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바쁜 직업이다. 모든 검사들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훈은 미칠 듯이 바빴다. 그건 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 제 손 안에서 굴리려고 하는 탓인 듯도 보였지만, 여튼 그의 인생에는 신경쓸 것도, 신경쓸 사건도, 신경쓸 사람도 많았다. 야근은 기본이요, 꼭두새벽부터 현장을 뛴다던가, 범인 잡다가 처맞는 일도 허다했다. 물론 일하는 중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사실 속에서 열불나서 못살겠는 일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쓸데없이 간초한 인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우스개소리로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하는 말은 분명 어느 선까지는 진실인지도 몰랐다. '충청도 사람은 말이 느리다'처럼. 하지만, 그런 속설들 사이에서도 '경상도 남자는 성격이 지랄맞다'라는 속설은 분명히 없으니, 경상도 출신 무족보 검사 우장훈의 성격이 지랄맞은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탓이다. 그러니 며칠 전 잡아온 놈을 수사하며 열심히 족치고 있던 우장훈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그가 화를 내며 전화를 확인한 것도 순전히 그의 탓이었다.

"아이, 뭐야 씨..."


허나 날아온 문자는 그가 예상하던 것을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 문자를 그가 그렇게나 기뻐하였는지 장훈은 앞에 앉아있던 용의자가 그의 핸드폰을 확인하려 몽그작거리는 것을 너그러이 관서(寬恕)하였다. 그 문자는 묘령(妙齡)의 여인, 장훈이 얼마 전에야 만난, 허나 관면(慣面)의 여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제자리에 편히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분명 장훈이 지금 해야 할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에게 눈 앞의 용의자보다 중요한 일인 건 맞았다.


단참(單站)에 적어내려 보내온 단촉(短促)한 단찰(短札)은 저를 단천(短淺)한 단필(短筆)이라 일컬었으나 실은 단구(丹丘)의 글 마냥 단중(端重)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순식간에 쓱쓱 적은 듯한 급한 글은 자신이 서투른 글재주라 낮추었지만 실은 신선 사는 곳의 글 마냥 정중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쎄, 정말로 정중했는지야 개인의 판단에 따를 일이고, 일단 장훈의 마음에는 들었다. 뭐가 그리 특별하고 뭐가 그리 기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내내 기분이 안좋았던 장훈은 금세 소나기 구름 개이듯 활짝 폈고, 그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본래의 기상청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 장계장도 오랜만의 빠른 퇴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실적 따라 반영되는 퇴근은 아니었으니. 그날 오후 세 시 반 경의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을 굳이 미루는 지은이었지만, 장훈은 별 특별한 것이겠나 싶어, 그리고 그렇게나 급한가 보다 싶어 그냥 아무 말 없이 의뢰를 받아주기로, 아니 이자를 갚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가 신세진 것을 갚는 수순이었던 것이다.

시계가 여섯시 퇴근을 알리는 순간, 장훈은 정말 오랜만에 칼퇴근을 했다. 일에 미쳐살았던 과거가 조금은 퇴색되는 순간이었다. 사무실 문을 나서면서, 장훈은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실로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오후 세 시 반에 문자를 받고. 여섯 시에 퇴근을 했다 해도 검찰청에서부터 그의 집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일단 도시 반대쪽에 있다시피 했고, 무엇보다 퇴근시간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장훈은 여자의 일까지 처리하고도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가리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상 외로 장훈과 여자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연유였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보니, 얼마 전 지은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들어가고 있을 때, 장훈도 잠시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나왔었다. 그리고 편의점 가는 도중, 쫓고있던 용의자 놈을 발견했고, 그 뒤를 따르던 지은도 발견한 것이다. 용의자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하려면 위장이 필요했기에, 장훈은 그 길로 머리를 굴려 지은의 남자친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자신에게 최대한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써가며. 참고로, 조금 힘들었다. 놈을 잡고, 왜 여기있는가 대화를 나누어 보니 지은의 집이 장훈의 집과 걸어서 이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반강제적인 주거지 공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 뭐 나쁠 것 없으니 일단 알아는 놓자-라는 식으로 어찌어찌 결말이 났던 것이었다. 

