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셴라는 하얀 칠이 벗겨진 철창 너머서 물결 같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푸른 옷을 걸친 채 빨래를 밟았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고작 나흘 전으로, 기실 빈말로도 내가 그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 생각되진 않았다.


그날도 니셴라는 빨래를 밟고 있었다. 아마로 된 치마를 웃자란 풀숲에 벗어둔 채 속바지 차림으로 잿물이 그득 찬 바구니 속을 맨발로 첨벙거렸다. 그의 집 뒤로는 큰 산이 있었고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어째서 굳이 물을 떠 이곳에까지 자리를 옮겨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희고 옅게 붉은 기를 띠는 잿물이 여자가 무릎을 들고 내릴 때마다 바구니 밖으로 튀었다. 그러다 돌연 두 다리가 멈추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풀어 헤쳐진 밀밭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여자의 푸른 눈이 보였다. 저를 훔쳐보던 나를 알아차린 여자가 짧게 놀란 소리를 내었다.

“오.” 나는 뒤늦게 그가 맨다리임을 재차 인지하였다. 여자가 돌연 비명을 지르며 내게 돌을 던진들 내겐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아.” 하지만 빨래 바구니를 엎는 대신, 여자는 외려 작게 웃었다. 그러고 거칠게 튼 입술을 벌려 내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또박또박한 수도어였다. 나조차 그처럼 완벽하고 우아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아주 익숙한 말씨가 나를 잠시간 멈춰선 공간과 유리시켰다. 나는 잠시 황망히 여자를 바라보다가, 어설프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훔쳐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마저 웃었다. “아냐, 아냐.” 웃음소리가 속이 빈 유리가 부딪듯 청명하고 맑았다. 거친 바다보다는 잔잔한 바다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것이 나를 염도 모를 물에 담근 듯했다. 여자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마을 사람들도 이 저택까지는 잘 오지 않아요. 그러니 당연히 당신이 외지인이라고 생각했지.”

나의 옷차림과 더불어 타당한 추리였다. 외지인으로서 받는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호의를 꽤 즐기고 있던 차에 여자가 내게 웃어 보이자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라, 나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델티가에서 왔습니다.”

“어머. 멀리서도 왔네. 갓 아카데미를 졸업한 꼬마 신사겠군요.”

“…티가 많이 납니까?”

“그럼요. 마을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여태 들른 마을들에서 이것저것 사 걸친 옷차림이니, 내게 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점을 굳이 짚는다면 그리 그을리지 않은 얼굴과 딱딱한 수도어이리라. 그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에 나는 여자의 말에 쉬이 수긍했다.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내가 해안마을에 사는 그의 눈에 뱃사람처럼 보일 리도 만무하였다.

“배로 들어왔군요? 낮에만 올라갔나 봐. 팔만 시꺼멓게 타서는.”

“맞습니다. 놀랍도록 정확하시네요.”

나의 대답에, 여자의 시선이 어딘지 꿈결을 헤매듯 했다.

“벌써 델티가에서 배가 올 시기가 되었군요…”

그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이 무렵이면 꿈 있는 아이들이 선원과 여행자를 따라 마을을 많이들 떠나죠. 이번엔 누가 떠나려나.”

이내 이지를 되찾은 여자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린 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가 고개를 살풋 옆으로 기울였다. 마치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기대를 배신할 순 없었다.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하지만 멋없이 갈라진 목소리만이 튀어나왔을 따름이다. 여자가 깔깔 웃더니 빨래 바구니에서 두 다리를 빼내고 풀이 자라지 않은 땅 위로 바구니 속의 잿물을 들이부었다. 수돗가-그랬다. 그는 처음부터 개울에서 빨래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로 다가가 마중물을 부어 펌프질해 발을 씻고, 벗어두었던 푸른 치마를 허리에 두른 여자가 맨발로 철창을 향해,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니셴라’라고 불러요. 당신도 그렇게 부르면 되겠네요.”

“니신라… 닐셴나…”

쉬운 이름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뇌까리자 여자가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느리게 발음해주었다. 여자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춤처럼 보이기도 했다.

“니셴라.”

“니셴, 라.”

“발음이 좋은데요. 내륙 사람치곤.”

철창에 얼굴을 딱 붙인 채, 여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푸른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호기심일까 호의일까? 나는 그의 속내가 궁금해졌지만, 직접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실없이 웃었다.

“배우는 게 빨라서요.”

“어쩜. 내륙 사람답지 않게 겸양도 없고.”

“하하. 바다 사람답게 솔직하시군요.”

니셴라가 돌연 나의 문장을 되짚으며 속삭였다. ‘바다 사람.’ 그는 그 단어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잠시 눈살을 찌푸리곤 내게 조언했다.

