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뉴트가 본 것은 민호의 얼굴이었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 그것은 그 단어만으로 부족할 정도로 복잡했고, 뉴트는 눈이 마주친 순간 거기 담긴 수많은 감정이 넘실거리며 제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다. 피부에 닿지 않았는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뉴트에게로 전이되고 있었다. 뉴트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손바닥을 천천히 펼쳤다. 손끝에서부터 전달해져오는 분노가 따끈하게 몸을 데웠다. 그 순간,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뉴트의 얼굴이 돌아간다. 둘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년들이 놀라 기함했다. 


“민호, 뭐하는 거야!”

“닥쳐. 뉴트 넌 네가 왜 맞는지 알고 있겠지.”

“이봐 민호, 좀 진정하고…” 민호는 저를 잡으려 드는 팔을 힘껏 뿌리쳤다. 

“뉴트, 대답해.”


뉴트는 열이 순식간에 붙어 부어오른 뺨을 천천히 매만졌다. 워낙 갑작스럽게 맞아 예상을 하지 못한 터라 입안을 살짝 씹은 모양이었다. 혀끝에서 비린 맛이 느껴졌다. 뉴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뉴트,”

“민호와 이야기하게 잠깐 자리 좀 비워줘.”


그러자 나머지 소년들은 조금 불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잠깐 그 분위기를 살피던 뉴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우리가 나갈게.”

“뉴트.”


그러면서 바닥으로 발을 디디던 뉴트의 행동이 일순 멈춘다. 뉴트의 시선이 아주 느린 길을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글레이더들은 입을 다문 채 전부 말이 없었다. 하얀 붕대가 소년의 발등에서부터 뒤꿈치와 발목을 모두 감싸고 있었다. 붕뜬 발을 살짝씩 흔들어 보이던 뉴트가 다시 고개를 든다. 


“전부 나가.”

“민호.”

“안 때려. 만약 그렇다면 날 미로로 내쫓아도 좋아. 둘이서 이야기하게 해줘.”


민호는 짧게 숨을 들이킨 다음 덧붙였다. 


“내 전前 파트너 러너와.”


뉴트는 그 말에 소리없이 짧게 웃었다. 이미 진단을 내린 모양이지. 그 하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들이 하나 둘씩 천천히 공간을 빠져 나갔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읽은 뉴트가 머뭇거리는 그 모습들에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알비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 듯했다. 혹은 민호가 미리 말해서 자리를 비워준 걸지도. 알비는 언제나 민호의 의견을 존중했으니까. 뉴트는 간혹 그것을 장난스럽게 불만이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것을 내심 다행이라 여겼다. 민호라면 절대로 자신과 같은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다른 아이들은 모르지?”

“일어나자마자 그 걱정을 할 거면, 왜 그랬는데?”


뉴트의 질문에 민호가 애써 이를 악물며 소리를 죽여 물었다. 뉴트는 민호가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또 두어 대 정도-아마 민호의 기준이라면 그것은 제법 아플 터였지만-더 때린다 해도 모두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민호는 그러지 않았다. 민호는 분노를 참고 있었고, 그것보다는 더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더 괴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뉴트는 입술을 짧게 물었다. 


“못 일어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성공했으면 하고 바랐다. 뉴트는 비참한 얼굴을 한 민호를 보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담담한 소리를 내어 다시 말을 이으며, 뉴트는 그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떼어냈다. 그것 또한 어려웠다. 


“하지만 깨어났으니까…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해야지.”

“다른 애들은 몰라. 알비 빼고.”


민호의 말에 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비는 뭐래? 민호는 뉴트의 턱을 쥐고 저를 보게 했다. 그의 악력에 인상을 찡그린 뉴트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민호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똑똑히 맞췄다. 


“널 필드 담당으로 바꿨어.”

“글레이드에 한복판에 있는 밭.”


한눈에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지. 뉴트는 인정했다. 알비는 현명해. 시야에 가득찬 민호의 얼굴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뉴트는 눈을 굴리다 결국 포기하고 그의 눈을 보았다. 새까만 그의 눈 안에는 창백해진 제가 있었다. 아마 다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기저기 다쳐서 붕대며 약을 달고, 살이 더 빠져 앙상한 금발의 소년.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뉴트는 묻지 않았다. 날짜를 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 날부터 뉴트에게 날들은 그저 흩어진 조각들에 불과했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으니 완전히 맞추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것들. 손에 쥐고 있어봤자 손바닥에 해지고 살결만 낡아갔다. 


“네가 이겼어, 뉴트.”

“…뭐?”


민호의 선언과 같은 말에 뉴트가 문득 그를 보았다. 민호는 뉴트의 턱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손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은 말이 아니었다. 엉망으로 할퀴어진 손바닥에는 이제 막 맺힌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어떤 것들은 그조차 또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맙소사, 민호.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이걸 봐.”


