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겠어요.
우리는 하얀 전쟁을 하고 있지요.
당신 안에 흐르고 있는 피는 더 빨갛게, 빨갛게 만들어 버려요.
너무 붉어지면 그들이 알아서 가져가 버릴 테니 어리석은 걱정은 하지 말아요.
속은 계속 아프게, 아프게 짓이겨져도 화면 속 당신은 하얗게 웃고 있네요.
온통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당신의 모습은
난생 처음 바다를 만졌던 그 때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듯 해요.
육천만 꽃을 이고 빨간 천으로 덮인 진흙길을 걷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요.
당신을 보는 이들의 눈은 제멋대로 반짝이는데,
정작 당신에게서는 손에 있는 보석만이 빛나고 있는 걸 난 보았어요.
깨끗하고 우아한 미소 따윈 집어 치워줘요.
하얗게 칠한 당신의 껍데기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밀을 드러내고 있는 그 입술로 아픔을 쏟아내어도 좋아요.
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악으로만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거래요.
나는 당신의 진심을 들여다 보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거예요.
이미 약간의 고통을 훔쳐 보고 있으니까요.
독한 향기는 당신에게 똑바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죠.
그 꽃들은 예쁘지만 당신에겐 필요가 없을 뿐더러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요.
멍청한 벌들이 애꿎은 당신이 꽃들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몰아세울까 봐 걱정이에요.
그러니 향기는 모두 몸 깊숙이 숨겨버려요.
폭풍우에 잠겨 버린 방아쇠가 세상 모든 향기는 하얀색만이 갖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회색 연기가 당신의 붉은 세계까지는 절대 닿지 못할 거예요.
당신 안에 흐르고 있는 눈물은 더 빨갛게, 빨갛게 만들어 버려요.
결국 당신의 껍데기가 벗겨질 때가 되면,
그 때가 온다면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겠지만,
그들이 똑똑히 알 수 있게요.
당신의 내면이 얼마나 강인했는지,
당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요.
이제 하얀 전쟁은 다 끝났어요.
그 많던 꽃들이 다 사라지고 딱 한 송이 남았네요.
다들 짙은 향기에 파묻혀 있다가 깨어나
자신들이 왜 우는 지는 알지도 못한 채 슬피 울고 있을때,
나는 향기 없는 그 꽃을 사랑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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