그렇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사촌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아직 길에서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유를 논하자면 장훈은 여가시간을 틈타 집 밖을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지은은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대학원 가까이에서 했지, 집에서는 가까이 사는 친구가 없었기에 술을 마신대도 혼자 닭다리를 뜯는게 전부였던탓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활 패턴이 다른 탓도 있었다. 장훈이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워커홀릭인 반면, 지은은 늦게 나가 일찍 들어온 후 집에서 일을 끝마치는 것을 선호했으니까.

생각보다 차가 막혔지만, 다행이 너무 늦지 않게 도착했다. 장훈이 집 가까이 차를 대고 지은과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로 향하자, 안쪽에서 익숙한 여자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장훈 오빠!"

지은의 쪽으로 다가가던 장훈은,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카운터 가까이 서 막 주문하려던 지은의 옆에 서서, 장훈은 대꾸했다.

"오빠라 잘만 부르네, 우리 지은이."

"일단 익숙해져야 실수를 안 하잖아요. 그러는 오빠아-여기서 그녀는 조금 말을 끌었다.-야말로 익숙한데. 커피 괜찮죠?"

"어. 아이스로."

커플인 마냥 함께 주문하고-사기는 지은이 샀는데, 이율이 높은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가급적 구석진 쪽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커피가 나왔고, 차갑고 쓴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장훈은 물었다.

"그래서, 우리 귀여운 지은이가 뭐땜에 오늘 급하게 빌린 걸 갚으라 그랬으까."

"...귀엽다고 하는 거 고맙긴 한데, 조금 오글거리니까 나중에 해 주시면 안돼요?"

"아, 그르까."

"여튼, 일단 말을 하는 것보다 무슨 상황인지 보여드리는게 나을 것 같애요. 백문이 불여일견."

지은은 누군가와의 메시지 내역을 장훈의 앞에 내놓았다. 대화 상대는 그녀의 대학원 선배였는데, 조금만 훑어봐도, 아주 웃음이 나는 수준의 원색적인 구애였다.  친구에게서 번호를 받았다던가, 심야 영화를 보러가던가니, 새벽에 술마시고 전화를 건다던가 막판에 고백을 거절하면 남자친구 있는게 거짓말 아니냐면서 질질 물고 늘어지기까지. 그쯤 흝어보고, 장훈은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댔다. 짜증나는 새끼였다.

"쉽게 말해서, 이 머스마랑 만나기로 했는데,"

"거기서 남자친구 역할을 해 주세요. 저 딱 빌려준 거 그대로 받는거예요."

"내 말고 해줄 사람이 없드나? 주위에 남자."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서, 팩트체크가 쉽거든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필요했어서."

게다가, 검사님은 연기 잘하시는 거 같아서. 조금은 뻔뻔스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조금 웃어버렸다.  방금 화가났던 것이 조금 풀어졌다. 연기를 잘한다, 라. 고마운 허나 쓸모없는 칭찬이었다. 그의 직업은 배우도 뭣도 아닌 검사였으니까. 함정수사는 법정증거채택이 안되니까 일단 합법적으로 쓸 곳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연기력이었다. 장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내가 아이라 지은 씨가 연기를 더 열심히 해야할 거 같든데."

뻣뻣하고, 막. 그렇게 말하자, 지은이 잠시 멈추었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재빨리 되묻는다.

"...그때 제 연기 그렇게 별로였어요?"

충격을 받았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물어보는 지은때문에, 장훈은 다시 한번 웃어버렸다. 연기 못한다는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었던가. 그가 웃는 것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변명한다.

"저 그래도 고등학생때 연극부도 하고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별로였어요?"

그제서야 장훈은 손을 내저으며 부정한다. 더 놀리면 삐칠 것 같다.

"아니, 개안았지 그 정도면."

"...진짜예요?"

"응, 진짜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녀가 의심을 거둔다. 정말로, 그녀의 연기는 훌륭했다. 놀라서 조금 굳은 듯 싶긴 했지만, 일단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하는 말에 다 대답한 게 어디야. 나름 리얼하기도 했고. 바밤바라던가.

"그래서. 계획은? 만나서 쌍욕을 해 주면 되나?"

"그건 아니고요, 한 십 분 후에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 연습해야해요."

"뭐를 연습하는데?"

"설정들."

