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시리즈물임.

핸드폰 시간 신경쓰면 지는거다

"어어...?"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자가 도착했다. 겨우겨우 쓰던 논문을 마무리하고 교수님께 보낸 지 삼십 분. 밤늦게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가는 길인데, 마침 장훈, 그의 문자가 왔다. 조금은 기다리고 있었어서 황급히 답장을 보낸 그녀지만, 그 이후로 따르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뭔 소리지. 도대체 그가 어떻게 자신이 밖에 있다는 것을 알고, 또 5분 동안 여자친구를 해달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몽몽한 수증기가 앞을 가린 마냥, 그녀는 제자리에 멈춰 눈을 깜빡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까톡왔숑-'

앙증맞은 알림음과 함께 그의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녀는 찬찬히 글을 읽었다.


뭘 믿어요? 그가 눈앞에 있기만 하면 바로 그리 물어보았을 터인데, 자판을 두드려야 하니 쉽사리 뭐라 할 수가 없다. 아니, 사실 그가 눈 앞에 있었어도 못 물어봤을거다. 

"지은아!"

어?

"뭐야, 아이스크림 사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나 했잖아."

어어?

"빨리 들어가자, 덥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부른 것은 다름아닌 이상한 메시지를 보낸 장훈이다. 뒤에 있었으면 말을 걸지 왜 카톡을 한거지? 아니, 어디를 들어가? 저번에 분명 지은 '씨'라고 부른다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 손에 비닐봉지를 한 손에 폰을 들고 댕그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는 해명하기는 커녕 한술 더 떠 그녀의 손에서 봉지를 빼앗고 어깨를 껴안는다. 아주아주 다정하게. 그녀의 몸이 굳었다.

"바밤바 샀어? 빼먹은 거 아니지?"

"어...아니. 바, 바밤바는 안샀는데."

얼결에 대답해버리고, 아직도 놀란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는 잘했다는 듯 어깨를 감싸안은 손에 힘을 준다. 그대로, 그녀를 이끌고 앞으로 걷는다. 엇나가는 박자로 그녀도 다리를 놀린다.

"어! 오빠가 바밤바 사달라 그랬잖아! 우리 지은이 까먹었어?"

손발이 오그라드는 삼인칭이었고, 장훈 자신은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정말 안어울렸다. 적어도, 검사 우장훈에게는 안어울렸다. 뭐, 듣는 상대가 그 간극에 관심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는 그런 관심 없었다.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미, 미안 오빠... 깜빡해서."

일단은 무슨 헤프닝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원하는 것이 이것인 것 같으니 따라가자는 마음으로 그녀는 대답했다.그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갱차나요, 우리 지은이눈 귀여우니까."

으어아어아어아어......

"그래, 요,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검사님. 무슨 일인데 이렇게 안어울리는 멘트를 열심히 던지시나요. 막, 그런건가. 어디에 감금된 사람에게 '무슨 일 있으면 당근을 그려!'라던가. 이번 케이스는 '무슨 일 있으면 귀여운 말투를 써!'같은 거고. 솔직히 나라면 귀여운 말투보다 당근을 그리는 쪽을 택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아예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귀여운 지은이~ 귀여우운~ 지은이~"

...듣고있기 조금 힘들었다. 

아니,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런 닭살을 넘어 소름이 돋는 멘트를 직접 던지는 그는 어떨까. 아마 아침 강의시간에 갑자기 교수님에게 A+구애의 막춤을 추는 기분이 아닐까. 

"우리 지은지은, 오늘 학교는 어땠어요? 마이 힘들어쪄요?"

...무반주로.

"어어... 힘들어...쪄요. 마이."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목이 탄다.

순간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덩달아 그녀도 같이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떠 왜 그러냐는 의사표시를 했다. 아니, 동그랗게 뜨려고 한 것 같은데, 초 단위로 말라가는 선인장같은 기분이었던 그녀에게 동그랗게 뜰 눈이 남아있었던가. 분명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려고 노력하-는 장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폭발했었던 것같은 기억이 난다.

"지은아, 뽀뽀해줘."

음.

"예?"

반사적으로 응답해버리고 만 그녀였지만,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뒤늦게라도 입울 틀어막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귀가 안 들린다. 그런 그녀의 혼돈의 카오스를 알까, 그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다시 말했다.

"뽀뽀해줘."

그래, 잘못 들은게 아니었구나. 내 귀가 옳았어. 잠시 욕구불만에 빠져있었다고 비난한 나의 타성에 젖은 생각을 용서해주렴, 나의 귀야.

