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속의 주인공은 게르만과 인형이다. 게르만은 지금처럼 휠체어에 타고 있지도 않았고, 내가 본 모습보다 더 젊어보인다. 아마도 과거의 환영인 것 같다. 처음 사냥꾼의 꿈에서 게르만을 만났을 때, 그가 인형을 언급하는 말투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환영 속의 게르만은 세상 누구보다도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인형에게 보내며, 온 마음을 담아 땀범벅이 되어 축축해진 금발의 인형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니, 인형이 아니다. 인형이 땀을 흘릴 리가 없고, 머리카락의 색도 회색빛이 약간 감도는 금발이다.


"난 누구보다도 자네를 아끼고 사랑한다네. 내 가장 소중한 제자이자, 위대한 자의 어머니 마리아. 이제부터 우리는 긴 사냥꾼의 꿈을 꾸는 걸세. 우리가 야수병의 원인을 모두 부술 때까지 말이야. 위대한 자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이야."


게르만이 금발의 여자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물 속에서 들리듯 아득하게 들려온다. 마리아라고 불린 인형과 닮은 여성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듯 멍한 눈빛으로 선생님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이다.

게르만과 마리아가 있는 장소는 사냥꾼의 공방인 것 같았다. 익숙한 물건들과 익숙한 배치. 마리아는 거의 바닥에 누을 듯이  공방 중앙의 작업대에 겨우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붉은 얼룩이 보였고, 오른팔로 마리아를 보듬는 게르만의 왼팔에는 작은 형체의 생물체가 안겨 있었다. 작고 기묘한 형태의 그것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환영 속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었다.



장면이 바뀌며, 금발의 여자는 사라지고 게르만과 이상한 형태의 괴물이 보였다. 피부나 근육은 보이지 않고, 그저 붉은 빛을 내뿜는 골격이 전부인,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선 생물체다. 팔다리 형태의 골격과, 사람의 엉덩이 부분에서 뒤로 쭉 뻗은, 길고 굵고 거칠어보이는 촉수, 얼굴로 생각되는 부분에는 뻥 뚫린 구멍이, 머리카락 대신 뱀같은 형태의 촉수가 뒤로 뻗쳐있다. 괴물은 몸을 숙여 게르만의 귓가에 얼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져갔다. 마치 무슨 말을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몸짓이었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름 없는 위대한 자여, 당신의 약속을 잊지 마시오. 당신의 아이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할 것이고, 교단의 로렌스와 루드비히가 이루어냈듯이, 나의 사냥꾼들도 사냥을 하는 동안 죽음을 피해 꿈을 꾸어야 할 것이오."


게르만은 몸을 숙인 괴물에게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이름 없는 위대한자는 여전히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숙였던 몸을 조금 일으켜세우고는, 얼굴 위치에 있는 뻥 뚫린 구멍을 게르만 쪽으로 향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게르만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미동도 없이 텅 빈 구멍 안을 응시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른 환영은 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버려진 사냥꾼의 공방. 사냥꾼의 꿈이 무엇인지, 사냥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떠밀리듯 내 손에 쥐어진 톱칼과 단총으로 야수들을 죽여오다가, 갑작스럽게 사실 이런 과거가 있었소, 라며 두 눈 앞에 게르만과 괴물이 모습이 펼쳐지니 당혹감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메웠다.


이름 없는 위대한 자, 그의 아이를 낳아준 대가로 사냥꾼들은 불사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 효과는 게르만이 요구했듯 사냥꾼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 걸쳐진 애매한 꿈이라는 형태를 통해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빠르게 늘어가는 야수의 숫자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요했던 조치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꿈은 위대한 자의 힘을 빌려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름 없는 위대한 자와의 계약으로 사냥꾼의 꿈이 만들어졌고, 그 중심에는 게르만과 마리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마리아라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지, 아니면 게르만에게 휘말린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사냥꾼의 꿈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게르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공방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 답답할 뿐이다. 그저, 한없이 부족한 정보만으로도 골치아픈 일에 휘말린 것같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보아서는 안 될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어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나는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을 살펴보았다. 손 안으로 파고들었던 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끔찍하던 두통도 환영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공방의 구석에는 여전히 꿈 속의 인형이 인형답게 얌전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 그래, 어쩌면 저 인형도 사냥꾼처럼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에서 한 걸음 비껴나있는 영생을 부여받은 사냥꾼처럼 인형도 이해할 수 없는 생명력을 제공받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초점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생기없는 인형의 눈에서 환영에서 보았던 마리아가 떠올랐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은 두 얼굴. 누군가가 마리아를 본 따 인형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렇게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나는 사냥에 도움이 될 만한 장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교단의 공방을 찾아온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게르만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교단의 공방에서 빛나는 칼잡이 사냥꾼의 증표를 찾았던 것처럼 여기 사냥꾼의 구공방에서도 사냥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있지는 않을까 천천히 조사를 시작했다.

약품을 정리해두던 찬장에서 작은 머리빗을 발견했다. 꽤나 정성이 들어간 수공예품으로 보이는 머리빗은 인형의 옷에 수놓인 문양과 비슷한 문양이 고이 새겨져 있었다. 인형을 위한, 어쩌면 마리아를 위한, 장식품인 모양이다. 바깥에서 발견한 인형의 여벌 옷과 머리 장식이 사냥꾼의 공방에 있는 것을 보면, 인형은 마리아를 흠모하던 어떤 사냥꾼의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수를 사냥하는 비정한 마음에도 누군가를 흠모하는 애정이 깃들 수는 있는 법이니까. 머리장식은 사냥복의 안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꿈으로 돌아가면 인형에게 전해주리라 생각하며.


공방 내에서는 더 쓸만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온 곳과 다른 출입구로 나갔더니 비석 앞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뼈가 놓여있었다. 사람의 뼈일 것 같았지만, 뼈의 양 끝이 뭉툭하게 닳아있어서 어느 부위의 뼈인지는 추측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쓸 데가 없다면 공방의 보관함에 넣어두면 된다고 생각하며, 우선은 챙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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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글쟁이를 꿈꿨던, 전업 글쟁이는 포기했지만, 글은 포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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