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부(3)




“안 그래도 생각 중이었습니다. 무당이면 어떻고 도인이면 어떻습니까. 신수를 가지기도 어려운 일인데, 나라에 보탬도 되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고. 이참에 잘하면 신관이 되어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관직을 얻을 수도 있을 테고.”

덤덤히 미래를 얘기하는 도영을 보며 성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언제 관직을 얻으랬나, 그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거였지.

게다가 신관은 또 무슨 개소리인지. 신관 따위 되자마자 궁에 처박혀 죽을 때까지 나오지도 못 하고 썩어 갈 팔자를 누가 원하겠는가. 성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영아. 좀 진지하게 생각 좀 해봐라. 누가 신관이 되라고 했느냐. 관직이라고 다 전하를 뵙고 조정에 들락날락 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다른 거라도 하란 거다. 안 그래도 오늘 전하를 뵙고 오는 길이다. 네 안부를 물으시더구나.”

성규는 정 안되면 부호에게 청탁이라도 넣어야 하나 고심하게 됐다. 어쩌면 진짜 그래야 할지도 모르지. 어디 적당히 눈에 안 띄는 잡다한 관리직 하나 얻을 수 있다면 그냥저냥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 사이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는 전하의 소식에 도영의 표정이 싫지는 않으나 어딘지 난감한 듯 찌푸려졌다.

“부호 아니, 전하께서 제 안부를 물으셨다고요?. 저야 뭐 잘 지내고 있죠.”

당사자도 없는데 잘 지내고 있다며 답변을 한다. 금세 머쓱해진 도영은 어딘지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도영이 네가 직접 전하께 결과를 고하겠다고 말씀드렸으니 그리 알 거라.”

이에 도영이 놀라며 제 아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버님, 또! 안 된다니까요? 전하와 제가 상극이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상극이 뭐가 상극이야? 전하의 신수는 삼족오(三足烏)이고 너는 개(犬)인데. 개 중에도 삼족구인데, 불리는 것도 비슷하고. 이렇게 좋은 상극도 있더냐? ”

“예? 좋은 상극이요? 아무리 아버님이시라지만 너무 말도 안 돼서 반박할 기운도 안나네요.”

도영은 콧방귀까지 끼며 제 아비 앞에서 도리질을 쳤다. 버릇없다고 할 만도 했건만 성규는 그저 껄껄 웃기만 했다. 개와 까마귀라. 얼핏 상극처럼 보이긴 하는데, 신수로서는 달랐다.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는 삼족오는 혈통에 따라 임금이 될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고귀한 신수 중 하나였다. 신수라함은 특별히 어떤 신수와 상극이 있다기 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주인’의 성품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부호가 가진 삼족오와 도영이 가진 개는 전혀 상극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은 어린 저들이 다루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사실 이미 감정적으로는 더는 상극이라 할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성규의 눈에는 그저 두 사람이 귀엽기만 했다.

어찌 됐건, 무슨 연유인지 도영은 지학(15세)이 되었을 때쯤 궁에 들어가 부호를 만나는 걸 꺼려 했다. 그때쯤 부호가 세자로 책봉되면서 만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런데도 부호는 도영에게 안부를 전해오곤 했었다.

이유는 몰라도 본인이 얘기하지 않으니 성규도 그저 넘어갈 뿐이었다.

“오히려 저보다 허우대 멀쩡한 아들놈이야말로 혼사도 치르지 않고 누님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할 짓 없이 노름이나 하고 있으니 그게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도영은 부호의 얘기가 계속될까 싶어 기어코 여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생 도윤에게 눈웃음을 흘기며 화살을 돌렸다. 그 온순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사악한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노름은 제가 아니라 누님이 하는 거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도윤은 침착하게 응수했다.

“아버님 글쎄 오늘도 노름판 개평꾼(노름이나 내기 따위에서 남이 가지게 된 몫에서 공으로 조금 얻어가지는 사람)들을 속이고, 그것도 모자라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투전판에서는 누님도 사기를 치고 있었다니까요.”

