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온 몸이 찌뿌드하네요ㅇ<-< 아무튼 다녀왔습니다, 서울 복지 필름 영화제! 사실 제가 뭐 리뷰 적고 그러는 건 일기에 짧은 사족으로 다는 경우가 다수지만 이건 아예 포스트 하나로 따로 쓰고 싶었어요.

무슨 사진을 찍고 그런 건 없지만서도ㅎ.ㅎ 즐겁게,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보았던 영화제이니만큼. 또 앞으로도 이런 영화제가 많은 지원을 받고 응원과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만큼!

서투르게나마 지난 주말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이대에서 페미니즘 연극을 한 적이 있었어요. 또문에서 했던 은빛물고기가 그건데 멋도 모르고,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던 시기에, 그저 재밌겠거니 흥미롭겠거니, 여자애들끼리 뭔가를 만든다 하니, 페미니즘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고 하니... 힘도 들고 재미도 있었던 날들이었죠. 그 때 공연 포스터를 붙이느라 딱 한 번 본 이대 후문을, 이번 영화제 찾아가면서 깨달았는데 여전히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오오. 참 쓸데없는 것만 잘도 기억하는구나(..) 싶었던 건 차치하고.

서울 복지 필름 페스티벌은 이대 후문 쪽 맞은편 제시카 키친이 바로 보이는 건물의 지하 1층 필름 포럼에서 열렸습니다. 후문 쪽으로 나오자마자 제시카 키친이 잘 보이더라구요:) 왼편의 횡단보도로 건너 가 하늬솔 A 빌딩 B1층의 <서울 복지 필름 페스티벌>로 고고!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는데 상영 10분 전까진 오셔야 한다는 문자를 받고 넉넉 잡아 2시간을 잡고 갔거든요. 그랬더니 2~30분쯤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생각보다 일찍 도착함;)

안에는 서울 복지 필름 페스티벌 홍보물을 비롯해 참여연대 등에서 제작한 잡지와 인권/복지 관련 팜플렛, 전시물 등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아무래도 이쪽으론 문외한에 가깝다 보니 많은 정보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ㅎㅎ 청춘job知도 샀구요!



 

11:00 단편 옴니버스(3편) - 이 편한 세상,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지렁이 꿈틀

* 자세한 설명은 영화명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본 영화. 둘째날의 첫 영화였죠, 단편 옴니버스. 세 개의 단편 영화를 옴니버스로 묶어서 상영했는데 각자 노숙자 문제(주거 빈민 문제), 대학 등록금 문제, 장애인 문제를 다뤘답니다. 다큐 영화였는데 다들 정말 생각해봄직한 문제였고 저 개인적으로도 많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했지요.


이 편한 세상

우선 노숙자 문제. 사실 지하철 역사에 가면 노숙자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도 언제 길을 잃었…이 아니고 여러 일이 있어서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집까지 못 가고 을지로 3가였나 종로 3가였나. 거기서 내린 적이 있거든요. 결국에는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기까지 했고(..) 

그 추운 날씨에(무려 겨울에 일어난 일^^;!), 군데군데 셔터를 내린 지하철 역사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분들을 보면서 나는 집으로 가지만 저분들이 돌아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한동안 그런 생각에 잠겨 허우적거렸죠.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니, 분명, 이 역시도 하나의 문제겠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다큐 속에 나온 분들의 말씀처럼 며칠 공사판에서 일하면 노숙을 안할 수 있어요. 고시원에 들어갈 비용 몇십만원 정도는 벌 수 있어요. 그런데,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없는 거예요. 어차피 이렇게 돈을 벌어도 한순간 잘못되면 옛날 생활도 돌아가기 십상인데. 등 따숩게 지내는 건 좋지만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밑바닥 인생이란 건 변하지 않는데. 그래서 꿈도 희망도 없어요. 의욕없이 무기력하고, 누군가 도와줘도 일어서지 못해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절망을 넘어선 체념이었다고 생각해요. 다큐 속에서 그 ‘사라졌다’는 자막이 뜰 때 왜 눈물이 났는지.

그들에게, 꿈이, 있었다면. 무언가가 되겠다까지는 아닐지언정 무언가를 하겠다는.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동기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고. 그런 막연한 게 아닌.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 누군가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일이니까. 스스로의 의지와 사고로만 가능한 것이니까... 진짜 이런 건 돈벌이의 문제, 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어서 대학교 등록금 문제. 이건 요새도 말이 많죠. 본 작품은 2008년도에 만들어졌다, 고 나온 것 같은데.(저... 저의 기억력이...orz) 중간중간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가 인상 깊었어요. 절망하지 맙시다, 와 Dream이었던가요? 또 대학생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위해, 가감없이 말을 전한 것도 하나하나 가슴에 남았죠. 

