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비행기는 지금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이곳의 시간은 오후 10시 32분입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좌석벨트 사인이 꺼질 때까지 잠시만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시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찌뿌둥한 몸을 피다 사람들이 점차 일어나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기는 것을 보던 성규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맡긴 짐을 찾고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니 작은 플랜카드를 들고 반기는 사람들도, 보자마자 뛰어가서 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김성규’라는 이름을 든 사내에게 걸어가 성규는 살짝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피곤하셨겠습니다.”

 

 

남자의 물음에 성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연구실로 가자는 말을 하곤 먼저 걸음을 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바깥 공기가 성규를 맞이했다. 이제야 한국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다신 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한국에선 성공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미리 마련해놓은 차의 뒷좌석에 탄 성규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낯설었다. 그 모든 것들이.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밤늦게까지 일하던 사람들 중 성규를 알아보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꾀죄죄한 차림으로 눈을 비비며 걸어가다 성규를 알아보고 어, 성규 아니야? 진짜 성규네. 온다더니 벌써 온 거야?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성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버린 얼굴들 속에서 예전의 얼굴들을 찾으려 노력하고 명찰을 봐가며 인사를 이어갔다. 네, 진짜 오랜만이에요.

 

 

 “유 박사님은요? 얼른 뵙고 싶은데.”

 “유 박사는 오늘 일찍 들어갔어. 근데 너 내일 오는 거 아니었니?”

 “빨리 보고 싶어서 한국 도착하자마자 일로 온 거예요.”

 

 

 아아. 너도 참…. 하루 빨리 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대신 안내해줄 사람 찾아봐줘?

그 말에 성규가 그래주시면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예전 성규가 한국에 있을 때 같은 연구실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아. 물론 나도 그땐 그랬지만. 옛날 추억을 회상하며 여자를 뒤쫓던 성규가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여자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 박사님. 저는 실험체를 담당하고 있는 배지환입니다. 일찍 오셨네요?”

 “네. 어쩌다 보니.”

 “사실 밤에는 실험체와 인사시켜드리지 않아요. 워낙 예민한 실험체이기도 하고 괜히 깨워서 기분만 나빠지면 내일 연구할 때 곤란한 일들이 많거든요.”

 

 

 근데 오늘은 김 박사님이 실험체 처음 보는 날이니까 특별히. 다음부턴 주의해주시고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 성규가 인사를 하는 여자에게 대충 인사를 해주곤 지환을 따라갔다. 자신이 비행기에 오른 순간부터, 아니 확실한 실험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성규의 관심은 모두 그곳에 쏠려있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그 일을, 내 대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갈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했던 그 순간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조차 비밀리에 만들고 있던 것.

 

 

 “코드네임 208. 키 179에 몸무게 60 정도로 마른 편이고요. 처음엔 SG1-3 주사(힘 능력치 증가) 주입했을 때 거부반응이 일어나더니 어느 순간 잠잠해요. 검사해봤을 때 이상도 없고. DF 주사(자기 회복)는 5차까지 주입했는데 한 번도 거부반응 일어난 적 없었고요.”

 “달라지는 건 없고?”

 “SG 주사는 7차까지 맞았는데 확실히 신체 변화가 일어나긴 했어요. 처음엔 176 정도였는데 큰 거 보면. 대신 주사 주입 후 하루 정도는 208이 꼼짝도 못 할 정도로 아파해요. 변화가 일어나려니까 그런 거겠지만.”

 

 

 김 박사님, 이 문 열면 되는데 들어가선 목소리 조금 낮출게요. 자고 있으니까.

끄덕. 지환이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하얀 문을 열었다. 성규가 긴장감, 그리고 떨리는 마음에 숨을 죽였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208은 침대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근데 이 유리문이면 208이 우리 소리는 못 듣는 거 아닌가. 성규의 의문에 지환은 원래 그런데, 208은 워낙 예민해서 가끔 들어요. 208은 우리 쪽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저번에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혼자 시끄러워, 하더라니까요. 얼마나 식겁했는지. 성규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드는 이상한 느낌에 살짝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좀 깨워봐.”

