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씩이나 돼서 또 마니또라니....'

레너드는 피곤으로 찌들어 뻑뻑한 눈을 꾹꾹 누르며 한껏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피곤해? 눈 아프면 커튼 쳐줄까?"

앞쪽에서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레너드에게 물었다. 레너드는 그 음색 속에 파묻혀 있고 싶은 듯 한참을 대답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뭘 주면 좋을까.."
"음?"
".... 마니또...  선물말야, 뭘 주면 좋을까?"

존은 의외의 고민이라는 듯 눈썹을 치켜 떴다가는 그대로 맑은 미소를 지었다. 얇은 윗입술이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간다.

"하하하..!!  마니또에서도 일등하고 싶은거야? 뭘 그렇게 힘들어 하나 했네."
"뭐야 넌 벌써 정했어? 뭐 줄건데?"

이마에 내 천자를 만들고 입술을 비죽이 내민 레니가 부루퉁하게 물었다.

"뭐, 고민할 거리가 있나. 나랑 친한 사람도 아니라서 그냥저냥 무난하게 골랐어."
"... 뭔데??  힌트 좀 줘. 선물 후보에 있었던 것들이나.. 아니면 네가 받고싶었던 것들이나."
"후보라니... 넌 후보까지 정한단 말이야? 꽤나 마음에 드는 친구인가 보네."

본인 마니또 이야기를 할 때에는 무심하게 책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약간은 날카롭게 변하며 레니를 똑바로 응시했다.
맑지만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햇빛에 반짝였다.
햇빛이 일렁이는 물처럼 따듯하게 감싸 안다가도 한없이 차가워질 것만 같은 그 오묘한 청회색의 눈동자에  새삼 빨려들어갈 때 쯤 레너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뭐...  성의는 있게 줘야 할 것 아냐 그래도!!!"

당황한 듯 연신 과장되게 몸짓을 넣어 가며 선물 후보를 읊는 레너드를 보며 존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 그냥 먹을걸로 주는게 낫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취향을 알고 있다면 뭐... 그걸로 준비해서 주고."

누군지 확 티도 안나고 가격대도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며 폭풍 칭찬을 하던 레너드는 흥미가 모조리 떨어져 버린 것인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는지 이제는 아예 눈길을 돌려 읽던 책에 집중하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녀석 단 초콜릿 좋아하니까 그 쪽으로 쭉 준비해도 괜찮겠다.. 근데 너무 먹을거만 주면 티 날텐데..? 뭘 끼워 넣어야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물건은 쓰는 것만 쓰는 앤데... 가방에 장식같은걸 달고 다니지도 않고 그렇다고 개인적이거나 비싼 선물을 하기엔 너무 이상하고... 따위의 고민을 하며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던 레너드는 자기도 모르게 버벅거리다 멍해지고 말았다.
책을 읽느라 돋보이는 속눈썹이 창문으로 흘러 들어오는 빛에 빛나고 있었다. 오똑한 코와 살짝 패인 볼, 꼭 다물린 입술이 여러 부드러운 빛깔을 내며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예뻤다.

"... 나 뭐 줄지 정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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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또 마지막 날, 집에 가기 전 서로의 선물을 풀어보느라 신난 아이들의 소리로 간만에 교실이 시끌벅적했다.
선물에 굉장히 만족하여 들뜬 아이들도 있었고 이상한 선물이 나왔다며 어떤 녀석인지 찾아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이, 기대에 못 미치는지 조금 실망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가운데 존은 미묘하다는 표정으로 뜯은 선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종 간식들 사이에 생뚱맞게 들어가 있는 안경 때문이었다. 검은색 뿔테, 아무 잡화점에 가서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본형의 안경이 갖가지 예쁜 모양을 한 달콤한 초콜릿들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크흠...흠..!!! 오 뭐야 맛있는걸로 많이 받았네~~?'

어느 새 옆으로 온 레너드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존의 반응을 살폈다.

"...안경은 뭐지...? 난 안경같은건 필요 없는데. 다른 사람이랑 헷갈린건가?"
"음.... 어...  알도 없는데 뭐,  패션이야 존. 요새는 패션으로도 안경을 낀다고."

세상 쓸 데 없는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던 존은 자신을 보며 약간의 기대감 같은 것을 뿜어내고 있는 레니를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받았으니 한 번 써볼까?"

'아, 젠장할.... 더럽게 이쁘잖아...?'

생각 하는 것과 다르게 레너드의 입꼬리는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레너드의 본 의도는 안경으로 내 친구의 미모를 가리자 였으나 검은 뿔테는 존의 새하얀 피부와 어울려 한 층 더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잘 어울려?"
"응..? 어..  어..응..."

자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레니를 보며 기분이 좋아진 존은 선물 받은 초콜릿 중 하나를 입에 넣으며 그렇게 쓸데 없는 것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면에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고 걸어가는 존의 뒤로 레니가 따라 붙는다. 화창한 날씨가 하얀 피부에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투명한 피부의 존을 더욱 조명하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존의 앞머리를 살랑이며 뒤로 넘긴다. 그 모습을 보는 레너드의 심정은 너무나도 복잡미묘했다. 기쁘면서도 슬픈 그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바라보자 존이 물어왔다.

"왜? 웃겨? 이상한가? 벗는게 나아..?"
"아... 아냐.. 그..나랑 있을 때만..쓰던..가..."
"응?"

뒤로 갈 수록 기어들어가는 레니의 목소리에 존이 묻자 레너드는 황급히 아닌 척 말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너는..!! 너는 뭐 선물했는데?"
"아....  나는 그냥 양말 한켤레랑 검은 볼펜 하나. 학생들한테 필요한건 그거지 뭐."


"...와... 우와... 너 진짜 너무했다..."

레너드가 한 말에 하나도 동의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지적인 모습의 존이 싱긋 웃으며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다 기뻐했을거야. 정말로!!"

오늘 따라 왠지 모르게 자신감과 신뢰도가 두배가 된 듯 한 존이 먼저 하굣길로 자전거를 신나게 굴렸다. 레너드는 그 뒤로 고개를 저으며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도 나쁘지만은 않은지 작고 도톰한 입술이 기분 좋은 세모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잘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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