민호가 뉴트의 손목을 쥐고 뒤집는다. 얼떨결에 잡혀 펼쳐진 뉴트의 손바닥은 민호의 것과 비슷했지만 상처가 희미해져 있었다. 하얗게 남은 자국들을 헤아리던 뉴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네가 뛰어내린 그 자리에 매일 올라갔어. 네가 쓰러져서 회복하는 동안.”


담쟁이덩쿨을 쥐고 벽을 타고 올랐었다. 누군가를 받기에 거칠었던 벽에 손바닥이 쓸리고 피부는 온통 찢어졌었다. 그 위에서 내려봤을 때, 미로는 너무 넓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뉴트는 철저하게 느꼈다. 우리는 미아라고. 우린 길을 잃었어.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이 어디인지조차 몰라. 내던져진 생은 멋대로 잃어버린 길의 중간에서부터 태어났다. 그러니 알 방도가 없다. 뉴트는 완벽하게 외로워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넌 이해 못 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뉴트는 고개를 저었다. 올라올 때부터 나갈 방법을 찾았다는 네가 그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언젠가 있었던 술자리에서 박스로 올라오던 때를 말했던 민호에게 뉴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잡기 위해 꼼짝도 하지 못했던 자신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뉴트를 더욱 외롭게 했다. 그때 민호의 목소리가 괴롭게 울렸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었어.”

“…민호?”

“그러려고 노력했어.”


뉴트는 시선을 내려 민호의 손바닥을 보았다. 민호의 손바닥은 여전히 뉴트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문득 내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은 제게 뭔가를 건네는 걸지도 모른다. 잡아준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뉴트는 할 말을 잃고 민호를 보았다. 민호는 더 이상 뉴트를 보지 않았다. 


“나는 네게 닿고 싶다고 생각했어.”

“민호.”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뉴트?”


거나하게 취했던 밤, 민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었다. 내가 가진 건 정말로 몸밖에 없어. 그 말에 무슨 농담이냐며 와르르 웃던 아이들과는 달리, 민호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너희처럼 요리를 하거나, 칼을 써서 도축하거나, 혹은 쟁기질을 하는 거랑은 달리 나는 러너니까. 달리는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나는 내 모든 감각을 미로 안에 던지고 있다고. 뉴트는 그날의 민호를 떠올렸다. 커다란 모닥불의 붉은 일렁임이 뺨에 묻었다 사라졌다 하는 민호의 얼굴. 민호는 저를 바라보는 뉴트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었다. 시각, 후각, 특히 촉각. 발바닥과 손바닥에 닿는 모든 게 그대로 미로와 연결돼 있어. 그건 내 목숨이랑도 이어져 있는 거고. 시답잖은 농담으로 결국 흩어진 아이들의 시선과 수다 속에서 민호는 마치 뉴트에게만 은밀하고 고요한 비밀을 말하듯 그리 말했었다. 비운 술잔을 내려놓으며, 민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뉴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었다. 


“내가 닿으려 애쓴다는 말은, 내 모든 걸 걸고 있다는 거야.”


뉴트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민호는 뉴트의 손을 쥐지 않고 천천히 제 손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이건 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트는 붕대가 감긴 발을 바라보았다. 뛰어내리기 직전, 어떻게 알았는지 반대쪽으로 갈라졌던 민호가 있는 힘껏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제게 손을 뻗는 민호의 모습을 보며 뉴트는 허공을 향해 날았다. 닿지 않는 손끝 너머로 민호가 무너지는 얼굴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

“그러니까 네가 이겼단 말이야.”


뉴트는 문득 민호가 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가겠다는 약속. 갖고 돌아오기로 다짐했던 희망. 그리고 제대로 건네지도 못했던 그날의 흔들리며 쏟아졌던 말들. 전부 민호의 손끝에서 빠져나갔고 그것은 뉴트를 빗겨 갔다. 떨어져내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니. 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호가 그러듯. 


“네가 이겼어.”


아무것도 걸 수 없었던 이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게 다 무슨 의미일까. 간지러웠다. 민호는 몸을 수그린 채, 엉망으로 찢어진 손바닥 위에 얼굴을 묻고 잠깐 웃었다. 들썩이는 어깨가 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해 완전히 이긴 거야.”

“민호.”


민호는 대답을 듣기 위해 뉴트를 다시 글레이드로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업고 달리면서도 단 한 번도 그가 죽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뉴트는 민호를 보았다.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얼굴이 있었다. 


“나갈 거야.”

“…….”

“나가고 나면 비로소 내가 이기게 되는 거니까.”


손끝에 매달린 민호의 생을 본다. 


“나가는 날, 네가 오늘을 후회했노라고 반드시 듣고 말겠어. 그전까지 죽게 놔두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을 걸고 민호는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출구로, 세상으로, 그리고 뉴트에게로. 


“그러니 그때까지는 가지고 있어.”

“…뭘.”


민호는 몸을 일으켰다. 네가 일어나는 것만 보고 미로로 나가기로 했어. 그는 이미 달릴 차림이었다. 


“전부 다.”


만약 길이 찾아온다면 가장 먼저 민호에게로 달려들 것이다. 뉴트는 그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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