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이후 사이좋은 어벤저스.  인워가 없는 세계관

※날조주의 ※









[토니피터] Minor Upgrade




 22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란 이름을 달고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그가 해온 일들은 기껏해야 퀸즈의 이웃들을 돕는 일이었는데 대게 길 잃은 아이 돕기, 노인 길 건너 주기, 또는 자전거 도둑잡기와 같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봉사활동이었다. 그중 피터가 해낸 가장 큰 업적은 달려오는 2톤 트럭을 맨손으로 막아 사람들을 구한 것인데 그때만 해도 피터는 설마 자신이 어벤저스 더 나아가 쉴드와 협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일로 아이언맨의 눈에 들어 뭣도 모른 채 베를린까지 따라갔고 캡틴과 1:1도 붙어보았으며 이제는 그들과 동료-물론 자신은 견습이지만-가 되었고 심지어 지금은 그 유명한 닉 퓨리와 함께라니, 10대 청소년의 관점에선 이보다 흥분되는 일은 없었다. 피터는 마리아가 건네준 무전용 이어폰을 낀 채, 몸을 숨긴 컨테이너 박스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건 완전 첩보영화잖아, 죽여준다. 피터는 007 시리즈의 팬이었다.




"다른 신호는 잡히지 않아요."




거미 추적기가 나타내는 곳은 부둣가에 널린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 중 하나였다. 전문 요원으로 교육을 받지 않았단 이유로 피터는 닉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길을 안내를 담당했다. 사실 그마저도 '전 평범한 사람은 아닌걸요!' 그렇게 한마디 등등히 던졌다가 닉의 호통을 들으며 작전에서 제외될 뻔했다. 그 잘난 힘은 하나도 없으면서 나불나불 떠드는군? 지금 네놈은 힐보다 못한 아주 평범한 일반인이야. 닉이 꽤나 사나운 성질의 소유자라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고 그것은 현재 피터가 요상한 안경을 끼고 무전이나 하며 조용히 숨어 있을 이유가 되어주었다. 분명 닉이 건네주었을 때만 해도 멋진 안경이었는데 어째 제가 끼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분명 막 안경을 얼굴 위로 얹었을 때, 무표정인 마리아 뒤로 헬렌이 풋, 웃음을 숨기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어벤저스 멤버들이 보았다면 놀림거리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 안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이지 않는 내부 공간을 열 감지 센서로 스캔하여 매복하고 있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돕는 쉴드의 물건이었다. 다만, 요리조리 확대해보아도 닉과 마리아 두사람 외엔 흔적은 없었다.




[그렇겠지, 어차피 함정이니까.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그럼 그 꼬리를 먼저 밟아볼까요, 국장님.]




닉과 마리아는 총구를 컨테이너로 겨누며 천천히 다가갔다. 닉은 처음부터 스태튼 아일랜드의 부둣가에 설치된 추적기는 그들의 함정이라 이야기했다. 배가 들어올 시간이 아니면 인적이 드문 부둣가, 그리고 꽤나 긴시간 동안 이동의 흔적이 없음. 추적기가 거미 모양이었단 점에서 그들은 가간과 스파이더맨의 접촉에 확신을 가졌을 것이고 추적기를 붙인 이상 스파이더맨은 현장에 나타날 것이니 인적이 드물고 도망치기 어려운 바다가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했을 것이란 게 닉의 의견이었다. 




피터라고 함정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노리는 대상이 자신이라면, 가간 또는 그들의 동료 중 최소 한 명은 그곳에 매복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 중요했다. 닉은 그곳에서 바로 스파이더맨을 골로 보낼 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피터에게 상기시켰지만 피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게, 가간은 자기 손으로 직접 절 처리하고 싶을 테니까요. 고약한 범죄자에게 노려지고 있다는 데 무서워하는 눈치 없이 태연히 말하니 어쩌겠는가. 고로 함정이야 어찌 되었든 닉은 그 뒤에 등장할 한 명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가지 않으면 그들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 한 명을 위한 유인책. 피터는 자신의 손목의 웹슈터를 테스트했다. 이것은 단단한 미끼였다. 누구든 물어주겠지. 하지만 쉬이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낚시꾼이 다름 아닌 쉴드였으므로. 피터는 미덥게 닉을 바라봤다. 피슈슉. 그 뒤로 거미줄이 높게 뿜어져 나와 닉의 머리에 얽히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던 것은 모른척하기로 한다.-파커. 그렇게 제 이름이 무섭게 들리긴 처음이었다.




