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7시 


루꺄, 일어날 시간이야. 그 말에 번쩍 눈이 뜨였다. 물 갖다 줄게. 상체를 일으켜 침대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뭉친 근육을 풀고 있자, 엘리엇이 물잔을 건네었다. 고마워. 목을 축인 후, 그의 입술에 짧게 입맞추었다. 

"옷 안 입었네."

그는 브리프에 집업 후디만 걸쳤다. 꽁꽁 싸매어 아침을 맞이해주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이제는 너가 알고있으니까."

"좀 잤어...?"

그가 혹시나 또 잠을 자지 않았을 까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침 만들었어. 샤워하고 와." 

알겠어. 두 손을 그에게 뻗었고, 그는 내 손을 붙잡아 나를 일으켜주었다. 발 밑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 화장실로 향했다. 



7시 30분


아침은 간단하게 크루아상과 커피, 스크램블드 에그였다. 그와 식탁에 마주앉아 아침을 같이 먹자니,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그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제랑 똑같은 옷 입고, 너랑 같이 등교하려니까 이상해." 

"왜? 부끄러워? 내 옷 빌려줄까?"

"... 아냐, 누가 봐도 니 옷인 거 알 텐데. 그게 더 이상해."

뭐 어때, 너 이제 내 껀데. 귀여운 루까. 그 말에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그는 소리내어 웃으며 내게 키친타올을 건네었다. 

"아, 우리 벽화 완성해야 해."

"헐....잊고있었어. 벽화."

"다프네가 들으면 엄청 화 낼 거야. 방금 그 말."

"내일 할까? 학교 마치고?"

"그래, 그러자."



8시 40분 


결국은 엘리엇의 옷을 입고 등교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을 다 먹고, 같이 식탁을 정리하던 도중, 키스하다가 옷에 커피를 쏟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엇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 같다. 그에게 추궁을 해도, 빙그레 웃기만 했다. 팔길이도, 품도, 조금씩 큰 그의 맨투맨 티셔츠로 갈아입고, 같은 버스를 타고, 나란히 정문을 통과했다. 

"루카, 루카! 너!"

멀리서 나를 보자마자 달려온 다프네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내 옆에 엘리엇이 서 있는 걸 보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와 대박... 그러니까 사실인 거지? 너랑..엘리엇..."

다프네는 엘리엇과 나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고, 엘리엇은 너가 생각하는 게 맞다며, 내 정수리에 입 맞추었다. 그러자 다프네는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루카!! 축하해~~!!"

"그래, 고마워. 참, 벽화는 엘리엇이랑 내일 마무리할게. 꼭."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15시 35분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데, 내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드니, 클로이였다. 안녕, 루카스. 클로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클로이. 

"어제, 마리아가 얘기해주더라. 너가 어떤 남자애랑 손잡고 학교를 나갔다고. 인상착의를 들으니까 앨리엇 같더라고." 

"아..."

"지난 번에, 네가 말한 좋아한다는 사람이, 앨리엇이었던 거지?"

"응."

"이제서야 이해가 되더라, 너가 왜 그렇게 내게 무관심했는 지, 소극적으로 반응했는 지. 왜 내 파티를 거절했었는 지."

"...그 때 일은 진짜 미안해."

"괜찮아. 더 이상 사과 안해도 돼. 그냥, 말해주고 싶었어. 둘이 잘 만나면 좋겠다고."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환하게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너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랄게. 



금요일 17시 05분


얀, 바질, 아서와 함께 foyer에서 벽화를 다시 꾸밀 수 있도록 정리해놓은 후, 엘리엇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래서, 여기로 온다고? 앨리엇이?"

"응. 수업 마치고 같이 벽화 그리기로 했어." 

도대체 엘리엇이 누구냐는 바질의 투덜거림에, 얀과 아서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제발 눈치 좀. 아서가 불평했고, 나는 보면 바로 알 거니 걱정말라고 위로해줬다. 

"아, 친구들도 와 있었네."

엘리엇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에 서 있는 그에게로 걸어갔다. 왔어? 가볍게 입 맞추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너 올 때까지,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고 있었어. 얀, 아서, 그리고 바질." 

엘리엇은 친구들과 차례대로 악수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바질 차례가 되었고, 바질은 그제야 머리를 쥐어 뜯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너였구나! 이제야 생각났어!!!!"

"만나서 반가워, 바질."

"루카, 네 남친 존나 잘생겼잖아??"

"그래, 너가 왜 다프네를 좋아하는 지 알겠어." 

