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지


BGM

: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 악동뮤지션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바깥바람을 쐬자는 이유로 집 밖을 나온 둘은 서로 아무 말 없이 근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저녁과 밤 그 어느 사이에서 쌀쌀한 바람이 천천히 지나갔다. 점점 어둠이 짙어지자 공원에 있는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다. 불빛이 둘을 비추니 땅에는 검은 그림자 2개가 나타났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걷고 있는 두 그림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불고 있던 쌀쌀한 바람 사이에서 짓궂은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둘을 통과했다. 옷을 짧게 입고 있던 휘인은 그 짓궂은 장난에 몸을 살짝 떨었다. 별이는 그런 휘인을 슬쩍 흘겨보더니 입고 있던 후드집업의 지퍼를 천천히 내리며 덤덤하게 물었다.




"입을래?"


"... 아니야. 언니 입어."




지퍼를 다 내리고 벗으려던 찰나에 침묵을 하고 있던 휘인의 입이 열리더니 툭, 말을 내뱉었다. 휘인의 말에 입술을 꾹 다물던 별이는 지퍼를 다시 잠그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 끝까지 다 채우고 고개를 드니 휘인은 이미 저만치 가 있었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 휘인의 체구가 오늘따라 유난히 작아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앞만 보며 걷고 있던 휘인이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걸음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같이 걷고 있었던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더 돌려 뒤를 바라보니 별이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가로등에 비친 제 그림자조차 별이에게 닿지 않았다.


한동안 저만치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운동을 하러 혹은 산책을 하러 오가는 사람들은 그 둘을 힐끗 보고서 제 갈 길을 걸었다. 한숨을 쉰 별이가 발을 떼고 휘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다가오는 별이를 휘인은 무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았다.




"... 가자. 피곤하다."


"그래."




조용히, 그리고 묵묵하게 말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고 생활복이었던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TV앞에 나란히 앉았다. TV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하고 있었다. 시끌시끌 웃음을 유발하는 TV와는 다르게 둘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이내 재미가 없어지자 휘인이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예능 프로, 개그 프로, 코미디 영화 뭘 봐도 재미가 없었다.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다 결국 TV를 껐다.




"... 지루해."


"... 그러게."


"몇 시야?"


"오후 11시 반."


"난 잘래."




휘인이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별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배경화면에 띄워져 있는 저와 휘인의 웃는 사진이 나타났다. 갤러리를 누르니 사진이 빽빽하게 보였다. 저와 휘인이 같이 찍은 사진, 휘인의 사진, 같이 갔던 카페 따위의 사진들이 저를 반겼다. 화면을 빤히 바라보다 뒤로 가기를 눌렀다. 구석에 있는 디데이 위젯에 시선이 옮겨졌다. 500일에 가까워진 수가 눈에 띄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디데이 날짜가 유독 거슬렸다. 계속 바라보던 별이는 디데이 위젯을 꾹 누르더니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내는 휘인의 얼굴을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쳐다보다 이내 자신도 옆자리에 누웠다. 닿을락 말락 아주 살짝만 앞으로 가도 부딪칠 것 같았다. 그런 휘인을 계속 주시하는 별이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던 별이가 입술을 꽉 물더니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휘인아."





미동도 하지 않은 휘인의 얼굴에 별이는 한 번 더 휘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을 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입술을 꽉 물게 되었다. 결국엔... 결국엔,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그런데... 어렵다, 너무."




휘인을 보며 속삭이던 별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말을 하기가 벅차다.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야 했기에, 그게 우리 사이의 마지막인데. 결국 기다리는 건 이별이었기에.




"힘드네... 그만할까, 우리."




힘겹게 내뱉고 몸을 돌렸다. 휘인을 등진 별이는 눈을 감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고른 숨을 쉬며 잠든 별이 뒤에서 그 등 뒤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있던 휘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별이의 등짝이 오늘따라 더 초라해 보였다. 나... 다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아 눈 감고 그저 누워만 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건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하고 이상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별이의 작은 뒤통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도르륵 돌리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국 우리 사랑의 종착지는... 이별이었구나. 미안해... 언니."




그 말을 끝으로 휘인도 몸을 돌렸다. 서로 등지고 있는 둘 사이에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가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묶여있던 실 하나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그 실은 팽팽하다 못해 양쪽에서 놔버려 떨어졌다. 저 깊은 나락으로.











마마무 팬픽러 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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