끼이익. 닉은 추적기가 알려주는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빠르게 열고 총을 겨눴다. 열 감지기에 잡히지 않았듯 안에는 닉과 마리아를 제외하곤 누구도 없었다. 컴컴한 박스 안, 작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존해 깊숙이 들어가니 덩그러니 놓인 낡은 테이블 위로 피터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미 추적기 한마리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뭔가 있나요?"

[아무것도. 웬 거미 한 마리뿐이군?]




피터는 박스 사이사이로 몸을 숨기며 이동했다. 닉과 마리아가 경계 중인 파란 컨테이너에 가까워졌을 때, 피터의 발끝부터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서는 느낌이 타고 올랐다. 피터는 그 찌릿한 감각을 잘 알고 있었다.




"퓨리씨, 빨리 거기서 나오세요! 빨리요! 안 좋은 예감이.."

[이젠 하다 하다 그런 감을 믿으라고?]




피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고 닉은 경계 태세를 갖추며 무전 너머로 소리쳤다. 그러나 동시에 한 쪽 구석으로 들어오는 붉은빛을 발견하고 마리아와 기가 막힌 숨을 뱉어냈다. 신호엔 잡히지도 않던 웬 돌멩이를 휘감은 전선 위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마리아가 헛웃음을 흘린다. 아무래도 그 꼬마에겐 안경은 필요 없었을 거 같은데. 동감이야. 10. 9. 8..그들은 머리를 보호하며 입구로 몸을 날렸고 안될 걸 알면서도 피터는 거미줄을 쏘아 있는 힘껏 그들을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당겼다.




[꼬리는 밟았다. 시작해.]




닉 퓨리는 피터에게 질질 끌리며 외쳤다. 그들의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이미 부둣가는 곳곳에 쉴드의 요원들이 심어져있었다. 2...1.


  



쾅-!





하나의 폭탄이 터지고 연이어 바로 옆의 컨테이너가 폭발했다. 폭발의 위력으로 바닥을 세 번이나 구른 피터의 옆으로 잔해가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헉, 큰일날 뻔했네. 피터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침을 꼴깍 삼켰다.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퓨리씨, 무사하세요? 힐씨? 무전기는 치직, 소음만 일으켰다. 연기와 재들로 눈가가 따가웠다. 피터는 바닥 위로 떨어뜨린 안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다시 어울리지 않는 안경을 꼈을 땐, 불과 몇 분 전까지 비어있던 화면 위로 다양한 색상이 가득 찼다. 피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광선을 간신히 피해 납작 엎드렸다. 안경 너머의 사람의 형태가 여러 개였다. 역시 예상대로 그들은 매복 중이었다. 다만, 상당한 숫자였다. 탕, 탕. 잠복한 쉴드 요원들의 총격전도 시작되었다. 총도 충분히 위험한데 적들이 들고 있는 건 에너지 코어를 이용한 무기였다. 연기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남자는 피터를 발견하고 무차별로 공격을 쏴 대기 시작했다. 피터는 망설임 없이 팔을 앞으로 뻗어 그의 눈 위로 거미줄을 날렸다. 




"젠장, 뭐야 이게?"




그 사이 그에게로 몸을 날려 넘어트리는 것까지 성공했다.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거대한 총처럼 생긴 무기를 옆구리에 끼고 피터는 재빨리 연기 속으로 내달렸다. 탕! 총알이 튕기는 소리에 놀라 피터가 자세를 낮췄다. 끼익 끼익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잘게 진동했다. 오, 이런. 또다시 무언가 터졌고 이곳은 거의 지뢰밭과 다름없었다. 피터는 머리를 감쌌던 손을 풀며 텁텁한 공기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흉부가 욱신거리시 시작했다. 쉴드의 안경엔 쩍 금이 갔다. 비싼 걸텐데 어쩌지? 피터는 안경의 유리를 소매로 문질렀지만 이미 기능이 멈춘 상태였다. 이제 피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비싼 안경을 낀 웬 학생에 불과했다. 의지할 거라곤 훔친 무기와 속에 입은 방탄복, 웹슈터, 그리고 닉 퓨리가 쥐여준 쓰지도 못할 권총 한 자루였다. 




"뭐야, 이 꼬마는?"




