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정신이 드나?

-...


 천천히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건 반쯤 비워진 파란 힐팩. 그리고 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동료 세명. 맥은 잔뜩 무거워진 머리를 짚으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좀 피로한 것 빼곤 별다른 몸의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몇 분이나 이러고 있었던거지?

한조가 힐팩 링거 선을 맥의 팔에서 뽑아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30분 정도 기절했었다. 다행히 강한 독은 아니었나보군.  이 정도 선에서 그친 걸 보면...아니면 힐팩의 성능이 뛰어났거나.

-내 몸이 튼튼해서 독을 이겨냈다는 가정은 없나?

-어림없는 소릴 하는군. 독을 맞자마자 정신 못차리고 쓰러진 주제에. 

-하하, 무슨 소리. 내가 다치고서도 얼마나 많은 옴닉들을 때려잡았는데.

 한조와 맥 사이에 고집스런 눈빛이 오갔고 레나는 둘의 설전이 더 이어지기 전에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끊었다.

-흠,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돌아가자구- 나 배고파지려해. 결국 진짜 송신기는 찾지 못했고,맥이 당했던 그 독성 옴닉 무리들이 기지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탈론 잔당들이었던 것 같으니.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중간에 쓰러져서 확인을 못했는데 독성 옴닉들은 다 정리한건가? 

한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벽에서 나온 옴닉을 제거했다. 

 루시우가 지겹다는 듯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만 이 지긋지긋한 추운 곳을 벗어나자고-.



 넷은 기지를 떠나 제트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루시우가 춥다며 치유 음악을 틀었음에도 워낙 혹독하게 추운 곳이라 그런지 마냥 따듯하지만은 않았다. 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추위 때문인가. 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이고 풍경이고 죄다 눈으로 덮여 온통 새하얗기만 했다. 이렇게 주위를 분간할 수 없으면 아무리 지도가 있다 하더라도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인데, 점멸까지 간간히 써가며 손쉽게 셋을 제트기까지 안내하는 레나의 방향감각은 언제봐도 대단하다. 모두 제트기에 올라, 안전벨트를 맸다. 레나는 노련한 솜씨로 제트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쳐보다 문득 앞을 봤다. 제트기가 점점 올라가며 경사가 기울었다. 정면의 창으론 눈을 내리게 할 심산인지 잔뜩 흐려져 회색빛으로 변한 하늘이 보였다. 그러다 맥은 루시우가 안절부절 못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온통 하얗기만 한 곳에서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의아한 맥이 루시우의 시선을 따라가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 직전, 루시우가 별안간 크게 소리쳤다.


-레나!! 제트기를 멈춰! 저곳에-!!


쾅-


 제트기가 공중에서 5m쯤 떴을 무렵, 엔진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레나는 급하게 핸들을 꺾어 눈이 많은 쪽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육중한 제트기가 이리저리 방황하다 어렵사리 눈속에 쳐박혔다.


-탈론이야! 순간이동기를 제트기 뒤편에 숨겨놓고 잠복해있었어!

-대체 무슨...!


  맥크리는 제트기가 거꾸로 쳐박힌 탓에 머리에 피가 쏠려 더욱 두통이 심해짐을 느꼈다. 창문을 깨고 나오자 바로 앞에 탈론무리들이 서 있었다. 직감이 말해준다. 저들은 탈론의 나부랭이 따위가 아니란걸. 그리고 저 하얀 가면을 쓴 자는...


-리퍼. 리퍼가 있어.


 말도 안 돼, 리퍼가 어떻게 알고 여길. 트레이서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돌연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습격, 갑작스런 추락, 탈론 무리, 리퍼, 그리고 눈. 맥크리는 이젠 심장처럼 두근거리는 머리를 최대한 진정시키며 모자를 고쳐쓰곤 새로운 총알을 리볼버에 우겨넣었다. 평탄한 길이 될 줄 알았건만. 장전을 끝내고 탈론 무리들을 탐색하듯 쓱 둘러보았다. 리퍼를 주축으로 하는 최정예 부대원들이었다. 이번 싸움은 단순 옴닉들을 상대할 때와 차원이 다를 것이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고,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첫 탄이 탈론부대원을 명중시킨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총성을 기점으로 넷은 마치 처음부터 짠 듯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루시우의 볼륨 업을 필두로 트레이서가 거침없이 탈론 측 진영을 파고들어 적들을 교란시켰고, 맥과 한조가 정확한 조준 실력으로 부대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전투가 점점 극에 치달을 수록 눈도 태풍처럼 거세게 그들을 휘갈겼고, 앞을 분간하기 힘든 채로 감각에 의존하여 싸움을 한참이나 더 이어갔다. 눈은 그칠 줄 몰랐고 어느 새 사나운 눈보라로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귓 속은 바람소리만이 가득 들어차 매섭게 웽웽 울어댔다. 맥은 심해질 대로 심해진 눈보라로 더 이상 탈론무리의 기척을 느낄 수 없게 되자 총 쏘는 것을 그만두고 오버워치 요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레나와 루시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레나는 어느순간 탈론이 일방적으로 후퇴했다면서 우리를 찾고 있었다 했다. 루시우 역시 레나를 보조하다가 같이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조는? 맥은 전투 중에 잊고 있던 두통이 다시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나를 찾으러 오는 길에 한조는 못 보았나?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둘이 파트너인걸. 그렇다면 나와 함께 있었던가? 맥은 이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필사적으로 방금 전의 기억을 되새겼다. 마지막으로 한조를 본 게 언제였지? 눈보라가 심해지기 직전, 그가 나와 등을 맞대고 탈론 세력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뒤에서 총소리가 났었다. 당연히 한조의 것인 줄 알았다. 병신같은 생각이었다. 맥은 머리를 잡아뜯었다. 한조는 을 사용하지 않아.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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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해서 글이 너무 느리게 써지네요 저녁쯤에 마저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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