그리고 그녀는 이것 저것, 특히 두 사람의 관계(물론 가짜였다)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만났고, 언제 사귀기 시작했고, 처음 사준 선물은 뭐고 등등. 십 분 만의 촉박한 수업이었지만, 학생 장훈은 기억력이 좋았고 선생 지은은 꼼꼼했다. 덕분에 신기하게도 이십 분 후, 장훈과 지은은 일년 반 전에 인터넷 공부동아리 카페에서 처음 만나 십일개월 전에 사귀기 시작한, 첫 데이트는 명동, 처음으로 사준 선물은 목걸이, 호칭은 각각 '지은아'와 '오빠'로 고정한 조금은 편안한 듯한 커플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약속시간까지 약 삼 분 덜 남았을때, 지은이 중얼거렸다.

"...저 되게 회의감이 들어요."

"뭐가?"

"그냥, 잘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가짜 남친까지 만들어서 고백을 거절해야 하는 게 서글픈걸까. 거기서 장훈은, 혹시 이 아가씨가 생각보다 인디가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 저기. 저기 들어오는 남자요."

생각이 끊기고 장훈은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눈을 옮겼다. 손가락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일어섬에 따라 그도 함께 일어났다. 조금은 긴장한 건지 굳은 몸짓에, 그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

"긴장하지말고. 오빠 믿지?"

그녀가 살풋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가 나 믿어야 할걸요. 삼십 분 제대로 제고 있는 지나 확인해요."

어느새 남자는 그들을 발견한건지 가까이 다가왔고, 지은이 자연스럽게 장훈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동작이 익숙한 걸 보아 연습을 한 건지, 수백 번은 같이 팔짱을 껴본 커플 같았다. 그제야 장훈은 그녀의 연기에 대한 감상을 수정했다. 그녀는 꽤나 연기를 잘했다.

"선배, 이쪽은 제 남자친구. 오빠, 내 선배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장훈입니다."

"아, 예에."

장훈이 악수를 청했지만, 지은의 선배라는 사람은 정말로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건지 자기소개룰 잊어버린 듯 싶었다. 하지만 장훈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별로 기억하고 싶은 이름은 아닐 터였다. 남자가 초조한 듯 손에 들고있던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쏟듯이 던졌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던졌다.

"선배, 말씀드렸다시피 저 남자친구 있어요. 그러니까 왠만하면 이 이상 그런 연락은 안주셨으면 좋셌어요."

"아, 아니... 그런게.."

"더 이상 우리 지은이한테 가까이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이 연달아 말을 던지자, 남자는 그 기세-특히 장훈의 존재 자체-에 눌린 듯 말꼬리를 흘렸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장훈은 두 사람 사이의 메시지 내역을  하나하나 들이밀며 남자를 추궁했다. 검사라는 직업의 본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뒤에는 지은이 옷깃을 잡아당겨 브레이크를 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만족한 마음으로, 마지막 문장을 마치고, 장훈은 거만하게 몸을 기댔다.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이 보였다.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더 던졌다.

"지은이가 그래도 선배님이시라 지금까지는 참아왔다는데, 그래도 더 이상은 남자친구로서 보기 힘듭니다. 부탁드립니다."

적당히 화도 냈겠다, 남자에게서는 말 두어마디 들은게 전부였지만 이미 변명할 것도 찾지 못한 듯 싶었다. 그 정도면 된 것 같아, 장훈은 물기가 맺힌 아이스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흘낏 시계를 보자, 아직 넉넉히 오 분 가량 남아있었다. 이자를 좀 덜 줘버렸네, 하며 뭘 더 줘야 할지 머릿속으로 가늠하는 장훈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알아 들으셨을 거라고 믿고요.”

“저, 선배. 그럼 가볼게요.”

그가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리자, 지은도 그의 곁으로 조금 더 붙어섰다. 이 상태로 자연스럽게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여기고, 두 사람 모두 완벽한 호흡으로 테이블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가면 된다. 나가면.

되었을 텐데.

“이, 이…!”

그 후 일어난 일은 빨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훈도 빨랐고.

철썩- 소리가 먼저 울리고, 장훈을 감싼 것은 둔탁하면서도 차가운 액체가 몸을 감싸는 감각과, 한기였다. 그리고 그가 감싼 것은 그녀였고.

“나쁜 년!”

완벽한 엔딩을 선사한 남자는 그대로 땅바닥에 텅 빈 플라스틱 컵을 내던지고 도망갔다. 보지 않아도 카페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고정된 것은 분명했다. 두 사람도 그 자리에 고정되었고. 씨이발,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반신 전체가 좋지 않은 감각이었다.