바닷물에 빠지기라도 한 건지 전신이 물로 젖은 남자가 날카로운 톤으로 불평했다. 그가 피터에게 무기를 겨누기 무섭게 날아온 총알이 그의 어깨에 명중했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피터는 거미줄로 남자의 몸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멍청하게 있을 시간 없다, 파커.]

"무사하셨군요, 퓨리씨!"

[남 걱정할 여유가 있나 보지?]




닉의 목소리에 총성과 잡음이 섞여 들렸다. [무기는 뒀다 뭐해? 자기 자신은 자기가 지키는 거다. 알아 들어?] 닉의 단호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무전 이어폰은 기능을 잃었다. 콜록, 피터는 괴로운 기침을 뱉어내며 뒷주머니의 총을 잡아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써본 적도 없는데. 피터가 눈썹을 늘어트렸다. 피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거미줄에 붙어 허우적거리는 남자를 조심히 타넘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감각을 세우려 노력했다. 총알이 난무하는 이 연기 속을 탈출할 방법은 그뿐이었다. 그래, 아까도 잘했잖아. 피터는 닉과 마리아가 컨테이너로 들어갔을 때를 더듬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쩌면 기능을 할지 모르는 제 육감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두 세 번 가볍게 뜀박질을 했다. 집중해, 피터 파커. 




피터가 눈을 질끈 감자 주변의 소란이 점차 잦아들었다. 양쪽 귀, 눈이 저렸고 코끝은 화학 냄새로 예민하게 움찔거렸다. 피부 끝을 스치는 바람의 흐름, 느리게 감기처럼 느껴지는 총알과 무기를 든 발걸음들. 그들의 욕지기와 외침. 솟아오르는 불길과 뜨거운 온도. 바닥의 진동, 곧 터질 다른 폭탄의 존재. 




그리고 묵직한 연기를 가르고 가까워지는 기계음. 피터는 눈을 반짝 뜨고 걸음을 물렸다. 불과 몇 초전까지 피터의 머리가 있던 곳으로 날카로운 기계 팔이 휘익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고 끝이 잘려나간 피터의 머리카락이 힘없이 날아갔다. 입술을 잘근 씹으며 피터는 어설픈 손으로 총을 꽉 쥐었다. 

 



"이거, 보이라는 거미 한 마리는 없고 웬 애새끼뿐이라니, 원."




쾌쾌한 연기를 가르고 나타난 남자는 웃었다. 목덜미의 전갈 문신, 흉터. 그리고 면식이 있는 기계 팔. 피터는 이 난리 속 어째서인지 미셸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파커스 럭(Parker's luck)이네. 피터는 하루 만에 다시금 맥 가간과 재회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번과 달리 그가 제대로 '이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위험한 물건을 들고 있네, 꼬마야."




가간은 총과 무기를 가리키며 명백한 비웃음을 흘렸다. 피터는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우며 그동안 영화에서 봐온 것처럼 다른 쪽으로 총을 쥔 손을 받치며 가간을 겨누었다. 그러자 그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뭐 하는 꼬마인지는 모르지만 처음 쏴보지? 그렇게 하면 네 손목이 먼저 작살날 거야."

"상관없어요."




피터의 눈이 가간에게로 고정되었다. 어차피 시선 끌기 용이거든요. 피터는 가간이 어설픈 제 동작에 방심한 틈을 타 바로 손목을 틀어 그에게 웹슈터를 쏘았다. 정확히 그의 얼굴에 붙은 거미줄은 가간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충분했다. 가간은 부앗김과 함께 부르짖었다. 망할 거미줄! 망할 거미새끼. 피터는 그가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허우적거리는 사이 한 남자에게서 뺏은 무기를 반대로 쥐고 달려가 내려쳤다. 공교롭게도 피터의 힘은 그저 일반인의 것에 불과했고 가간은 반쯤 떼어낸 거미줄 사이로 매서운 눈을 깔아 피터에게 으르렁거렸다.




"이 거미줄을 본 이상 그냥은 못 돌아갈 줄 알아, 꼬마야."




윽. 피터는 데자뷰를 느꼈다. 또다시 그의 단단한 기계 팔에 맞아 나뒹굴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으며 차가운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망할 거미줄은 어디서 얻었지? 거미 새끼랑 한패인가. 가간은 울퉁불퉁한 기계 팔로 위협하며 다가왔다. 피터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렸지만 가간의 손에 가볍게 막혔다.