“조심해요. 여기서 진정한 ‘바다 사람’은 총을 가진 선원들뿐이니까. 머무는 여관에서는 그들이 주는 대로 받아마시지 말아요. 그들은 밤을 즐기고 낮에 떠나죠. 바다에서의 죄를 땅에 버리고 다시 바다로 향한다고요.”

“제가 어젯밤 겪은 밤과는 아주 다르네요.”

나는 어젯밤 화기애애했던 선술집을 떠올렸다. 동전이 든 주머니를 하나 도둑맞긴 했지만, 그 정도야 객지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소매치기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외려 내가 여태 바라온 여행길의 이상향이었다. 축제 같은 소란과 외지인의 어깨에도 선뜻 팔을 걸치며 잔을 권하는 덩치 좋은 현지인들, 억센 사투리, 나를 환영하는 목소리…. 하지만 니셴라는 그것들이 모두 거짓이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해안마을의 산꼭대기 저택에 사는 니셴라가 마을에 섞이지 못한 모난 돌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랫마을의 여인들에 비해 비교적 멀끔하고 도회적인 얼굴을 한 니셴라도 기실 나만큼이나 마을의 이물로 보였던 것이다. 니셴라는 하지만 나의 의심하는 시선에도 찡그린 눈매를 풀지 않고 내게 재차 충고하였다.

“바다에서 저지른 죄가 있다면 바다에 버리도록 해요. 땅에서 지은 죄는 땅에 버리고.”

“그런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요, 아름다운 니셴라.” 마침내 니셴라의 눈이 크게 뜨이고 그의 눈썹이 둥글게 누그러졌다. “오.” 니셴라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창살 너머로 그가 가슴 앞에 팔짱을 끼곤 나로부터 한 걸음을 물러섰다. 나는 창살을 붙잡고 니셴라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니셴라는 아까보다 우아하지 못한, 익살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채였다.

“이제야 제법 내륙 녀석들 같은 소리를 하시네.”

나는 덩달아 그를 향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하지만 좋지 않았습니까?”

“음. 그래요. 듣기 좋네요. 잠시 혹하긴 했어.”

허리를 수그린 니셴라가 양손으로 젖은 빨래가 가득 찬 빨래 바구니를 주워들었다.

“하지만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어린 여행자의 한마디 말에 속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는 아직도 맨발이었다. 인제 보니 처음부터 신발 따윈 신고 나오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창살 사이로 손을 뻗으려다 멈칫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니셴라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니셴라는 이미 저만치서 구멍을 뚫어둔 나무 말뚝에 빨래를 걸기 위한 밧줄을 묶고 있었다. 나는 반쯤 구걸하듯 니셴라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움 필요 없습니까?!”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니셴라의 어깨가 몇 번인가 들썩였다. 웃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고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 그의 웃는 얼굴을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아주 눈에 담고 싶었다.

내 불순한 속내를 알아차린 양, 니셴라가 마침내 뒤돌았다. 니셴라는 웃고 있었다. 그럴 거리도 아닌데 니셴라가 몸을 반 바퀴를 돌리며 인 바람이 내 앞까지 훅 밀려온 양 느껴졌다. 그의 푸른 아마포 치마가 그리 넓지 않게 펼쳐졌다. 동시에 햇볕이 니셴라의 코끝을 스치고 그의 하얀 치열이 드러났다. 경쾌한 니셴라의 몸짓과 얼굴이, 내 눈에는 그저 내 또래의 것만 같았다. 니셴라가 내게 소리쳤다.

“아주 필요하죠!”

나는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철창을 따라 둘러 저택의 입구로 달려갔다. 니셴라가 맨발로 뛰쳐나와 나의 팔을 아프지 않게, 그러나 강하게 잡아당겼다. 우리는 수풀이 웃자란 저택의 뒤뜰로 향했다. 딱 창살 너머로 본 그곳에 선 나는 니셴라가 건넨 밧줄의 끝을 세 번째 나무 말뚝에 묶어 튼튼하게 고정했다. 니셴라가 무람없이 내게 감탄했다.

“잘하는데.”

“뭘요.”

그 칭찬에 이상할 정도로 쑥스러워진 나는 목덜미를 괜히 긁적였다. 살갗이 뜨끔거리는 것을 보니 손톱 모양으로 죽죽 자욱이 남았을 것이 자명하였다. 뜨겁고 따갑게 일어난 피부를 손등으로 문질러 식히며 나는 밧줄을 마저 잡아당겼다. 그러자 다급히 다가온 니셴라가 내 손을 아래로 잡아 내렸다. 고개를 모로 기울인 니셴라가 조목조목 나의 잘못을 짚어 주었다.

“소매가 있는 옷을 먼저 빨랫줄에 꿰어 반대쪽을 고정하는 거예요.”

