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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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에게 긴토키는 능구렁이같이 뻔뻔한 놈이고 긴토키에게 히지카타는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처럼 사나운 놈이였다. 겉으로는 네네-하며 부탁을 잘 들어주지만 정작 본인의 감정은 뒤로하는 긴토키는 속으로 

틱틱대기 그지없는 놈. 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태 연습을 같이 하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 어쩌면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음악적인 면보다 히지카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걸지도.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앞두고 히지카타는 연습실에서 오디션 곡을 고르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로 피아노 의자에 앉아 홀로 연주 할 수있느 무반주 솔로곡을 알아보며 듣고 있던 때였다. 누군가가 피아노 의자에 털썩 앉아 고개를 숙여 곡을 듣고 있던 히지카타의 어깨를 감쌌다. 

"어떤 놈이.."

긴토키였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임을 확인하곤 한숨을 쉬었다. 또 네놈이냐.

"어? 선배 무슨 곡 들으세요?"

능청을 떨며 긴토키가 물었다. 히지카타는 대답안해주면 계속해 질문해 올 것이 뻔하니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오케스트라 오디션 선곡."

짧막하게 말했다. 오케스트라 오디션이라는 말에 긴토키가 반응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 검은 속내가 있어보였다.

"선배도 오케스트라 신청했나보죠?"

"어."

"저도 오케스트라 신청했는데 오디션 곡으로 협주는 어때요?"

"야 너 무슨.."

"아 왜요 오케스트라야 말로 단체활동 아니겠어요? 교수님들게 어필을 하려면 오히려 협주 쪽이 좀더 점수를 잘 받는다구요-"

사실이다. 오케스트라는 혼자 연주하는 것이 아닌 단체연주. 말그대로 함께 모여 연주하는 형태인 것이다. 합주를 해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긴토키의 말은 매우 설득력있는 말이 었다. 그러나 히지카타가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다만 반주자나 협주할 상대가 없을 뿐. 그러나 자존심상 그런말을 후배인 긴토키 앞에서 꺼내고 싶지않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저도 마침 협주할 상대를 찾고있었는데- 영 성에 안차서 말이죠 바이올린 수석정도는 되야-"

음흉한미소로 히지카타를 힐끔보며 말했다.

"아,맞다. 선배-선배 바이올린 수석이죠~?"

긴토키가 눈꼬리가 휘어지게 구부리며 말했다. 잘도 선배-선배-라고 지껄인다.

"...누가 너랑 한다든?"

히지카타가 틱티거리며 고개를 획 돌렸다.

"아 왜요 선배 저 완전 안성맞춤아니에요? 저 피아노 수석인걸-"

긴토키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미소를 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긴토키가 협주를 한다는 말에 히지카타는 끌렸다. 피아노 수석이면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토키의 피아노연주가 좋았다. 입시때 많은 반주자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했지만 정작 괜찮은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없었기에. 

"....죽음의 무도"

"네?"

"죽음의 무도가 아니면 안할거다."

명령을 하듯 수락을 하듯 히지카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락을 받았다는 기쁨에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부둥켜 안으며 기뻐했다. 뭐야 이 새끼.

"아싸- 그럼 허락한거죠? 죽음의 무도? 알겠어요 까이꺼 마스터해오죠."

자신만만하게 말하곤 긴토키가 연습실을 나갔다.

진짜 알 수 없는 놈. 피아노칠 때랑 너무 달라. 히지카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이올린을 꺼냈다. 제법 손때가 많이 묻은 바이올린을 보고는 기지개를 피고 곧장 연습에 들어갔다. 


긴토키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완성하려면 대충 일주일은 걸리겠지라고 생각하고 3일째 죽음의 무도를 미친듯이 연습하고 있던 찰나. 긴토키가 연습실에 들이닥쳤다. 

"선배! 협주합시다!" 라고 소리치며 들어온 긴토키의 손에는 빳빳한 악보가 들려있었다. 악보는 죽음의 무도 악보였다. 빳빳한 악보라니..보긴 한건가. 긴토키의 악보와는 달리 히지카타의 악보느 수십번 수백번 아니 수천번 본 듯 악보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음대 내에서 미치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히지카타답게 3일동안 그 곡을 수천번 연주했던 것이다.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것도 꽤나 반복했었다. 미친 듯이 연습한 히지카타 앞에서 새종이같은 악보라니 가당치않았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의심의 눈초리와 미심쩍다는 듯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긴토키는 당당하게 걸어들어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신호보내 주면 바로 쳐 줄게요."

긴토키가 가볍게 손을 펴며 말했다. 히지카타는 이제와서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완벽히 완곡를 못하면 긴토키를 내쫓을 생각이었다. 좋아 제대로 연주를 못하면 이참에 네놈이랑 인연을 끊어야겠어.

