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그 좋아하던 모란을 한아름 안고 떠났다.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천을 자르고 실로 엮어 만든 모란이었다. 부드러웠지만 염색이 거칠었다. 햇빛에 말릴 수 없었던 탓이었다. 아내는 그런 모란도 괜찮은지 꽃 위에 얹은 손이 천꽃잎 하나 뭉개지 않았다. 아내의 손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차가웠고 딱딱했다. 아내가 처음으로 가진 꽃밭 주변에 쳐둔 울타리 같았다. 아내는 이 손으로 그 울타리를 몇 번이고 만졌다. 그 울타리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들어, 이제 누가 실수로 밟지도 않을테고 여우가 지나가더라도 한바퀴 빙 돌아서 갈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 꽃밭이 내 거라는 표시잖아. 호오, 여보 거야? 내가 안 도와줘도 괜찮아? 안 도와줘도 돼. 하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고맙겠어. 아내가 웃었다. 아내의 웃음소리에는 봄 햇볕에 봄벌레가 죽는 향이 났다. 나는 나무보다 뻣뻣한 그 손을 잡고 연신 고개를 바닥으로 쳐박았다. 아내의 손에서부터 올라오는 찬기운에 내 손이 차가워져도 상관없었다.

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꽃이었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지만 평지가 넓어 꽃을 심기에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겨울을 꽃을 팔아 번 돈으로 버텼다. 겨울도 그렇게 춥지는 않아 눈보다는 비가 많이 왔고 어쩌다 눈이 내리면 어른이고 아이고 뛰어나와 눈을 맞았다. 하지만 아내가 떠나고 반년 후 눈이 내리기 시작한 뒤로 멈추지 않았다. 봄이 왔어야 할 시기에도 눈이 왔고 수국이 필 계절에도 사람들은 두터운 옷을 입었다. 겨울이 계속 되자 마을 곳곳에 있던 꽃집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인근 마을에 장이 설 때마다 몇 봉우리고 산을 넘어 꽃을 팔러 가던 상인들도 화로 앞에만 있어야 했다. 눈 때문에 땅이 얼어 농사가 될리도 없었다.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싱그럽게 피어 있던 꽃들도 눈에 고개를 숙이고 흙빛으로 말라갔다. 꽃으로 살아온 이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송이에 웃음을 짓던 얼굴들은 이제 눈송이에 입꼬리를 무겁게 내렸고 무거운 눈 때문에 자꾸만 내려앉는 지붕을 욕했다. 기온이 더 내려가 눈이 한층 더 두껍게 쌓이는 새벽마다 마을 어디선가 지붕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수탉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는 것처럼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눈을 떴다.

나는 꽃을 팔러 다니는 상인이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좀이 쑤시는 방랑벽 덕분에 체질에 맞는 직업이었다. 산은 매일 모습을 바꾸어서 처음에는 길을 익히기가 어려웠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매일 변하는 그 길 덕분에 장을 가는 게 지루하지 않았다. 사라진 봄은 나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팔 꽃들은 눈에 짓눌려 죽어갔고 나에게 꽃 봇짐을 지어주던 꽃집은 문을 닫았다. 마을 사람들이 한숨을 쉰만큼 나도 한숨을 쉬었지만, 그들과 다르게 나는 배를 곪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고 몇 년이 지나자 지붕에서 벼나 밀, 옥수수 따위가 자라 매달렸다. 처음에는 이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손도 대지 않았지만 그것의 양은 점점 많아져갔고, 짚단으로 엮어 만든 지붕이 겨우겨우 눈을 버티고 있는데 이러다 작물 때문에 지붕이 무너질 것 같아 떼어냈다. 꺼림칙했다. 집 바로 뒤쪽에 묻어놓은 아내를 빨아먹은 것 같았다. 눈이 언젠가 그칠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사라지면서 그 작물들에 가지게 되는 반감도 같이 줄어들었다. 이윽고 아내가 떠나가며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깅코는 습,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코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깅코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여러 작고 큰 서랍들이 빼곡이 차 있는, 나무 상자에 가까운 가방이었다. 등에 닿는 부분을 열어 잘 접어놓은 코트를 꺼내 입었다. 코트를 꺼내면서 딸려나온 목도리도 머리부터 턱까지 둘렀다.

“갑자기 추워지는군.”

발꿈치가 닿아 있는 땅과 신발 코가 닿아 있는 땅이 달랐다. 깅코는 뒤쪽을 돌아봤다. 깅코의 뒤쪽 길에는 푸릇하게 풀이 돋아나고 땅은 언 곳 없이 부슬부슬했다. 깅코의 발돋움에 짓밟힌 새싹도 있었다. 따뜻한 공기, 바람이 이따금 불긴 했으나 선선하고 습기가 없어 기분 좋았다. 흠, 깅코는 다시 자신의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이 단단히 얼어 있었다. 나뭇잎들은 모조리 떨어져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언덕 아래쪽에 있는 마을은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고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이 없었다. 집 몇 채의 지붕은 무너져 마을 사람들이 급하게 수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깅코는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이제 막 지기 시작했지만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깅코는 지금이라도 뒤를 돌아서 노선을 바꿀까, 했지만 여기 외의 마을에 대해선 들어보질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곳은 외길이었다. 깅코는 담배연기를 푹 뱉었다. 한숨이 바깥으로 드러나보였다. 생각은 잠깐이었고 눈 쌓인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깅코가 머리에 두른 목도리에 눈이 떨어져 녹았다. 언덕 위에서 봤던 것처럼 마을은 무너져 내린 지붕을 수리하느라 부산스러웠다. 사람들은 몇 안되는 자재를 옮기다가 우뚝 서서 숨을 골랐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도 버거운지 신음을 줄창 냈고 지붕 수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한숨을 쉬고 있었다.

“봄은 언제 온대?”

“딸이 그러는데, 거기는 벌써 봄이래.”

“몇 번째 봄을 넘기는거야? 도대제 우리 마을은 왜 이러는거냐고.”

