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좀 짧아서 15.5로 표시했습니다

별 사건 없는 쉬어가는 페이지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3







눈을 떴을 땐 꼭 꿈같았다. 몽롱하고 따뜻한 기분에 몇 번 뒤척거리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평화였다. 귓가에 들리는 이명도 없고. 오감을 괴롭히는 죄의 무게도 오늘은 사라진 것 같았다. 으음. 버키는 이불을 좀 더 당겨 덮으려는 듯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이불이 어딘가에 툭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 이불을 당겨보다 마음처럼 끌려오지 않자 그냥 포기해 버렸다. 사실 이불 좀 안 덮는다고 골골 앓을 몸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유난히 몸이 따뜻했다.



“…….”



좀 더 잘까.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뒤척거리며 편한 자세를 찾아 돌아누웠다. 여전히 툭 잘린 팔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잠이 깨진 않았다. 한껏 따뜻함에 취해있던 버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



어젯밤 끊어졌던 기억이 모두 살아올라왔다. 그러니까. 어제. 점점 또렷하게 생각나는 기억을 더듬을수록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등 뒤에서 따뜻한 몸이 느껴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도 친구가 도망이라도 갈까 싶은지 허리를 꽉 잡고 있었다. 맨살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



버키는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스티브와 한 일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선을 넘어버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몇 번이나 이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는데,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스티브의 살 냄새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을 찾자마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센티넬이란 종족은 이렇게 무력했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보듬어주는 이가 없으면 자멸하고 만다. 그렇게 종족이 사라져갔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스티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론 스티브가 버키를 버릴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방적인 보살핌에 자꾸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다. 이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귓가에선 매일 비명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면 피바다 속에 서 있는 자신이 보였다. 하이드라의 무기로 살면서 짊어졌던 죄의 무게이고, 평생 가져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그리고 보이지도 않아.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한 아침은 처음이었다. 하이드라에게 잡혀있을 때도, 도망자 신분으로 여기저기 숨어다닐 때도 단 한 번도 이렇게 편안한 아침을 맞이했던 적이 없었다. 이게 문제였다. 사람이란 생물은 한번 편안함을 느끼면 자꾸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곤 한다.



“…깼어?”

“…….”



뒤에서 느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덜미에 닿은 입술에선 아직도 뜨거운 불꽃이 뚝뚝 떨어졌다. 자는 척을 하려 했지만, 예민한 군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스티브가 대놓고 허리를 좀 더 끌어당기자, 별 저항을 하지 않고 품에 안겨버렸다.



“잘 잤어. 버키?”

“…덕분에.”

“응? 너 완전히 기절했었는데, 기억 안 나?”

“안 나.”

“내가 너 씻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랬어?”

“응.”

“고마워.”



오늘따라 아침 해를 받는 친구가 더 따뜻해 보였다. 그런 밝음에 눈이 시린 버키가 시선을 툭 떨어뜨리며 가슴에 코를 묻었다. 살 냄새가 기분이 좋았다. 끙끙 앓는 친구의 등을 토닥이던 스티브는 마냥 좋은 것 같았다. 결국, 얼굴을 보고 아침 인사를 한다. 커라단 남자 둘이 좁아 보이는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것은 꽤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정말 괜찮겠어?”

“뭐가?”

“나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나가봐야 해.”

“…….”

“가기 싫긴 한데.”



또 미련이 질질 흐른다. 버키는 눈을 깜박였다. 이 녀석은 잡아달라는 속마음을 숨기지도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버키는 또 자기 때문인 거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이럴 땐 냉정하게 보내야 했다. 여기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 은퇴라도 하려고?”

“…….”

“스티브.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맞아. 그렇지.”

“…….”



너무 세게 말했다 싶었다. 잠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가던 얼굴엔 곧 단단한 웃음이 흩어졌다. 드디어 마음을 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버키는 볼에 닿는 불덩이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저 내 친구가 걱정되는 것뿐이야.”

“난 괜찮을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해?”



