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앵. 따알꾹. 쮜미니 취해쩌]

[넌 손가락도 취하냐?]

[네엥? 쮜미니 취해쩌요옹]

[문자를 왜 이딴 식으로 보내냐]

에라이. 역시 이 방법도 아닌가. 효과 직빵이라고 그랬는데. 문자를 왜 이딴 식으로 보내냐, 는 석진의 문자를 육성으로 읽으며 지민은 우거지상을 했다. 진짜 정말로 내게 1%의 호감도 없는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 매몰찰까. 그리 생각하며 지민은 연거푸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껏 자기 좋다고 매달린 여자 & 남자들. 알파를 떠나서 베타들까지 많았다만. 그들의 입장이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민에게 석진은 너무도 어려웠다. 지금껏 지민의 연애사. 아니 인생사를 통틀어도 자신에게 호감을 내비췄으면 내비추었지. 쌀쌀맞기 그지없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예의 그 웃는 상의 얼굴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숨겨진 이면의 감정 따위는 배제한다는 전제 아래에 그간 지민의 인생사에 석진처럼 지민을 냉랭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단 거다.

“선배!”

“어. 왜.”

“선배는..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에게 매번 감사하지. 너무 잘생겼어, 난.”

잘난 척하는 모습조차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다달 했다면. 정말 이건 답도 없게 빠진 거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분명 재수 없어야 할 모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아주 쿵쾅쿵쾅 제멋대로 폭주를 하면서 난리블루스를 추고 있으니까. 그래. 어쩔 수 없지. 너무 잘생겨서 뿅 갔는데 어쩌겠어. 빠진 내 잘못이지. 잘생긴 사람 잘못은 아니잖아?


***


“야아~, 김석지이이이이인~.”

“..너 취했냐?”

“아뉘? 안 취했눙데?”

취했는데, 너? 라며 제 랩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선 지민을 향해 석진은 말하고 있었다. 안 취했따고오오-!!!! 하고 아주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고함을 내지르는 지민의 모습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새벽 2시가 넘었어. 랩실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 뭐하는 짓이야?!

“읍읍읍-!”

“소리 안 지를 거야?”

입을 틀어 막히고도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쉼 없이 움직이는 지민의 하관에 석진의 손아귀에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소리 안 지른다고 약속해. 조용히 말하겠다고 약속해. 안 그러면 안 놔줄 거야. 이래선 안 풀어주겠다는 걸 인지했는지 한참이나 입이 막히고도 움직이던 하관을 닫은 지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썬빼애애-.”

“쉿!”

“나 안 예뽀요?”

“...하아..”

나 안 예뻐요? 하고 묻는 지민의 눈가가 촉촉했다. 입술을 삐죽이며 나 안 예뻐? 왜 안 봐줘요? 잘 봐봐요. 나 눈도 예뿌고. 코도 예뿌고. 입술도 예뿌고. 얼굴형도 예뿐데. 목소리도 예뿌지 않아요? 나 몸매도 엄청 예뿐데. 보여줘요? 그리 말하는 지민을 바라보며 석진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이렇게 만취해서 돌아다니는 거 민폐란다. 알겠냐? 술 취해서 이러는 거 진짜 질색하니까 다시는 이러지 말고 라며 석진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문 잠글 거야, 나와. 그 말에 라꾸라꾸에 늘어져있던 지민이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썬빼애~.”

“..놔라..”

문이 닫히고 띠리릭 잠기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지민이 석진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야, 무거워. 무겁다고. 야! 하고 어깨를 털어댐에도 손에 빨판을 달았나. 왜 안 떨어져? 라는 생각이 들도록 지민의 손은 석진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석진은 제 집에 도착하도록 지민을 떨궈내지 못했다.


***


“아으.. 머리야..”

“..깼냐?”

“..!..”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머리를 움켜쥐곤 지민은 앓는 소리를 냈다.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어서 그대로 머리만 움켜쥐고 있는데. 아니, 이 목소리는? 절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지민의 고개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서..선배가.. 여기 어떻게... 있어요?”

“여기 내 집인데..?”

“..네?!”

