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게 해 주오

06



 뒤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훈은 막 두 번째 담배를 물고 불을 댕기는 중이었다.

 라이터가 고장 났는지 몇 번을 달칵거려도 통 불이 어른거리질 않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장훈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쌍욕을 내뱉었다. 염병할 날씨, 염병할 라이타, 염병할 이강희, 염병할 테레비, 씨발 거. 라이터를 갈무리하면서 장훈은 뒤를 돌아보았다.


 “깡패야, 뉴스 봤나.”

 “저 깡패 아닌데요.”


 낭랑한 목소리가 질문을 받았다. 가벼운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제 집 뒷마당 열듯이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걸어 들어온 것은 상구가 아니었다. 걸을 때마다 머리통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그 애가 맞았다. 급하게 온 건지 앞머리가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장훈은 짓씹던 담배를 얼떨결에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그 애는 양손을 뒤로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저 오라고 문 열어놓으신 거 아니었어요?”


 하고 물었다. 진심인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었지만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옥상에 있다고 말도 안 했는데. 직원이 어련히 알아서 안내를 잘 해줬는가 보다 싶어 장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가 니 집 안방이에요, 뭐 오라고 문 열어놓게? 아가씨는 여기가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인식을 쫌 가질 필요가 있어. 잘 모르겠지?”

 “변호사님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우 변호사님.”

 “누가 호칭 정리하자드나. 아, 이 아가씨가 진짜……. 아이고, 씨바. 아까운 담배만 버리뿟네. 씨바 아직 태우지도 몬한 거를.”


 장훈이 떨어진 담배를 주워들었다. 더러운 옥상 바닥을 뒹구는 바람에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다. 씨발, 버려야겠네. 담뱃값이 얼만데. 재떨이에 담배를 던져 넣는 장훈을 보며 그 애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섰다.


 “검사님, 뉴스 있잖아요.”

 “뭐요.”

 “나도 뉴스 봤거든요.”

 “그래요? 야, 브라보, 브라보.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네. 청년들이 뉴스도 잘 챙겨가 보고. 아아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야 나라가 잘 돌아가.”


 칭찬은 칭찬이었는데 흥분이나 감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투였다. 느리고 일정한 박수 소리를 따라 그 애가 부루퉁하게 뺨을 부풀려 보였다. 장훈은 가는 눈으로 그 애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삐칫다고 내한테 시위합니까?”

 “저 검사님 걱정해서 뉴스 보자마자 온 건데 이렇게 박대하시기예요?”


 그 애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입술만 삐죽거렸다. 걱정했다고 콕 집어 말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좀 머쓱하기도 하고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었지만 장훈은 한 가지 결론으로 모든 것을 귀결시킬 수 있었다.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이 판국에.

 안상구라면 원래가 출신이 용역깡패였다. 장훈도 몸싸움으로는 어디 가서 기죽지 않을 만큼 제법 굴러먹었다. 하지만 싸움이라곤 애들끼리 주먹다짐 정도 해본 게 끝일 것 같은 그 애가 여기 끼어든다면 속절없이 나가떨어지고 말 터였다. 방계장님은 몸을 사릴 생각이라도 했지, 얘는 나서지나 않으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장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과 관련도 없는 애먼 사람이었다.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멀리 떨어트려 놓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강희가 아버지에게 접근했던 일을 생각하면 비슷한 상황이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큰일이 생긴다면 장훈으로서는 그 상황을 감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비즈니스 외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을뿐더러 그게 여자라면(나이 차이가 얼마가 나든지간에) 정말로,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 애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 어깨에 얹은 가방끈을 꽉 잡아당기며 샐쭉 웃었다.


 “제가 제일 먼저 걱정해준 사람이죠?”

 “하이고, 예, 그러네요. 니가 일등입니다. 학교에서 일등 할 생각은 안 하고 내한테 일등해가 뭐할라고요?”

 “저 잘해요, 검사님. 생각보다.”


 제법 젠체하며 그 애가 어깨를 쭉 폈다. 장훈은 양쪽 입매가 절로 끌려 올라가는 걸 막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잘해?”

 “그럼요. 저 못하는 거 없어요. 그러니까 검사님한테도 일등 하게 해주면 좋고. 안 되면 뭐, 아깝구. 사실 대표님이 먼저 도착했을 줄 알았거든요. 내가 선수 친 거죠?”

 “경쟁할 사람이 읎어가 깡패랑 경쟁을 하네. 됐그든요, 됐다. 이 아가씨가 진짜. 웃기지 말고, 거 거울이나 보고 앞머리 정리나 쫌 해요. 니 올 때 뛰었지?”


 장훈이 핀잔을 주자 그 애는 고개를 빠르게 도리질 치더니 눈을 홉뜨고 장훈을 쳐다보았다.


