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카테고리의 <산토끼 토끼야>를 먼저 읽어주세요.

* 별 내용 없으니 너무 기대하고 읽으심 안돼요... 쓰다 보니 녤윙 팬픽이 아니라 <모여라 워너원 동산> 같기도 하고, 뭐 그러네요. 일종의 육아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따흐흑. 

* 본 글에서 지훈이는 사회화가 덜 된 아기 토끼라 발음이 조금 어눌하고 문장 구사가 미숙합니다. 유아기적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읽지 않을 것을 권해 드립니다. 



토끼와 나 

w.데자와 



카페 알바 중인 다니엘



2학기가 시작되었다. 다니엘은 이번에야말로 복학을 했다. 오래간만에 밟은 학교 땅에는 까마득하게 어린 애들이 바글대고 있었다. 나름 최신 유행어들 다 꿰고 있다고 생각한 다니엘이었지만 급식에서 학식된지 반년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말들은 3년만에 캠퍼스로 돌아온 복학생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성우와 성운은 체념하면 빠르다 했다. 그거 다 알아들으려고 해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실은 그 사이 복학보다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뒷산에 살던 산토끼가 다니엘네 집에 눌러앉아 -- 정확히 말하면 다니엘이 못 나가게 했음 -- 반려수인 등록도 마치고 정식 이름도 얻었다. 수인관리청에 갔더니 획득 루트를 말하라길래 사실대로 고했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 비싼 수인이 야생에서 그렇게 헤맸을 리가 없다며, 누군가가 잃어버린 실종 수인이거나 납치한 것이라 단정지은 관리청 공무원들이 다니엘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토끼의 검사 결과 트리플 에스급 수인이어서 더 그랬다. 트리플 에스급이요? 상담실에 앉아 멍하니 되묻는 다니엘에게 수인 전문의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수인은 S등급부터 A, B, C 그리고 F등급까지, 다섯 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그중 F등급은 사실상 동물에 해당하는지라 아무 의미가 없고. 인간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변하는지, 그리고 개체의 의지에 따른 외양 컨트롤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고. 의사는 C등급의 예로 인간일 때도 족발을 내밀고 있는 돼지 수인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다니엘이 흠칫 놀라며 의자 등받이로 물러나자 의사가 웃으며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중요 부위가 인간으로 변하지 않았던 수컷 쥐 수인도 있었다고. 그럼 트리플 에스는 뭐에요? 다니엘의 추가 질문에 의사는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등급 내에서의 재분류는 사실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수인의 인권 문제 때문에 모두가 쉬쉬하지만 매매 시장에서 곧잘 쓰이는 이 분류는, 기실 동물일 때의 혈통과 인간일 때의 비주얼로 매겨지는 거라고... 다니엘은 세 시간이 넘는 집중 검사를 마친 후 제 품에서 웅크리고 있는 토끼를 내려다보았다. 마취가 덜 풀린 와중에도 겁에 질려서 달달 떠는 솜뭉치는 외관상 평범한 토끼 같아 보였다. 다니엘은 납득했다. 에스급 맞다. 트리플도 맞고. 


전국 데이터 베이스를 다 돌렸지만 토끼와 일치하는 실종 및 도난 신고는 없었다. 밀수 가능성을 떠올려 국제 서버에도 접속을 해봤지만 거기도 마찬가지. 공무원들은 결국 다니엘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미등록 수인이니 생일도 알 길이 없고, 검사 결과 나온 대충의 출생 시기를 다니엘에게 통보해주었다. 아마도 5월 마지막 주에 태어난 것 같으니 대충 그 즈음으로 생일을 정해서 알려달라고. 105 사이즈를 입는 섬세한 성격의 강다니엘(남, 24세)은 어깨를 한껏 구긴 채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그의 사파리 검색창에는 5월 마지막 주 날짜별 탄생화와 꽃말들이 띄워져 있었고... 





"5월 29일로 해주세요."

"네."

"그날 탄생화가 토끼풀이더라구요. 너무 잘 어울리죠. 토끼가 태어난 날 탄생화가 토끼풀. 운명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쥐띤데 설치류는 토끼랑 친척 아닌가요?"

"0529... 네, 생일 정상적으로 입력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여기 공란에는 토끼 이름, 그 옆에 공란에는 인간 이름 써주시고, 여기 보호자 서명 부탁드릴게요." 