기억이 전혀 안 나? 란다.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인지 찻잔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석진이 지민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뭐, 뭐가 기억이 안 나요? 되래 반문하는 지민의 모습에 진짜 아예 기억이 안 나나보네? 라면서 황당하다는 웃음을 터트리는 석진의 모습에 지민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나, 뭔가 큰 실수 했나 봐..

“너 어제 술을 얼마나 마신 거냐?”

“어.. 쪼오끔.”

“쪼오끔이 아닐 걸?”

“주량보다 쪼오끔 많이..”

제가 원래 소주 2병은 마셔도 멀쩡하거든요! 근데 아마 어제는 그것보단 좀 더 마신 것 같아요. 그치만.. 어.. 제가 알고 있기론 저는 주사가 없다고 그랬거든요, 친구들이? 두 눈을 반짝이는 지민의 얼굴은 마치 나 주사 없다 그랬으니까. 어제 나는 사고 친 게 없을 걸? 아마 그럴 걸?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냐. 너 어제 씻지도 않고 잤는데.”

“아..”

“나 침대 위에 안 씻고 올라가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괜히 씻긴답시고 너 옷 갈아입혔다가 오해 받을까봐. 그대로 재웠어.”

아. 죄송해요. 라며 지민이 석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제 몸을 훑어보던 지민이 음. 토는 안 했어. 확실해, 라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석진이 듣고는 푸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술 먹고 부릴 수 있는 사고 중에 첫 번째가 토악질이야?”

“...그건 안 했잖아요..”

“맞아. 토는 안 했어.”

토는 안 했어..? 토는? 는? ‘는’이 왜 거기 껴들어가 있지? 맞아. 너 토 안 했어, 라면 참으로 깔끔한 문장이었을 것 같은데. 왜 ‘는’이 거기 끼어들어가서 이리도 찝찝하게 만들지?

“그럼 지금 유추 가능한 두 번째 사고는 뭐야?”

“... 제가 혹시 선배한테.. 욕했나요?”

“흐음.. 뭐 욕은 아닌데. 반말은 했지? 지금처럼 깍듯함 없이?”

“아... 제가 선배님께 야, 석진아.. 뭐.. 이런.. 이런.. 막말을..”

“지금도 말까는 거야?”

“아니요!!”

피식 웃는 석진의 얼굴을 마주하며 지민은 그저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기 바빴다.

“그럼 세 번째 사고는 뭐야?”

“...없..”

“없다?”

“....아마..?”

“아닐 걸? 이렇게 취한 적이 없나봐?”

“필름 끊긴 건 처음이에요!”

제가 그럼 다시 한 번 필름 끊기도록 마셔보고 친구들에게 제가 부리는 주사가 뭔지 알아올게요! 라는 지민의 말에 석진은 하아-,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다 이내 하지 말란다.

“니가 무슨 주사를 부렸는지 알아?”

“...아..아뇨..”

“너 내 입술 뺏어갔어.”

“..네?! 네에에에?!!!!”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며 제 입을 틀어막는 지민의 모습에 석진 역시 덩달아 놀라고 있었다. 아이씨, 깜짝이야.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런 석진의 말에도 지민은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안 돼에에에에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흐어어엉. 내 첫 키스으으으-! 안 돼에에에!”

“..어?”

“흐으엉. 내 쇼중한 첫 키슨데!”

“야.. 니가 들이댄 거야..”

“그러니까요! 얼마나 아껴둔 건데! 기억도 못하는 새에 날려먹었냐구요, 그걸!”

내가 지금껏 만난 애인들하고도 안 했다구요. 운명의 상대 만나면 하려고 아끼고 아낀 건데. 다 망했어. 젠자아앙. 흐어엉, 하고 이젠 통곡을 한다. 야, 야. 야, 울지 마. 습격당한 건 난데, 네가 울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 말하며 석진은 당황하고 있었다.

“아, 그럼 없었던 일 해. 너 기억도 안 나잖아.”

“한 게 어떻게 없던 일이 돼요!! 흐으앙. 다 망했어. 그지 같아.”

얼마나 소중한 내 첫키슨데. 그걸 술 먹고 날려먹어. 아니, 말도 안 돼에에 라며 연신 지민은 울음바다였다.

