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허구로 실제와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쿵—!’하고 큰 소리가 났다. 희수였다. 경환은 며칠째 우울감에 빠진 희수를 위해 저녁 반찬을 사오던 길이었고 눈앞에서 붉은 색의 피가 잔뜩 튄 이 잔인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제발 꿈이기를, 이 모든 것이 잠에서 깨고 나면 잠깐 기분 나쁠 악몽이기를 하고 바랐다. 양 손에 쥔 비닐 봉투가 그의 손에서 힘없이 툭 떨어졌고 경환은 자신이 알던 연인과 다른 모습을 한 싸늘한 희수에게 다가갔다.

 희수가 즐겨 쓰던 은색 테의 안경은 그의 머리맡에서 알이 깨진 채 나뒹굴었고 주변은 온통 검붉은 액체가 흘러 벽에 스며들고 있었다. 함께 맞춘 하얀색의 후드도 붉게 젖어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비릿한 향이 경환의 코를 찔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의 검은 머리칼을 만져댔다. 피로 얼룩진 그의 살굿빛 얼굴, 억울한 듯 감지 못 한 고동색 눈동자는 한없이 슬퍼 보였다.

 경환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니. 우리는 그저 서로를 사랑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었는데—.’

 영원을 살 수 없지만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아가자고 함께 다짐했다. 어려운 형편에 푼돈을 겨우 모아 둥지를 튼 작은 아파트에서 그들은 서로를 눈동자에 담고 어여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희수는 직장 상사에게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줄도 모른 채로 두어 달을 다닐 무렵, 우연히 화장실에서 자신의 소문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제야 그 동안 동료들이 대했던 차가운 태도와 싸늘한 시선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쏟아지는 눈물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경환이 보고 싶었다.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가방도 챙기지 못 하고 경환이 있을 집으로 향했다. 겨우 집에 도착한 그는 경환을 보자마자 껴안아 펑펑 울어댔다. 갑자기 우는 희수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유는 묻지 않고 조용히 등을 토닥거리며 그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경환아, 경환아…….”

“응, 희수야 나 여기 있어.”

“어떡하지— 앞으로 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너의 옆에 내가 있고 내 옆에 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모두가 다, 전부 다 알아 버렸어…… 나 때문에 네가 피해를 입을까 봐 그게 더 불안해.”


 희수는 잠긴 목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고 경환은 묵묵히 들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아웃팅 때문이었다니—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옆에 있잖아.”

“나는, 나는 너무 힘들어—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달라는 것도, 이해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식으로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경환아.”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미래를 향한 꿈도 꾸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채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똑같은 사람인데 왜, 왜 우리는 이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우리가 그들에게 피해를, 손해를, 불이익을 준걸까? 그저 보통과 다르다는 이유로 ‘특이’취급을 당한다는 것이 타당한 이유일까?

 그는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 때문에 경환에게까지 소문이 퍼질까 걱정을 했다. 경환은 희수에게 “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야.”라며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기죽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회사를 다닐수록 그를 괴롭히는 조롱은 점점 심해졌고 어릴 때부터 강하지 못한 심신은 하루하루 그를 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경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는 어둑해진 하늘과 잿빛 구름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손에 작은 편지를 쥔 채 아파트의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경환은 희수의 손에 쥐어진 작은 종이를 빼내어 겨우 힘을 주고 쓴 듯한 글씨의 편지를 보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경환에게.

사랑하는 나의 경환아 내가 지금 하는 이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

너를 알게 된 그 시간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황금 같은 선물이었어. 좋았던 시간들, 울었던 시간들, 싸웠던 시간들 전부 다 안고 갈 거야. 너를 남겨두고 가는 게 제일 미안해 이기적인 것도 알고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나로 인해서 너에게 까지 피해가 갈까 너무 두려워.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만 이건— 그래, 네가 말했듯 너와 나의 문제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야 근데, 근데 말이야 우리가 그 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경환이, 네가 견딜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언제쯤 우리는 남들처럼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경환아, 경환아, 경환아.

네가 나를 잊어도 좋아 나를 원망해도 좋아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부탁이 있어.

부디 너는, 너만큼은 괴롭지 않게 살아가기를 바라.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너무 미안하다—.

경환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몇 번을 말해도 질리지 않고 몇 번을 말해도 좋은 이 말은 너에게만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해.

-희수-


 경환은 그의 마지막이 담긴 편지를 손에 꼭 쥐고 오열을 했다. 구급차가 온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다. 주변은 시끄러웠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저 떨리는 손으로 희수의 눈을 감겨줄 뿐이었다. 구급차에 실린 그들, 안타까운 죽음, 강가에 흘려보낸 희수의 뼛가루까지 모든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 정신없이 흘러 지나갔다. 경환은 무슨 낙으로, 무슨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항상 함께 누워있던 침대의 텅 빈 자리를 이불이 닳도록 쓰다듬으며 그가 남긴 편지와 행복한 모습이 담긴 사진만 종일 보고 있었다.


 너는, 너는 알까—.

내게 날아온 너는 눈부시게 밝은 천사와도 같았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나에게 꿈처럼 다가온 내 사랑. 작은 키지만 누구보다 깊은 마음을 가졌고 언제나 따뜻한 손과 늘 기분 좋은 미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어. 네 얼굴에 오밀조밀 모여 있던 눈, 코, 입. 얇은 쌍꺼풀의 큰 눈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옅은 숨을 내뱉는 코와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너의 목소리까지. 나는 너의 모든 걸 기억하고 살아갈 거야.

 점점 사라져가는 너의 향기, 온기, 숨결. 그저 남아있는 흔적이라고는 너의 사진뿐이네— 웃는 너의 얼굴이 내 방을 가득 채웠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진정되기는커녕 괴롭기만 하다.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갔니, 어디로 가면 너를 만날 수 있니. 날개 없는 나의 작은 천사야.


“보고 싶다 희수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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