히지카타가 가볍에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자 둘의 협주가 시작되었다. 도입부분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쉽게 넘겼다. 몇 마디의 아름다운 선율들을 주고받고는 드디어 웅장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며 둘의 연주는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교수들이 이 둘의 연주를 직접들었다면 당시 낭만주의 시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편곡은 3분정도 밖에 안되는 곡이지만 원곡은 완곡하려면 7분의 시간을 달려야하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장대한 곡으로 쉽게 도전하기에는 힘든 곡이 였다. 그러나 그 짧은 연습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히지카타는 완벽하게 연주했고 긴토키 또한 더욱이 완벽하게 연주했다. 긴토키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날카롭지만 유혹적인 선율에 히지카타는 감탄했다. 히지카타의 살을 에는 듯한 카리스마있는 바이올린 연주에 긴토키도 새삼 감탄했다. 둘은 완곡후에 들숨과 날숨을 오가며 거친숨을 쉬었다. 


히지카타의 예상과는 달리 긴토키의 연주는 완벽 그 자체였다. 뭐냐 이놈 천재라도 되나. 나는 열심히 연습했다고 쳐도 이 새끼는...

문득 궁금해진 히지카타는 처음으로 긴토키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 곡 연습은 얼마나 했냐?"

"에? 왜요 맘에 안들어요? 이상하다 완벽했을 텐데"

완벽해서 이상한 것이였다.

"흠 한 이틀 했나? 꽤나 공들였죠 선배랑 같이 연주하니까"

이틀...? 진짜 천잰가 싶었다. 게다가 뭐? 같이 연주하니까 공을 들여..?

"어때요? 같이해도 되겠어요? 저는 선배 연주 엄청 좋았는데-"

긴토키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말했다. 연주가 좋았다는 말에 히지카타가 땀방울을 닦으며 머쓱해 했다. 그런 히지카타를 보며 긴토키는 반달눈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이틀 연습한 것 치곤 나쁘지 않네." 히지카타가 담담한 척하며 삐죽 말했다.

"그쵸? 역시 수석은 수석 알아보나봐-"

하 그래 그놈의 수석. 내가 미친듯이 연습해서 얻은 수석인데 네놈은 여유로워 보이네. 히지카타는 완벽하고 천재같은 그의 연주에 조금 열등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만들어진 천재, 수재인 히지카타와 달리 긴토키는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노력은 재능을 이기지 못한다 라는 교수의 말이 불현듯 히지카타를 스쳤다. 

맘에 안드는 놈. 긴토키가 맘에 안들어도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긴토키와의 협주를 관두면 다른 곡을 수천번 반복해야할 일이 생기기에 히지카타는 수고했다는 말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연습에 몰두했다. 


진짜 미친 듯이 연습하네 질리지도 않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를 할 뿐이었다. 긴토키와 히지카타 둘의 협주는 한번만으로도 완벽하게 끝이 났고 히지카타는 피아노의자에 앉아있는 긴토키를 내버려 두고 홀로 연습할 뿐 둘사이의 대화는 일절 오가지 않았다. 긴토키는 많이 심심했는지 피아노에 앉아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치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에 히지카타가 잠시 개인 연습을 멈췄다. 긴토키가 짧게 심심풀이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곡의 흐름은 라흐마니노프스러우면서도 그 호흡과 표현은 지극히 긴토키적이었다. 장엄하고 섬세한 선율은 히지카타의 귀를 사로 잡았다. 비록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합주는 아니지만 긴토키는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뽐내는 듯했다. 짧은 시간속에서도 긴토키는 작품본래의 모습, 정신성을 명확하고 유려하게 연주했다. 히지카타는 내심 감탄했다. 그에게 나타난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는 협주곡을 마치 웅장한 시처럼 연주했다.


히지카타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가만히 긴토키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눈을 감고 귀에 온 감각을 총동원 시켰다. 히지카타는 이 곡을 바이올린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좋아했었다. 

첫 악장은 마치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시작되어, 무겁고 두꺼운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며 점차 열기와 강도를 더해가는 히지카타의 음악 생애 단면을 연상시킨다. 이 협주곡은 히지카타가 바이올린 입시 초기에 겪었던 좌절, 그로 인한 실의와 고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협주곡에 의지해 그는 역경을 딛고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에게서 매우 특별한 곡이였기에 귀기울여 들었다. 긴토키의 화려한 선율에 히지카타는 놀라며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들어왔던 히지카타 였지만 긴토키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은 남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끌렸다. 라흐마니노프라고 할만한 완벽한 곡 해석과 긴토키의 색이 조금 들어간 협주곡은 지금 내가 연주회에 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착각을 일으켰다. 긴토키가 중간에 연주를 멈췄다. 

"뭐에요 왜 남의 피아노를 그렇게 뚫어져라 보실까?"

"어...잘쳐서"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긴토키가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선배한테 칭찬 처음 들어보네요^^"

흠칫했다. 저도 모르게 칭찬을 하고만 히지카타는 귀가 붉어지며 다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선배 진짜 서투르네-"

"뭐가"

"바이올린말고는 잘 하는게 없는거 아녜요?"

"하?"

"감정 표현도 엄-청 서투르고 말야"

"넌 그럼 피아노말고 또 뭐 잘하는데. 너도 다를바 없지 않아?"

한참 고민하던 긴토키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엄지를 검지와 중지사이에 끼우며 말했다.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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