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방에 갇힌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굶길 생각은 없는지 때마다 경호원들이 음식을 가지고 왔고 또 수거를 하러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음식은 그대로. 시위하는건 아니였지만 음식엔 입도 대지 않았다. 윤기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저 자꾸만 목이 타는 갈증이 느껴졌다. 


“.........” 


윤기는 방에 있는 탄산음료만 마셔댔다. 힘없이 늘어져선 소파 위에 앉았다. 이렇게 막연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여태 그런 생각 같은건 단 한번도 하지 않았었다. 그냥 흘러가는데로. 아무런 감각없이 살던 윤기였는데



“....뭐하고 앉아있는거냐. 난.” 


지금은 당장이라도. 혜원한테 가고 싶었다. 





관계의 묘미 




주말동안 혜원은 방에만 틀어박혀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윤기의 페로몬을 어떻게든 지우기 위해 별짓을 다 했지만 우성알파의 향은 그리 쉽게 지워질리 없었다. 대체 이틀동안 몇번을 씻었는지, 페로몬 억제제를 몇 번이나 복용했는지 셀수가 없을 정도로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윤기였다. 무심결에 방 창문으로 밖을 몇번이고 내려다보았다. 차가 지나갈때면 혹시나 정말 그 애가 온걸까 두근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윤기는 오지 않았다. 


“월요일날 봐.”

“....어, 응.”

“아니다. 너네 집 네비에 찍히면 당장 저녁에 찾아갈수도 있고.”

“오지마! 집은 절대 절대 안돼!”

“오지말라니까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네.” 


분명 올것 같이 말하더니 결국 말장난이였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오히려 다행인거지 진짜 왔으면 어쩌겠어. 혹시나 하고 기대했으면서 그런 자신을 애써 부정하며 위안 삼는 혜원이었다. 


그런 주말이 지나고 드디어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다행히 그 동안의 노력으로 전보다는 흐려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상태. 향수로 가린다면 향에 민감한 알파가 아니고서야 그럭저럭 넘어갈수 있을것 같았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향수를 잔뜩 뿌린 다음 가방에 챙겨 방을 나오니 식탁에 앉아있는 태형과 아빠. 언제나 그렇듯 먼저 집을 나서는데,


“학교에 가니?”

“...네.”

“몸 상태 안 좋다며? 태형이가 말해줬다.” 

“........”


내 일에 신경 끄라고...분명 말했을텐데.


“오늘은 그냥 쉬어도 돼. 아프면 쉬어야지.” 

“...괜찮아요. 많이 좋아져서 갈수있어요.” 


혜원의 대답에 유리 잔을 들고 있던 태형의 손이 잠시 멈칫했고 곧 인상이 구겨졌다. 혜원은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는 곧장 집을 나갔다. 혜원이 나가는 동시에 아버지가 식사를 끝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큰 식탁엔 태형 혼자만 남았다. 기가찬듯 헛웃음이 나왔다. 


“하...” 



“...괜찮다?”


기껏 핑계거리까지 만들어줬더니, 저게 진짜 좆같은 꼴을 당해봐야 정신 차리려나. 그 꼴로라도 그 우성알파 새끼를 보고싶은건가.


“.......” 


그러던 말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저 계집애가 기어이 가서 돌림빵을 당하던 걸레짝이 되던, 나랑은......더 이상의 뒷 말은 나오지 않았고. 제 머리를 헝크리며 한숨을 쉬는 태형이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널 신경쓰게 하지 말란말이야. 




관계의 묘미 




“몸 상태 안 좋다며? 태형이가 말해줬다.” 


집 밖을 나온 혜원은 걸어가면서도 아버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날 도와주는 이유가 뭔데? 왜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냐고. 너가 이러면, 내가 고마워 할줄 알았어? 


“........” 


내가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건, 위험에 처했을때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항상 너였다는거야. 첫번째는 2년 전, 내가 처음으로 히트싸이클이 터졌던 날이고, 두번째는...아직까지도 그때 일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얼마 전에 터졌던 히트싸이클때고. 두 가지 모두 너라서 다행이였지만 그 동시에 왜 하필 또 너일까 였어. 


생각해보면 넌 항상 내가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 나타나는것 같아. 정작 평소엔 상관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면서...


그게 의도든 뭐든...이제 너 도움은 안 받고싶어.


교실에 도착했고. 저도 모르게 두리번 거리며 자꾸만 주위에 아이들을 신경쓰는 혜원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혜원에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아이들이였다. 고위급 자녀들 중에서도 알파와 베타로만 이루어진 학교, 이 반에서 알파가 몇명이고 베타가 몇명인지, 또는 혜원처럼 정체를 숨기며 지내는 오메가는 또 몇명일지는...미지수였다. 


혜원은 자리에 앉아있다가 아무래도 화장실에 가서 향수를 한번 더 뿌리고 오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서 작은 병에 들어있는 향수를 챙기려는 그때 제 앞에 누군가가 앉았다. 


“안녕.”


분명 혜원에게 인사할 아이는 없는데...고개를 들어보니 저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정국이였다. 응?...순간적으로 얘가 왜 나한테 와서 인사를 하는거지? 의아한 혜원이지만 저번에 친구하기로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녕.”

“푸흐,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너 나랑 친구하기로 했던거 까먹었지.”

“아니...그게 아니라...”


