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다이나믹 듀오 - 출석체크




저번주만 해도 전혀 접점이 없던 둘이 다정하게 귀속말을 하는 모습에 교실 안은 얼어붙었다. 

뭐야? 둘? 솜이랑 김도영이랑 저번주에 말 한마디도 안 했잖아. 

웅성거리는 그들 사이 바로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짝꿍 동혁의 질투 섞인 눈총이었다. 

둘에게 쏠린 시선에 도영은 빨갛게 물들었다. 굳어 있는 도영에게 솜은 다시 산뜻한 톤으로 웃으며 묻는다.


“도영아.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


도영은 고개를 양 옆으로 세차게 흔들어 재꼈다. 분명 싫다고 표현했지만, 솜은 도영의 손목을 세게 잡아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솜은 전학 온 첫 날 찾은 제일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도영은 무지막지한 악력에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다.


구석진 벽으로 몰아넣은 솜은 주먹으로 벽을 세게 때렸다. 

도영의 얼굴 바로 옆으로 때려 넣은 주먹이 떼어지자 벽이 바스러져 어깨에 돌가루가 떨어져 내려앉았다. 

그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며 벌벌 떨었다. 솜은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앞머리를 날리며 묻는다.


“너 맞지? 그때 나 보고 도망친 놈.”

“아닌데? 나 절대 아닌데?”

“진짜?”

“당연하지! 후드입은 솜이가 공고남자애들 피떡이 되도록 패는 거 못 봤어! ……헙!”


자기도 모르게 술술 뱉은 말에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황급히 막았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솜은 허리를 흔들며 살벌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무서웠지만 곧바로 웃음기를 지우고 살벌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훨씬 소름끼쳤다. 

순간 도영은 직감했다. 차라리 공고 양아치에게 찍히는게 훨씬 나았을 거라고.


“그 모습을 본 이상 곱게 둘 수는 없지.”

“솜. 진짜 미안해. 그 날일은 절대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게. 진짜로!”

“내가 널 뭘 믿고?”

“나 김도영이야! 지금까지 전교1등을 놓친 적 없고 작년엔 전교회장까지 한 바른생활 청소년!”


눈을 부릅뜨며 청렴결백을 어필하는 도영을 보며 솜은 서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들이댔다. 도영의 동공엔 동혁과 나눈 카톡 내용이 비춰졌다. 동혁이 도영과 카톡을 곧이곧대로 솜에게 보낸거다.


“전교 1등을 놓친 적도 없고, 전교회장까지 했던 도영아. 참 믿음직해?”


도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솜은 허리를 낮게 숙여 도영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박치기 당해 두개골이 산산조각 날거라 예상했다. 

도영의 눈에 작은 눈물이 맺혔다. 그에게 머리는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거나 왼팔이 부러지는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솜을 뿌리칠 배짱은 없었다.


콩!


솜과 이마가 맞닿아졌다. 생각보다 가벼운 마찰에 질끈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서로의 속눈썹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꿀꺽. 거리가 너무 가깝다. 하지만 굳어버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솜이 싱긋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내 깔 해라.”

“…뭐? 깔…?”

“아, 실수. 우리 오늘부터 1일 하자고.”


솜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절대 싫다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뒷덜미를 잡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졌다. 

울상을 지으며 체념하듯 솜이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네에…”


둘은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교실로 돌아왔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솜과 다르게 도영은 어깨가 축 내려가 한숨만 푹푹 쉬었다. 한바탕 휘몰아친 폭풍으로 도영은 수업이 시작됐지만 내내 넋을 놓고 있었다. 

동혁이의 시선에선 다정하게 단 둘이 나갔다 들어온 도영이가 거슬렸다. 심통이 잔뜩 난 동혁은 선생님이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야. 김도영.”



“…….”   깔… 깔이라고 불렀다…



“너 솜이랑 뭐 하고 왔냐?”



“…….”   솜이가 내 여자친구… 그것도 불주먹…



“야. 내 말 계속 무시할 거야?”



“…….”   헤어질 수는 있을까…?



“야!!!!! 김도영!!!!!”



계속해서 말을 씹는 도영에게 동혁은 결국 소리를 내질렀다. 동혁이는 지금이 수업시간이란 걸 잊어버린거다. 결국 둘은 선생님께 따끔하게 혼났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도영은 일주일 내내 동혁에게 매서운 눈처리를 받으며 고통받았다. 솜과 사귄다는 소문은 그날 바로 전교에 퍼졌다. 

소문을 들은 동혁은 슈퍼배신이라며 일주일째 그를 노려봤다. 차라리 노려보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그는 수업때마다 쪽지를 보냈는데 극악무도의 잔인한 내용이었다.