끊이지 않는 푸념들을 깅코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동그랗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슬그머니 끼었다. 사람들은 짧은 호흡으로 대답을 원하지 않는 혼잣말을 떠들어댔다. 봄이 오지 않는다, 몇 번째 봄을 넘긴거냐, 돈이 이제 다 떨어져간다, 가게에 있는 쌀도 거의 다 떨어져가고 가격이 치솟는다, 다른 마을에 가서 구해와야겠는데 배고파서 움직이지를 못하겠다, 우리는 곧 죽게 될 게 뻔하다……. 화로를 상대로 해도 상관없을 말들이었다. 이 시기라면 바쁘게 꽃들을 수확하거나 농사를 지어야할 몸들이 가만히 있어야하는 겨울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밖에 나왔고 바깥에는 화로가 없으니 사람을 상대로 푸념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봤자 원하는 대답이 돌아올리 없었다. 외지인이 말을 엿듣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더더욱. 깅코는 마구잡이로 터져나오는 한숨들을 듣고 있다가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여관이 어딨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이 없어보였다. 깅코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했다.

“스즈키! 짚단 좀 더 갖다줘!”

“금방 갑니다!”

힘찬 목소리였다. 깅코는 고개를 들어 마을을 뛰어다니는 사내를 바라봤다. 남들은 짚단을 하나만 져도 힘겨워하는데 그 사내는 몇십 단을 짊어지고도 멀쩡해보였다. 눈에 생기가 돌았고 열심히 뛰어다녀 뺨이 붉었다. 숨을 몰아쉬어도 그것이 곧 죽을 것 같은 숨이 아니었다. 언제든 다른 곳으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깅코는 사내가 짚단을 갖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말을 걸었다.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만, 오늘 묵을 곳이 좀 필요한데 여관이 있습니까?”

“여관이 있긴 한데 오늘 여관 지붕이 무너졌거든요…….”

사내가 가리킨 곳에 이층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사다리를 대고 짚단을 쌓으며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깅코는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말을 입밖에 냈다. 사내가 곤란한 듯 웃었다.

“괜찮으시다면 제 집에서 머물다 가시죠.”

“어쩔 수 없군. 신세 좀 지겠습니다.”

사내는 깅코보다 앞장서 걸었다. 사내의 옆으로 마을 사람이 지나갔다. 혈색조차 돌기 힘들어보이는 마른 몸들. 얼어붙은 입김이 마지막 숨결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옆에 적당한 몸집의 사람이 있는 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이 마을이 좀 독특한 것 같은데.”

“사계절 중에서 봄이 제일 긴 마을이었는데 겨울이 온 뒤로 계속 겨울이에요. 봄이 돌아오질 않네요.”

“겨울만?”

깅코는 마을 사람들과 낮게 깔린 기분 나쁜 기운들을 둘러보다 다시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마을이 이상한 건 둘째치고, 이 사내는 왜 이렇게 활기찬거지? 마을 사람들과 친한 걸 보니 외지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쪽은 꽤 잘 먹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이 겨울에도.”

“그래보입니까?”

사내는 멋쩍게 웃었다. 이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깅코는 사내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사내는 깅코보다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이 따로 없고 중앙에 화로가 있는 다다미가 깔린 넓은 공간과 그 공간 옆에 붙어 있는 부엌이 전부인 집이었다. 집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화로를 피워놓아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다미부터 지붕까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집의 어느 구석도 차가운 곳이 없었다. 깅코가 사내를 뒤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사내가 깅코를 막아세웠다.

“집 안이 더러워서,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 마을에 외지인이 온 건 정말 오랜만이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정 그러시다면, 깅코는 문 옆으로 비켜섰다. 사내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또 자라난 옥수수와 벼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얼른 떼어내 품에 담았다. 바쁜 발걸음이 부엌으로 향하고 아궁이 옆에 있는 짚 상자를 열었다. 그 곳에는 옥수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내는 한쪽 팔 안에 옥수수를 챙겨들고 상자 안을 정리했다. 어떻게 만들어낸 빈틈에 떼낸 옥수수와 벼를 쑤셔넣고 뚜껑을 닿았다. 그 위에 솥을 올려놓고서야 깅코를 집 안으로 들였다.

깅코는 집에 들어서며 담배를 꺼트렸다. 변하는 기온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몸 안 쪽이 얼어붙는 것 같아 숨도 제대로 들이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가방을 화로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내려놓고 목도리와 외투를 벗어 가방 위에 덮어두었다. 화로 옆에 앉았다. 사내는 부엌 입구에 서서 깅코를 눈으로 쫓았다.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집에 남은 게 옥수수 두어개 뿐이네요.”

“아, 됐습니다. 그리 허기지진 않아서.”

“다행입니다.”

사내는 현관 근처에 벗어둔 설피와 장갑, 목도리를 다시 챙겨들었다. 마을에서 짚단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탓에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아내가 집 안에 작물들이 나게 해준 이유가 그것일 터였다. 신에 단단히 설피를 묶고 낡아 손바닥 부분이 다른 곳보다 밝은 빛인 장갑을 꼈다. 눈 아래쪽을 다 덮도록 목도리를 두르고는 문을 열었다.

“잠시 집 좀 부탁합니다. 해가 다 지기 전에 지붕이 무너진 걸 하나라도 더 고쳐야해서요.”

혹시 도둑은 아니죠? 사내가 장난스레 웃었다. 깅코는 웃음을 터트렸다.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털어갈 것도 없을 겁니다.”

사내는 문을 닫았다. 깅코는 불에 가까이 붙어 두 손을 비볐다.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리고 이따금 그 바람이 문을 흔들었다. 모든 창문에 방풍지를 덧대놓긴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집이 따뜻했다. 바람소리만 없다면 바깥이 겨울이라는 걸 눈치도 채지 못할 것 같았다. 건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봄처럼 집 안이 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서툰 손길로 만들어 짚이 돗자리를 뚫고 올라와 있는 다다미도 약간의 수분을 머금고 있어 이 짚에 손가락이 찔려 다칠 것 같지 않았다. 이 마을을 만나기 전 마을에서 꽃의 공급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봄이 찾아왔고 이맘때 쯤이면 옆 마을에서 꽃장수가 찾아왔는데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그 옆 마을이 여기군.”