공무원이 내민 아이패드를 받아들며 다니엘은 고민의 여지 없이 토끼 이름을 써냈다. 윙끼. 이유는 단순했다. 토끼가 가장 잘 부리는 재주는 윙크. 윙크하는 토끼니까 윙끼. 얼마 전 토끼와 집에서 뒹굴거리며 채널을 돌리다가 작년에 방영했던 인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재방을 하길래 심심풀이로 보았다. 본방은 한참 군대에 있을 때라 선임들이 남돌 뽑는 프로그램은 제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못 보게 했었거든. 마침 잘생긴 연습생 한 명이 카메라 클로즈업 들어올 때 필살의 윙크를 딱, 날리는 장면이 나왔다. 이걸 본 토끼가 갑자기 다니엘을 향해 윙크를 똑같이 날렸고 다니엘은 순간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오 신이시여 벌레로 고통받던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이런 귀염뽀짝이를 제게 주신 겁니까. 토끼는 저를 끌어안고 부둥거리는 다니엘을 힘겹게 떨쳐낸 후 냉장고에 붙어 있던 배달 책자를 가지고 왔다. 치킨 페이지를 펼치며 손가락으로 콕콕. 덥다고 에어컨 켜놓고 있을 때부터 알았지만 정말 똑똑한 토끼였다. 


그나저나 인간 이름이 고민이었다. 동물명과 똑같아도 법적으로 문제되진 않으나, 수인이 아직 드문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밖을 다닐 때 동물명은 이래저래 불편하다며 공무원이 가급적 평범한 이름으로 지어줄 것을 권유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스타벅스 닉네임도 아니고,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윙끼님" 하고 불리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머리를 감싼 채 끙끙 고민하고 있던 다니엘의 무릎에서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윙끼가 사람으로 변했다. 다니엘은 급히 옆에 있던 옷뭉치를 들어 홀딱 벗은 소년의 중심부를 가렸다. 


"나, 나, 바찌훙." 

"박지훈?"

"웅. 바찌훙." 


밤을 새서 프로그램을 정주행 하더니 윙끼의 원픽은 박지훈이었나 보다. 아직 서툰 발음으로 바찌훙 바찌훙 계속 반복하는 걸 보니 이 이름으로 안 해주면 금방이라도 울 기세... 아니 뒷발로 차버릴 기세여서 다니엘은 패드 위에 또박또박 박.지.훈. 세 글자를 썼다. 무심한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건네받은 공무원이 오늘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하여 국가에 등록된 정식 반려수인이 된 윙끼-지훈은 얼마 후 입학 통지서까지 받아 들었다. 5월 생 토끼 수인이면 곧바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며. 사실 지금도 늦은 것이라고 했다. 토끼 수인은 유아기가 매우 빨리 지나가는 반면 반항심이 넘치는 아동기는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생후 두 달이 지나면 곧바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지훈은 야생에서 자라느라 그 시기를 놓친 상태. 이왕 이렇게 된 거 속성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어서 한달 코스의 1학년은 건너뛰고 2학년으로 바로 보내자는 교장의 말에 다니엘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뭔진 모르겠고 학교에서 하자는 대로 하는 학부모의 심정이 이런 걸까. 다니엘이 상담을 받는 동안 다니엘의 폰으로 열심히 총질을 하고 있는 지훈의 손이 바빴다. 


"지훈아. 소리 꺼놓고 해야지. 아님 이어폰을 끼든가." 

"시러."

"...보셨죠? 저 상태로 어른이 되면 큰일납니다. 당장 내일부터 셔틀버스 보낼 테니 등교 시키세요." 

"...네."


셔틀버스는 다행히 다니엘과 지훈의 집 앞까지 와주었다. 설마 마을버스처럼 오르막 아래에서 내려주나 걱정했던 다니엘은 한시름을 놨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알바도 해야 돼서 종일반을 선택했지만 막상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토끼 혼자 보내려니 마음이 무거워진 다니엘은 새로 산 옷을 입고 노란 봉고차에 올라타는 지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혹시 누가 괴롭히거들랑 바로 연락해라. 그렇다고 니가 친구들을 때려도 안 돼. 급식이 맛 없어도 얘기해야 한다. 그치만 편식은 안 돼. 지훈은 귀찮다는 듯 다니엘의 손을 툭툭 쳐내며 안쪽으로 가서 앉았다. 먼저 앉아 있던 꼬맹이 하나가 지훈에게 급관심을 보이며 옆자리로 옮겨 앉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니엘의 눈앞에서 차문이 닫혔다. 