도윤은 고자질이 아니라 끔찍한 사건이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지만,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사기라니. 말본새하고는. 도대체 너는 언제 철들 것이냐? 정보를 얻기 위해 살짝, 아주 사알짝 내 능력을 쓴 것뿐이고, 돈도 다 돌려주고 왔느니. 더불어 불쌍하게 떠도는 혼도 거둬줬구만. 이건 사기가 아니라 정보 수집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러자 도윤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아, 그래서 본인 삼족구(三足狗우리나라 설화와 민담에 등장하는, 발이 셋 달린 개.)한테 패를 바꿔 사기를 치셨다? 그리고 말은 바로 하셔야죠. 다 돌려주긴, 몇 닢 빼돌려서 좋아하는 엿 바꿔 먹는다고,”

“시끄럽다!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그리고 삼족구라니! 얘도 이름 있거든?”

도영은 엿 바꿔 먹은 걸 알아챈 제 동생에게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어차피 건달들 주머니 중에서 몇 닢 가져온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머리에 피가 마르다 못 해 증발해 버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머리 타령이랍니까? 아, 이름이요? 이름이 백구가 뭡니까, 백구가. 하하하하! 어디 뉘 집 마당에서 키우는 똥개도 아니고.”

“뭐라? 똥개?! 이놈이! 백구가 어때서? 우리 백구가 얼마나 예쁜데? 네 무식하게 덩치 큰 늑대한테 설랑이라고 고양이 새끼처럼 붙여준 게 더 어이가 없지.”

둘 다 나이 차가 얼마 안 나서 그런 것인지, 사소한 일로도 꼬투리를 잡고 투덕거리기 일쑤였다. 서로의 머리채를 잡을 듯 자리에서 광광거리는 두 사람이 허공에 대고 무어라 말하는 괴이한 모습을 성규가 체념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으르렁대는 남매들 사리고 ‘탁’하고 화로에 장죽을 내던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집 양반댁 자제들마냥 얌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냥 둘 다 마음대로 해라. 대신 도윤이는 이번 일 끝나면 말단 관리직이라도 하나 맡아야 할 것이다. 그저 태어났으면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백성들도 저리 열심히 사는데 너희들도 하긴 해야겠지? 나는 큰 욕심따위 없다. 도영이는 전하와....아니, 일하는 게 힘들다면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걸 찾아봐라. 그래, 네 말대로 무당집도 좋을 것이고.”

진심인지 농인지, 아비의 결단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굴을 굳혔다가 무슨 생각인지 이내 밝은 표정을 보였다. 반면 도윤은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저만 관리직을 해야 하냐며 볼멘소리를 웅얼거렸다.

“뭐, 무당집까지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길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성규가 그들 앞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이미 읽어봐서 알겠지만, 박성철 대감은 너희 남매가 가진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고, 나와는 오랜 벗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부탁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박 대감뿐 아니라 전하께서도 특별히 너희를 챙겨주신 것이니 신경 써서 잘 해야 할 것이다.”

도영이 열 살 때. 박 대감의 하나뿐이 고명 아들을 찾아 준 일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당시 어린 도영은 아이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선 알아낼 수 없었다. 이는 도영뿐만 아니라 성규나 왕실의 특별 조사단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일이었기에 도영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린 도영에게는 지금까지 내심 책임의 부재로 남았던 일이기도 했다.

박 대감 역시 도영을 다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비롭고 겸손하며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도착하면 대감의 집에 머물러도 되겠구나. 허나, 박 대감이 있는 곳은 여기보다 더 가혹한 환경일 게다. 워낙 산골이다 보니 사람들 왕래가 더딜 것이고. 그리고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여기서 너희들 소식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걱정도 되는구나. 너희들의 신수가 아직 어리니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연락이 어렵게 된다면 설랑이나 백구에 부탁하여 아버님께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도윤이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의 그 맹랑하고 가벼운 동생은 어디로 갔는지, 성규는 조금 안심이 되는 마음으로 심신을 다스렸다.

성규와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곧 떠날 채비를 했다. 박 대감이 있는 곳까지는 역원에서 말을 한 번 바꿔 타면 원래 보름 남짓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나 날씨가 워낙 추워지고 길도 얼어 그보다는 더 걸릴 예정이었다. 운이 좋아 눈이 오지 않는다면 가까스로 제날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걸며 그들은 길을 떠났다.