"이런, 간지럽지도 않군."




주먹을 타고 온 팔이 진동했지만 벽을 내려쳤을 때보단 참을만했다. 가간의 피터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피터는 정말 종잇장처럼 끌려갔다. 가간은 멀쩡한 왼손으로 피터의 얼굴을 짓눌렀다.




"거미 새끼는 어딨지? 웃기지도 않아. 뉴욕 하나 정도는 날려줘야 얼굴을 내밀려나?"

"그만두세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요."

"틀려, 있지."




스파이더맨이 나타나지 않은 죄. 다 그 녀석 때문이야, 이제까지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간은 점점 흥분에 차 지껄였다. 그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멀쩡했던 반쪽 얼굴로 망가지겠다 싶었다. 한가롭게 제 얼굴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역시나 가간은 이대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또다시 퀸즈에 저질렀던 테러처럼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며 마을들을, 아니, 더 나아가 사람들을 망가트릴 생각이다. 피터의 입술이 떨렸다. 다 내가 몰랐던 탓에, 내가 힘이 없어 숨어지낸 탓에 피해를 본 건 제 이웃들이며 잘못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둔다면 같은 고통은 반복될 게 뻔했다. 




다 나 때문에.




'그리고 너 때문 아니야. 그 녀석들 때문이지.'



..스타크씨. 피터는 가간의 손목을 세게 쥐었다. 피터의 안면을 난폭하게 내려누르던 손이 서서히 벌어졌고 가간이 미간을 찌푸렸다. 피터는 바닥 위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 순간 가간을 밀어내며 오른발을 내디뎠고 가간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피터는 확신했다.




"간지러운 주먹맛 좀 한번 보세요."




이건 한방 먹이겠다고. 연기가 갈라질 만큼 빠른 속도로 피터의 시야에서 가간이 사라졌다. 주먹 끝에 남은 묵직한 쾌감은 근래 중 가장 만족스러우며 시원했다. 쾅. 폭탄의 소리가 아닌 무언가 컨테이너 박스에 부딪히는 소음이 들렸다. 토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까기 바둑알처럼 날아가 버렸다. 피터는 뻐근한 주먹을 한번 털었다. 피터는 그대로 가간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향했다. 그러나 싸한 기운을 느끼며 피터가 퍼뜩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눈이 따가울 만큼 밝은 빛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탱탱볼처럼 튕겨 바닥에 쓸린 피터는 신음을 뱉어내지도 못한 채 뜨거운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 끈적한 것이 금세 손을 적셨다. 철컥. 불규칙하게 숨을 내쉬며 피터는 눈물이 찔끔 흐르는 눈을 들었다. 총구가 제 정수리에 닿았다.




"뭐야, 이 꼬마는?"

"어쩔까요, 거미줄을 쏘던데."




개중 한 명은 거미줄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던 남자였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며 귀 위의 무전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가간인가, 아님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데려오라는군."

"이런 꼬맹이를 어디가 쓰겠다고. 어이, 두손 머리 뒤로하고 천천히 일어나."




총구로 툭툭 치며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피터는 끙끙거리며 바닥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자 남자는 피터의 손목을 붙들었다. 일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비틀비틀 확연히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며 피터는 그들에게 거미줄을 쏠 타이밍을 노렸다. 자꾸만 어지러운 시야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피터는 부러 발걸음을 엉성하게 옮겼다. 빨리 걷지 못해? 그가 딱딱한 총구로 피터의 등을 밀었다. 꿀꺽, 침을 삼키며 피터는 상체를 빠르게 돌렸다. 자신을 찌르던 총을 떨쳐내는 것은 성공했으나 무리한 발버둥이었다.




"같은 수법에 걸릴까 봐."




딱딱한 것이 어깨에 콱 박히며 피터는 뒤로 추락했다. 콘크리트에 머리를 박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적시는 것은 바닷물이었다. 피터는 부둣가의 끝에서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헤엄이라도 쳐보겠다고 팔을 움직이니 어깨가 저렸고-그나마 마리아가 준 방탄복 덕에 그 정도로 끝난듯싶었다- 몸을 틀어보려니 찢어진 옆구리가 울겅울겅 붉은 기를 토해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멋대로 벌처 일당을 잡겠다고 설치다가 낙하산에 엉켜서 물에 빠졌었지. 피터는 결코 수영에 서툴지 않았지만 유독 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도 '파커스 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터는 이 순간 파커스 럭의 의미를 정정해야겠다 싶었다.




