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메가버스 버전 (의영이가 도환이 애 임신) / In,감금실

<베타였던 의영이가 감금실에서 오메가로 발현하고 히트사이클이 와서 알파인 민도환과 자고 난 뒤의 시점입니다.>

 

 

주방에서 풍기는 기분 좋은 냄새에 나는 소파 등받이에 배를 댄 자세로 전자레인지 앞에서 조리하는 민도환의 모습을 바라봤다.

민도환은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나는 서둘러 뒤로 돌아 소파에 앉았다.

 

“밥 다 됐어요.”

 

민도환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 앉았다. 민도환은 커다란 볼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의영 씨가 좋아하는 닭볶음탕.”

 

민도환의 말에 볼 안을 보니, 털가죽이 모두 벗겨진 닭의 몸뚱어리가 붉게 버무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욱.”

 

속이 메슥거리며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념 냄새에 입에 침까지 고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저 역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괜찮아요?”

 

민도환은 서둘러 내 곁으로 다가와 휴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민도환에게 휴지를 받으며 입을 막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민도환은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울렁거리던 속이 가란 앉는 것을 느끼며 물을 마셨다.

 

“의영 씨.”

 

어느새 방에서 나온 민도환이 입꼬리를 올린 채 내게 길쭉한 상자를 건넸다.

 

“이게 뭐야?”

 

나는 상자를 살펴봤지만, 영어로 무언가 적혀 있을 뿐 무엇에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임신 테스트기요.”

 

내 물음에 민도환은 가볍게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그를 노려보며 테스트기 상자를 그에게 던졌다.

 

“테스트기를 나한테 왜 주는 건데? 지금 내가 입덧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며칠 전부터 묘하게 페로몬 향이 달라져서요.”

 

알파인 민도환은 내 페로몬의 작은 변화를 눈치챈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페로몬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평소와 같았다.

 

“평소보다 단 향이 나요. 모유가 만들어지고 있어서인지도 몰라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내 말에도 민도환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주웠다.

 

“의영 씨가 확신이 들 때 하세요.”

 

민도환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끝에 임신 테스트기를 놓았다. 나는 임신 테스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테스트기를 보자, 나도 모르게 입맛이 떨어졌다. 이 상태로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실로 걸어갔다.

 

“어디 가세요? 이럴 땔수록 밥 잘 챙겨 먹어야 해요.”

“입맛 없어.”

“그럼 채소 주스라도 갈아드릴게요.”

“입맛 없다는 말 못 들었어?”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환영이가 침실 옆 드레스 룸 문 앞에서 그런 우리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문을 강하게 닫으며 침실로 들어왔다.

 

 

***

 

 

입맛 없다는 내 말에도 민도환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와, 협탁 위에 채소 주스를 놓았다. 이곳에서 내가 잠글 수 있는 문이 없었기 때문에, 민도환은 내 거부에도 쉽게 문을 열고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꼭 드세요.”

 

민도환은 그렇게 말한 뒤, 다행히도 문밖으로 나갔다.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지만, 채소 주스를 마시면 민도환에게 지는 기분이라, 참았지만, 결국, 침대에서 몸일 일으켜 민도환이 만들어 준 채소 주스를 마셨다. 당근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중에서 파는 어는 채소 주스보다도 맛이 좋았다.

나는 민도환이 오기 전, 주스를 다 마시고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

첫 히트 사이클을 맞이했을 때, 이것이 히트 사이클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민도환의 압도적인 페로몬에 취해 그와 관계를 맺었다.

26년은 베타로 살았기 때문에 민도환이 내게 오메가로 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내가 발현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보건 교육을 들었을 때, 히트 사이클 때 알파와의 관계에서 임신할 확률이 100퍼센트라는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배터였던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 됐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절대로 임신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민도환의 망상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

 

 

10시가 되었는지, 민도환이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있었다. 이내 민도환이 빈 컵을 들고 나가더니, 설거지하는 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민도환은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나는 샤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다. 이 시간이 되면 저절로 잠이 드는데, 민도환의 말대로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2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샤워를 마친 민도환이 욕실에서 나왔다. 민도환이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참 동안 침대 앞에서 머리를 말렸다. 그가 왠지 모르게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나는 눈 꽉 감았다.

이내 민도환이 이불 위로 솟아 오른 내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는가 싶더니, 침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애써 자려고 했지만,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민도환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평소와는 달리 내 손을 잡지 않고, 누웠다.

