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좋아." 그 한마디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레너드는 제 입에서 쏟아져 나온 꽃들을 익숙한 손짓으로 처리했다. 연약한 잎들은 진공 압축기 안에서 손톱보다도 작은 무언가로 재탄생 되었다. 삶을 살면서 사랑이 결코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아니란 걸 남들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그 이혼남이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단 순간에도 그는 결코, 결단코 사랑이 꽃잎을 압축하여 만들어진 조그마한 구슬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즈!"

이 모든 건 저 망할 놈 때문이라며 속으로 한탄한 레너드가 곧 해맑게 웃으며 메디베이로 들어오고 있는 함장의 면상에 보고서를 내던졌다.

CMO가 함장 얼굴에 보고서를 던졌다는 건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시프트가 바뀌기 전이 되어서는 알 선원은 다 아는 소문이 되었다. 함장과 메디컬 치프가 친한 친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젊은 함장이 매번 속을 썩이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선원들은 그러려니 하거나 치프에게 휴가라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다. 정작 그 치프는 일중독이라 있는 휴가도 반려하고 있지만.

"그래서 본즈, 진짜 슬슬 휴가 쓰지그래? 네 연차 엄청 쌓였어. 어차피 쓰긴 써야 하잖아?"

"쉬어봤자 우주인데 그게 쉬는 거야? 지구 보내줄 거 아니면 내버려둬."

잔에 위스키를 따라내며 레너드가 투덜거렸다. 요즘 좀 스트레스가 쌓이긴 했지만 그건 일 때문이 아니라 제임스 커크 때문이라고, 당사자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적당히 잔을 기울이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제임스를 쫓아내고 침대에 누운 레너드가 연달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질병'이 발생한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술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줄 알았었다. 화장실에서 토한 게 꽃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에도 든 생각이라고는 내가 지금 취하긴 취했구나, 정도였고. 그러나 멀쩡한 정신에서 두 번째로 꽃을 토한 순간 레너드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메디베이로 달려가 정확한 병명을 찾기 시작했다. 토한 게 꽃이기 때문인지, 색색의 꽃들 때문에 눈이 아픈 걸 제외하면 죽을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약간 안일한 마음을 가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찾아낸 병의 내용은 안일한 마음을 가진 죗값치고는 차고 넘칠만한 내용이었다.

인간이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로 탐사를 나가고, 외계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과학, 의료, 생활이 발전한 만큼 희귀한 병들 또한 새로 생겼고 우주에서 흘러들어온 병들은 때로 옛 지구인들이 설화로 여겼던 내용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꽃을 토하는 병 또한 그러한 것 중 하나였다.

정식 명칭은 '하나하키' 이 병은 특이한 형식으로 발병되었다. 첫 발병자는 15세의 소년으로 동양인 인간이었다. 이 병은 매우 특이하게 생성된 케이스인데, 하나하키는 원래 '질병'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이름이 붙지 않은 병'이 변질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다. 이름이 붙지 않은 병은 그 자체가 병명이다. 그 특이한 병명에도 이유가 다 있는데, 이 병은 아주 희귀한 병이며 숙주가 질병이라고 인식한 병을 현실로 불러들인다. 그것이 설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해괴한 병일지라도. 이 병이 최초로 생겨난 행성은 매우 작은 행성으로, 지금은 파괴되어 더는 이름이 붙지 않은 병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다만 행성이 사라지기 전까지 발생한 그 병은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때로는 다른 행성에 안착해 숙주를 물색한다. 그 후 숙주를 찾아 숙주의 체내에 침투한 병은 곧바로 생물의 뇌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안착한다. 그리고 그 숙주가 '질병'이라고 생각한 모든 병의 증상을 카피해 그 질병으로 변환된다고 알려져 있다. 허나 보통 질병이라고 인식한 것은 숙주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흔한 질병들이다. 감기 같은 것들은 걸리기 쉽고, 그만큼 더 자주 생각나기 때문에 그런 흔한 질병들로 변환되기 쉬울 수밖에 없다. 또, 변환된 질병은 숙주를 통해 전염되기 시작하나 전염성 자체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기 때문에 만약 감기라고 쳐도 약한 감기 정도로, 위험한 등급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병은 첫 숙주가 중요하다. 레너드가 현재 앓고 있는 하나하키 병은 일본계 지구인이 첫 숙주였고, 안타깝게도 그 소년이 처음 인식한 질병은 그의 할머니가 잠들기 전에 이야기해준, 구전을 통하여 이어진 알 수 없는 이야기 속 질병이었다.

하나하키 병은 오직 짝사랑, 혹은 외사랑을 하는 사람에게서만 발병된다. 마음의 병이 깊으면 깊을수록 병의 증상도 심해지는 것이 보통이며 발병된 자는 입에서 꽃을 토하게 되는데, 보통 사랑하는 상대의 이미지를 따온 꽃이거나, 병을 앓는 사람이 상대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꽃말로 한 꽃들을 토해내게 된다. 이 병을 고치는 방법은 오로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을 접거나 그 사랑이 이루어질 때뿐이었다. 치료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으나 다른 병들과는 달리 이 병은 '심리'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정도. 하지만 이 병을 앓고 있는 동안에는 식도염과 위장 악화, 무기력과 피로감 등의 문제가 따라온다. 말 그대로 목숨 빼고는 지장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것 같으면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할 만큼 단호하지도, 그렇다고 고백할 만큼 용기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주로 앓는다는 점이었다.

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단 레너드는 설명에 쓰여 있는 환자들의 특징과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레너드 맥코이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은 제임스 커크로, 레너드의 함장이며 레너드가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모아서 고백한 후 연인이 된 지 이제 막 일주일 된 애인이었다. 희귀병이라 사례 자체가 적긴 하지만 있는 사례 없는 사례를 다 뒤져봐도 이미 그 사랑을 이룬 후 하나하키 병이 발병된 희귀 케이스는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렇다면 레너드가 혹시 사랑한 상대를 착각한 것일까? 이 병 자체가 상대를 심각하게 앓지 않으면 발병이 되지 않는 병이다. 그런 상대를 과연 착각할 수 있을까? 레너드는 무려 생도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랑의 열병에 앓아왔다. 그래서 한 송이나 두 송이가 아닌 꽃다발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꽃들을 토한 거겠지. 그렇다면 딱 한 가지 가정만이 남는다. 이 병은 사랑을 단념하거나 사랑을 '이루게 되면' 낫는다. 만약에 레너드가 여전히 짝사랑하는 상태라면? 제임스 커크가 레너드 맥코이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라면? 연인이 된다는 것과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착각해서, 혹은 그냥 궁금해서, 외로워서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만약 그렇다면, 레너드는 여전히 짝사랑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꽃을 토하기 시작한지 한 달째, 레너드가 참다 참다 쓰린 위를 부여잡고 함장 면상에 보고서를 날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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