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레인 빌’을 떠나서 13년간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실 레인 빌로 돌아 올 마음도 없었어요. 저에게는 좋진 못한 인상을 준 곳이었으니까요. 이 곳으로 돌아온 건 정말 작은 우연이었어요. 아주 작은 우연이요.



막상 레인 빌에서 떠나려고 하니 막막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어디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레인 빌은 ‘팔 디아’에서 꽤 큰 도시 중 하나지만, 저는 레인 빌에 있기보다는 부모님의 집이 있는 동네와 레이크 저택에 머문 게 다였으니까요. 저는 다른 시골 청년들이나 다름없었어요.


며칠 밤낮으로 생각을 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었어요. 부모님께 그렇게 말해놓고 안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저는 큰누나에게 가기로 했어요. 큰누나라면 이런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나인 하츠에는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큰 누나에게 편지를 쓰고, 일주일 후에 나인 하츠로 향하는 기차에 탔어요.


편지를 왜 그렇게 늦게 보냈냐고요? 그냥, 궁금했어요. 제가 더 빨리 도착할지 제가 적은 말이 더 빨리 도착할지.



떠나는 날 오후에 기차역에 가보니 존슨 부인이 계셨어요. 저는 존슨 부인께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존슨 부인은 그저 웃으면서 “친구가 가는데 어떻게 얼굴을 안 보고 보내니.”라고 하시면서 저를 꽉 껴안아 주셨어요. 그때, 저는 제 가족들보다 존슨 부인에게 더 ‘사랑’이라는 걸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존슨 부인은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지만, 존슨 부인의 눈물이 목소리를 타고 조금씩 제게 전해오는 걸 저는 알았어요. 저는 그런 존슨 부인을 대신해 눈물을 보였고요. 저희는 제가 탈 기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어요.

얼마 안가 기차가 들어오고 저는 존슨 부인과 정말 작별 인사를 했어요. 존슨 부인께 “꼭 다시 봬요.”라고 하면서 손을 흔들었어요. 존슨 부인은 제 손에 직접 만든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말했어요. “에단, 어디에서든 건강해야 한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차에 올라탔어요. 좌석에 앉은 저는 창문으로 많은 사람들 틈새에서 존슨 부인을 찾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았어요. 기차가 출발할 때쯤 존슨 부인을 찾은 저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어요. 존슨 부인은 조금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보여주고는 뒤를 돌아 걸어가셨어요. 저는 존슨 부인의 뒷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창문을 봐라 봤고요. 슬펐지만,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나인 하츠로 가는 동안 제 옆에는 저보다 나이를 좀 더 먹어 보이는 남자가 앉았어요. 저는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제 감정을 천천히 식혀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옆 자리에 앉은 남자가 제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거든요.

그 남자는 올 해부터 나인 하츠에 있는 이모의 집에서 머물면서 공부를 할 거라고 했어요. 저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죠. ‘부잣집 도련님은 언제나 내 주위에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조금 박탈감이 느껴졌죠. 누구는 공부를 하러 가는데, 누구는 굶어 죽지 않으려 일을 찾으러 가는데 말이죠. 하하...

그 남자는 정말 끊임없이 제게 말을 붙여왔어요. 그 사람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쉬지도 못했죠. 저는 일종의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아, 그 남자 이름은 알렌이었어요.


알렌은 준수하다고 해야 할지, 평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외모였지만 알렌의 얼굴에 도는 약간의 홍조가 알렌을 매력적이게 느끼게 해 줬어요. 물론, 저는 그렇지 않았지만요. 알렌은 너무 시끄러웠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는, 여전히 테스 도련님이, 아. 테스 도련님 이야긴 나중에 하죠.


알렌에게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였어요. 딱히 남을 비방하거나 평가한다기보다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서 자신이 보는 모든 것에 상상력을 불어넣었죠. 그걸 굳이 말로 해야 되나 싶었지만, 가끔은 꽤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저는 잠자코 알렌의 말을 들었어요. 알렌의 이야기를 듣던 중 한 번은 제가 알렌에게 “작가가 되려는 거예요?”라고 물었는데 알렌은 작가라는 단어 하나에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피곤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었어요. 저는 그런 알렌을 보며 알렌 식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알렌은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다. 작가가 되기를 원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중이다. 나인 하츠에 있는 대학도 자신이 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제 생각을 알렌에게 말하진 않았어요. 어차피 기차에서만 보는 사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정말 나인 하츠에서 알렌과 다시 재회하면, 그때는 친해져야겠다. 그때는 나도 알렌에게 말을 좀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에 들었어요. 알렌이 오기 전에 잠들고 싶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4일 동안 기차에서 알렌의 이야기를 들으며, 풍경을 보며, 테스 도련님이 줬던 책을 가끔씩 펼쳐봤어요. 나인 하츠로 가는 길은 제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었어요.



나인 하츠에 도착했을 때 저는 가방에서 큰누나가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적은 쪽지를 꺼냈어요. 쪽지를 꺼내며 고개를 올려다봤을 때, 정말 놀랐어요.

톰슨 박사님은 맨 처음 나인 하츠 역에 갔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그 많은 인파에 그 눈부신 조명들, 반짝이는 사람들. 기차에서 내리는 동안 넋을 놓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알렌이 제 등을 두드렸어요. 알렌은 “나중에 나인 하츠의 어디에서든 만난다면 좋겠어. 잘 가. 아, 그리고 여기서는 자주 멍하니 있지 마. 그렇게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걸 다 잃을 테니까.” 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알렌에게 작별인사를 했어요. 알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진 않았지만, 여기서 뭔가를 잃어버리면 정말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가방을 품에 꽉 진채로 역을 나왔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아요. 거기 사람들에게 ‘저는 여기 처음 온 사람이에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었던 것 같거든요. 하지만 알렌이 말했던 거나 제 생각보다는 나인 하츠 사람들은 친절하더라고요. 묻는 것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어떤 분은 가는 길이라면서 마차에 태워주겠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인 하츠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닐 거라는 생각은 그 당시에는 안 했는데, 톰슨 박사님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뭐 어찌 됐든 그런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큰누나가 지내는 곳에 도착했어요.



제가 찾아왔을 때 큰 누나가 딱히 놀라는 기색은 없었어요. 원래도 감정을 잘 보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누나의 반응을 보니 제가 편지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큰 누나가 사는 방에 들어가 보니 큰 누나의 책상에 이미 제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어요. 저는 살짝 웃음을 보였죠. 그리곤 곧 그 웃음이 싹 가셨어요. 큰누나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큰 누나가 살고 있는 방은 정말 가축의 우리나 다름없어 보였어요. 저는 한 숨을 내쉬고 큰 누나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를 했냐고 물었어요. 큰누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글세, 한 6달 전?”이라고 했어요. 저는 집주인이 큰누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내일 청소부터 해야겠다고요.

그날 밤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자리에 누워 큰 누나가 불빛에 의지해서 공부하고 있는 걸 보다, 어느순간 잠든 것 같아요. 

아, 한가지 기억나는 게 있네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새벽이 한창일 때 큰 누나가 제 머리맡에 있는 책을 펼쳐보다 뒤척이는 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게 기억이 나요. 저는 처음에 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게 꿈이 아닌 걸 알았죠. 테스 도련님이 준 동화책의 첫 페이지에 테스 도련님 말고 다른 사람의 글씨가 쓰여 있었거든요. 그것도 루아슈 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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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곧 이네요. 너무 슬픕니다. ㅠㅠㅠ

항상 그렇듯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 항상 갑사합니다! ㅎㅎ

그리고 다들 시험 잘 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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