봄이 제일 길었던 마을이라던 사내의 말,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전 마을에서부터 길게 나 있는 외길. 그렇다면 꽃으로 벌어먹고 살던 사람들이었단 뜻인데 예상치 못한 겨울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 집주인은 너무나 멀쩡했다. 젊음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깅코는 따뜻하게 본래 체온으로 돌아온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났다. 사내가 막듯이 서 있던 부엌 입구로 들어갔다. 솥 안 쪽에 손을 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옥수수 두어개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무엇을 요리해 먹은거지? 부엌 선반이란 선반은 모두 살펴보고 상자들을 열어봤지만 방금 씻은 듯한 수저들이나 그릇 따위의 단서들만 있을 뿐이었다. 시선을 낮춰 아궁이 근처를 천천히 둘러봤다. 쉬고 있는 솥 아래에 짚 상자가 깔려 있었다. 깅코는 솥을 옆으로 치워두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옥수수나 벼, 밀 따위가 가득 차 있었다. 호오. 깅코는 흥미롭다는 듯 소리를 냈다.

“뭘 보고 계신겁니까?”

사내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 급하게 달려오기라도 했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깅코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상자가 보이게 옆으로 비켜섰다. 사내는 옥수수가 가득한 상자와 깅코를 번갈아보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숨기던 것을 들켜 그것을 발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분노가 아니라 후회와 죄책감으로 뒤엉킨 표정이었다. 사내는 상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깅코는 그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상자를 덮었다.

“소문낼 생각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시죠. 이 마을에 겨울만 들이닥치는 것도 어쩐지 이유를 알고 있는 표정이신데.”

“……말해도 믿지 않으실겁니다.”

“저는 충사입니다.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제 분야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사내는 괴로워 떨어트린 고개를 들어 깅코를 바라봤다. 흰 머리카락에 푸른 외눈박이, 창백한 피부. 기이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외지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아닐까 싶은 외모를 들어봤던 것도 같았다. 꽃바구니를 등에 매고 다니며 온갖 마을을 전전하는동안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같은 일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말에는 항상 ‘충사’들이 있었다. 의사도 노련한 원로들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사람들이 해결해줬다는 얘기.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에 둘러둔 목도리를 벗어 현관 옆에 두었다. 그 짧은 사이에 땀이 배어나왔는지 뒷목이 번들거렸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앉으세요.”

사내는 깅코와 화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사내는 길어진다는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부지깽이로 잿더미만 뒤적였다. 깅코는 사내와 부지깽이를 번갈아보기만 할 뿐 재촉하지 않았다. 사내는 검은 눈동자에 불꽃을 한참이나 담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면 그 불이 꺼질 것처럼,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사내는 그저 가만히 숨만 고르고 있었다. 자신이 할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잠시 정리해보더니 그것도 이내 멈추었다. 사내의 차분한 목소리는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나는 유독 겨울이 긴 마을에서 아내를 만났다.이번에는 꽤 먼 마을까지 가서 꽃을 팔겠다고 설친 것부터 문제였다. 눈이 많이 오는 마을에 가면 꽃을 많이 팔 수 있을테니까 그 마을에 우리 마을의 꽃들을 모두 가져다 팔 것처럼 지게를 그득그득 채웠다. 한송이는 가볍지만 그 한송이가 백송이, 수천송이까지 되면 어깨를 누르는 무게도 상당했다. 그 마을로 꽃을 팔러 가는 상인은 몇 없었는지, 아니면 잘 골라진 길이 눈에 뒤덮혀 보이지 않는건지 나는 거친 길을 걸으며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나는 노을이 지는 것을 산 중턱에서 봐야했다. 큰 바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걸터앉았다. 신에 설피를 끼우며 산 정상을 올려다봤다. 산 정상에 다다를 때쯤에는 해가 질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길을 잃게 된다면 이 무거운 모란들을 전부 태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예상은 조금도 엇나가지 않았다. 산 정상에 다다르자 기온은 뚝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얀 눈이 달빛을 받아들여 앞이 칠흑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태운 모란을 담아 들고 다닐 수 있는 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마을에서 떠날 때 밤을 산에서 보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터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추위라도 피해보려고 주변을 살폈다. 고맙게도 돌과 나뭇가지로 만든 작은 굴이 있었다. 나처럼 해가 지기까지 남은 시간을 잘못 계산한 어떤 이가 만든 모양이었다.

“세상에 바보가 나 혼자 뿐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군.”

나는 그 굴에 몸을 우겨넣고 모란을 하나씩 태웠다. 꽃집 주인에게 이번에는 꽃이 피지 않는 마을까지 가서 꽃을 팔거라고 했더니 이번 주 내내 팔 모란을 선뜻 내어줬는데. 모란들을 하나씩 태울 때마다 300엔… 600엔… 중얼거렸다. 가격이 오천엔을 넘어갈 때쯤이었다. 해가 뜨면 내가 걸어가려고 했던 길을 거슬러 동그란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도깨비 불인 줄 알았던 것은 누군가가 들고 있는 등불이었다. 등불은 잠깐 멈추더니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거기, 괜찮으세요?”

쏟아지는 햇빛을 막기 위해 손을 들어서 눈 앞을 가리면 투명하게 불타던 손끝. 아내는 그 손끝의 색을 닮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모란색이었다. 나는 아내 덕분에 모란을 많이 태우지 않고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는 매일 밤마다 산을 한바퀴 돌며 조난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눈만 많이 오는 이 마을이 명소인 것은 아니지만 이 마을을 지나 조금만 더 나아가면 멋진 겨울 바다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겨울 바다를 보러 오고는 하는데 빨리 어두워지는 지형 탓에 산에서 자주 길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그 겨울 바다 덕분에 마을 여관도 꽤 잘 되고 있고 이 산에서 뛰어놀며 자란 사람들은 어두워져도 산을 헤매지 않으니 몇몇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산을 살피고 조난자를 데려오기로 했어요. 잘 된 일이죠.”

“그럼 그 굴도…….”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거예요. 조난자들을 위해서 산 곳곳에 있어요.”

여관에 사람들이 가득차서 나는 아내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아내는 추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리 사이에 두 손을 찔러넣고서 덜덜 떠는 나를 위해서 화로에 불을 더 지펴줬다. 현관 근처에 기대놓은 지게를 가리켰다.

“저 꽃은 뭐예요?”

“모란이에요.”