지훈은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토끼 치고 학습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강아지나 고양이 수인들에 비해 토끼 수인은 발달이 좀 늦고 다 큰 이후에도 상황 판단이 느린 편인데, 인간 지훈도 토끼 윙끼도 같은 반 고양이 수인들에 비등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고 했다. 다니엘은 이걸 또 성우와 성운에게 35절까지 자랑했다. 


그럼 이쯤 해서 지훈의 가정통신문 몇 개를 예시로 보도록 하자. 


지훈이가 오늘은 새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점심 먹고 나니까 완전히 단짝이 되었답니다. 그 친구랑 술래잡기를 하고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살짝 까졌는데, 학교에서 응급처치는 다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도 발달 과정의 일부니까 다쳤다고 야단치지도 마시구요.


지훈이가 급식에서 자꾸 당근을 골라냅니다. 데친 브로콜리도 싫어하네요. 호박잎이랑 오이는 잘 먹는 걸로 봐서 모든 야채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편식 습관이 들까봐 걱정됩니다. 잘 먹는다고 좋아하는 것만 먹이지 마시고, 집에서도 잘 지도해주세요.


혹시 지훈이가 집에서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나요? 쉬는 시간마다 총 게임 하고 싶다고 선생님을 조릅니다. 적당한 사용은 괜찮지만 너무 어릴 때부터 심취하면 중독 될 수도 있으니 가정에서 세심한 지도 부탁드립니다. 지훈이 개월 수의 토끼의 경우, 게임은 가급적 한 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지훈이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랬더니 '딴이엘'이라고 하면서 보호자 분을 그렸어요. 같은 반 친구가 못 그린다고 놀려서 중간에 살짝 다툼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화해한 상태입니다. 뒷장에 첨부해드릴테니 무조건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세요. 이 시기 자존감 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나야?"

"웅. 딴이엘." 

"와, 우리 지훈이 그림 넘 잘 그린다. 화가해도 되겠네."

"꾼데... 아까... 우지니가, 이거 그림 이상하다고 해써." 

"우진이? 지훈이 친구야?"

"웅. 우지니. 지후니 친구. 걘 짹째기야. 아... 짹째기는 치사해." 

"응? 짹짹이가 왜 치사해?" 

"우지니가 그림 이상하다구, 사람 다리가 어떠케 이러케 기냐구, 막 놀려서... 쪼끔 싸웠는데... 나 이러케 콱 꼬집어 놓구 짹째기 돼서 날아가버렸어." 


지훈은 정말 억울한 듯 씩씩거리며 뒷발... 아니 다리를 붕붕 휘둘렀다. 아마도 그 우진이라는 친구를 뒷발차기로 까주려고 했으나 참새 수인인 우진이 잽싸게 새로 변해 날아가 버렸다는 말인 것 같았다. 


"또? 짹짹이 말고 새로 사귄 친구는 없어?"

"웅... 수다리도 있어."

"수다리?"

"응! 대히는 수다리라 맨날 물에서 놀아." 

"아아, 수달..." 

"나도 수영 배우고 시퍼."

"지훈이 수영장 가고 싶어?"

"응응, 대히처럼 이르케, 수영 잘하고 싶어." 


아무렴. 누구 말인데. 다니엘은 곧바로 근처 수영장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훈은 다니엘의 옆에서 머리를 들이밀며 수영? 수영 가는 거야? 이러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총 게임 하겠다고 핸드폰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안 돼. 오늘 게임은 다 했잖아. 내일 하자, 내일."


다니엘은 최근의 가정통신문을 상기하며 폰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파닥거리면서 그것을 잡으려고 하길래 아예 일어서서 팔을 뻗으며 못 잡게 했더니 지훈은 윙크를 찡긋찡긋 연속으로 날리며 애교를 부렸다. 순간 넘어갈 뻔 한 다니엘이 고개를 퍼뜩 저으며 지훈을 엄하게 꾸짖었다. 