 

 

 

 

 

*

 

 

치우고 치워도 눈으로 쌓인 길목으로 발목이 푹푹 빠져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단단히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선 창천리 수령 최수령은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양에서 오기로 한 분들의 걸음이 늦어지겠구나 싶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목마다 관리들이 나와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을 무심히 지나치며 수령은 그 너머 작은 돌다리를 바라보았다.

호신리와 창천리는 저 작은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구분된다. 지금은 한 명의 수령이 두 마을을 관리하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두 마을은 서로 잘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던 각자의 마을이었다.

“오셨습니까, 수령 나리.”

이방 박철한이 호신리 마을 어느 양반집 마당 안에서 그를 맞이했다. 이미 관아의 관리와 포졸 몇 명이 주변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워낙 작은 마을에 외부인도 없어 위험요소도 없었기에 되려 삼엄한 경계가 눈에 띄었다.

“그래,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이..... 오늘 새벽녘 박 대감께서 일찍 출타하실 거라 하였는데 조반상 시간이 지나서도 기침하시지 않아 행랑아범이 깨우려 왔다 발견했다 합니다.”

“그래서 자네에게 먼저 알린 것이고?”

박철한은 호신리의 토박이였고 십년 전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토착세력 중 한 명이었다. 두 마을이 합쳐지며 지금은 말단 관리직인 이방이 되어 최수령의 수족이 되었지만, 호신리 주민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직도 박철한에게 먼저 달려가곤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산짐승에게 다리를 다쳐 약간 절룩거렸다.

이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 대감이 있을 사랑채로 시선을 돌렸다. 박 대감은 사랑채에서 늦게까지 집무를 보곤 했었다.

수령이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 발견되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시신과 주변은 그대로였다. 같이 툇마루로 걸음을 옮기던 수령이 뒤따라오던 이방에게 넌지시 손짓을 했다.

“내가 좀 들어가서 확인을 할 터이니, 자네는 마을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주변 단속 좀 하게.”

순간 박철한의 안광에 이채가 서린 듯 보였으나 그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꾸벅 인사하며 물러났다. 수령이 알아채기에는 순식간이라 그는 별 의심없이 이방을 보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수령이 검시관의 역할을 하지만, 자신이 본다고 하여 아는 것은 없었다. 오작인을 부르면 좋겠으나 이 마을에는 그런 일을 담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기실 그보단, 혼자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박 대감과 전날까지도 나누었던 이야기가 괜히 체한 것 마냥 돌처럼 묵직하게 제 가슴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감은 다소곳이 누워 마치 평온한 잠에 빠진듯한 모습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고통스럽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공신이자 충신이었으나 애달픈 삶을 지나온 대감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수령은 가라앉는 기분을 추스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방안은 깔끔하고 단정함 그 자체였다. 어딜봐도 외부인의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하긴 겉으로 봤을 때 시신조차 너무 깨끗했으니, 그저 잠들다 편히 영면한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나가려던 그의 발치에 서책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정리 정돈이 잘 된 방안에서 매우 이질적인 위치에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그러짐이었다. 그러나 분명 조금 전까지 그 일그러짐을 보지 못 했는데...

수령은 현장 보존을 위해 손을 대지 말까하다 이내 떨어진 서책을 주워들었다. 보니 서책이 아니라 대감의 일기장이다.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아난 수령은 얼른 주변을 휙휙거리다 텅 빈 공간에 안도하며 일기장을 제 품에 갈무리하다가 무심결에 시신과 마주쳤다.

아니, 시신은 눈을 감고 있었으니 마주쳤다는 건 착각일 것이다. 하지만 마치 쳐다본 것 같았는데.... 그는 품속을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꾹 누르다 이내 방을 빠져 나왔다.

“따로 검시관을 불러오고 외부인이 드나들지 않도록 주변을 잘 살피거라. 관리 두 명은 나와 함께 잠시 관아로 가자.”

수령은 마당에 있던 이방에게 무심한 듯 명령을 내리고 태연하게 관리 두 명과 빠져나갔다. 하지만 발걸음만은 어딘지 초조해 보이는 걸 눈치 빠른 이방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수령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슬쩍 입꼬리의 끝이 올라가나 싶었으나 이내 내려온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향년 칠십. 박성철 대감이 갑작스럽게 눈을 감았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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