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뒤면 또 부질없이 나이를 처먹게 생겼다. 30대 초입을 이 모양 이 꼴로 날려먹을 줄은. 

상상 속 30대의 삶과 죽자사자 떨어져 있는 것까지는 어떻게 납득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더 죽을 맛이다. 혹시라도, 갓생 사는 30대 게이가 있을까 싶어 주변 사례와 선례를 죽 훑고 보니, 그 꼴이 꽤나 참담해 다섯 가지로 요약해봤다. 

  •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탓에 낯선 게이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있거나
  • 일에 치이느라 돈 쓸 시간조차 없이 늙어가거나
  • 앞으로도 이 일을 최소 수십 년간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좌절감과 공허감을 느끼거나
  • 그간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갖가지 질환으로 만개해 고갈된 채 골골대거나
  • 이미 가지고 있던 정신적 issue를 약물과 상담 등으로 달래느라 바쁘거나

갓생답게, 가뭄에 콩 나듯 위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야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 중 하나에 속한다는 점에서 괜찮은지, 정말로 괜찮은지 묻고 싶어진다. 왠지 모르게 배신감과 억울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닌가? 또 나만 호들갑 떠는 건가?




30대 중후반 게이 중에 영끌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케이스가 있긴 있다던데. 나머지 허드레들은 청약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40대까지 homeless 월세 공주 확정. 월세야 뭐 내기 싫어도 내면 될 일이지만, 혼자 벌어서는 절대로, 절대로 중산층에 진입조차 할 수 없다는 것. 이것만큼은 겸허히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돈이야 물려받은 수저를 탓하면 되니 그렇다 쳐. 동성결혼은커녕 생활동반자법 제정마저 요원한...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차별금지법조차 기약이 없어져버렸는데 동반자는 언감생심이지. 근 몇 년 동안 게이로서 뭐 하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앞으로 펼쳐질… 일들은 더… 여러 면에서 흥미진진(…)할 듯하다. 경제적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너도나도 부족해 죽겠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일견 만사공평하다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헤남 새끼들은 그 와중에도 차를 뽑는다느니 어쩌니 꼴값만 잘도 떨어댄다. 결혼은 또 뭐 그렇게 죽어라들 해대는지. 코로나19 시국에도 결혼식이 끊이질 않아서 축의금만 줄줄 뜯겨. 그렇게 결혼하고 나면? 아무리 없이 시작해도 기본적으로 행복주택에는 들어간다나.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가, 행복하지 않아봐야 얼마나 불행하다고, 행복주택씩이나 줘. 개같은 헤테로 새끼들… 안 행복하다고 조롱해도 좋으니, 성소수들에게 뜯어간 축의금만큼 갹출해 불행주택 각 1채씩 지급하라! 




잊혀질 만하면 꼭, 30대가 되었으니 정착할 만한 관계를 만들어둬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한둘이 아닌 여럿이 때로는 우스갯소리로, 때로는 진심 어린 조언으로 동일한 레퍼토리를 읊어대니까. 좀체 와닿지 않는 말을 자꾸만 곱씹을수록 회의감만 든다. 내가 이러려고 게이를 했나… 

게이라는 정체성이 갖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취업 이후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는, 정상성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다.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모두가 똑같이 정상성을 획득하는 데에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이에 대한 압박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떤 게이들은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꺼리기도 한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는 순간, 동성애자, 특히 결혼적령기인 30대에 해당하는 동성애자 집단이 기혼자 집단과 미혼자 집단으로 이분화될 것이고, 이 이분화는 곧 (헤테로와 마찬가지로) 미혼자 게이가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끔 만드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에. 동성결혼 법제화에 따르는 실익에 비해 굉장히 미미한, 어찌 보면 KIBUN의 영역으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을 법한 우려에 불과하지만… 그 심정만큼은 적잖이 이해가 간다.  

법이 있든 없든, 게이로 태어난 이상 헤테로가 될 수 없고, 이성결혼을 할 수도 없는 법이니… 언제까지고 위태로운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판국에 결혼을, 정착을 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굳이 따지지는 말자고. 헤테로나 하는, 철 지난 정상성 가르기 문화를 굳이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그냥 그러려니, 있는 그대로의 삶들을 긍정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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