저는 퍽 운이 좋다. 호수에 빠졌던 때도, 지금도 이렇게 도와주러 오는 이가 있으니. 희미하게 물길을 가르는 무언가가 보였고 닿기도 전에 그가 토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둔감해진 육감이 이럴 땐 쓸데없이 예민하고 정확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아이어맨의 아머가 단단한 손가락으로 붕 뜬 몸을 끼고 상승했다. 




반가운 공기를 마시며 피터는 괴로운 기침을 뱉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 낯이 없었다. 툭툭,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진 물이 아머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토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피터를 옆구리에 낀 채 속도를 높였다.




"저..그..스타크씨?"




잔뜩 갈라진 목소리에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이번에도 빈 아머를 보낸 것처럼. 그러나 호수에 빠졌던 날 자신을 구하러온 빈 아머는 적어도 목소리는 있었다. 와이파이가 잡혀 다행이라 안도하던. 피터는 아머를 두드려볼 용기도 없었다. 바람이 시렸고 코끝도 시렸고 눈도 시렸다. 저 멀리 퀸젯이 보였다. 




"문 열어, 냇."




아, 계시구나. 피터는 속으로 생각했다. 곧 하늘 위를 가로지르던 퀸젯의 아래쪽 입구가 열렸다. 피터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언맨에게 던져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놀란 눈으로 그제야 고개를 드니 공중에 뜬 채 가만히 피터를 내려다보는 아이언맨의 아머가 보인다. 이내 걱정했던 어떤 잔소리도 없이 뒤를 돌아 폭탄과 싸움 중인 부둣가로 날아가 버렸다.




"맙소사, 피터? 네가 왜 여기에.."




입구로 확인을 온 나타냐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탄식을 뱉었다. 그러나 피터는 한가로이 그녀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피터는 깨달았다. 그는 새빨개진 눈을 벅벅 비볐다.




토니가 정말로 화가 났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





화학창고가 터졌고 순식간에 불길이 퍼져나갔다. 이런, 여기 소방관 없어? 나타샤가 불길을 피해 몸을 숨기며 총을 쐈다. 안까지 불이 번지면 큰일이야. 컨테이너를 스캔한 토니는 발화성 물질들이 있는 컨테이너 탓에 상황이 위험하다 일렀다. 아무리 아머에서 소화 물질을 뿜어낸다 해도 큰 불길을 잡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다들 폭우를 조심하세요."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며 고개를 올리디 부둣가를 덮을 만큼 거대한 물방울이 공중에 머물러있었다. 완다가 손을 내리자 염력으로 모여있던 바닷물이 동시에 쏟아졌고 누구 하나 피할 틈 없이 짠 빗물을 뒤집어썼다. 




"..고마워, 훌륭한 소방관이네."




방패로 일부를 튕겨낸 스티브는 물의 힘에 휩쓸려 넘어진 나타샤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정말로 훌륭해. 나타샤가 입안에 감도는 짠맛을 뱉어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좋아, 불길은 잡았고. 완다의 바닷물 샤워 덕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일당을 포박한 샘은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 날았다.




"그런데 꼬맹이가 있었다는 게 진짜야?"

[오, 이런. 로디. 자네 지금 지뢰 밟았어.]




왜? 제임스가 진심으로 궁금한 눈치로 물었고 클린트는 조용히 하라는 경고만 내보냈다. 토니가 말도 없이 피터를 퀸젯으로 던지고간지도 한참이다. 나타샤는 현장으로 지원을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피터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브루스가 건네준 담요를 둘둘 몸에 감싸고 퀸젯의 구석에 구겨져서 발발 떠는 게 정말로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 수퍼파워가 사라졌다했을 때도, 나타샤가 기억하는 바론, 그 정도로 절망적인 낯빛은 아니었다. 확실히 피터가 또 사고를 친 셈이지만, 적어도 그 혼자의 힘으로 스태튼 아일랜드를 향했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샤가 브루스에게 피터를 맡기고 나머지와 함께 부둣가로 왔을 땐, 쉴드가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 묻는 건 이다음이었다.  




"'친절한 토니 스타크'씨는 어디로 갔나 몰라."

[몰랐어? 사실 그거 다 헛소문이나. 바튼한테 못들었나 보네.]