“아니긴, 까먹었구만.” 

“이런 인사를 받는게...처음이라서.” 

“......” 

“뭔가 좀 어색하기도 하고...이상하달까...”


혜원의 말에 정국의 얼굴이 잠시 굳어지더니 이내 다시 웃었다. 


“그럼 앞으로 매일 해야겠네.”

“.......” 

“어색하지 않게.”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오는 건 정국이 처음이라서. 조금은 벙진 표정을 한 혜원이었다. 솔직히 혜원은 정국이 자신에게 친구하자는 그 말이 너무 뜬금없어서...그냥 아무렇게나 뱉은 말인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를 바라고 의도적으로 한 말일거라고...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마음 속 어디선가는 정국의 말이 기뻤으나 동시에 두려웠던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자신이 틀린것 같았다. 


아니 틀린거라고 확신하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해준 사람이니까. 


“거기 내 자리인데...” 


정국이 앉아있던 자리에 원래 주인이 돌아왔다. 정국은 바로 자리를 비켜주며 혜원의 머리를 약하게 헝크렸다. 


“있다가 점심 같이 먹어.” 

“?!...나, 난...”


...안 먹을건데.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듯 자기 할말만 하고 돌아갔다. 정국이 자리로 돌아가자 곧 수업 종이 울렸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혜원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그 자리의 주인은 윤기다. 혜원은 그 자리를 알수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날 곤란하게 만들었으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건가? 설마 또 갇힌건...


뭐야. 내가 그 애 걱정을 왜 하는거야 어떻게든 오늘을 무사히 버틸 생각만으로도 벅찬데...


정신 차리자 김혜원. 


1교시 수업이 끝났다. 아침에 뿌렸던 향이 점점 미세해졌다는 걸 느낀 혜원은 가방에 챙긴 향수를 꺼내서 화장실로 가기 위해 교실을 나간다. 하지만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던 여자 알파 무리, 1학년때부터 줄 곧 혜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여자애들과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도 알파 외에는 모두 가치 없다는 식인 알파 우월주의 사상에다 성격이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홍유나랑...


“아 시발, 눈깔 없냐?”

“미안....” 


쌍방인데도 불구하고 혜원은 빠르게 사과하며 얼른 그 애들을 지나쳤다. 혜원과 어깨가 부딪혔던 홍유나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다가 곧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늘 김혜원...뭔가 좀 다르지 않아?” 

“뭐가? 평소랑 똑같은것 같은데.”

“아니야. 냄새가 좀 달라졌어.”

“향수 바꿨나보지. 베타들은 무 향이라 인위적인 향수라도 뿌려서 향을 만들잖아?”

“그냥 향수따위가 아니야. 쟤랑 닿았을때 알파 냄새가 나는것 같았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베타한테서 어떻게 알파 향이 나는데?” 

“베타가 아닌가 보지.”

“미친....그럼, 김혜원이 오메가라는거야?”

“글쎄. 베타인지 오메가인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



“.........” 


스포츠 시간은 대부분이 자유시간이였다. 오늘 역시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농땡이를 피우러 가버렸다. 남자애들은 축구를 했고 정국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워낙 땀 흘리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지민은 낮잠을 자러 간건지 그 틈에는 보이지 않았다. 딱히 할게 없는 여자애들은 스탠드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혜원은 여자애들과 좀 떨어진 체로 축구경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국은 베타이면서도 알파들과 잘 어울렸다. 체력또한 알파 못지 않게 뛰어났다. 대부분 베타는 알파들 사이에서 어울리기 힘들다. 아무리 학급의 반장이라 해도 말이다. 


세상이 알파 우월주의인 탓도 있었고 신체 조건도 확연히 틀렸다. 하지만 정국은 다른 알파들과 견주어봐도 꿇리지 않아보였다. 덩치도, 수려한 외모도...분명 정국에겐 알파 특유의 체 향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언뜻봐선 알파와 다를 바 없었다. 근데 저런 애가 왜 나랑 친구를 하고 싶은걸까...그런 생각이 들던 순간 누군가 혜원에게 다가왔다. 


“야 김혜원.” 


아까 부딪혔던 알파 여자애들 세 명이었다. 아까 일이라면 분명 사과했는데. 또 뭘 바라고 온건가 싶었다. 


“....왜?”

“잠깐 우리랑 얘기 좀 해, 따라 와봐.” 

“........” 


할수없이 운동장을 지나 건물 뒤 편으로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혜원. 곧 알파 아이들의 걸음이 멈추고 혜원 역시 멈췄다. 그 중 으뜸으로 보이는 홍유나가 물었다. 


“너 뭐야?”

“...내가 뭘?” 

“하, 이 년 아무것도 모르는척 하는것 봐ㅋㅋㅋ”


그 말에 옆에 있던 알파 두 명도 따라 웃었다. 혜원은 눈치가 빨랐다. 이들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것 같았다. 


“너한테 알파 냄새가 나길래 당황했잖아.” 

“........” 

“그리고 생각했지. 뭐야 혹시 김혜원 알파인가?” 

“.......” 

“근데 말이야. 어떤 미친 알파가 본인을 베타라고 속이면서 다니겠어? 그건 본인 손해잖아. 가문을 더럽히는 짓이고, 알파라면 애초에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 

“오메가가 베타라고 속이지 않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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