나는 더욱더 숨을 죽였다.

아마 민도환은 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오늘은 조용히 잠을 자는 거 같았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민도환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이불 안에서 얼굴을 빼냈다.

민도환이 깊게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벗어났다.

임신이 아닌 것을 확인해야 사나운 정신이 진정될 거 같았다.

나는 절대로 임신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을 애써 떨치며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는 임신 테스트기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테스트기를 꺼냈다.

상자 속의 설명서를 읽어보니, 붉은 줄이 세 개가 나오면 임신인 거 같았다.

나는 테스트기를 손에 쥔 채, 욕실로 향했다.

하지만, 좀처럼 오줌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오줌을 내보내며 테스트기의 흰 면에 묻혔다.

소변을 다 싼 뒤, 세면대에 테스트기를 놓고 손을 씻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행동하려고 했지만, 조금씩 몸이 떨려왔다. 나는 손을 씻으면서도 흰 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흰 면에 조금씩 붉은 줄이 선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세 개의 선이 얇게 존재를 드러냈다.

입술이 덜덜 떨려왔다.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테스트기를 손에 쥔 채 흰 면을 봤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 선이 세 개였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임신이 된 것에 놀란 것보다도 임신 사실을 민도환에게 숨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휴지통에 버리면 민도환에 들킬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생각하다, 화실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민도환의 모습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민도환의 모습에 뒤로 물렀다. 민도환은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시선을 내려 내 손을 봤다. 나는 빠르게 임신 테스트기를 등 뒤로 숨겼다.

 

“세 줄이네요?”

 

그 짧은 순간에 테스트기를 봤는지, 민도환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그럼, 보여주세요.”

 

이미 민도환에게 들켰다는 것을 알지만, 내 입으로 말하면 정말 임신이 사실이 될 거 같아, 입을 꾹 다물고 거실로 나가기 위해 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테스트기를 잡은 내 손목을 민도환이 강하게 잡더니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임신이네요.”

“아니라고!”

“의영 씨. 선이 세 개면 임신이에요.”

 

민도환은 마치 내가 그것을 모르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말해왔다. 나는 그의 말에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바닥을 향해 테스트기를 던졌다. 민도환은 그런 테스트기를 조심스럽게 잡으며 봤다.

 

“의영 씨와 제 아이가.”

 

평소와 달리 민도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금실에 잡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도환의 헛소리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몇 명 갖는 게 좋을까요?’


당시만 해도 그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간 배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임신은 내 인생에서 없는 단어였다.

얼굴을 붉게 상기시킨 민도환의 얼굴을 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낳을 생각은 아니지?”

“당연히 낳아야죠. 계속 기다렸는걸요.”

 

그의 말에 나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싫어. 내가 왜 네 아이를 가져야 해?”

“의영 씨의 아이기도 해요.”

“아니야.”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배에 아이가 생기다니 테스트기의 고장일 것이다.

 

“테스트기가 잘못된 거야.”

“이미 체액 검사도 해봤어요.”

“뭐? 언제?”

“히트 사이클 이후에요.”

 

민도환의 말에 그가 처음부터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근래 들어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임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도환과의 아이라니 너무나도 끔찍했다.

 

“의영 씨. 아이를 갖는 건 부부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이에요.”

 

민도환의 말에 나는 답하지 않은 채 다리에 힘이 쫙 빠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민도환이 빠르게 부축했다.

 

“낳기 싫어.”

“왜요.”

“싫다고! 무서워.”

“괜찮아요.”

“분명 아이도 의영 씨를 닮아, 예쁠 거예요.”

 

민도환은 그렇게 말하며 내 배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나는 아직 평평한 배를 느끼며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느꼈다.

민도환은 그런 내 모습에도 기쁜지 내 눈물을 닦아 주며 웃었다.



***

 


어젯밤은 임신했다는 충격으로 한동안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눈에 아직 찬기가 남아 있는 쿨팩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눈이 붓지 않도록 민도환이 놓은 거 같았다.

나는 쿨팩을 이불에 놓으며 민도환의 자리를 바라봤다. 출근했는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침대 맡에 앉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임신 테스트기가 보였다. 테스트기는 손수건 위에 놓여 있었다. 테스트기를 보는 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리며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아직까지 임신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도환의 말처럼 내 안에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막고 있던 손으로 배를 만지려 하다, 손을 허공에 멈췄다.

