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를 몇 스푼 떠먹던 모험가는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선홍빛 피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는 모험가의 손을 적시다 못해 넘쳐흘러 새하얀 식탁보를 더럽혔지만 그것을 보는 모험가의 눈은 평온, 아니 어딘가 멍한 눈빛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놀랄 만도 하건만, 모험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넓고 고요한 방에 식기와 의자만 달그락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모험가는 식탁 옆에 놓아두었던 지팡이를 들어 제 주위로 하얀 장막을 만들었고 의자가 아닌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하얀 장막 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따스함을 온몸으로 느끼던 모험가는 이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초록색 액체를 하나 꺼내 뚜껑을 열고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거지만 참 맛없게도 만든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요리도 배워놓을 걸 그랬나 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는 모험가의 얼굴은 씁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아...”


피 섞인 깊은 숨을 내리쉬며 옆에 있던 수건으로 대충 입가와 손을 닦은 후 제 곁에 내려둔 모험가는 잠시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번 독은 좀 센 거 같은데, 세다기보다는 바로 효과가 오네 숨길 필요도 없다는 건가 기본적으로 나흘에 한번 정도였던 거 같은데 이번엔 얼마만이지 이틀째인가 뭐 죽진 않을 테니 상관없으려나 이게 무슨 하이델린의 축복이야 저주지 저주(웃음) 죽지도 못하고 벌레마냥 목숨을 이어나가는... 죽고 싶긴 하지만 빛의 전사가 독살당해 죽었다고 하면 다들 곤란해지려나 그래도 멀쩡한 모습으로 죽으니 다행인건가 ....이 있는 곳으로 갈수 있을까 아니지 난 지옥이니까(웃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 탓이었을까 아님 모처럼 느낀 강한 독이 몸을 처지게 해서 그런 것일까 모험가의 방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험가는 듣지 못했는지 가만히 앉아 거뭇거뭇 피로 젖은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걸 알아챈 건 자기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익숙한 살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던 직후였다.


빼도 박도 못한다. 망했음을 직감한 모험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사람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다녀왔냐고 손까지 흔들어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쉽사리 분노를 놓지 못했다. 때 마침 다 나오지 못했던지 검붉은 피가 쿨럭하고 기침과 함께 나왔고, 모험가는 급하게 손으로 막아보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발치에 피가 조금 묻고 말았다. 그 모습에 입술을 짓이기며 몸을 돌린 그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부술 듯 문을 박차고 나갔고 잠시 뒤 몇 명인지 모를 사람들의 비명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생각 같아선 바로 따라가고 싶었으나 축 처진 몸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일어서는 것조차 벽을 짚어야지만 겨우 일어설 수 있게끔 엉망진창이었다. 그럼에도 모험가는 지팡이를 짚어가며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버텨가며 힘겹게 복도 밖으로 나갔고, 미약하지만 제 몸을 감싸주던 하얀 장막에서 빠져나온 후부터 제 몸을 갉아먹는 독이 있음을 다시 자각하게 해주었다. 한참이 걸려 겨우 문을 짚고 나가는 순간 흐릿한 시야 사이로 피로 얼룩진 복도와 그 위로 널브러지고 조각난 사람들의 형태가 보였다. 모험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토해내듯 외쳤다.


“제노스으!!!!!!!!!”


복도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피로 낭자한 바닥에 주저앉아 사시나무 떨 듯 하던 한 하인의 목숨을 살렸다. 제노스라 불린 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들어 올렸던 칼을 도로 칼집 안으로 집어넣게 했고, 이내 소리가 나는 쪽과 제 아래서 떨다 못해 기절해버린 하인을 고개 돌려 보더니 소리가 나는 쪽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속도감 있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본인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복도 바닥은 곳곳에 붉은 피 웅덩이가 있었다. 다소 빠르게 걷는 걸음으로 인해 피가 사방으로 튀고 더하여 발과 종아리 부근의 갑주를 더럽혔으나 원래도 검붉은 색이었던 그의 갑주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모험가는 힘에 부치는지 벽을 잡은 채 쓰러지듯 무릎을 꿇어 앉아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좀 제대로 만들었다며 피식 웃은 모험가는 지팡이를 들어 아까와 같은 하얀 장막을 만들곤 아까의 해독약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이거 오늘 점심은 이걸로 때우는 건가 이런건 먹어봤자 헛배만 부르다며 웃고는 시큼한 액체가 목구멍 너머로 내려가는 느낌을 생생히 느끼며 잠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곧 저 멀리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조금 힘을 내어 간신히 발자국의 주인을 쳐다보았고 빠르게 걷다 못해 이제는 아예 뛰어오는 검은 아지랑이를 보곤 안심이 된다는 듯 서서히 내려앉았다. 다급한 손길로 자신을 안아드는 모습에 간신히 눈을 뜨고는 지금 그냥 졸린거고 안 죽으니까 방으로 옮겨주기나 해달라는 말과 함께 모험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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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안 죽었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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