"엘리엇, 담주 수요일에 우리 공원에서 쉴 건데, 루카도 있을 거니까, 너도 올래?" 

 얀이 엘리엇에게 제안했고, 엘리엇은 가겠다며 응했다. 

"너 수업 없어?"

"반나절빼는 건 괜찮아." 

너 얘 아빠 아냐, 아서의 말에 얀과 바질이 웃었다. 수요일에 앨리엇도 같이 하기로 약속을 받은 후, 친구들은 다음 주에 보자며 foyer를 떠났다. 



17시 15분 



알렉시아가 가져다 놓은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했다. 애플뮤직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팔을 걷어부쳤다. 앨리엇과 나란히 벽화를 마주보고 섰다. 

"그래서, 어떻게 꾸밀지 생각해봤어?"

"마지막에 생각난 거 있어."

뭔데? 엘리엇의 물음에 내가 답한 건 우주, 였다. 

"무한한 우주의 지구에, 수 많은 엘리엇과 루카스가 살고 있을 테니까. 어때?"

우주를 담은 엘리엇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는 끝없는 입맞춤 세례로 답했다. 

"넌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루꺄"



22시 25분


엘리엇과 함께 쉐어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우리의 꼴은 엉망이었다. 벽화를 다시 꾸미는 동안 페인트로 장난을 치기도 했고, 서로의 몸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옷은 버려야겠다. 바디샴푸로 몇 번을 문지르고 씻어내어도 페인트 자국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페인트 자국을 모두 없애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소파는 두 명이 나란히 눕기엔 너무나 좁았다. 둘 사이에 남겨진 공간없이 꼭 껴안은 채로 누워있어야 했다. 내가 늘 쓰던 바디샴푸의 향기가 그의 몸에서 감돌았다. 옷을 입었지만, 그의 체온이 옷 너머로 전해졌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앨리엇."

그는 대답없이 내 이마에 입 맞추었고, 나는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토요일 11시 7분 


시끌시끌한 소리에 잠이 깼다. 곁에 있어야 할 엘리엇이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니 부엌에서 미카와 마농이 엘리엇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을 확인했다. 며칠 휴대폰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더니 엄마에게 메세지가 와 있었다. 

[루카스. 나는 네가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를 사랑했단다. 앞으로도 그럴 거야. 널 자랑스러워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엄마]

[고마워요 엄마. 엄마가 원하는 날의 미사랑 저녁 식사 모임에 꼭 갈게요.] 

제일 걱정했던 엄마였다. 사탄이니 뭐니, 그런 반응을 하실 줄 알았는 데, 답장은 너무나 의외의 것이었다. 그동안 전전긍긍했던 순간들이, 일순 의미없는 것들로 변했다. 약간, 허망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나를 짓눌러온 엉킨 매듭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안녕 루카스, 나 루씰이야. 엘리엇 관련으로 이야기할 게 있어. 시간 될 때 연락 줘. 가능한 엘리엇은 모르게. -루씰]

그 뒤에 온 문자는 루씰이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안 거지? 

[안녕 루씰. 연락 확인이 늦었어. 무슨 말이길래 앨리엇 모르게 만나야 하는 거야? - 루카스] 

답장을 보내고 부엌으로 갔다. 마농과 미카가 부엌으로 들어선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었다. 앨리엇은 요리를 하고 있었다. 

"뭐야, 지난번처럼 스크램블 만드는 거야?"

잘잤어? 엘리엇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짧게 입맞춘 뒤, 레인지로 돌아가 주걱으로 달걀을 마저 휘휘 저었다. 미카와 마농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건..?"

먹을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스크램블을 가리키자, 그는 의기양양하며 팬을 내게 보였고, 마농은 인증되지 않은 미확인 음식이라고 했다. 앨리엇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스크램블에 뭘 넣은 거야, 앨리엇?"

"회향이랑 계피!"

"미안, 루카스. 말릴 새도 없었어."

아니, 며칠 전에는 정상적인 스크램블 잘 만들었으면서, 왜 갑자기 실험 정신을 발휘한 거지..? 약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앨리엇은 머핀도 만들어야 하는 데, 왜 블루베리랑 베이컨은 없냐며 약간 칭얼대듯이 말했다. 

"루카스, 응급실에 가야되면 불러. 네 위장, 열일해야겠네."

마농과 미카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식탁에 앉아 턱을 괴었다.

"내 아침에 네가 있어서 좋아." 

 요리하던 앨리엇이 뒤를 돌아 싱긋 웃었다. 그래, 위장 그 까짓거, 사랑하는 사람위해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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