나는 지게까지 기어가 모란을 빼 아내에게 건넸다. 이 밤이 지나면 꽃을 팔고 바로 떠날거예요, 그 값이에요. 아내는 모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하나로는 모자란가, 나는 모란 두 송이를 더 내밀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말해준 것이었지만 아내는 내가 꽃을 내미는 장면이 퍽 멋졌다고 했다. 화로의 불에 내 뺨과 눈이 빛나고 그 모란에 쌓였던 눈이 녹아 이슬처럼 맺혀 있는게 갓 꺾은 꽃을 자신에게 주는 것 같았다고. 그 모습에 나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내가 봄이 긴 마을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거라 생각했다. 모란 꽃에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에서 꽃이 피는 계절에 마을 사람들이 부산스레 무슨 일을 하는지로 흘러가고, 그 마을 사람들 중에 한 명인 나는 어떻게 살아오고 살아갈 예정인지 말하다보니 눈이 소복히 쌓여 있던 마을에 풀이 돋았다. 봄이었다. 아내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다 떨어져갈 때쯤에 나에게 혼인을 하자고 청했다.

“우리 마을의 봄은 아주 짧아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갑작스러운 청혼에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트리니 아내도 따라 웃었다.

아내는 혼인식을 치르고 내가 살던 마을에서 살기를 바랐다. 그 대신 혼인식은 아내의 마을에서 치렀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시로무쿠를 빌려 입은 아내는 내가 가져온 모란을 허리띠에 끼우고 옷깃에 빼곡히 채우고, 머리카락을 감추는 와타보우시에도 붙였다. 눈 사이로 꽃들이 피어난 것 같았다. 어때? 아내가 남은 모란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들며 물었다.

“봄이 올거라고 알려주는 전보같아.”

내 말에 아내가 모란 꽃다발 뒤로 얼굴을 숨기며 웃었다.

혼인식을 마친 아내와 함께 빈 지게를 이고 봄이 긴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이 보이는 언덕 위에서 저 알록달록한 마을이 내가 살던 곳이라고 알려주자 아내는 그 자리에서 우뚝 섰다. 색마다 따뜻하거나 뜨거운 열기를 갖고 있는 마을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눈에 그 모든 색들을 담는데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아내는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스즈키, 정말 맑은 곳에서 살았구나.”

“맑아? 밝은 거겠지.”

“아니, 이건 맑아. 밝은 건 눈을 이길 수 없을걸.”

아내는 작은 기침을 했다. 늘 차가운 공기 속에서만 살다가 따뜻한 공기를 맞으니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몸이 따뜻한 곳이 처음이라 그런가봐, 으슬으슬 춥네. 아내가 웃으며 말하니 나도 그럴 줄 알고 넘어갔다. 집에 가자마자 따뜻한 물을 마시고 포근한 이불을 덮으면 금방 몸이 적응해서 나을 감기일 것이었다.

아내를 위해 집 뒤쪽에 작은 꽃밭을 마련해주었다. 아내는 혼인보다 그 선물을 더 기뻐했다. 온갖 종류의 씨앗을 사들여 꽃밭에 뿌리고 매일매일 꽃밭을 살폈다. 흙에 파묻혀 새싹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냐고 몇 번을 물었다.

“그건 아닌데……. 흙을 밀어내지 못하는 새싹은 싹을 틔우더라도 금방 죽을 새싹이야. 흙을 밀 힘을 만드는거지.”

아내는 내 말을 듣고는 피도 눈물도 없네, 하고 말했지만 씨앗들이 싹을 틔울 때쯤에 그 말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떡잎이 흙에 파묻혀 있는 새싹을 봤는데 흙을 치워 그 떡잎을 빼내줬더니 금방 시들어 죽어버렸다고. 아내는 그 이후에도 많은 떡잎들을 구해줬는지, 씨앗 열개를 심으면 하나도 겨우 꽃을 피워냈다. 몇 송이밖에 피어나지 않아도 크게 기뻐했다. 아내가 꽃을 가꾸는 실력은 점점 늘어나 꽃밭 가득히 꽃을 피우는데에도 성공했지만 피어나는 꽃이 많아질수록 아내의 병은 깊어져갔다. 마을에 봄이 한창이라 이렇게 따뜻한데도 계속 춥다고 했다. 아내는 누빔옷을 꺼내 입고서 열기를 머금은 꽃밭에 나갔다.

어느 날, 아내가 꽃들에게 물을 주다가 몸 속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입 밖으로 토해낼 것처럼 기침을 하며 쓰러진 이후로는 꽃밭에 발도 딛지 못했다. 의사들은 이 독한 감기의 원인을 모르겠다며 기침약만 처방해주었다.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폐에 있는 모든 숨을 토해내는 아내를 집에 두고서 꽃장사를 하러 바깥에 나갈 수는 없었다. 미안했지만, 옆 집에게 장사를 부탁했다. 옆 집은 아내의 사정을 듣더니 선뜻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점점 야위어져 가는데 옆 집은 내 장사를 대신 맡아줄 수라도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아내가 떠나는 날에는 집에 있는 모든 이불을 꺼내 아내에게 덮어줬다. 아내에게 아무리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어도 입 안만 따뜻하게 했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얼음물보다 차갑다고 했다. 아내는 추위에 떨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말조차 “추워.” 인 채로 떠났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를 꽃밭에 묻어주었다. 아내가 아픈 동안 무어라도 해야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의 무덤 앞에 앉아서 며칠이고 울었다. 꽃들을 보면 아내가 떠올라 꽃장사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나가봤자 아내의 무덤 앞이 전부였다. 점점 몸이 추워졌다. 너무 운 탓에 기운이 빠져나가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면 아내가 살던 마을의 그 짧은 봄처럼 짧은 겨울이 온 것이라고. 나는 꽃들이 모두 시든 꽃밭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새하얬다. 그 하늘이 한조각 떨어져 눈에 들어갔다. 차가웠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비볐다. 내 손 위로 눈이 떨어졌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눈이다!”

그 뒤로 끝없는 겨울이 이어졌다. 아내의 무덤은 얼어붙어 잡초도 나지 못했다.