“…괜찮, 아요…?”

그의 품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울렸고, 장훈이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감싸안은 지은이 그를 올려다보며 묻고 있었다. 그제서야, 장훈은 그가 계속해서 그녀를 껴안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렸고, 한 발 물러나 팔을 풀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급하게 달려온 듯한 종업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등이 차웠다. 그가 젖은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오 분 남아서 어떻게 갚나 생각했는데 이래 갚네.”

“오 분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지은이 물기로 굳어있는 장훈에게 종업원이 내준 수건을 건넸다. 장훈이 수건을 받아 물이 튄 머리와 목을 닦았다. 와중에도 말을 멈추지는 않고서. 조금은 웃음을 띄고 있는 듯도 했다.

“그러면 지은 씨가 내한테 또 갚아야지.”

“이자 붙이실거예요?”

“응. 붙여야지. 내는 커피를 맞았는데.”

“…그럼 저도 이자제한법 위반으로 신고할거예요.”

말은 뾰족하게 하면서도, 지은이 마른 수건으로 장훈의 등을 꾹꾹 눌렀다. 보드랍게 움직이는 하얀 수건에 갈색 자국이 배어났다. 장훈은 젖은 손을 갈무리하며 그녀에게 눈짓했다.

“갑시다, 가. 집도 가까운데. 요 있어도 그 새끼가 올 것 같지도 않고.”

“…그래야겠네요.”

밖으로 나서, 장훈은 커피 냄새가 진하게 밴 손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욕을 내뱉었다.

“개새끼가 성격 진짜….”

“죄송해요, 저도 그렇게 막 나갈줄은….”

“해주겠다 했으니 내 잘못이지, 뭐. 그래도 빚은 받을거요. 나도 한 600프로는 붙여야지.”

“설마 커피 여섯 번 대신 맞게하는 건 아니죠?”

그녀가 조금은 심통이 나서 중얼거렸고, 장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상상 참. 

“내 아무리 성격이 지랄맞아도 인생에 커피 맞을 일이 여섯 번이나 있으까.”

“몰라요, 드라마에서는 검사들 별별일 다 당하던데.”

막, 차에 치이고 살해당하고... 부루퉁한 설명에, 그는 조금 더 웃었다. 그를 따라 그녀도 웃었다.

“내는 그리 정의롭지 못해서.”

“그럼 안 정의로우신 검사님은 차에 치이기 전에 들어가세요, 빨리 가서 씻고 하시는게….”

“그러께요. 그럼 내 가께-.”

거기서 장훈의 말이 멈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어 시간 전으로 돌아가서 장훈의 머리를 때리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조금 급하게 양복 마이를 챙겨들고, 핸드폰과 지갑을 들고, 그리고...

"...검사님?"

"...씨발."

데스크 위의 챙겨오지 않은 집 열쇠가 뚜렷하게 그려졌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지은의 눈이 커졌다.

"집 열쇠를 놔두고 오셨어요?!"

여느 때보다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스쳤다. 괜히 머쓱해진 장훈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그르케 놀랄 일인가."

"네. 지금 자신의 상황을 보면 모르시겠어요."

하긴, 지금 그의 꼴이 말이 아니긴 했다. 몸에서 커피 냄새가 멈추지 않으니, 걸어다니는 방향제랄까. 그것 뿐만이 아니라, 지금 그의 등에는 넓은 갈색 자국이 남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흘끔흘끔 쳐다볼 만큼 큼지막한. 차라리 핏자국이면 무서워서라도 빨리 지나치지, 이건 뭐 길가다가 흙탕물에 엎어졌나 할 것이다. 욕이 절로 나왔다.

"하, 좆됐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별 수 있나. 다시 가가 가와야지."

젖은 옷으로 차를 타기도 찝찝할테고, 무엇보다 씻고싶지만 별 다른 방법이 있나. 그는 말라서 뻣뻣한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나.

"...검사님."

"와요."

"이자 비싸요?"

뜬금없는 소리에, 장훈은 지은을 쳐다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 그를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에,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했다. 그녀는 분명 뭔가를 가지고 있는 눈빛이었으니까.

"상황 따라서."

"나, 빚 지금 갚을게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도 그 자신감을 믿어버렸다. 

어두워지는 황혼의 시간이었다.

글러지만 글러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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