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훈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편이었다. 가끔 좀 이상할 정도로.




2.

"세훈아. 이걸 또 샀어?"

"어, 집 밖에 애들 추울까봐."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민석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바람에 고양이는 커녕 개 한마리도 들여놓지 못하는 집이었지만 집 구석구석에 미어터질만큼 들어찬 게 고양이 전용 용품들이었다. 뭐 그 정도. 집에서 똥 쌀 고양이가 없으니 모래가 없는 것 정도는 차치하고, 수많은 종류의 캔 부터 각 고양이들의 취향에 맞춘 사료, 담요, 캣타워 부속품들... 누가보면 고양이 전문 시설을 하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또 그거 뭐냐. 고양이들이 좋아한다는 그 잎. 맞아, 캣닢. 빌라 앞 공동으로 쓰는 화단에 캣닢을 키우자는 걸 몇 일 동안이나 제게 어필을 했는지 기억도 안났다. 계속 안된다고 했더니 기어코 그 캣닢을 몰래 사오려던 세훈을 뜯어말려 집으로 데려온 게 민석이었고, 그런 민석의 팔에 딸려오면서도 미련을 놓지 못한 게 그 오세훈이었다. 형아 저거 하나만 있스면, 집에서 고양이들 맨날 볼 수도 있구... 아련하게도 뒷 말이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만큼 고양이를 사랑했다고. 하고 있고.




3.

그래서, 그런? 그렇기 때문에? 어설픈 인과관계긴 하지만 하여튼. 고양이에 한해 극성을 떠는 세훈은 오늘은 또 고양이 전용 케잌을 사왔다. 담요와 함께, 애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서.


"크리스마스인 건 알면서 왜 고양이 것만 사왔대."


정작 같이 사는 애인에게 줄 건 하나도 안 사왔고. 이 쯤 되니 민석은 조금 억울해지는 것이었다. 야 그래도 내가 니 애인인데. 게다가 오늘 크리스마스라고. 알아? 그 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목구멍에서 겨우 붙잡았거든. 안그래도 어린 애를 꿰찬걸로도 가끔 죄책감이 드는 지경이건만 질투까지 할 수는 없다구. 필사적인 허세였다.

세훈은 그런 민석을 아는지 모르는지 질투섞인 말에 뚱하니 책상 위를 가리켰다. 와인과 맥주와 치즈 등등. 온통 민석이 차린 술상-세훈이 하도 술 술 노래를 부르길래-을 보면서 저거 있자나, 한다.


"이거는 내가 차린건데, 세훈아."

"그래두. 형이 나구 내가 형이지."

"참나."

"왜. 쫌 재수없었어?"

"그건 아니구."

"귀엽지."


차마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어서 웃었다. 그랬더니 똑같이 배시시 웃으면서 신발을 챙겨신고, 그 빌어먹을, 아니. 귀여운 고양이들에게 줄 케잌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에서 담요를 쌌던 비닐을 구기며 민석은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아, 진짜. 오세훈. 먼저 따라놓은 와인을 원샷하고 치즈를 몇 조각 집어먹을 때 까지도 세훈은 들어오지 않았다.




4.


 그래서. 내가... 화가 났나?




5.


"형."

"..."

"형?"


그리고. 아니. 그러니까 지금.


"형, 왜 대답 안해?"


민석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내가 서운하다는 티를 좀 냈나? 딱히 그러진 않은 것 같았는데. 아니. 애초에 이게 나를 위로하려던 건가? 아니면 계획인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시각적 충격 뭐 그런거지.


"왜."

"왜. 이거 형이 원하던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그게."


얼이 빠진 민석의 대답에 세훈이 픽 웃었다. 맨날 천날 고양이들 은근 질투하길래, 모, 이런거 좋아하는가 하구. 그러면서 세훈은 제 손목에 채워진 털...-망측하기 짝이 없는- 팔찌...? 비슷한 걸 쓰다듬는다. 그것도 핑크색. 아 진짜 미치겠네.


본인이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침대 위에서 뭐든 먹지 말자는 약속을 어디다 팽개치고 협탁에 와인이며 주전부리며 죄다 옮겨놓은채로 민석을 기다리는 꼴이, 아. 진짜 쪽팔려서 말을 할 수가 없는데. 고양이 같았다. 그 귀며, 앉은 엉덩이 뒤로 슬쩍 보이는 꼬리 비슷한 것 하며, 아까 제게 보여준 팔찌, 아, 몰라. 다. 다 핑크색이었고 꼭 고양이 코스프레를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모양새가 아니라 진짜 한거지. 캣플레이 복장을.


요 몇 달 세훈이 야동폴더에 점점 이상한게 끼어든다 하는 걸 내버려뒀더니 이제 하다하다 이런, 이런 것까지 하자는건가. 꽤나 교육적인 고민을 하고 있던 민석을 전혀 창피한 기색 없이 앉은 세훈이 빤히 바라봤다. 평소같았다면 그 눈을 먼저 피하는 건 세훈이었을텐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게 안된다. 민석은 온 얼굴이 뜨끈해지는 걸 느끼며 눈을 돌렸고, 세훈은 그 작태를 비웃었다. 내가 진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자꾸 얼굴에 열이 채이고, 아. 연노란색으로 색을 뺀 머리까지 야시시해보였다.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이럴거면 예고를 좀 해줘야할 것 아냐. 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던 그 틈새로 세훈은 치고들어왔다. 


"..."

"안예뻐? 나 이거 형 때문에 다 산건데."


크리스마스니까, 선물이야. 즐겨. 천천히 제 정신을 찾아가며 손, 무릎을 침대 위로 짚어 올라가는 민석을 세훈이 야살스러운 멘트를 치며 확 끌어당겼다. 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민석의 입술은 곧 막혀든다. 티셔츠 하나 벗는것도 정신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찰나 세훈이 짓궂게 제 몸으로 흩뿌리는 와인까지. 아. 세상이 온통 그 와인처럼 새빨간 색인것만 같았다. 온 몸이 헐벗어 겹치고 민석이 그, 꼬리, 그... 플러그를 빼 들 때 즈음, 세훈이 길 밖의 '진짜' 고양이를 챙겨주느라 서운했던 마음은 몇 주 전 내렸던 첫 눈처럼 깨끗이 녹아 사라진 뒤였다. 내가 뭐 때문에 서운했더라.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고 그냥, 목 뒤로 둘러진 세훈의 손목에 달랑 매달린 핑크색 털의 감촉만 선명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니까 결론은, 어느쪽이든,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아직 확신은 할 수 없으니-. 민석은 좁은 방 안에서 팔을 뻗어 불을 껐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방 안, 순서가 정해진 것 처럼 어둠속에서도 허옇게 드러나는 맨살에 손이 착 붙는다. 숨이 자연히 거칠어지고, 아래에 누운 세훈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목으로 킬킬 웃었다.


"아, 진짜 오세훈."


그 뒷목을 쓰다듬으면서 민석이 생각했다. 고양이 만져보는 게 얼마만이더라. 감회가 새로웠다.

@_tex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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