"이러는게 한두 번이야? 새삼스럽게." 샘이 건조하게 말했다.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젠장, 걔가 학습능력만은 있다고 믿었는데 내가 누군갈 믿다니 멍청했지.]

"토니."




나타샤가 그의 이름을 어르듯 불렀다. 하지만 토니는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샌드위치 파티를 열어주겠다 인정한 발언이 후회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그러니까 걔가 여기 왜 있냐고. 설마 정말 혼자 나서려고 추적기를 달았던 건가? 그래,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하지만 현장에 쉴드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짓이 꼬맹이 혼자 저지른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다고 유연하게 넘어갈 생각은 없다. 이해? 대체 내가 어떻게 이걸 이해해야 해. 페퍼, 알려줘봐. 어떻게 이해를 해야 이 녀석이 사고 안치고 얌전히 있냔 말이야. 토니는 정말로 지뢰밭 상태였다. 아이언맨을 보고 달려든 적은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어벤저스가 투입되고 현장은 빠르게 잡혀갔지만 토니는 스트레스가 쌓일 뿐이었다. 건드리면 터진다, 어벤저스는 또 다른 폭탄과도 씨름해야 했다.




그들이 만든 무기, 코어의 다수 확보. 일당 포박 및 연행. 비록 가간은 없었지만 함정치곤 괜찮은 성과였다고 모두는 생각하려 노력했다. [저...피터가 가간을 봤다던데...] 우지직. 무전으로 브루스의 입에서 피터의 이름이 나오자 토니가 철로 된 무기를 한 손으로 구겨버렸다. 재빠른 놈이야, 이미 현장에 왔을 땐 없었어. 토니가 피터를 데리고 퀸젯으로 간 사이 먼저 도착했던 제임스와 샘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단 또 가간과 피터가 만났다는 부분이다. 




'제가 운이 좀 없어요...미셸은 이걸 파커스 럭이라고 불러요.'




"웃음이 나와?"

"음..우린 아무도 안 웃었는데."




멋대로 귓가에 울리는 피터의 웃음에 토니가 버럭 소리치자 제임스가 수트의 마스크를 열면서 말꼬리를 물었다. 토니, 좀 진정하게. 스티브가 그의 어깨를 힘 있게 다독였다.




"이런 내가 웃는 게 들렸나 보군?"




먼지를 뒤집어쓴 닉이 총을 집어넣으며 다가왔다. 그 뒤로 따라붙은 마리아의 얼굴에도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쉴드의 헬리캐리어로 연행되는 일당들도 거의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완다 덕에 폭발로 인한 불로 잡았고 선착장으로 들어오던 페리에도 문제가 없었으니 이제 해결할 일은 하나였다.




"그 잘난 수퍼 스파이란 사람이 전갈 한마디도 못 잡았다니, 여기는 물이 나쁜가 보지."

"어디 보단 낫지. 적어도 송사리는 잡았으니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당신이지, 걔를 데려왔잖아. 그렇다면 어쩔 텐가. 일사불란하게 열린 아머 사이로 토니가 냉정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는 닉 퓨리를 똑바로 마주 보고 욕지기를 꾹 눌러 담으며 쏘아붙였다.




"만약 내가 한 발만 늦었어도 걔는 저 바닥에 가라앉았을 거야, 알아?"

"그렇담 거기까지인 놈인 거지."

"오, 퓨리. 그만둬, 당장이라고 당신의 얼굴을 한대 갈기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스타크. 어른답게 굴어. 어린애랑 다를 게 없군. 아니, 오히려 파커 이하야."




닉 퓨리는 언제나처럼 직설적이고 거리낌 없었다. 토니가 비소를 머금었다.

 



"그 녀석은 '야생'과 같아. 웬 건물에 처박혀 주는 밥이나 받아먹고 있으면 힘이 돌아올 것 같나? 이미 그 능력은 녀석의 일부야. 두드려주라고, 본능을 깨워야 하지. 제 몸의 위협을 알고서야 비로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법."

"그렇다고 총알도 없는 애를 전쟁터에 세우다니 정상이 아니야."

"오해마, 총알은 있었네."




쏘지 않았을 뿐. 닉은 총 한 자루를 토니에게로 던졌다. 내가 파커의 손에 쥐여준 무기지. 하지만 녀석은 선택했어, 자신의 힘을 쓰겠다고 말이야. 그 증거로 총알은 하나도 줄지 않았지. 




"언제부터 이게 애들 장난감이었지? 멋지네."