[수시 다 떨어져라.]

[수시 다 떨어지고 정시하나 넣은 거 예비 1번 남기고 떨어져라.]

[수능날 늦잠 자서 지각해라.]



“너 진짜 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흥.”




그가 이렇게까지 삐진 건 이유가 있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을 친한 친구가 낚아챈 것? NO…! 

제일 친한 친구인 자기에게 귀띔없이 여친이 생겼다는 게 배신이었다. 그것도 연락중라고 말했었던…



나만 진심이었지...? (글썽)




속사정도 모르면서 계속 자기를 미워하는 동혁이가 답답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언제는 너무 답답해 다 털어놓을까 했다가 솜의 주먹질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가방을 슬쩍 보니 입이 쏙 들어갔다.

솜과 강제연애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했다. 예를 들면 아침 등교길에 골목에서 담배피는 걸 망 본다거나.



“솜… 어차피 전자담배면 화장실에서 피는 게 낫지 않을까?”

“후ㅡ 담배는 시원한 바깥바람 맞으면서 빨아줘야 제 맛이거든.”

“그 맛이 뭔데?”

“도영아, 너는 함부로 알려고 하지 마.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염병.’




아침에는 진짜 모습이었다가 학교 교문을 통과하면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했다.




“솜! 좋은 아침~~!”

“동혁이도 좋은 아침~!”




복도에서 마주친 동혁이는 솜을 보며 발랄하게 인사했다. 바로 옆에 도영이 있었지만 일부러 그에게 등을 돌린 채로. 솜도 그에 못 지 않게 상큼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동혁! 너 나한테는 인사 안 해줘?”


“……퉤.”


“둘이 쿵짝거리는 거 너무 귀엽고 재밌다아~”


“징짜??!”


“솜아, 솜아. 나는 도영이랑 쿵짝말고 너랑 쿵짝하고 싶은데엥~~”



‘……염병.’




아침에 데리러 오지 않으면 죽인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마다 솜의 집 앞으로 갔다. 

덕분에 아침 자습시간을 날리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원에 가는 시간은 건들지 않았다. 

아무튼 이 말도 안되는 관계의 이유에 대해 벌벌 떨며 물어봤다.



“솜… 근데 왜 꼭 나야? 아니, 왜 깔이 있어야 해?”



솜은 도영의 머리를 헝클며 허공을 응시했다. 후ㅡ 하고 한숨을 쉬며 답했다.



“여자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하나씩 있어. 넌 아직 너무 순수해. 알려고 하지마.”



‘……염병.’



솜은 항상 학교가 끝나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그게 여친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나 뭐래나. 

학원이 끝나면 오토바이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밤길 위험한데 혼자 돌아다니는 거 아니라며 항상 데려다줬다. 

내가 뭐 앤 줄 아나… 나도 내년이면 어엿한 성인인데 말이다. 

오토바이는 매번 탈 때마다 적응은 무슨 토나오고 무서웠다. 하지만 덕분에 집에 일찍 들어가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솜은 버스정류장까지 도영이를 데려다줬다.



“솜아. 오늘도 나 데리러 올 거야?”

“맞다. 미안. 오늘은 집에 일 있어서 못 가겠다.”


“아…….”

“너 버스 온다.”



학원까지 가는 버스가 신호에 걸려있었다. 솜과 짧게 인사하려던 그때였다. 

구름공고의 하늘색 교복을 입은 남자가 솜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어. 찾았다. 귀여운 솜뭉치.”


솜은 그를 썩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주위에 같은 학교 학생들이 있어 다시 표정을 바꿔 환한 미소를 장착했다. 그는 솜에게 이름표를 건냈다.



“이거 솜이 너 꺼 맞지?”


솜은 물끄러미 그의 손에 들린 이름표를 보았다. 이 솜이라고 적힌 흰색 이름표는 솜의 것이 맞았다. 

처음 보는 애가 이름표를 건네는 이상한 상황에 솜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름표의 출처를 말했다.


“이거? 전에 너가 우리 학교 애들 조질 때 떨어트린 거.”


이럴 수가. 그 날 솜을 본 사람이 도영이 말고 또 있었다. 솜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솜의 진짜 모습을 본 이상 저 녀석은 그때 그 공고 놈들처럼 조져질 게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얼른 튀라는 도영이의 눈빛을 못 본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솜에게 수작을 걸었다.


“그때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는데. 밝은 데서 보니까 더 귀엽당. 우리 사귀자! 너 완전 내 스타일이야!”


줄곧 아무 말없이 의문의 그를 보던 솜의 입에서 드디어 한마디가 터졌다. 잔뜩 표정을 구긴 채.


“미친 또라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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