“눈은 몇 달이고 그치지 않았습니다. 눈이 차가운 줄 모르고 만지며 놀던 아이들도 눈 때문에 손이 얼어붙는다며, 설피 위로 올라오는 눈들 때문에 신발이 젖는다고, 다리가 눈 안에 쳐박혀 움직이기 힘들다면서 집 안에 틀어박히게 되었습니다. 눈이 희귀하게 오는 곳이니 지붕도 그 많은 눈을 대비하지 못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계속 무너져내리고 있는겁니다.”

깅코는 화로를 바라봤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사내가 이야기를 하는동안에도 옥수수가 자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길고 곧은 줄기 하나에 옥수수가 맺혀 있는 게 고치처럼 보였다. 깅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어 걷어올렸다. 옥수수를 따 길죽하고 질긴 잎을 벌렸다. 잎 안에는 옥수수알이 빼곡하게 부풀어 있는 흰 옥수수가 있었다.

“아, 그래. 집에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 때쯤이었어요. 눈 때문에 무너진 지붕을 수리하려고 온 집안 사람들이 나와 일손을 보탰죠. 그 때야… 배고파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없었고 겨울이 길어진 것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거든요.”

“지금 마을 사람들은 겨울을 저주하고 있더군요.”

“겨울만 저주할까요, 신도 저주하고 있어요.”

사내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끊겼다. 사내는 잔치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최자처럼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옥수수 몇 개를 담은 냄비를 들고 돌아왔다. 깅코는 사내가 그 냄비를 화로에 올리기 전에 옥수수들을 모두 빼냈다. 빈 냄비를 화로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사내는 냄비와 깅코를 번갈아봤다. 냄비를 으쓱였다. 깅코가 고개를 저었다.

“이 옥수수, 눈이 온 뒤로 열리기 시작했을거예요. 그 얘기 하려고 하는 거 맞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깅코가 가져간 옥수수를 돌려줄 것 같아보이지 않으니 빈 냄비를 옆에 내려놓았다. 깅코가 옥수수를 딴 뒤로 그 얘기를 시작했으니 눈치채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깅코는 자신의 가방을 들고와 빼곡한 서랍 중에 하나를 열어 옥수수를 넣었다. 그리고는 들고 다니던 육포를 사내에게 건넸다.

“벌레 중에 허풍선이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겨울에 열매를 맺고 꽃을 틔우게 해서 동물들을 꿰어내는데, 이 집에 있는 녀석도 비슷합니다. 허풍선이랑 같이 공생하기도 해요. 둘이 상성이 좋거든요. 그리고 저 옥수수랑 밀은 이제 그만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저게 없으면 마을에는 정말 먹을 게 없는데…….”

“이 집 안은 화로 없이도 충분히 따뜻해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도 화로을 한번도 꺼트리지 않으시잖습니까. 아마 이걸 계속 드시면 불을 아무리 떼도 추울거예요. 집의 온도만 올라가고요.”

깅코는 사내가 가져온 옥수수를 들어보였다.

“이건 이 집에 있는 녀석의 알집이나 다름없습니다. 옥수수는 한 알, 한 알이 씨앗이니 번식시키기에 알맞아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 옥수수에서 애벌레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깅코는 옥수수를 다시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을 충사라고 소개했을 때도 그러려니 하면서 넘긴게 분명했다. 아예 벌레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듯 했다. 그러니 아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충사들을 소개 시켜달라고 하지 않았겠지. 아니면 의사들이 충사라고 소개시켜준 사람들을 돌팔이라고 돌려보냈을지도 몰랐다. 깅코는 혓바닥처럼 들러붙은 말을 꺼냈다.

“곤충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생명과 아주 가까운, 생명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초록, 혹은 벌레라고 부릅니다. 그 벌레들을 보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충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일부이자 거의 토대나 다름 없어서 벌레를 보는 사람들이 적진 않습니다.”

사내는 입을 살짝 벌리고 깅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에 처음부터 받아들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건 처음이었다. 깅코는 사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에 따른 대답을 해주려고 기다렸지만 사내는 그저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깅코는 헛기침을 했다.

“이 집에 있는 녀석을 ‘둥지벌레’ 라고 합니다. 주로 겨울이 긴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그도 그럴 게, 주변의 온도를 빼앗아 자신의 둥지를 따뜻하게 하는 녀석인지라. 벌레 한 마리는 손바닥 정도 면적의 온도를 빼앗지만 정착하고 둥지를 트는 특성상 여러 마리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마을 면적쯤은 빼앗을 수 있죠.”

깅코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내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내는 여전히 벌레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고 다다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돗자리를 뚫고 올라온, 마르지 않은 짚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 둥지벌레는 아내와 함께 왔다는 겁니까?”

깅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로에 있는 숯의 안 쪽에서 타는 불씨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가방의 제일 윗 칸을 열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숙주의 체온을 빼앗으며 자란 뒤에 여기에 둥지를 튼 것 같습니다.”

사내는 깅코의 담배 연기가 피어올라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연기가 천장에 닿자 큰 바람을 맞은 것처럼 짚이 크게 흔들렸다. 깅코는 한번 더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 천장을 향해 내뱉었다. 깅코의 눈에는 천장 중앙의 가장 높은 부분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따개비처럼 생긴 벌레들이 빈틈없이 차 있는 것이 보였다. 깅코가 내뱉은 담배연기에 따개비들이 도망치며 틈을 벌렸다가 다시 그 틈을 메꿨다. 담배를 아무리 많이 피워놓는다한들 저 둥지벌레들을 쫓아내기는 무리일 것이었다. 등의 움푹 파인 곳을 따라 따개비가 돋아나는 것 같이 불쾌한 감정이 들어 깅코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저 벌레들을 다 내쫓으면 주변 마을에까지 피해가 갈겁니다.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옮겨가거나요.”

“그럼 어떻게…….”

"열을 빼앗아 사는 애들이지만 불로 없앴다는……."

"지금 이 집을 태우란 말입니까?"