니셴라의 손에는 암녹색 셔츠가 들려 있었다. 니셴라가 그것에 밧줄을 꿰어 고정하며 아직 젖은 빨래가 담긴 나무 바구니를 내 쪽을 향해 발로 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널어야 하는 빨래의 양이 많았다. 그리고 빨래 대부분은 용도 없는 헤진 천처럼도 보였다. 나는 의아하게 니셴라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다 옷입니까?”

“집에선 아무도 당신에게 빨래를 시키지 않았나 봐요.”

하지만 니셴라는 하는 말에 비해 나무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니셴라가 내게 자신의 빈손을 내밀었다. 나는 젖은 천 쪼가리 중 가장 옷처럼 생긴 것부터 하나씩 니셴라의 손에 쥐어 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않았다는 양, 니셴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싱그럽게 웃었다.

“좋아. 딱 그렇게만 해.”

니셴라가 말했다. 나는 기가 조금 죽었지만, 이어진 니셴라의 말에는 기분이 외려 나아졌다.

“소매가 2개인 옷은 줄을 잡은 채론 도무지 말릴 수가 없다니까.”

“그럼요. 제가 있어 다행이지 않습니까?”

“다행이죠. 엄청나게!”

알고 보니 빨래 바구니는 니셴라가 밟고 있던 하나가 전부가 아니었다. 중간부터는 나도 어째서인지 신발을 벗었다. 하지만 니셴라는 내가 빨래를 밟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깨끗한 발’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깨끗한 발’이라니! 수돗가에서 내가 몇 번이고 발을 씻어도 니셴라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니셴라에게 괜한 억지 부리기와 빨래 밟기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얌전히 밧줄을 매고 니셴라가 건네는 천들을 펼쳐 널었다. 우리는 여덟 번째 말뚝에 밧줄을 묶을 때까지 노동을 반복했다.

해가 넘어가고, 마침내 빨래가 그득 담겨 있던 바구니들이 비었다. 나는 거기에 물을 퍼 나 자신의 머리 위로 끼얹었다. 그러자 니셴라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니셴라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니셴라가 손가락 사이로 젖은 내 몸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의기양양해졌다.

괜히 앞으로 가슴을 내밀자 니셴라가 검지로 내 가슴팍을 쿡 찔렀다.

“잘난 척하는 수탉 같으니 그만둬요!”

나는 니셴라가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굴었음을 알았으나, 그조차 즐거웠다. 단순히 하늘이 높고 바람이 시원해서였다. 그리고 다분히 니셴라가 경쾌히 웃고 있어서였다.

발이 젖어 신발을 신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는 몇 번이고 잿물이 부어져 더는 풀이 자라지 않게 된 둔덕 근처에 엉덩이를 댄 채 다리를 펼쳐 앉았다. 몸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니셴라가 그런 내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아 턱을 괴었다. 그의 푸른 치마는 밤이 되자 밤하늘보다 더 짙은 검정으로 보였다. 뻐근한 손목을 앞뒤로 흔들며 고개를 푹 수그린 니셴라는 끔벅끔벅 졸고 있었다.

나는 니셴라의 앞에서 손바닥을 죄암거리며 웃다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니셴라가 퍼뜩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마을에 내려가서 저와 어울려줘요.”

니셴라는 내게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그는 마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댈 핑계는 정해져 있었다.

“배가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졸음이 밀려오는지 니셴라의 치뜬 쌍꺼풀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나는 살살 니셴라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축제 분위기예요. 육포도 과일도 있을 겁니다.” 다만 고심하여도 어느 것이 빨래에 지친 이 밤 니셴라의 흥미를 돋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니셴라에게 나의 소일거리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여관에는 내 바이올린이 있지요.”

“피들이 있다고?”

니셴라가 눈썹을 치떴다.

“마르로타를 추고, 운이 좋으면 어제 도둑맞은 만큼의 돈을 벌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자, 니셴라가 큰 소리로 웃었다.

“결국, 소매치기를 당했구나!”

아차. 나는 장난스러운 자학으로 나 자신의 이마를 딱 소리가 나게 한 번 쳤다. 니셴라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가 저택을 향해 몸을 돌리고 소리쳤다.

“난 단풍나무로 만든 스푼이 있어!”

금방이라도 뛰쳐나가 스푼을 집어올 듯한 니셴라의 기색에, 내가 물었다.

“연주할 줄은 압니까?”

그러자 니셴라가 웃었다.

“이곳 니메와에서 악기를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걸!”

니셴라가 바람에 휩쓸려 누운 밀처럼 살랑살랑 걸어 헛간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내 나타난 그의 손에는 정말 숟가락처럼 생긴 나무 두 짝과 아마도 주전부리나 겨우 사 먹을 돈이 들어 있을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다닌 흔적으로 풀이 자라지 않은 가파른 산길을 왁자하게 떠들며 내려왔다.