정말 큰 문제잖아요.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때문에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주객전도가 되어버렸어요. 한 학기 등록금이 몇 백만원이고, 1년 다니면 천만원이 넘는 시대. 대학교가 4년제라지만 그 4년을 온전히, 휴학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저 역시 당면한 문제지만, 작년 소설 강의 때 만난 언니도 법대생으로 휴학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얘길 들어보니 1년 공부하고 1년 휴학하면서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1년 휴학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거지. 그렇게 벌써 4년째랬나. 그러니까 4년 지났는데 2년만 공부한 거야.

등록금이 비싸, 학비가 없어, 삶을 살아나가기에도 벅차. 그럼에도 우리는 그 비싼 학비 마련을 위해 돈을 벌고 빠듯한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솔직히 김여진씨의 제안에 동의하거든요. 전국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일 게 아니라 아예 휴학을 해버리자고. 다 함께 무한경쟁의 루트에서 확 빠져나오는 거야. 그럴 힘이 필요하고, 행동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해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건 진짜 전국적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해나가야지. 다 똑같은 고민을 하고 불만을 쌓아두면 뭐해. 움직이자고요!


지렁이 꿈틀

이건 앞서의 두 편보다 유쾌하게 봤어요. 중증 장애인인 지렁이, 그러니까 철규씨가 센터 탈출을 꿈꾸고 그를 이뤄내고, 또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서도 빠져나오기를 꿈꾸고 정말 빠져나와 혼자 살고. 물론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 있어야 했고,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홀로 이뤄낸 건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욱이 따뜻한 느낌의 영화였던 것 같아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센터에서의 생활에 익숙하고 바깥사회에 대한 건 전혀 모르다가 나와 생활한다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니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해낸 거야. 정말 멋있다! 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달까요. 1번의 이 편한 세상에서 이야기했던 "꿈"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말이에요. 익숙한 공간에서 탈출해,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접한다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지도 찬란하지도 않지만... 철규씨는 도전 정신이 되게 강한 분 같았어요. 보는 내내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센터를 나가고 싶어요"라는 것에서 왈칵 눈물이 났는데 그 이후는 계속 웃었던 기분ㅎㅎ

어쩌면 엄청 어둡게 풀어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정말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나 당신들이나 몸이 불편하고 괜찮고만 빼면 똑같은데 뭘 그렇게 다른 시선으로 봐? 이런 느낌의 다큐 영화였달까. 


 

14:00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영화가 끝나고 근처 분식집에서 김치 보끔밥을 먹었어요u/////u* 내 사랑 달걀 후라이도 얹어주셨던 곳입니다. 맛있었어요.(<-)

그리고 선선히, 다시 필름 포럼으로 가서 이번에는 2시 영화를 보았지용!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먼저 생각한 건 EBS에서 방영해준 적이 있는 다큐. 혹시 개러스 멀론이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그 분이 기획한 프로젝트는 빈민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노래를 접하지 못하고 노래에 선입관이 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이 무언지 가르쳐주는 프로젝트였다고 해야 할까요? 되게 좋아했어요. 1부와 2부가 있는데 1부는 대상이 남녀 가리지 않고였다면 2부는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음악, 그 하나의 예술로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건. 예술은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도 변화하게 만드니까.

엘 시스테마는 위의 주소를 따라가시면 대략적인 줄거리를 접하시겠지만, 요약하자면 몇몇 사람에 의해, 그들이 계기가 되어 베네수엘라의 사람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 미래에 꼭 음악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꿈꾸었던 희망은 여전히 마음 한 자리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전 여기서 무척 인상 깊었던 게 청각장애인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였어요. 들을 수 없는 그들이, 그러니까 한 소녀가 이렇게 말해요. 정말 아름다운 곡이 있다고. 그걸 연주하면 손이 날아오르는데, 그게 바로 아베 마리아라고. 연주 장면이 나오는데 그를 연주하던 다른 소녀가 연주를 끝내고 우는데 가슴이 먹먹한 거 있잖아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노래할 수 없는 건 편견이에요. 그들은 가장 조용하지만 또 아름다운 연주를, 노래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도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사실 저도 예전에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거든요. 그건 시각장애인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였던 걸로 기억해요.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 했지만 그걸 보면서, 와... 싶었어요. 그들 중에는 음에 천부적인 재능과 감각을 가진 친구도 있었고, 비록 악기를 볼 수는 없지만 연주는 기가 막히게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단 한 명의 빈민가 아이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음악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돌아가야 한다고. 엘 시스테마는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저도 동감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예술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문화가 곧 삶이고, 세상이라구요. 예술이 발전하지 못하면 행복도 마찬가지일걸요.