사내가 깅코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내려치며 말했다. 집을 태울 수는 없었다. 이 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 집은 아내의 마지막이었다. 눈부시게 밝은 눈만 보며 살아오다 이제야 맑은 것들을 본다며, 이 많은 것들을 언제 다 눈에 담을까, 하는 고민도 이 집에서 했다. 뒤에는 얼어붙었지만 아내가 좋아했던 울타리가 쳐진 꽃밭이 있었고 그 꽃밭에 아내가 묻혀 있었다. 이 집이 불타 사라진다면 어떻게 아내를 그리워하며 버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고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사내가 다다미를 뜯어버릴 듯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깅코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서 가방의 서랍들을 바쁘게 여닫았다. 깅코는 약첩 두뭉치를 엮어 사내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거 먹으세요. 몸 안에 있는 벌레들은 아직 몇 마리 되지 않을테니 이 약들로 쫓아낼 수 있을 겁니다. 추울테지만, 이 약을 먹는 동안에는 차가운 물만 마시시고요. 날이 밝으면 방법을 찾아보러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향로 네 개를 더 내밀었다.

“이걸 다다미방 구석마다 놓으세요. 벌레들이 더 늘어나지 않게 막을 수는 있을 겁니다. 향이 끊기지 않게 불씨가 떨어지지 않는지 항상 확인하세요. 삯은 다시 돌아왔을 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내는 깅코가 보는 앞에서 다다미방의 네 구석에 향로를 놓고 화로에 있는 불씨로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보다 느리고 가는 연기가 지붕을 향하는 동안 옅어지지 않고 진한 색을 내며 올라갔다. 지붕의 짚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짚이 깅코의 담배연기를 맞았을 때처럼 흔들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내는 벌레의 존재를 신뢰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신뢰의 문제와는 달랐다. 어느 의사도 아내가 걸린 감기에 대해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독한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에는 몸이 버티지 못했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런 지긋지긋한 얘기보다야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같은 것을 내쫓는다는 이야기를 더 믿고 싶었다.

깅코는 사내에게 말했던 것처럼 동이 틀 때쯤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찬바람이 확 집안을 휘저었다. 깅코는 얼른 문을 닫았다. 바깥은 겨울이었다. 따뜻하다 못해 더운 집 안에서 하룻밤을 잤다고 그것을 잊어버렸다. 깅코는 얼른 가방에서 코트와 목도리, 장갑도 꺼내 든든히 챙겨 입고 나섰다. 아직 빛이 강하지 않은 햇볕에도 눈은 반짝였다. 깅코는 열린 문 안을 바라봤다. 사내는 두툼한 이불을 끌어 눈 바로 밑까지 덮고 있었다. 가슴 안 쪽 답답한 숨까지 내쉬려고 깊은 숨을 내쉬니 숨이 하얗게 얼어붙어 깅코가 가리고 있는 눈 쪽으로 흘러가다 사라졌다. 문을 닫았다.


가방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서랍이 마구 흔들렸다. 편지가 온 모양이군. 깅코는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 고치에 말려 있는 종이 끄트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겨울이 유독 길던 마을에 봄이 찾아왔다는 소식이었다. 깅코는 사내를 떠올렸다. 그 마을인가? 아니면 사내의 아내가 살았다던 그 마을일까. 방랑하는 충사들을 위해 이런 소식이 간혹 흘러들어오긴 했지만 이렇게 신경 쓰인 적은 없었다. 깅코는 편지의 글자들이 답을 알려주기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들여다보다 가방을 고쳐맸다. 언덕에 도착하면 맬 목도리를 쥐고서 사내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자 마을은 깅코가 떠나기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고 아이들은 그 꽃들을 뽑으며 건물과 건물을 잇는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뽑은 꽃들을 꽃줄기를 다듬는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모습이 몇 십년, 몇 백년동안 반복해온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무너져 있었던 여관의 지붕도 멀끔하게 고쳐져 있었다. 손님들도 있는지,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깅코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레들이 이동을 하기라도 했나? 철을 따지는 벌레들이 아니니 그럴 리 없었다. 깅코는 뒤를 돌아봤다. 늦봄이 끝나가고 여름을 맞이하려고 하는 듯 나뭇잎들은 빛이 들어올 틈없이 빼곡하게 자랐고 꽃들은 하늘로 한껏 자라 있었다. 뒷꿈치에 닿는 땅과 발가락 끝에 닿는 땅이 달랐던 느낌도 사라졌다. 깅코는 뺨에 마을에서 올라온 나비가 스쳐지나가자 움찔거렸다. 급하게 언덕을 내려가다 잘 정리된 풀에 발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근처에 있던 마을 사람이 달려와 깅코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스즈키 씨 있습니까?”

“네? 스즈키요? 스즈키는…….”

그 마을 사람은 깅코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런 모습인지, 갑자기 스즈키를 왜 찾는건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한번에 하나뿐이라 허둥댔다. 깅코는 사내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반응에 손을 저었다. 몸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깅코는 마을 안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여러 꽃내음이 흘러들어오는데도 어지럽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을 저주하거나 오지 않는 봄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든지 걱정했는데 꽃들이 다행히도 잘 피어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정말 그 집이 문제였나봐요.”

깅코는 무리들을 지나치다 그 말에 발을 멈췄다.

“진짜 그 집에 귀신이라도 붙었던거지. 그 집이 문제였어.”

“하긴. 겨울이 그렇게 길었는데도 …만 아무렇지 않았잖아요?”

얼버무리는 목소리 뒤에 숨긴 이름이 무엇인지 무리는 알고 있는 듯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모두가 숨기는 이름을 깅코 또한 알고 있었다. 무리의 말을 엿듣는 것을 그만두고 한발자국 앞으로 나가려다 뛰어나온 아이와 부딪쳤다. 아이의 주변에 진달래가 흩어졌다. 깅코가 놀라 외마디를 내뱉는 소리와 아이가 넘어지는 소리에 떠들던 무리들도 돌아봤다. 깅코는 허둥대며 아이를 일으켜 세웠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느꼈다. 깅코의 손 덕분에 일어난 아이가 깅코를 손으로 가리켰다.

“돌팔이다!”

“뭐?”

깅코는 무리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무리는 놀란 채로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백발, 드러난 한 쪽 눈이 이끼처럼 푸른 것에 대한 공포심이 아니라 말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맞닥뜨린 듯한 놀라움이었다. 깅코는 그 시선들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무리와 함께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먼저 목소리를 낸 건 깅코였다.

“스즈키… 씨 계십니까?”

무리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스즈키… 씨의 집은요?”