“지쨔, 내가 첫 키스 진짜루 흐으엉 읍-!”

주저앉아 통곡을 하는 지민의 뒷목을 잡곤 입술을 맞부딪혀 오는 석진 덕에 지민을 울음을 멈추곤 놀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지, 지금? 지금 선배가 나한테 키..스 하는 거야? 제 입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석진의 혀에 지민의 몸은 바짝 굳어가고 있었다.

“...뭐..뭐에요?”

“기억이라도 하라고. 어제 이렇게 했어.”

“..네?”

아, 정정. 어제 입술을 네가 부딪쳤지. 그것 말고는 똑같다고 보면 되. 그리 말하며 생긋 웃는 석진의 모습에 지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뭐야?


***


“뭐야.”

“..네?”

지민은 제게 퉁명스레 말을 거는 석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에게 정말 말을 건 것이 맞나 재차 확인을 하며 석진에게 답을 했다.

“뭐냐고.”

“...저요? 저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요..?”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석진이 당황한 듯 두 눈을 꿈벅거리며 대답하는 지민을 지그시 바라봤다. 얼굴 표면에 너 때문에 내가 좀 짜증나-, 라는 기운이 물씬 묻어있는 상태로 말이다.

“그러니까.”

“..네?”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네..?”

네 밖에 못하는 병에 걸린 거야, 뭐야. 라고 중얼거린 석진이 벽에 기대었던 등을 떼며 지민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나랑 한 키스가 별로였어?”

선배 쉿, 쉿! 여기 학굔데요! 라며 지민이 잽싸게 석진의 입을 틀어막곤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 눈치를 봤다. 이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하아, 하고 한숨을 토해내며 석진의 입을 막았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한다는 소리가 선배님,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란다. 무슨 소리가 무슨 소리야?! 너 나랑 키스한 거 잊어버렸냐? 고 조금은 커다랗게 외쳐진 석진의 말에 이제는 뜨악 경악을 하는 표정으로 다시금 지민이 석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선배님, 진정하세요!”

“으그느-.”

“아, 진정 하세요, 선배님! 진정하실 건가요?!”

“으그느으므르흐즈.”

“아, 선배님!”

“야! 니가 입을 놔줘야 말을 하지!”

그냥 참아주고 있었더니 놔줄 생각을 안 하냐, 너는? 이라며 석진이 신경질적으로 제 입을 막고 있던 지민의 손을 떼어냈다. 아, 죄송해요.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다시금 두 눈을 곱게 내리깔곤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려대는 지민의 모습에 하아, 하고 석진의 입에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얘 봐라. 지금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는 거야..?

“어디 가냐?”

“..어디.. 안 가는 데요..?”

“너 나한테 지금 1초 전보다 30센티는 멀어진 거 같은데.”

“..아닐.. 걸요..”

맞을 걸? 이란 반문에 뭐가 불만인지 볼을 부루퉁 부풀리더니 허리를 곧게 세우곤 멈춰서있는 게 보였다. 석진이 불만인 건 이거다. 좋다고 진드기마냥 들러붙고 치댈 때는 언제고 갑자기 이렇게 거리를 두냐 이거다. 딱 울고 불다가 자신이 키스를 해준 이후로 이런다. 그 날도 으아아악! 하고 괴성을 지르며 제 집을 뛰쳐나가고 난 뒤론 도통 안 보인다 싶더니, 오늘은 우연찮게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저렇게 인사도 없이 쌩 까고 가려했던 거 아닌가. 평상시였으면 100미터 거리에서도 선배니이이임 하고 달려오던 녀석이 1미터 이내 거리를 가면서도 아는 척을 안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렇담 엊그제도. 지지난 번에도 날 못 봤나? 싶었던 게 일부러 피했단 건가? 로 귀결이 될 수밖엔 없었다.