"...지금?"

"응, 지금."

"여기서?"

"여기서."

"하, 하지만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물론 이 야심한 시각에 누가 있었겠냐마는, 이건 좀 아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검사님. 제발 설명을 해주세요. 그녀는 최대한 절박한 눈빛으로 그를 그렇게 노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하면 이상한거지. 진심인가? 하지만 그럴 것 같지가 않은 말인데. 검사님, 무슨 일 있으면 당근을 그리라니까요.

"어서."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결연함이 스치는 것을 보니 허투르게 내뱉은 말은 아닌 듯 싶다. 그 결연함이, 그녀를 더 큰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것을 그는 알까. 도대체 검사는 뭘 하는 직업이지. 드라마가 틀린 게 아닌가보다. 정말로 별 거 다해야 하나보다. 나도 어릴 때는 검사 하고싶어했는데, 안 하길 잘했다.

"지은아."

"...네, 오빠."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그녀는 이때 차라리 햄릿이 되어버렸으면 싶었다. 그게 더 쉬운 선택일텐데. 그래도, 그래도... 자신은 이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밥을 얻어먹었다. 이 사람도 나에게 신세를 지려고 한다. ...뽀뽀해달라고 하는 건 밥먹는 거랑은 맥락이 좀 다르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그리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인지상정에 옳을 터인데... 아니야, 당근은 그녀가 그려야 했다. 

"빨리, 해줘."

그가 재촉한다. 더 이상 피할 길은 보이지 않울 성 싶다. 주저주저하던 그녀는, 그와 같이 결연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두 사람, 아무리 봐도, 키스를 눈앞에 둔 알콩달콩한 커플로는 보이지 않을 표정들이었다. 그의 옷깃을 아주 살짝 쥐고, 그녀는 말했다.

"하, 한다."

"응."

이렇게 떨리는 것은 첫키스보다도 더하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한 것 같은데, 어쩌면 좋지. 이지은, 너 진짜 무슨 인생을 산거니. 체념. 그녀는 눈을 감는다. 


빠악-


정말, 빠악- 하는 소리가 났다. 아니면 퍽-이라고 해도 될까. 일단 그 소리 이후로 뭔가 비슷한 소리들이 들렸기때문에 일단 영화에서보던 타격음, 그 정도로 이름지어도 되지 않을까.

"으아악...!"

손 끝에 걸려있던 섬유의 느낌이 쏙 빠져나간다. 그녀는 놀라감았던 눈을 확 떴다. 눈 앞에 있어야 할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자 멀지 않은 곳에서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난투극의 데자뷰가 펼쳐진다.

"씹새끼가 어따대고 검사를, 개새끼야."

가해자는 저번과 같이 장훈이고,

"윽, 으악, 잠시, 잠시만...!"

맞는 사람은 달라진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가.

그녀는 손에 들린 휴대전화의 화면 위 숫자를 반사적으로 확인한다. 10시 45분. 장훈의 마지막 메시지로부터 딱 오 분 지났다. 

"하아, 개노무쉐끼가, 오데 검사 뒤를 칠라고, 하아..."

씨밤바같은 쉐끼... 어느새 일을 끝낸 것인지, 장훈이 땅에 널브러진 남자를 마지막으로 걷어차고는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그리고 그녀를 돌아보며 묻는다.

"개안아요? 뭐 다친 덴 없는 것 같은데."

"...5분이 이거였어요?"

"예. 딱 5분 안됐으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얼굴이 괜히 밉다. 배신감이 들어온다. 당근을 그리라니까, 왜 이런 방식을 택하냐고요. 미리 말해주면 사람이 죽나?

"검사님! 우검사니임!"

저 멀리서, 저번에도 한 발 늦게 왔던 방계장이라는 사람이 뛰어온다. 그 모습을 흘깃 보고는, 장훈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리는 손마저도 밉다.

"빚을 또 졌네, 이거."

"...이자 쳐서 받을거예요."

"이율이 마이 높은가? 25프로 넘으면 이자제한법 위반인데."

"잡아넣게요? 해봐요, 난 성추행범으로 신고할거니까."

"이러저러한 이유 따져보면 성추행 인정은 안될텐데? 반항도 안했으면서."

"그럼 다른 죄목이라도 가져다 붙여야지, 뭐."

그가 웃는다. 그 얼굴이 보기 싫어 그녀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꼭 받아낼거예요."

사채업자 뺨치는 각오를 다지는 지은이었다.

글러지만 글러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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