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은 픽션입니다.

* 초고완성 :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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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 동안의 여행

 

01

 

덥고 습한, 언제나 같은. 그런 숨이 막히는 한여름이었다.

 

“찾아 주세요!”

 

큰 눈망울을 번뜩이며 그렇게 말했다. 또랑또랑 빛나는 눈은 쌍꺼풀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처음에는 여자아이인가? 라며 반문했다.

퇴근과 하굣길로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지하철 표 내는 곳 앞에서 갑자기 붙잡힌 나는 한 손에는 카드를, 다른 한 손은 낯선 이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무슨?”

갑자기 달려든 낯선 소년의 앞뒤 이야기가 잘린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달려오던 남자가 짜증을 내며 우리 옆을 비켜 갔다. 많은 사람 틈에 끼인 꼴이 돼버린 상황이었기에 나는 일단 비어있는 역무원 실 근처 구석으로 낯선 이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좀처럼 그 큰 눈망울을 거둘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나와는 시선이 머리하나 정도 차이나는 소년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굵고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 찾아 주세요!"

잘 맞는 듯싶으면서 이질적임이 느껴지는,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된 듯한 목소리에 나는 슬쩍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그보다 이 사람이 누군데 날 보자마자 이런 소리를 하는지부터가 궁금했다. 강아지 같은 눈매라 그런가. 소년의 눈은 상대를 안심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저기, 무슨 말씀인지? 뭘 찾아 달라는 건가요? 뭘 잃어버렸어요? 역무원한테 말씀하시면?"

"아, 아니에요! 그, 그러니까! 저, 그쪽, 아니. 그니까……. 찾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같이 찾아 주세요!"

소년은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숙이면서 간절하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역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은 몇 명의 제3자들에게 흥미와 더불어 흘깃거림의 대상이 되었고 얼떨결에 나는 어린애를 상대로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소년은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도 높았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상대방을 진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아 일단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여긴 사람도 많으니까 일단 침착하게, 하하.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정 그러면 제가 같이 찾아 드릴게요.”

정중한 말로 상대방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했다. 다행히 소년도 좀 전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들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사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전학 오기 전 다녔던 고등학교의 부속 중학교 교복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 고등학교가 같은 학원 내에 있었다. 학교 행사나 식당, 매점에서 종종 중학생들을 마주치곤 했었다. 게다가 이 아이. 왼쪽 가슴에 명찰을 얌전히 그대로 달고 있지 않은가.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요. 괜찮아요.”

솔직히 곤란하기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달까- 그 정도였다.

올해 나는 고3이 되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부모의 이혼으로 3월에 학교를 옮기고 적응 중이라 무척 몸이 피곤한 상태다. 몸보다는 정신과 마음이 더 문제인 듯싶지만.

고3의 압박과 가족의 문제 그리고 내 개인의 문제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버려서 힘들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어느 곳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그런 흔한 갑갑한 상태였다.

정신 붙들고 수능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전학을 와서 힘든 와중에 담임이 된 선생은 대놓고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 마치 내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을 것처럼. 2학기 중간에 온 것도 아니고. 뭐, 여러모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선생들을 볼 때마다 나 또한 선생님이란 존재에 무심함이 더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 성적은 전교에서 앞을 다툴 정도는 아니어도 꽤 좋다. 어쨌든 고3답게 괜스레 살갑게 굴며 오지랖 얹으려는 애들도, 유치하게 텃세 부리려는 집단도, 제 앞길 챙기느라 바빠 관심이 없어 다행이었다. 학교생활보단 어쩔 수 없는 집안 사정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숨이 막혔다. 자식이 이혼하는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누굴 더 우선순위에 둘 수도 없었고 누가 더 애틋하지도 않았다. 부모는 내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것만으로 그들은 부모의 역할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낯선 사람의 부름에 응해 버렸다.

날 붙잡은 이를 본 순간, 내가 지독히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떠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동적이면서도 계획적인 이중적 마음이었다.

기운 없이 집어 올린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 문을 혼자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색깔로 깊고 커다란 호수를 만드는 눈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을 본 순간 나는 아직 현실로 혼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낯선 이는 누구기에 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 단순히 감정이 반사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의 눈 속에서 전해오는 따스함만큼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저, 그럼 뭘 찾아 드리면 될까요?”

때마침 사람들이 거의 빠진 역 안은 다시 한산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니 내 목소리도 아까 와는 다르게 더욱 차분해진 듯하다.

소년은 당연한 질문에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보였다. 내린 눈꺼풀을 궁금한 시선으로 고정하고 있자,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올려다본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키의 그가 올려다보자 무척 귀여운 표정이 되어 버렸다. 웃으면 안 되지만 나도 모르게 귀엽다고 생각해 버려서 슬며시 미소지어 버렸다. 절대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러자 소년은 더욱 당황해져서 귀까지 발갛게 익어버렸다.

“아, 미안.”

그에 어색하게 사과를 해 버렸다. 꼭 폭익은 토마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기서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작은 머리통이 이내 결심한 듯 단단해진 얼굴로 말해 놓곤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먼저 용감하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는 막상 부탁하려니 미안하긴 했나 보다. 그 목소리가 약간 떨리며 동시에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긴장되어 있었다. 반대로 나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가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한여름 태양이 조금씩 숨어들 시간이다.

“한 시간이라. 좋아. 같이 가죠. 거기 가면 찾는 물건이 있는 거죠?”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대답에 무척이나 기쁜 듯 보였지만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려서 어떤 얼굴을 하고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얼굴이 무척 궁금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만지며 날 보고 웃어봐-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아직도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러 소년이 뒤에서 나는 앞에 서서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로 말이 없어서 분위기는 조금 붕 떠 있었지만 그게 또 은근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레일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여전히 내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등 뒤에서는 수줍은 설렘과 따스한 감정이 몽글몽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름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설렘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인지 나는 더욱 궁금해져 버렸다.

[ 지금 해류(海流)행- 해류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

안내 방송에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바람에 뒤에 있던 소년의 발을 살짝 밟고 말았다.

“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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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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