토니는 비아냥거리며 멤버들 앞에서 총을 흔들어 보였다. 토니의 말대로 피터가 쥘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나타샤가 곤란한 눈으로 토니를 마주했다. 스티브 또한 토니 손에 쥐인 위험한 무기를 보자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퓨리, 그 아이는 그저 고등학생이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아이'는 아니지 않나. 입버릇처럼 떠들던데."




스티브가 두 사람의 말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닉은 콧방귀를 팽 뀌었다. 아무리 닉 퓨리가 이처럼 현실주의적이며 단호한 인간이라 해도 아마 피터를 정말 위험 속에 버려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토니는 저항 없이 가라앉던 아이를 생각하면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겠다 싶었다. 그 아이에겐 무기조차 되지 못할 이 의미 없는 총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난 그 기막힌 꼬맹이가 자네의 그늘에 숨어있다 늘 생각했지만, 반대였군."




닉은 느린 걸음으로 토니의 옆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핏줄이 단단히 선 그의 눈엔 피로가 서려있었다.




"자네가 그의 빛을 막고 있는 거였어. "




감싸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닉의 두툼한 손이 토니의 어깨를 툭툭 눌렀다. 토니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총의 잠금장치를 풀고 그의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토니. 스티브가 그를 말렸고 닉은 어깨를 파르르 떨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요즘 그런 식으로 굴면 꼰대 소리 듣수, 국장 양반."

"저들은 우리가 처리하지."



닉은 이내 가볍게 토니가 던지는 총을 받아들곤 미련 없이 돌아서선 헬리캐리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리 잡으면 손목 나가, 필요 없는 충고를 휘적이면서. 




"토니."

"샌드위치 파티는 일단 미루도록 하자고. 아님 걔 샌드위치에만 피클을 넣어줄 테야."




조금은 가라앉은 토니가 언제나처럼 농담 따먹기 식으로 구시렁거리자 그제야 다들 표정을 풀며 뒤를 따랐다. 참고로 피터는 피클을 좋아해요. 자주 피터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던 완다가 덧붙이자 토니가 이런, 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럼 수트를 뺏는 건 어때? 미안하지만 이미 토니 손에 넘어갔다네. 퀸젯으로 향하는 동안 피터가 반성의 의미로 받을 벌칙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가볍게 오고갔고 그 전부는 토니가 애써 태연한 한다는 것을 알고 부러 하는 소리였다.




다만, 피터가 현재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란 것은 누구도 모른 채.







#1 아이 달래는 것이 어려운 브루스



"저..피터군, 안 움직이는 게 좋아요."



브루스는 쭉 피터를 달래려 애썼다. 당장 퀸젯에서는 응급처치가 전부라 피터가 움직일수록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큰일이었다. 피터가 엉엉 울진 않았지만 숨어서 훌쩍이는 탓에 상처가 벌어져 브루스는 몇번이고 그의 붕대를 새로 갈아야 했다. 아이를 달랠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문득 클린트가 했던 아버지 토크가 지나갔다. 피터가 좋아하는 거...피터가 좋아하는 거. 그래!



"피터군, 토니는-"



역효과였다. 이름만으로 아이는 조용히 눈물을 쏟아냈다. 어이쿠, 또 내가 뭔가 실수한 모양이군...




#2 닉과 마리아



"정말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뭘."

"파커요. 진짜 데려갑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는 법이지."



닉은 총을 꺼내들며 살폈다. 그거 아나, 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난 스타크를 어벤저스로 선택했고 스타크는 그 코흘리개 꼬맹이를 선택했지. 그리고 그 꼬맹이는 나아갈 것을 택했고, 이번엔 내가 그런 꼬맹이를 선택했지.  닉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 마리아를 돌아본다. 자네도 내 선택이었고 날 따를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지.  마리아 힐은 그를 굳게 올려다본다. 



"힐. 이번 작전의 1순위는 그 녀석으로 한다."

"방패가 되는 거야 익숙하죠."

"아니, 창이 되면 돼."



방패는 내가 하지. 스타크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랑 그 꼬마정도니까 말이야.




-닉 퓨리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죠..암^^

-글로 다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굉장히 스타크씨는 화가났습니다..ㅎㅎ..역시나 가장 서툰 액션씬이라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ㅜㅜ

-완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음편은 다음주 중으론 업로드 가능할것 같습니다. 빨리 오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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