저 좋다고 들이대는 애들은 셀 수가 없었다. 고로 저 좋다고 들이대는 애들에게 별 감흥이 없었다. 저러다 말겠지. 저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이 아이를 좀 더 특별하게 대할 의무라던가 이 아이에게 살가워야 할 이유는 아닌 거니까. 그렇게 살았어야 했으면 나는 너무 피곤해서 못 살지. 그래서 나를 실컷 좋아하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녀석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기 때문에. 아이도 그런 경우라면 나도 오케이,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거다. 다만, 다만! 이 경우는 아니지. 아닌 거지. 키스를 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나를 향한 애정이 아주 폭발 중이었거든. 근데 그 뒤로 이렇게 내빼면서 나를 피한다는 건 상황이 안 맞지. 오히려 책임이라고 들러붙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첫 키스라며? 소중해서 아끼고 아껴뒀던 거라며. 근데 왜 그래? 야. 나도 좀 납득 좀 하자. 그리 생각하며 석진의 얼굴은 한껏 구겨졌다.

“너 왜 나 피하냐?”

이건 분명 피하는 거다. 피한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것이 없다. 분명 아이는 나를 피하고 있는 거니까. 그리 생각하며 석진이 지민을 빤히 바라보니 지민은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법하게 두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그러다가 이내 입을 떼더니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그.. 제가 선배님을.. 성추행한 게 되나요..?”

“..뭐?”

“제가.. 기억이 안 난다지만 멋대로 ...키..스를 했구..”

상대의 동의 없이 맘대로 그렇게 스킨쉽을 하는 거는 엄연히 성추행이잖아요. 제가 그때 울어버려서 선배님께서 막상 저한테 화도 못 내셨을 텐데. 비겁한 마음에 쪼오끔 피해 다니긴 했는데요. 근데 아무래도 더 이상 피하는 건 제가 너무 천하의 몹쓸 놈이겠죠? 정말 죄송해요, 선배님. 그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란다. 허-, 참나. 성추행? 그렇지. 너 나 성추행 했던 거 맞아.

“그래 내가 피해자네?”

“네? 네..”

“어떻게 보상해줄 건데?”

“어.. 제가 그 부분은 미처 생각을 못해봤는데요. 금전적으로.”

“잠깐!”

“네?”

“금전적으로? 금전적으로 뭐?”

내 입술 값. 나는 못 매길 것 같은데. 너는 매길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물으니 지민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금전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면 다음은 무슨 방안이 있는데? 라고 물으니 그러면 어.. 근데요, 선배님. 정신적으로는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이미 상처 받으신 그 정신을 어떻게 해도 다시 그 전 상황으로 돌릴 수가 없잖아요? 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정신적으로 뭔가 해소가 불가능하니까... 작은 성의로나마 금전적이 차라리.. 혹시 선배님 갖고 싶으시던 게 있나요?!”

“나 돈 많아.”

“..아.. 네..”

그럼 어떻게 해드려야 하죠, 제가? 울먹거리는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민을 석진은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눈빛이 많이 변한 느낌이네? 라고 말이다.

“이제 나를 향한 마음이 다 접혔나봐?”

“아? 아.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그 난리를 치고 났더니 마음이 아주 쏴-아-악! 가라앉더라구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라는 시선으로 석진은 지민을 내려다봤다. 마음이 쏴아아악 가라앉았다고? 마음이 쏴아악?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나를 향한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소리야? 어떻게 그게 돼?

“..뭐?”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는 마음에 석진은 반문을 했다. 짧게 뭐? 하고 한 마디만 내뱉었을 뿐이지만.

“이제 선배님 안 좋아해요!”

석진의 당혹스러움과 다르게 지민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오히려 웃음기까지 머금고는 밝게 답해왔다. 안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밝음의 수준이 선배 너무 좋아요! 노래 부를 때보다도 더 밝은 느낌인데.

어떻게 그렇게 .. 금방 접지,,? 내가 잘난척쟁이라서가 아니고. 자뻑 왕자라서가 아니고! 이렇게 단박에 정리가 되는 사람은 내가 아직 못 봐서 그래. 게다가 너랑 나 키스까지 했는데? 키스 하고 마음이 식었어?! 야. 나 키스 잘 해! 내 스킬이 나를 향한 애정이 솟아났으면 솟아났지 절대로 단박에 수그러들만한 스킬이 아니라고! 그 생각에 석진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네가 처음이라서 이게 잘 하는 건지 몰라서 그래?”