 

16:30 꽃다운

3일날 봤던 마지막 영화, 꽃다운입니다. 개인적으로 시선 너머도 보고 싶었는데 여건이...ㅠ.ㅠ 저 진짜 열편 다 보고 싶었는데 네편밖에 못 봤어요. 그 중에서 시선너머와 개청춘은 꼭꼭 보고 싶었고 외의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으으으. 아, 위의 시간은 30분으로 되어 있는데 앞서 엘 시스테마 관객과의 대화가 늦게 끝난 바람에 실제로는 4시 40분에 영화가 시작했답니다.

여성운동이나 여성 노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진짜 솔직히 말해서 KTX 승무원에 관한 일도 좀 뒤늦게 접하기도 했고. 심지어 YH노조는 이 영화를 보며 처음 접했습니다. 78년도에 일어난 일이니, 저 태어나기 10년하고도 +∂ 전에 벌어진^^;(제 나이는 소중하기 때문에 밝히진 않겠습니다ㅋㅋㅋㅋ)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여쭤보니 당신들께서도 알긴 하는데 너는 그걸 어찌 알았느냐(..)는 반응을. 

이 다큐 영화는 김경숙 열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요. 보면서 정말 갖가지 생각들이 들더군요. 이거 보면서, 그네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펑펑 울었어요. 테이프에 담긴 그 목소리들이 진짜 앳된 거예요. 적게는 열다섯이라 했으니까, 이건 완전히 제 조카 애기들이랑 나이가 같잖아요.(참고로 저와 첫째 조카들의 나이 차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ㅇ<-<) 

그런데 그들이 일을 하면서, 부당함을 깨닫고, 자신의 권리가 무언지를 알고, 공부하고, 맞서고, 그랬다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아, 정말.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30년도 넘은 일이라서 솔직히 제 또래 중에서도 이 일에 대해 아는 애가 몇이나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알고 누군가들의 용기를 알고 그 힘을 알고.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어떤 분이 감독님과 전 지부장이셨던 최순영님께 여쭈셨죠.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그들을 도우려면 어떤 방법이 있고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냐고. 저는 이 영화가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방법과 도움이 있겠죠. 그런데 이런 영화로, 이들의 삶과 싸움을 알리는 것 또한 도움이고 도움을 주기 위한 매개이지 않나 싶어요. 그렇잖아요. 꽃다운을 통해 저는 몰랐던 지난 날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KTX 승무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꽃다운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조차 제대로 몰랐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곳에서는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지만 여기에서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영화를 만들고, 또 도움을 주시고, 더불어 이같은 영화제를 개최한 모든 분들께. 알게 해주셔서, 보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요.

 

 

 

끝나고 돌아가는 길, 시간을 살펴보니 거의 7시에 가깝더군요. 개인적으로 시선 너머를 보지 못해 아쉬웠어요. 지금 인터넷이 됐다 안 됐다 하는 바람에 한 번 날리고 다시 적는 포스트ㅋㅋㅋㅋㅋㅋㅋ 근성이네요, 이것도 꽤나.

짧게 사족을 붙인다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선입관이 달라져야할 때고, 성추행/성폭행범은 합의해도 된다는 법 자체를 없애야 해요. 성폭행은 정신적 살인이라고요.

  

으으. 아무튼 긴긴 리뷰는 요기서 끝! :)*

더 많은 이야기는 서울 복지 필름 페스티벌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마무리

영화를 볼 때마다 나눠주신 뱃지! 저는 네 편의 영화를 봤는데 꽃다운 때 뱃지를 못 받아서 세 개가 있답니다ㅎㅎ 개인 취향으로 따졌을 때 빨간색이 더 이쁜 것 같아요. 노란색도 좋지만. 근데 보다 보니까 신호등 생각나서 왠지 초록색도 있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비상구 찍어 보내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날이 지나가 트위터 멘션으로 보내진 못한 사진. 영화관 내부에서 찍은 비상구:9...(화질이 떨어지지만 폰의 한계....)


집으로 오는 길, 이대 후문으로 들어가 정문 쪽으로 가는데 걸려있던 플랜카드 발견. 낯익은 모임 이름이 반가워 찰칵.(이제 보니 초점도 다 나갔지만....^^)


 

참. 덧붙여 3편 이상 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곧 무언가를 받아볼 수 있을듯!ㅎㅎ

영화제 만드느라 고생하신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

“너를 만나 내 삶은 무한대가 되었어.” (by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The Fault in Our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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