한 번 더 고개를 젓는 모습에 깅코는 가슴과 목 사이에 막혀 있던 두꺼운 숨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

깅코는 이 사람들에게 물을 바에는 차라리 사내를 찾아서 물어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사내는 곧 죽어도 집을 태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 사내의 집이 지금은 없고, 꽃이 만발했지만 사내가 마을에 없다면 이 아름다운 마을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던 입을 굳게 닫았다. 깅코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잊어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스즈키 씨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무리는 이제 고개를 젓지도 않고 깅코를 빤히 보고 있었다. 사내가 이 곳에 없다면, 더욱이 사내의 집이 이 곳에 없다면 깅코도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신경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깅코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걸었던 길을 따라 돌아가려고 했다. 환영받는 것 같지 않은 이 곳에 더 발을 붙이고 있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던 오르막을 다시 오를 때였다.

“잠시만요.”

깅코는 자신을 향하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무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깅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가를 가리며 비밀스러운 말을 전하려 하길래 깅코도 그 사람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집에는 정말 귀신이 있었나요? 그 귀신이……. 요코였나요?”

“요코가 누굽니까?”

그 사람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를 냈다.

“스즈키 씨의 아내요.”

깅코의 몸은 모든 것을 멈췄다. 천천히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의 머릿속이었던 탓에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머릿속에 갑작스레 수많은 말들이 터져나왔다. 그 말들을 정리해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결국 깅코는 벙긋거리던 것도 그만두고 자신에게 귀신이 요코였냐고 물어온 사람에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언덕을 올랐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을 충사라고 소개한 그 하얀 머리는 떠나고 없었다. 정말로 하룻밤만 묵고 갈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겨울의 찬바람이 봄의 열기를 잠깐 식혀주는 산들바람처럼 느껴지는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귀를 다 덮는 두툼한 모자를 쓰고도 코까지 가리는 목도리를 했다. 신발에 설피를 끼울 때쯤엔 온 몸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이 마을에 긴 겨울이 찾아왔을 때 내 집만 따뜻하게 덥히는 게 아내의 은혜가 아니라 그 충사가 말하길, ‘벌레’때문이었다니. 아내가 두터운 이불을 몇 겹이나 덮어도 차가웠을 때 의사가 데려온 사람도 그렇게 말했다. 벌레 때문인 것 같다고. 벌레라니, 그 작은 콩벌레들이, 메뚜기가, 사마귀가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나 차갑게 만들 수 있겠어? 돌팔이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흰 머리 충사가 주고 간 약첩들을 바라봤다. 내 몸 안이 차가워지고 있다면, 그래서 이 집이 온천마냥 뜨거운데도 나에겐 적당한 온도처럼 느껴지는 거라면 그 말은 내가 아내와 똑같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내는 내가 이 곳에서 계속 살아가길 바랄지언정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약첩에 손도 까딱 대지 않고 일어섰다. 여관 지붕을 얼른 고치지 않으면 또 다른 집의 지붕이 무너졌을 때 머물 곳이 사라질 것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문밖으로 나서니 그 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집 안의 온기를 들키기 전에 얼른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사람은 누구야?”

“충사… 라던데요. 지나가던 길이었나봐요, 그래서 머물 곳 있냐고 물어보던데요. 여관 지붕은 무너졌고 해서 여기에서 머물게 했어요. 그게 전부에요.”

충사란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생겼나? 좀 신기하게 생겼지 않아? 얼굴은 희어멀건해서는……, 머리도 하얗고. 맞어, 눈색이 꼭 오래 냅둔 물같잖아, 이끼낀 물 말여. 흰 머리 충사가 어쩌면 겨울 바다가 유명한 그 바다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때는 사람들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럴 거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아내가 떠난지 반년 하고도 조금밖에 지내지 않았으니 바다, 눈, 겨울, 아내와 연관되는 모든 것들에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 충사가 뭐하는 사람인데?”

땀들은 모두 식고 몸도 찬 기운에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아내 생각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렸다.

“아, 귀신 같은 걸 보는 사람이라던데요?”

나도 잘 모르는 것이었다. 벌레니 뭐니, 흰 머리 충사가 손가락을 이용해서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더 물어볼까봐 여관 쪽으로 향했다. 문 앞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 중에서 여관 지붕을 고치는 사람 몇 명만 나를 따라왔다. 무너진 지붕은 반절 정도 고쳐져서 내일이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나는 힘조절을 잘 못하면 모두 부스러져버리는 바싹 마른 짚들을 새끼줄로 엮기 시작했다.

“귀신? 우리 마을에는 없대? 이렇게 오랫동안 봄이 안 오는데 귀신이 들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뭐, 있긴 있다는데요…….”

“어디에?”

나는 머뭇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생각도 이상하지, 귀신같은 것때문에 우리 마을에 봄이 오지 않는다니. 그래, 돌팔이겠지.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우리 집 지붕에 있다나봐요. 쫓으려면 집을 태우래요.”

내 말에 바로 웃을 줄 알았다. 잠깐의 정적이 도는 동안 나 혼자 웃었다. 어떤 대꾸도 웃음도, 반응도 없었다.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 웃는 걸 멈추니 그제야 사람들이 웃었다. 나에게 질문을 해오던 사람이 여관에 기대어놓은 사다리를 두드렸다.

“돌팔이구만!”

웃는 시간은 짧았다. 사람들은 금방 깊은 한숨을 쉬며 지쳤고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필요한 대화만을 하며 지붕을 쌓았다. 나는 아주 짧았던 그 정적이 마음에 걸려 대화를 자꾸만 놓쳤다. 지붕 위에 올라가 서 있는 사람은 짚단을 달라는 요청을 내가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자 화를 냈다. 그 화도 짧았다. 어디에 정신을 팔고……. 말은 대부분 온전히 끝나지 않고 중간에 끊겼다. 그 날 가장 많은 화를 들었고 가장 많은 사과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말보다는 탄식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은 활기를 잃지 않았다. 동이 텄을 때 했던 귀신에 대한 얘기는 해가 붉게 변하며 산을 넘어갈 때쯤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향로에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아내가 아플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무력감만 느꼈으니, 돌팔이가 한 말이더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혹시 알아. 내 행동이 마을에 봄을 빨리 불러올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큰 바람이라도 된 것처럼 짚이 흩날렸다. 천장에서부터 자라나 매달려 있는 옥수수가 흔들렸다. 정말로 저 곳에 무언가가 있는걸까? 그 벌레라는 것이 혹시…….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천장에서 짚 부스러기가 내리는 걸 지켜보다 눈 앞이 붉어졌다. 방풍지를 덧대놓은 창문이 붉게 빛났다. 수많은 발소리들이 들렸다. 눈들이 소음을 잡아먹어 눈쌓이는 소리만 겨우 들리는 밤이었다. 발소리라고는 동물들 한 두 마리가 지나가는 정도가 다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 건 처음이었다. 그 발소리가 집을 감쌌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창문에 불빛만 일렁였다. 나는 손끝이 저릴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몸 안을 가득 채우는 걸 그 때 처음 느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두툼하게 껴 입고서 횃불을 들고 있었다.