“네?”

석진은 지민의 뒷목을 잡고는 고개를 꺾어 입술을 맞부딪히려고 했다. 다만 두 손으로 냅다 가슴팍을 밀쳐내는 지민의 행동에 아주 가볍게 입술만 닿았다가 떨어지며 제지당하고 말았다. 아, 뭐하시는 거예요! 란다. 아주 버럭 소리를 내지르면서. 제 입을 틀어막고는 아무리 자기가 먼저 성추행을 했었던 거라지만 선배님 지금 이러는 것도 엄연히 성추행이죠! 란다.

“그래. 성추행 인정. 어떻게 보상해주면 되는데?”

“아니.. 아, 그럼 퉁쳐요!”

“그건 싫어.”

“아, 왜요!”

나 너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엄청나게 받은 거 같거든. 나를 좋아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줄게 아니고 네가 결정하는 거라는 건 알겠는데. 나를 향해 이렇게도 네 감정이 깔끔하게 클리어 된 게 나와 키스하고 난 직 후라는 게 아..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서 바스라 지는 기분인데, 이거. 그 생각에 석진은 꽤나 불량한 표정으로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퉁 치는 거는 안 되고. 니가 보상받고 싶은 걸 말해. 해줄게, 내가.”

“저는 그냥 퉁치는 게 제일..”

“그건 안 된다고.”

단호하다 못해 시린 석진의 음성에 히익- 놀란 지민이 석진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 너 나랑 4번 데이트 하자. 나는 이거로 보상 받을게.”

“..네?”

너 대충 나 1달간 피해 다닌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4번 데이트로 보상 받겠다고, 내가. 라는 석진의 말에 지민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봤다. 저 선배님. 저 이제 선배님 안 귀찮게 할 건데요. 선배님을 향한 마음도 접었고. 그러니까 데이트 같은 거 안 해도 되는데.. 라며 우물쭈물 말하는 걸 듣더니 석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니가 나를 좋아해서 데이트 해주겠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데이트 하자고 하는 건데, 박지민? 이라면서 말이다. 니가 보상 받는 게 아니고. 내가 보상 받을 걸 말한 건데? 말귀 못 알아들어? 라는 석진의 말에도 지민은 여전히 두 눈을 꿈벅이며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엔 결국 석진은 4번의 데이트로 보상을 받기로 지민과 합의를 이끌어냈다. 4번의 데이트는 매주 토요일에 석진이 가고 싶은 곳으로, 먹고 싶은 걸로. 그냥 한 마디로 석진의 멋대로 이뤄질 거란 거였다.


***


“너 근데 나 꼬시려고 막 수 쓰는 거 아니지?”

“하늘에 맹세 가능해요. 저 진짜 선배님한테 관심 없어요. 저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요, 마음이 식고 나니까 뭐 선배 봐도 전처럼 떨리거나 그러지 않고. 선배가 잘생긴 건 맞지만 뭐. 잘생긴 사람이야 차고 넘치는 거니까. 아~ 잘생긴 선배구나. 그 이상 이하도.”

“됐어.”

술술 나오는 지민의 말을 끊어내며 석진은 심기가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성추행을 했다는 찝찝함에 석진을 피해 다니던 1달과는 달리 피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지민은 생각보다 석진의 시야에 자주 들어왔다. 뭐, 석진이 수시로 자리를 붙이고 있는 랩실에 지민이 출근 도장을 찍는 덕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석진을 보러 들르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겸사겸사 제 수업의 조교를 보러 온 겸 석진에게 말 한 마디 더 걸고, 주변을 얼쩡거렸다만 지금은 딱 목적만 이루고 나가는 편이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을까. 랩실에 들어와 조교인 민혁에게만 볼 일을 마치고는 석진에겐 인사조차 하지 않고 나가는 일이 태반이었다. 오늘은 우연스럽게도 민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민이 랩실에 방문을 했을 뿐이고. 그 때 때마침 석진만 랩실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지민은 문을 열고 방문을 주욱 둘러보곤 아,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만 내뱉고 다시금 문을 나서려고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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