 “내일부턴 김 박사님이 직접 주사 주입하셔야 하는 거 알죠? 괜찮으시겠어요?”

 “어. 상관없어. 깨워.”

 

 

그런 성규의 말에 지환은 전 몰라요, 박사님이 하라고 했어요. 하며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208이 몸을 움직이더니 눈을 떴다. 어, 혼자 일어났네. 지환은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성규에게로 와 쟤가 208이예요. 저희의 완벽한 실험체. 몇 십 년간 연구해왔는데 드디어 저희가 빛을 봐요. 조잘거리는 지환의 목소리는 성규의 귓가에 닿지도 못했다. 208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더니 정말 유리창 너머의 우리가 보이기라도 하는 듯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어, 또 우리 목소리 들린 건가.”

 

 

진짜 예민하다니까. 평소에 성규였더라면 그런 지환의 말에 공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환의 추측은 전혀 빗나갔다. 208이 자면서도 눈을 뜬 이유,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누군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쪽을 바라보았던 이유. 그건 성규가 이곳에서 208을 보았을 때 느낀 것과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느껴지다니. 절대 모른 척 지나갈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거기 누구야.”

 

 

눈이 마주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성규가 깜짝 놀라 지환을 바라보았고 지환은 익숙한 듯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네 담당. 왜 깼어.”

 “너 혼자 있어?”

 “왜.”

 “너 혼자 있는 거 아니잖아.”

 

 

 누구야? 이거 치워봐. 얼굴 보고 싶은데.

208이 유리벽을 가리켰고 지환이 잠시만, 하며 서로 볼 수 있게 하는 버튼을 누르려 했다. 성규가 급히 지환을 건드렸고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그 말에 지환이 마이크 버튼을 다시 누르더니 늦었어, 내일. 나 이만 가본다. 하곤 성규에게 가자는 말을 이어했다.

 

지환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 이유. 어차피 당장 내일이면 얼굴을 마주 봐야 할 사이인데 일단 지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면 자신이 어떻게 동요해버릴지 몰라서. 지환은 평범해 보여도 연구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찾던 적임자라는 걸 알게 되실 거라는 말을 해왔다. 성규도 그렇게 찾던 사람이었는데. 성공하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 연구였는데.

 

 

 “내일 208과 직접 인사하세요. 좀 안면을 트는 게 나아요. 그렇다고 너무 정 주진 말고.”

 

 

몇 십 년에 걸쳐 탄생한 완벽한 실험체. 우리 모두가 찾던 그 실험체의 코드 네임은 208.

그리고 성규의 몸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 내 메이트, 208의 진짜 이름, 남우현.

 

 

  네임버스썰

 


 성규가 하고 있는 이 연구는 그리고 이 연구소가 만들고 있는 것은, 국가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특별 보안 연구였다.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하면서 스스로 판단을 하는, 어떤 피해를 입어도 다치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인간 병기. 손에 닿는 것을 으스러지게 만들 수 있는 인간 병기. 그리고 208이 인간 병기의 적임자였다.

 

 208은 특정 시간이 될 때마다 주사를 주입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맞는 주사는 SG 주사 혹은 DF 주사였고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맞는 주사가 있었는데 그건 그 주사들을 아주 약하게 만들어 익숙해져 이상 반응이 안 생기도록 조금씩 몸속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어제 208 봤다면서. 어때.”

 

 

유 박사는 앞에 놓인 도시락을 먹으며 물었다. 성규는 사실 208이 자신의 몸속에 새겨진 메이트의 주인이었다는 말을 꾹 삼킨 체 일적인 말만을 늘어놓았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알려서도 안 된다. 애초에 메이트라는 건 없던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곧 주사 주입하러 갈 시간이라며 유 박사가 다 먹은 도시락을 대충 버리고 입가를 닦았다. SG랑 DF는 들어가기 전에 챙겨서 들어가고. 뭐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잃어버리는 거 조심하고. 208이 생각보다 힘이 세서 혼자 감당이 안 될 수도 있으니 이건 더 조심하고.