지금은 아이에 관한 생각을 최대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떨치듯 고개를 좌우로 젓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갔다.

항상 민도환이 아침상을 만들어 놓고 갔는데, 오늘은 식탁에 아무것도 없었다. 왠지 그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나는 입맛도 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자, 잊고자 했던 아이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민도환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애를 지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민도환이 아이를 언제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생각만으로 아찔했다.

아이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좋은 부모가 될지도, 그리고 밝게 자라줄지도.

나는 베타였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생각을 애초에 인생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내겐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복도 문 너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서둘러 복도의 문을 바라보다, 문 쪽으로 다가가 열었다. 맞은 편에 양손에 커다란 봉투를 들고 있는 민도환이 보였다.

 

“의영 씨!”

 

도환도 내 모습을 봤는지 밝은 목소리로 빠르게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며 불룩한 봉투를 보며 물었다.

 

“뭐야? 뭘 그리 많이 사 왔어?”

“모두 의영 씨 거예요. 우선 안으로 들어가세요.”

 

나와 민도환은 함께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민도환이 봉투를 식탁에 놓으며 안에 있는 식자재들을 식탁에 놓았다.

식탁에는 다양한 과일들이 놓였다.

 

“과일이잖아.”

“네. 임신하면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한 대요.”

“너무 많아….”

“많이 먹으면 되죠. 그리고 의영 씨 과일 좋아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내 말에 민도환이 웃으며 달래듯 말했다.

 

“복숭아 깎아 드릴게요. 소파에 앉아 있으세요.”

 

그의 말에 나는 결국,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민도환이 조리대에서 껍질 까는 모습을 봤다. 복숭아 껍질을 다 갔는지 접시를 들고 민도환이 내게 다가왔다.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접시엔 복숭아가 예쁘게 담겨 있었다.

 

“민도환.”

“네?”

“...애 정말 낳을 생각이야…?”

 

솔직히 민도환이 아이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다.

 

“의영 씨는 죽이고 싶으세요?”

 

민도환의 입에서 나온 아이를 죽이고 싶냐는 말에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의영 씨 닮은 아이가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의영 씨가 죽이고 싶다면.”

 

나는 더는 민도환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죽인다는 말 하지 마!”

“그럼 뭐라고 해요? 낙태?”

“둘 다 말하지 마.”

“알겠어요.”

 

민도환의 입에서 나온 죽일 거냐는 말에 정말 심장이 먹는 줄 알았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민도환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인지 걱정했지만, 이렇게 민도환의 죽인다는 말만으로도 놀란 것을 보니, 애초에 답은 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생명을 쉽게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민도환과의 아이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살인마라니. 나는 건조한 손으로 뺨을 거칠게 쓸었다.

 

“그리고 드릴 게 있어요.”

“뭔데?”

 

민도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드레스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색 상자를 갖고 왔다.

그는 내게 조심스럽게 상자를 건넸다. 나는 두 손으로 상자를 받았다. 내 양손에 꽉 들어찰 정도의 상자였다.

내 손에 올려진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상자 속에는 토끼 얼굴이 그려진 흰색 아기 신발이 놓여 있었다. 신발은 내 손바닥보다도 작았다.

 

“언제 샀어?”

“의영 씨가 첫 히트 사이클을 했을 때요.”

 

첫 히트 사이클이라면 아이를 가진 순간이었다.

 

“전 의영 씨가 아이를 낳아주셨으면 해요.”

“.....”

 

나는 민도환의 말에 답할 수가 없었다. 민도환도 딱히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상자를 소파 테이블에 놓고, 아이의 신발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동안 아이의 신발을 봤다. 나는 아이를 절대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계속해서 마음이 불안했다. 마치, 민도환에게 도망쳤을 때의 불안감과 비슷했다.

평생 배타로 살았기 때문에 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이 아직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죽일 수가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이를 낳는 것.

민도환을 짝사랑했고, 그에게 감금당하던 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말 기뻤다. 하지만, 그가 나를 감금한 것과 살인마라는 것과 혹시 아이를 죽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애를 낳기 전에, 민도환과 확실히 할 것이 있었다.

애를 낳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는 한동안 민도환에 대한 생각을 제쳐두고,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

 

 

10시가 되고, 민도환이 나를 침실로 불렀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민도환은 그런 나를 보며 침대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그런 그를 침대 밖에서 바라봤다.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보는 민도환에게 천천히 입을 뗐다.

 

“민도환, 애를 낳으면 죽이지 않을 거지?”