“무슨…….”

생기를 잃은 배고픈 사람들의 눈에 불빛이 일렁였다. 허옇게 뜬 피부는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은 굳건했다. 나는 문을 닫아야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짓눌려 그 자리에 멈췄다. 문 가까이에 서 있던 사람이 내 어깨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봤다.

“옥수수?”

척추를 따라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얼른 문을 닫았다. 그 사람들에게는 집 안에서 옥수수가 어떻게 자라 있을 수 있는지, 옥수수를 정말로 본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횃불을 떨어트릴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두 손만 허공에 들고서 눈치를 살폈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로 합시다, 말로.”

“네 집에 귀신이 붙어 있다며? 그 충사라는 사람이 말해줬다면서.”

그 말을 듣고 지금 집을 태우러 온 건가? 이 집을 태우면 봄이 올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돌팔이의 말인데. 나는 마을 사람들이 그 말을 정말로 믿을 줄은 몰랐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문 앞에 있는 사람을 살짝 밀어냈다. 두툼한 옷이었지만 옷 안 쪽에 있는 것이 살이 아니라 단단한 뼈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허리를 한껏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왜 이러세요, 장난스레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밥을 먹지 못해 야위디 야윈 사람들이 내는 살의가 느껴졌다. 웃음이 얼어붙었다. 나는 두 손을 마구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도대체? 이 집에는 아내가 묻혀 있단 말입니다!”

“지금 그게 문제요?”

“그게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내 목소리가 갈라져도 내 집을 둘러싼 불덩이들은 목소리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한마디 하면 그 한마디를 잡아먹을 듯 수십명이 목소리를 냈다.

“그 집 때문에, 그 귀신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굶어 죽으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도 그 집을 지키겠다는거야?”

“그 귀신이 어디까지 피해를 입히는데요? 그건 알고 계세요? 다른 마을까지 피해를 입히면요?”

“그 돌팔이인지 충사인지가 한 말이 정말이면 어쩔건데?”

그 목소리들이 나를 눈 속에 파묻는 것 같았다. 횃불들이 집 쪽으로 기울어 닿기 직전이었다. 나는 눈에 무릎을 꿇었다. 정강이를 다 덮을 정도로 쌓인 눈에 다리가 파묻혔다. 피까지 얼어 몸이 세차게 떨렸다. 눈을 짓누른 손이 벌겋게 변해갔다.

“그래도 안돼! 이 집 뒤에는 아내가 묻혀 있다고!”

목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나오질 않았다. 온 몸을 울려서 소리를 냈건만, 눈이 무릎과 손을 타고 목소리를 빼앗아간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자국 다가와 내 손등 위로 설피가 올라와 지긋이 밟았다.

“그 귀신 요코라며.”

내 손등을 밟은 설피의 바로 위에서 목소리가 났다. 귀신이 요코라고? 몸의 떨림도 멈췄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귀신이 요코라는 말을 내가 한 적이 있었나? 그 흰 머리 충사가 그렇게 말했던가? 아니면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렇게 부풀렸던가? 요코라는 이름을 언제 마지막으로 말해봤지? 마을 사람들 입에서 나온 아내의 이름이 어색했다. 처음 듣는 이름 같았다. 매일같이 아내가 꽃밭에 앉아 물을 주던 걸 떠올리고 아내가 꽃의 이름을 물어보던 목소리를 떠올렸는데. 아내의 이름이 요코라는 것은 낯설었다. 길디 긴 겨울보다 더.

내가 굳어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나를 넘어 내 집에 횃불을 댔다.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은 건조한 겨울 바람에 크게 일어났고 순식간에 내 집을 삼켰다. 얼어붙어 그 좋아하던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한 아내의 무덤도 마찬가지였다. 불길에 날 집어삼키고 있던 눈이 녹아내렸다. 등 뒤가 녹아내리는 것 같이 뜨거웠다. 마을 사람들은 불기둥이 집을 태우며 타닥타닥, 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따뜻함이 반가웠겠지. 몸을 태울 듯한 열기가 그리웠겠지. 그 열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니. 나는 그 불기둥 안으로 뛰어들어갈까 생각했다. 만약 이 집이 타면 그 불길에 들어가 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목숨이 더 귀한 사람이었고, 그 사실에 눅눅하게 젖은 흙에 머리를 박고 숨이 멎도록 울었다.


“벌써 해가 지잖아…….”

이제 겨우 산 정상에 섰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다. 금방 땅거미가 기어다닐 것이었다. 그 때부터는 아무리 밤눈이 밝더라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 산은 생각보다 컸고, 어느정도 크기의 짐승까지 돌아다닐지 몰랐으니. 아무리 깅코가 밤눈이 밝다 해도 그 짐승들보다는 못할 것이었다. 머리가 날아가기 딱 좋았다.

깅코는 어쩔 수 없이 바위에 걸터앉아 가방서랍을 뒤적였다. 불태울 것들이 필요했다. 이 약초들은 나중에 돈이 궁해지면 팔려고 했던 것들인데……. 어쩔 수 없이 긁어모아 두 손에 한아름 들고 불을 피울만한 마땅한 자리를 찾았다. 해가 져갈수록 빼곡한 나무들이 어둠을 만들어냈다. 그림자가 흘러내리는 숲의 한 켠에 돌과 나무로 만든 작은 굴이 있었다. 깅코는 그 굴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twitter @lan_g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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