 저하.”

“원량이 회임하셨다고?”

“예, 비 저하.”

궁의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축하를 건넸다. 지훈은 어색하게 배에 손을 얹었다. 관린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지훈의 배로 시선을 돌렸다. 저 안에 아기가… 그러니까 우리 둘의 아기가 있다고?

“원량…….”

“응?”

지훈이 자기 배를 바라보느라 고개를 숙여 동그란 뒤통수가 드러났다. 자기보다 두 살 연상인 지훈이지만 저러고 있으면 그저 자그마해 품에 안고 보호하고만 싶어지는데 그 몸 안에 아기집이 생기고 둘의 아기가 있다니 갑자기 애틋한 감정이 밀려왔다. 자신의 마음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관린은 지훈을 껴안았다.

 



(중략)




“비, 이제 떡볶이 냄새를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요!”

“원량이 맛있게 드시니 정말 좋네요.”

“비도 한 입 먹어봐요. 여기, 아-!”

매운 걸 잘 못 먹는 관린이지만 환하게 웃으며 내미는 떡볶이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받아먹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하하, 많이 매워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런데 원량, 저, 그게… 드실 수 있는 건 좋지만요…. 기왕이면 몸에 좋은 음식을 드시면 어떨까요…?”

“그, 그래요…?”

“아뇨, 아뇨 그게! 못 드시던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요!!!”

“못 먹다 먹어서…,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건데…….”

“원량, 원량, 울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네? 울지 마세요.”

조심스레 한마디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지훈을 보며 관린은 혼비백산했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예민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눈앞에서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금까지 해맑게 웃으며 떡볶이를 먹던 지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럽게 눈물을 퐁퐁 떨구자 관린은 납작 엎드려 싹싹 비는 수밖에 없었다.

“임신했는데 이런 거 먹는 나는 싫어요? 엄마답지 못해서…?”

“원량,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드시고 싶은 거 제가 다 가져올게요. 네? 제발 울지 마세요.”

한참을 흑흑 울며 혼을 쏙 빼놓은 지훈은 눈치 빠른 양 상궁이 철 이른 딸기에 꿀을 뿌려 가져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거리며 딸기를 먹었다. 눈이 발개진 채 오물오물 딸기를 먹는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관린은 힘없이 웃기만 했다.

 



(중략)




왕손들이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 종묘에 왕손의 탄생을 고하며 이름을 지었다. 여자아이는 계승할 승에 빛날 희를 써서 승희承熙, 남자아이는 마찬가지로 계승할 승에 빛날 환을 써서 승환承煥이라 했다. 빛나는 복을 대대로 이어가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었다. 지훈은 아직 움직이기 어려워 국왕 부부와 관린이 함께 가서 종묘에 아이들의 이름을 올렸다. 백일째 되는 날에는 왕궁 앞에서 백설기를 나누어주며 쌍둥이 공주와 왕자가 무사히 백일을 맞았음을 축하했다. 그리고 관린은 공주를, 지훈은 왕자를 소중하게 안고 찍은 가족사진이 드디어 보도자료로 공개되었다. 흑옥처럼 반짝이는 작은 눈동자에다 아기인데도 또렷한 이목구비에 놀랍도록 작고 귀여운 입술이 누가 뭐래도 부모를 쏙 빼닮아 아름다운 려국 왕실 핏줄이었다. 백일 동안 몸조리에 집중한 지훈과 육아는 보양청에서 담당하니 잠을 푹 잘 수 있게 된 관린의 미모 역시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화사한 소례복을 입고 찍은 왕세자 가족의 첫 공식 사진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중략)



 

오색으로 꾸민 정갈한 음식이 차례로 나오고, 식사가 끝날 때쯤 돌잔치의 가장 중요한 차례인 돌잡이가 준비되었다. 돌잡이는 여러 가지 길한 뜻을 가진 물건들을 늘어놓고 아기가 잡는 것으로 아기의 미래를 재미 삼아 점치는 행사였다. 실 꾸러미나 국수는 무병장수를, 금붙이나 보석은 부귀영화를, 종이나 붓은 학문의 재능을, 활과 화살 또는 검은 무예를 의미했다. 이외에도 옥패, 조각보, 술대, 약탕기 등 부모의 직업이나 희망에 따라 다양한 물건들을 놓았다. 커다란 돌잡이 상이 하나씩 차려지고 지훈과 관린이 한 명씩 안고 앞에 섰다.

“승희야, 아무거나 잡고 싶은 걸 잡는 거야, 알았지?”

“승환아, 무엇이 잡고 싶으니?”




(중략)




돌잔치를 마치고, 아기들은 보모상궁이 데려가 낮잠을 재우게 하고 지훈과 관린은 쉴 겸 보도자료로 쓸 사진을 검토했다. 내실 테이블에 돌잔치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며 돌잡이의 순간과 아기를 안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왕세자 부부의 사진이 펼쳐졌다.

“와, 이건 너무 과하게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전혀요. 예뻐요. 평소에 이런 사진이 거의 없으니까 반응 좋을 것 같은데, 이것도 보도자료로 넣어요.”

“아, 원량. 하지만 너무 얼굴 막 써가며 웃고 있잖아요.”

“이렇게 잘생겼는데 얼굴 막 써봤자 미남이에요. 괜찮아요. 승환이표정 좋은 거 봐요. 아빠가 웃으니까 좋아하잖아요.”

“그건 그러네요. 예뻐라…. 이거 봐요, 벌써 눈꼬리가 휘어지는 게 원량이랑 얼마나 닮았는데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거기서 그런 말은 왜 해요. 진짜 부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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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햅러의 첫번째 외전 미리보기입니다.

총 분량은 약 16,000자입니다.

오메가버스의 꽃은 임출육 아니겠어요? (누구 맘대로)

두 아기님은 돌잡이에서 어떤 물건을 잡으셨을까요? ㅋㅋㅋ


이후에 올라올 두번째 외전 미리보기, 그리고 선입금 공지도 기다려 주세요!


판윙은

사실이라서

지구끝까지 갈거니까!!!


이브피아제, 또는 이피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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