 

 

 “208. 이번에 네 담당이 바뀌었어. 원래 담당하던 앤 이제 다른 쪽으로 넘어갔고.”

 “……….”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새로 들어온 애 괴롭히지도 마. 곧 들어가서 소개해줄 테니 기다리고.”

 

 

퍼즐을 맞추고 있던 208이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규가 208이 사는 방 문 앞에 섰고 긴장감에 침을 꿀꺽 넘기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정말 대면하고야 말았다. 유 박사가 자신은 아이스크림 좀 먹고 오겠다는 말은 남기곤 사라진 건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말 이 공간에 내 메이트와 단둘이 있는 것이었다.

 

 

 “잘 부탁해.”

 

 

우현은 그런 성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성규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은 체 팔 좀 걷어달라는 말을 하곤 가져온 주사를 꺼내 팔에 놓았다. 골반 쪽에 있는 이름이 아픈 것도 같았다. 내 네임을 가진 사람과 마주하면 아프다고 했던가, 그런 말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정말 내 메이트가 맞는 거라면 208의 몸에도 내 이름이 있을 텐데. 어디 있을까. 정말 내 이름이 적혀 있을까.

 

 

 “끝났어.”

 

 

우현이 말을 하고 나서야 어어, 응. 하고 겨우 정신을 차린 성규가 서둘러 주사기를 정리했다. 이거 꾹 누르고 있고…. 솜을 팔에 대주며 뭐 필요한 건 없어? 심심하진 않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워낙 혼자만 있어 심심하니까 담당이 된 연구원들은 가끔 이렇게 퍼즐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책을 주기도 한다. 근데 티비도 있고, 얘는 꽤나 호강하네. 우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스카프, 목이 추워. 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무난히도 지나간 첫 만남이었다. 이렇게 심장이 떨릴 줄은 몰랐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우현에게까지 닿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 당일 성규는 외출 신청을 하고 밖을 나갔다 왔다. 그건 자신에게 없는, 우현이 찾는 스카프를 사기 위해서였다. 매일 흰 복장만 입으니 어두운 남색 계열이 좋을 거 같아 그 스카프를 산 성규는 고르는 내내 꽤나 신중하게, 재밌게 쇼핑을 했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의 우현을 보러 갔다. 오늘은 DF 소량. 스카프도 잊지 않고 챙긴 성규가 나 왔어, 하며 마이크를 켜 우현에게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1500피스나 되는 퍼즐은 이미 다 맞춘 건지 방 한구석에 놓여있었다.

 

 

 “저거 벽에 걸어줘.”


 

벽을 보니 우현이 맞춘 퍼즐들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성규가 팔 걷어보라는 말과 함께 주사를 주입했다. 퍼즐은 개나리가 가득한 꽃 그림이었고 벽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액자를 걸어놓은 듯싶었다.

 

 

 “이건 어디다 걸어줄까.”

 “벚꽃 밑에. 겨울 그림을 너무 빨리 맞춘 탓에 벌써 봄 그림을 맞추긴 했는데 그래도 걸어줘. 그때 되면 퍼즐 안 맞추고 다른 거 하면 돼.”

 

 

 ‘208은 다음 계절에 관한 퍼즐을 맞추는 취미가 있어요. 곧 다가올 계절 퍼즐을 사다 주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지환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우현의 팔에 솜을 대준 성규가 벽에 걸려있는 액자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왜 계절 그림을 맞추는 걸까. 다른 그림들도 많은데. 모두 다 바깥 풍경에 관한 그림이다. 성규는 하마터면 밖이 보고 싶냐는 물음을 할 뻔했다. 밖에 내보내주지도 않을 거면서, 잔인하게.

 

 

 “그건 뭐야?”

 

 

침대 옆에 두었던 우유를 마신 우현이 성규의 옆에 있는 쇼핑백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제야 자신이 그걸 가져왔다는 게 생각났다는 듯 성규는 얼른 정리를 한 후에 쇼핑백을 우현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네가 가지고 싶다는 스카프. 그 말에 우현이 성규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스카프를 바라보더니 진짜 스카프냐는 질문을 해왔다.