"안돼요, 우리 지훈이 아직 숙제도 다 안 했잖아요. 형아랑 숙제부터 빨리 하고 딱 30분만 하자."

"시러! 숙제 재미 없어!" 

"숙제 안 하면 내일 학교 가서 야단 맞아요."  

"야단 맞으면 돼!" 


얼씨구. 다니엘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내려보았다. 지훈은 성난 복어처럼 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단이엘은 똥방구야! 바보 멍충이 똥쟁이!" 

"지훈아. 그런 말은 또 언제 배웠니..." 

"몰라! 단이엘 똥이야! 빵구야!"  


이날부터였다. 지훈이 똥 방구 오줌 등등 그 나이대 애들이 아주 좋아하는 단어들에 꽂혀버린 게. 그리고 이것은 섬세한 성격의 다니엘에게 한동안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월수금은 다니엘이 학교를 마친 후 알바를 하는지라 카페 바로 앞 큰길로 지훈의 하교지를 지정해놨다. 이 소식을 들은 성우와 성운이 오랜만에 다니엘의 카페로 정모를 왔다. 다니엘이 매번 35절까지 자랑하는 토끼가 너무 궁금했지만 도저히 다니엘네 집으로 가는 그 오르막을 오를 용기는 없었던 둘에게 카페 하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한편 성우와 성운이 몰려온 것은 다니엘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공공장소에서는 소리를 지르거나 제멋대로 굴면 안 된다는 아주 기초적인 사회화 과정을 마스터한 덕분에 지훈은 다니엘이 일을 하는 동안 카페 구석에 곧잘 혼자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집중력이 그리 높지 않아 숙제를 하다가도 30분 정도가 지나면 짜증을 내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핸드폰을 들려줘서 게임을 시켜줬는데 이런 식으로 애를 키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우아. 형아 글씨 잘 써." 

"그래? 지훈이 지금 형 놀리는 거야?"

"아냐... 지후니는, 아니, 나눈 그르케 쓸 수가 없어."

"아닌데. 나도 못 써." 




다니엘이 열심히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지훈과 어느새 친해진 성우는 지훈의 학교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요즘 한참 한글을 배우는 중이라 다니엘이 사준 12색 사인펜 세트로 여기저기 글을 써제끼는 지훈이었다. 자기가 쓴 거라며 매일 종이 쪽지를 들고 와서 다니엘 더러 읽으라고 하는데, 사실 빈말로도 잘 쓴다고는 할 수 없고... 가끔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처참한 수준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매번 자신만만하게 내밀길래 자기는 잘 쓰는 줄 아나보다 싶었거늘 성우랑 하는 대화를 들으니 이놈 자슥 지가 못 쓰는 거 이미 알고 있었네. 


"힝... 나눈 가위질도 못해." 

"나도 그래." 

"풀칠도 모테..."

"나도 그래."


맞다. 둘 다 더럽게 못한다. 덕분에 공작 숙제가 산으로 가고 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는데 그 뭔가가 뭔지를 몰라서 앞자리에 앉은 성운도, 카운터 뒤에서 지켜보다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테이블로 다가온 다니엘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성우가 물풀을 엄지와 검지에 잔뜩 묻히더니 손을 쩍쩍 벌려 은빛 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훈은 어느새 들고 있던 가위도 놓치고 헤에, 입까지 벌린 채 성우의 손을 보고 있었다. 



"야. 어째 너네 정신연령이 비슷해 보인다?"

"뭐래요. 눈높이 교육 몰라요? 눈높이 교육. 지금 애한테 맞춰서 놀아주고 있는 거잖아요."

"아니. 그냥 니가 재밌어서 하는 거로 보이는데."


성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훈의 망고 블랜디드를 쭉 빨아 먹었다. 멍한 얼굴로 거미줄을 보고 있던 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성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안돼 그거 지훈이 꺼야. 내 꺼야. 먹지 마! 형아는 까만 거 먹어! 


"지훈이 꺼 맛있네. 형아는 이거 계속 먹을래." 

"아아아 안돼. 내 꺼란 말이야아! 유 파잇 미?"

"뭐냐 얘 영어도 배우냐?"

"네... 요즘 수인도 영재 교육이라면서 2학년부터 영어 배우더라구요." 