“당연하죠. 절대로 죽이지 않을 거예요.”


민도환이 말을 어긴 적은 없었기 때문에 애를 절대로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을 물었다.

 

“나처럼 사랑해 줄 거야?”

 

이것이 제일 중요했다. 민도환이 애를 방치하더나,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애를 키우기 힘들 것이다.

 

“아이에게는 의영 씨의 피가 섞여 있어요. 사랑해 줄 거예요.”

 

내 피가 섞여 있어서가 아닌,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사랑해주길 바랐지만, 사랑해준다는 말만으로 나는 안도했다.

 

“알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는 이곳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 창문 하나 없는 곳에서 평생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민도환은 나처럼 아이를 이곳에서 키울 생각일 것이다.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문이 있고, 언제든지 바람과 비를 맞을 수 있는 곳이 좋아. 그럼 낳을게.”

 

내 말에 민도환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생각보다 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고마워.”

 

내 말에 민도환이 자신에게 오라는 듯 팔을 벌렸다. 나는 그가 내 부탁을 들어줬기 때문에 마지 못해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민도환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이제부터는 그를 이해하고 무작정 밀어내면 안 되었다.

 

“아이는 의영 씨를 닮았으며 좋겠어요.”

 

민도환은 평평한 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솔직히 아이는 도환을 닮기를 바랐다. 도환의 얼굴을 빼닮았다면 어딜 가든 사랑받을 것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

 

도환이 아기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나를 대하듯 다정했다. 그런 그의 말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

 

 

민도환은 내 약속을 지키듯 한 달 뒤,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를 옮겼다.

마취제를 맞은 후, 이동시켰는지. 눈을 떴을 때는 새로운 곳의 침실이었다. 집은 이층집으로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산에 지어진 집이라, 사방이 높다란 나무들로 빽빽이 자라있었다. 마치 나무의 기둥이 감옥의 철장을 연상시켰다.

민도환의 말에 따르며 차가 없으면 이곳에서 나가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산짐승도 돌아다니기 때문에 함부로 나가면 해를 당한다고 했다.

그는 내게 도망치지 말라는 경고로 말한 것일 테지만,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도망은 무리였다. 적어도 아이를 낳은 뒤에야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에 관한 생각은 없었다.

배는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한 끼도 밥을 거르지 않고, 임신부 전용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민도환은 태어날 아이를 위한 가구들을 나와 함께 골랐다. 그리고 며칠 전 아이의 방이 완성되었다.

나는 침실 맞은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 방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분홍색 커튼이 보였다. 커튼 너머로는 산이 보였다.

나는 한참 동안 산을 보다, 시선을 돌려 방을 살펴봤다. 방 가운데에는 아기 침대가 있었고, 침대로부터 왼쪽, 앞 벽에는 수납공간. 그리고 오른쪽에는 유아용 용품과 장난감이 있었다. 나는 장난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를 낳고 나서 장난감을 사자고 했는데, 민도환은 낳고 나서도 사면 된다며 아이의 장난감을 잔뜩 사놨다.

나는 사탕 모양 딸랑이를 살짝 흔들다, 그 옆에 놓인 상자들에게 다가갔다. 민도환은 아이의 신발을 사이즈 별로 다 갖춰 놓았다. 같은 모양의 신발은 크기만 다르게 놓여 있었다.

나는 상자를 열어 신발을 만지작거렸다. 그때였다. 뒤에서 민도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소리 없이 다가온 그에게 더는 놀라지 않으며 고개를 틀어 바라봤다.

민도환은 그런 내게 다가오며 등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민도환이 손이 내 몸에 둘리는 것이 느껴졌다.

 

“왜 여기 있어요? 찾았어요.”

“그냥.”

 

여전히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각오는 되어 있었다.

 

“곧 출산이네요.”

“응….”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며칠 전 기관에서 검사를 받았을 때는 아이가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영 씨가 다정하니까, 아이도 잘 자랄 거에요.”

“응.”

“아이를 낳고서도 지금처럼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요.”

“응.”


민도환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에 키스했다. 나는 그의 입술을 느끼며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민도환이 원하던대로 그는 나와의 아이를 만들고, 아이라는 존재로 나와 연을 이었으면. 완벽한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이 족쇄는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다.

입안에 쓴물을 가득 문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쓴물을 삼키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래야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표면적으로는 행복해 보일 것이다.

 

 

<오메가버스 외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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