스티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센티넬을 진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육체관계임을 알면서도 하는 말이었다. 굳이 버키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쯤 몰라도 버키는 늘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항상 옆에 자신이 붙어있을 텐데, 무슨 걱정일까 싶었다.



“오늘은 아침이 평화롭거든.”

“…….”

“늘…눈을 뜨면 전쟁 통 속에 서…있었어.”



버키는 단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스티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런 그늘은 몰라도 된다. 버키의 고집이었다.



“피 냄새가 너무 심해서 항상 머리가 아팠지.”

“…….”

“정확히는 여기쯤이 말이야.”



버키가 간신히 꺼낸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여기. 안쪽에서 계속 들려. 내 뇌는 아직도 전쟁 중이야. 스티브. 혼잣말 같은 대화를 툭툭 내뱉었다. 탕. 그리고 가볍게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스티브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졌다.



“그런 거 하지 마.”

“이렇게 몇 번이나 죽고 싶었어.”

“…….”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귀가 먹고 눈이 뽑히면 괜찮을까 싶기도 했고.”

“…….”

“그런데 안 죽고 살아있네.”

“다행이야.”

“…….”



스티브가 친구를 와락 껴안았다. 스티브. 숨 막혀. 장난처럼 투닥거리던 손이 뚝 멎었다. 살아서 다행일까. 정말 그런 걸까. 버키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불안함은 혼자 삼켜야 하지, 남에게 옮길만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제 내가 그런 거 안 들리게 해줄게.”

“스티브.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닐까?”

“난 할 수 있어.”

“…흠.”

“못 믿는 거야?”

“그건…아니지만.”

“못 믿는 것 같은걸?”

“난 언제나 그래,”



시답지 않은 농담이었다. 몇 번이나 킬킬거리면서 버키를 끌어안던 스티브는 시간이 아슬아슬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침대를 벗어났다. 버키는 약간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이제야 서로가 나신인 걸 알아채고 흠흠 헛기침을 한다. 속옷을 입고 겉옷을 찾는다. 열심히 셔츠 단추를 잠그던 스티브는 한 손으로 옷을 든 채 가만히 생각에 잠긴 버키를 바라보더니 냉큼 다가왔다.



“도와줄까?”

“…….”

“거절하지 마. 응?”

“내가 캡틴 아메리카가 입혀주는 옷도 다 입어보네.”

“지금 놀리는 거 맞지? 나도 이제 알아.”

“아니야.”



방금 꼭 예전 전쟁터에서 주고받던 말 같았다. 스티브도 버키도 다 기분이 좋았다. 꼼꼼하게 옷을 내려주고 여기저기 쪽쪽 거리고 나서야 아쉬운 듯 떨어졌다. 아침이라도 같이 먹고 나가면 좋을 텐데, 시간도 장소도 모두 하나같이 애매했다. 버키 식사야 티찰라가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늦어. 어서 가봐,”

“괜찮겠어?”

“내 몸은 내가 알아. 혹시 또 발작이 일어날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할 게.”

“…….”

“날 믿지?”

“믿지.”

“그럼 됐어. 어서 가봐.”



친구의 한 쪽 손이 가볍게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다시는 돌아볼 수 없었다. 여기서 친구를 돌아보면 분명 와락 껴안은 채 침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조금도 떨어지기 싫은데, 캡틴 아메리카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갔다. 방문이 닫히기 직전 새파란 눈이 버키를 훑고 지나갔다. 문이 닫히고 발자국이 멀어졌다. 버키는 눈을 감은 채 발소리를 따라갔다. 저벅. 저벅. 꼭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다녀와. 스티브.”



텔레파시라도 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어젯밤 흔적이 가득한 걸 보니 어쩐지 민망했다. 청소를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뻔뻔하게 있어야 하나. 버키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반즈씨. 들어가도 될까요?”

“아…네.”



그냥 뻔뻔해지기로 했다.







+)

자를 곳이 애매해서 .5가 되어버렸습니다

큰 플롯이 하나 끝난 것 같은데. 갈길이 너무 머네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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