 “지금은요?”


 물어봐서 뭐하나. 고작 머리 좀 흔든다고 정리될 상태였으면 처음부터 잔소리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여전히 엉망인 머리 꼴을 가만 바라보며 장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니 거울 읎어요?”

 “가방 안에 있기는 한데 꺼내기 귀찮단 말이에요.”


 가벼운 투정을 덧붙이며 그 애가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얼굴까지 불쑥 디미는 바람에 장훈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물렸다. 손끝으로 제 얼굴을 툭툭 가리키며 그 애는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검사님이 잔소리했으니까 검사님이 도와주세요.”

 “하이고.”

 “만진다고 안 닳잖아요. 네?”

 “누가 닳는다고 안 만지나. 귀찮아가 이라는 거 아이에요?”

 “아이에요. 싫어요?”


 장난스런 투로 장훈의 말씨를 따라하며 그 애가 한 걸음 더 다가와 섰다. 아예 배 째라 이건지 눈까지 내리감고 뒷짐을 졌다. 입술이 짓궂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변호사 놀려먹고도 남는 게 있을 줄 아느냐고 타박을 주려다가, 또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면 어이가 없어져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장훈은 어정쩡하게 손을 허공에 띄운 채 잠시 머뭇거렸다. 그 애는 재촉도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이런 식으로 뭘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 봤어야 능숙하게 대처를 할 텐데, 아주 내치거나 아주 받아주기도 애매해서 장훈은 그저 한숨만 푹푹 쉬다가 결국 손을 뻗었다. 어색하고 엉성한 손길로 앞쪽을 슥슥 빗어 내리자 흐트러진 잔머리들이 앞으로 쓸려 정돈되었다. 그 애는 눈가를 찡긋거리기만 할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손가락 사이로 결 좋은 머리칼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꽤 새로웠다. 손끝이 이마에 닿을 때마다 장훈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외간남자한테 이래 툭툭 머리 맡기고, 잘하는 짓입니다, 참.”

 “외간남자 아니에요.”

 “외간이 아이믄 우리가 뭐야?”

 “외간은 생판 남이고, 좀 못미더운 사이지. 우리는 그거죠, 약간. 믿음으로 시작된……, 팬과 스타, 뮤즈와 작가?”


 그 애가 내리감고 있던 눈을 슬쩍 뜨자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머리칼을 정돈하던 장훈의 손길이 일순 멈추었다가 한숨과 함께 툭 떨어져 나왔다.


 “니 호들갑 떠는 것도 재주다. 정리 끝. 고마 내리갑시다.”

 “우리 친해진 거 아니에요?”


 장훈이 겉옷을 탈탈 털면서 걸음을 뗐다. 그 애는 자연스럽게 보폭을 맞추어 옆에 나란히 섰다. 장훈은 이제 그 애를 저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옆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면 그 애의 말대로 친해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암만 팬이니 뭐니, 옛이야기까지 꺼내가면서 밀어붙이는 그 텐션에 휘둘렸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친해질 일은 아니었다. 장훈은 옥상 문을 밀어열고 계단으로 빠져나왔다. 그 애가 뒤따라오는 것을 곁눈질로 흘긋 보며 장훈이 손끝으로 문을 밀어 잡았다.


 “인터뷰 쫌 했다고 친해지믄 뭐, 다 친구 묵겠네.”

 “저 인터뷰만 한 거 아니고, 검사님이랑 놀라고 왔잖아요. 그리고 우리 밥도 같이 먹었고, 커피도 마셨고요, 2주 전엔 우리 크레이프 케이크 먹으러 갔죠? 뭐……, 검사님은 거기서 아메리카노밖에 안 마셨지만. 검사님 저 집까지 바래다도 주셨고, 또 뭐 있더라?”


 조목조목 덧붙이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장훈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리 그렇게까지 뭘 많이 했던가? 되짚어보니 그 애가 너무 연락을 많이 취해 온 덕분이었다. 하루걸러 하루, 또 다시 하루. 바쁘다는 말이 없으면 거의 매일 만났다. 하물며 안상구마저도 사무실을 그렇게 제집 드나들듯 자주 드나들지 않았고 전화를 시도때도 없이 걸어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맹랑한 아가씨는 얼굴에 철판을 얼마나 깔았는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변호사에게 허구한 날 전화를 걸어대고 있는 것이다. 장훈은 한손으로 얼굴을 꾹 누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애가 장훈의 소맷귀를 슬쩍 붙들었다.


 “우리 내외 안 해도 되는 거 맞죠?”


 그렇게 묻는 걸 보고 있자니 장훈은 그래, 매일매일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정성인데 내외고 나발이고 뭐가 있겠냐 싶어 타박을 포기했다. 암만 해도 정말……, 별스러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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