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전에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줌 화상회의로 [아픔몸과 함께 삽니다]를 참관했다.

http://neutinamu.org/page/s1/s3_1.php?seq=120&fbclid=IwAR3p4mZXUq3P1LnshsvTZV65xtc55PrF5ZuzoK2d_0pPdU7IXPSoXsb5ctU

질병권, 질병인과 비질병인(이 단어는 언제 들어도 생소하다), 돌봄 두레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연히 여성학적 측면이 들어간 대화였다. 대화에서는 그동안 K방역을 찬양하느라 하지못한 아쉬움들도 이야기했다. 마을과 공동체, 즉 코뮨은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공동체의 문을 닫고, 모두 비대면 배달로 돌려버렸다. 그러는 사이 공동체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해고됐다.(사실 나는 우리나라에 공동체가 존재한다는것에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긴 하다) 단순 확진자 비율로만 따지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방역이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픔은, 고통은, 질병은 "바이러스"를 넘어선다. 코로나로 인한 낙인이 두렵냐는 질문에서 90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아파선 안 된다"는 처절한 인식을 반영한다. 코로나 시기, 전세계 너나할거 없이 주식시장은 급등했다. 이 위기상황에서 노동 자체가 위태로우며, 노동자본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으면, 아픈 사람은 얼마나될까. 그 아픔을 숨기기 위해서, 여기서 떨어지면 이제 나는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그 절박한 심정으로 아파도 일을 한다. 그러는 사이 가장 먼저 밀려난건 20대 여성이었다. 코로나에 접어들어 일자리를 잃게된 가장 연약한 이 집단의 자살률은 수직상승했다. 정부는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어 "아프면 쉬라"는 지침이 내려왔지만 실제로 쉴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될까? 나의 경우 코로나 초기에 일을 그만뒀다. 물론 아파서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쉬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질병인이 디폴트인 사회.라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의 범주는 무엇인가"를 정하는 매우 첨예한 문제이다. 손상은 어디까지 케어해야할 것으로 여겨지는가, 손상입은 사람은 그 사회적 위치또한 손상입은 것인가. 등등. 사회는 "건강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있다. 사회는 당연히 "쓸모있는"사람을 필요로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늘 "쓸모있는"상태이지 않으며 기실 "쓸모없는"상태일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노동방식을 바꿔야 한다. 빈말이 아닌 정말로 "아프면 쉴 수 있는"세상이 되어야 안정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코로나가 "풍토병"이 될꺼라는 말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말인즉, 우리는 이 병과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병이 없이 살다가 갑자기 병을 맞이한 세상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판데믹으로 드러난 것 뿐이지, 병은, 아픈 사람들은 늘 주위에 있었다. 전 세계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이제 조금씩 우리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병권에 대해서, 아픈 사람에 대해서, 고통과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범주를 다시 짜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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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여자. 선천성 심장장애인으로의 삶을 기록합니다. 트위터: @kim_me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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