 

 

 “어. 목이 좀 춥다며. 남색으로 골랐어. 예쁠걸.”

 

 

쇼핑백 안에서 스카프를 꺼낸 성규가 우현의 목에 매 주었다. 이렇게, 이렇게 매면 돼. 진짜 잘 고른 거 같다. 예쁘네. 우현은 자신의 목에 매져있는 스카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풀어버렸다. 왜, 별로야?

 

 

 “…원래 뭐 하다가 내 담당하게 된 거야?”

 “외국에서 지냈어. 왜. 스카프 별로냐니까.”

 “한 번도 S 실험체랑 교류 안 해봤지, 너.”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우현이 스카프를 들어 성규의 손을 묶어버린 건. 반항을 했지만 S 실험체, 즉 인간 병기와 다름없는 실험체의 힘을 이길 리가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내 방에 들이면 안 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당장 풀어.”

 “칼, 유리, 밧줄과 같이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반입금지야.”

 “이공팔…!”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이렇게 순순히 가져다 줄줄은 몰랐어.”

 

 

잊고 있었다. 정말 단순히 잊은 것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성규였는데, S 실험체 교육인이 성규였는데. 성규조차 잊고 있던 사실을 우현의 입에서 들으니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풀어져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왜, 정말 네가 내 메이트라서 나도 모르게 너한테 홀려버린 걸까. 평생을 쌓아온 것들을 모두 다 잊어버릴 만큼 네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거야?

 

 

 “너 내 메이트지.”

 “……….”

 “너 김성규 맞지.”

  

 

그리고 우현이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는 그 말. 남우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성규에게 묻지 않았던 그 말을, 한 번도 성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이 김성규라 말한 적도 없는데 우현은 그렇게 성규의 이름을 불렀다.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서로의 메이트라는 것이.

 

 

 “…이거 놔.”

 “김성규 맞잖아, 너.”

 “이거 당장 풀어.”

 “김성규, 넌 내 이름이 어디에 있어?”

 

 

우현이 성규의 어깨부터 차근히 살펴보았다. 무언가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 내 메이트가 맞으니 거짓말하지 말라는 그 얼굴로. 성규가 눈을 꾹 다시 감고 떠 입을 열었다.

 

 

 “메이트가 맞으면 뭐.”

 “뭐?”

 “내가 네 메이트가 맞으면, 그게 뭐. 뭐가 달라지는데.”

 

 

성규의 옷을 벗기지는 못하고 자꾸만 망설이며 더듬거리는 손길이 멈추고 우현이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냉정히 말을 내뱉었다.

 

 

 “넌 여전히 실험체고 난 달라지는 것 없이 이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일 뿐이야. 달라지는 건 없어.”

 “……….”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몰라도, 꿈 깨.”

 “……….”

 “난 네가 찾는 그런 메이트가 아니야.”

 

 

내 몸에 새겨진 남우현의 이름이 욱신거렸다. 우현이 멍청히 성규를 바라보는 순간에 성규가 겨우 자신의 손에 묶여진 스카프를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온 것들을 챙겨 들었다.

 

 

 “…저녁에 오지.”

 

 

실험체는 하루에 두 번 주사를 주입한다. 뚝, 바닥으로 떨어진 목소리가 성규에게로 닿았다.

 

 

 “어. 넌 내 실험체니까 관리해야지.”

 

 

문을 닫고 나갔다. 얼른 이곳에서 멀리, 느낄 수도 없이 벗어나야 했다. 자꾸만 동요하게 만들고 심장을 움켜쥐게 만드는 이 기분을 얼른 떨쳐 버려야 했다. 그러지 마. 불쌍하게 여기지 마. 우리가 평생을 기다려서 만든 실험체야. 망치면 안 돼. 안 된다. 절대. 그러니 나도 제발, 지금과 같이, 똑같이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 메이트가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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