소금기 어린 바람에 삭지 않도록 쌓아 올린 돌담마저 삭아버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경사를 지나자 전경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마을은 작았다. 어제 간밤 길을 헤맨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니셴라가 딱 나만큼의 시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그에게도 마을 사람들이 해안가에 지펴둔 거대한 장작불의 일렁임이 보였으리라.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무슨 춤인지는 모르겠네요.”

나는 감탄했다. 하지만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니셴라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그것을 애써 무시한 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나는 니셴라에게 물었다: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겠죠? 제가 운 좋게 이 풍경과 마주했다고 해줘요, 니셴라.” 그러자 니셴라가 잠시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배가 그리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 고작해야 1년에 예닐곱 번일까…”

금전보다 풀린 표정으로 픽 웃음을 한 번 터뜨리며 스푼을 무릎과 손바닥 사이에 한 번 굴려 소리를 낸 니셴라가 반정한 얼굴로 나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그래. 정말 좋을 때 들어왔구나.”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니셴라 당신은…”

니셴라에게 나의 긴장이 전해졌으면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향한 니셴라의 호의에 불을 지폈으면 했다. 니셴라와 나는 내밀한 사정과 속내를 털어놓기엔 아주 타인이었다. 그러니 나의 모든 언어는 그저 니셴라의 경계심을 풀어놓기 위한 엉성한 주춧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신은, 마을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니셴라의 생각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니셴라도 내게 속히 대답히자 않은 채 따닥따닥 스푼으로 무릎을 두드려 박자를 타며 멀리서 타오르는 항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꽤 낮은 비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니셴라가 아무 말도 않게 되었으므로, 나는 초조하게 덧붙였다.

“저는 차피 나흘이면 떠날 테니, 나쁘지 않은 말하는 돌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입꼬리를 올린 니셴라가 마침내 해안가로부터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함께 내려가 춤을 출 수 있는 게 맞겠지요?”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니셴라 가 나를 관대히 봐주기로 하였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걱정이니?”

약간의 기쁨과 약간의 설렘이 나의 등줄기를 달렸다. 밝은 마을을 등진 니셴라의 머리카락이 해풍에 거세게 흩날렸다. 나는 니셴라에게 대답하는 대신 니셴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검게만 보이는 푸른 치맛자락이 위로 크게 한 번 부풀었고, 그것을 헤쳐 니셴라의 팔을 붙잡았다.

니셴라는 내가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해안가에서 피어오르는 희붐한 연기를 손가락질했다. 연기가 빛을 반사하여 온 마을이 밝았다.

이것이 내가 니메와의 니셴라를 만난 첫날의 일이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선선하였다. 정박한 배에 싣기 위한 화물 상자들이 창고께에 즐비하였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춤을 추었다. 나와 니셴라 또한 바이올린과 스푼을 연주했다. 소매치기당한 돈의 반의 반절도 벌지 못했지만 나는 웃음 버섯을 먹은 사람처럼 마냥 기분이 좋았다.

적어도 나는 다음 여행지를 향한 기대로 마음을 부풀릴 만큼은 니메와에서 안도하였고 즐거웠으며 기뻤다. 이 정도면 완벽한 여행이었으니. 때문에 나는 웃으며 오늘도 맨발로 빨래를 밟고 있는 니셴라를 향해 철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이봐요. 니셴라!”

인기척에 니셴라가 고개를 들어 웃었다.

나는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여즉 알지 못하였다.


*Níl Sé'n Lá: 닐쉰라-켈틱어로 ‘날이 밝지 않았다’

줄거리: 델티가(수도 근처 도시)에서 낯선 해안마을로 들어온 ‘나’는 마을의 외곽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니셴라’를 만나게 된다. 언제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니셴라’는 ‘나’에게 마을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나’는 ‘니셴라’의 조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니셴라’가 마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니셴라’와의 대화가 즐거워 끊임없이 ‘니셴라’를 찾아가, 그와 친분을 쌓는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야 할 무렵, 마을에 태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하고, 배의 정박 기간이 길어지자 마을에선 ‘의식’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마을의 의식에 기함하고, ‘니셴라’에게 자신이 본 것을 알리기 위해 산을 오른다. 하지만 태풍 때문일까? ‘니셴라’는 더는 마당에서 보이지 않고, 철창과 이어진 대문만이 열린 채 끼익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처음으로 ‘니셴라’의 집에 발을 들이게 된다.

좌우로 나열된 10개의 문은 모두 푸른색 아마포로 덮여 있었고, 2층으로 오르는 정면의 계단에는 흉흉한 도끼가 교차해 장식되어 있었다.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인 현관을 본 나는 큰 목소리로 ‘니셴라’를 부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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