다니엘의 대답에, 성운이 지훈을 신기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씩씩거리며 성운에게서 제 음료를 빼앗아 오려던 지훈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다니엘의 앞치마 자락을 잡아당기며 하소연을 했다. 


"단이엘, 저거저거, 지훈이 꺼-"

"헤이! 유 피그 베이비?"



공작 놀이에 흥미가 없어 지금껏 성우와 지훈이 하는 양만을 지켜봤던 성운이 드디어 유잼 포인트를 찾았는지 지훈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또 하필 요즘 학교에서 지훈의 친구들이 장난으로 지훈을 놀려대는 별명이어서 말이지... 


"아임 왓?"

"피그 피그 피그 베이비!" 

"노 피그! 유 피그!" 



난장판이다. 성우는 풀로 만든 거미줄을 닦아내려다가 휴지가 들러붙어서 더 엉망이 되어버렸고. 지훈은 성운을 가리키며 피그피그 소리를 질러대고. 그 와중에 성운은 손뼉까지 치며 깔깔 웃어대고. 다니엘이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고 껴드는데 마침 또 손님이 왔다. 한두 명도 아니고, 8인석 테이블에 스터디 하러 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생 한 무더기다. 다니엘은 마지 못해 카운터로 돌아갔다. 이들이 앉은 테이블에 불안한 눈빛을 찔끔찔끔 흘리며. 


저녁 타임이 끝나고 식후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 넘치는 시간대라 다니엘은 한참을 바빴다. 그래도 오늘은 성우와 성운이 지훈을 봐주고 있어서 다행... 인가? 아무튼 그쪽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다가 겨우 한숨 돌릴 즈음, 카페 사장님이 오셨다. 사장님이 이제부턴 자기가 볼 테니 마무리 하라고 해서, 다니엘은 앞치마도 풀지 않은 채 셋의 테이블로 곧장 향했다. 


"지훈이 얌전히 잘 있었어요?"

"얌전히는 모르겠고 잘은 있었어." 

"야, 너네 토깽이 진짜 너무 귀엽다. 완전 잘생겼어."


엄지를 척, 세우는 성우의 손가락 끝이 아직 꼬질했다. 그 손으로 옆에 앉은 지훈의 볼을 꼬집으며 "아유 잘생겼어 잘생겼어"를 반복하자 지훈 역시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형아도 잘생겨써. 존잘이야." 


"헐. 지훈아.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존잘?"

"어."

"바찌훙 팬까페..." 


그런 건 또 언제 가입했대. 다니엘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토끼의 성장에 놀라며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묘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을 되물었다. 


"지훈아."

"웅."

"근데 나는? 다니엘은 존잘 아니야? 왜 형아한텐 그런 말 안해줘?"


성운이 다시 깔깔 웃기 시작했다. 저 새끼 삐졌네. 삐졌어. 그러거나 말거나 다니엘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지훈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와중에 '존잘' 칭호를 획득한 옹성우는 아주 뿌듯한 얼굴로 손가락에 남은 풀을 닦아내고 있었다. 


"아. 단이옐은 꼬추 존잘."


...롸? 


카운터에서 정산을 보던 사장님까지 동작을 멈추었다. 카페에 맴도는 알싸한 정적을 깬 것은 성운의 숨넘어갈 듯한 웃음소리였다. 끄하하학. 꼬추. 꼬추 존잘이래. 아 진짜 영재 교육이다. 참교육이다. 



그리고 지훈은, 제 말에 웃어주는 것을 칭찬으로 알아 들었는지 특유의 말간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검지로 다니엘의 중심부를 가리키며. 


"단이옐 꼬추. 크고 예뻐."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런 거다. 프로이드 발달단계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입안에 넣고 보는 구강기를 거쳐, 똥과 방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항문기를 보내고, 리비도가 성기 부위에 집중되는 남근기를 겪는다고 한다. 5월 29일생의 유아 수인 박지훈은 현재 막 남근기에 접어든 상황... 은 시발 모르겠고 남들이 보기엔 대충 중딩 정도로 자라있는 박지훈 때문에 오늘도 밖에서 대형 수난을 겪은 섬세한 성격의 강다니엘(남, 24세)이었다. 





트위터 @tejava_milkt

데자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