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Mong




허름하고 낡은 원룸. 밖을 향한 창 하나 없어 어떠한 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숱한 술병과 담뱃재들이 만연한 바닥. 그 위에 간신히 자리 잡은 듯한 이불 하나. 가냘픈 다리를 끌어안고 있던 윤기는 한참이나 이불을 방석 삼아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음영은 확연하게 비쳤다. 참으로 연약하고도 나약한 음영 하나가 저를 감싸달라는 듯 울고 있었다.

‘더 이상 살기 싫어요.’, 쓰디쓴 좌절 앞에서.


유독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졸피뎀*수면제과 생수통 하나. 그가 이불 위에서 시선을 둔 곳은 오로지 둘이었다. 그의 발밑과, 어울리지 않게 정갈히 자리하고 있던 둘.

다리를 부여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뻗어 수면제를 집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못 본 척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손길에 졸피뎀은 대번에 입을 열었다. 수없이 많은 알약이 그에게 속삭였다. ‘자, 윤기야. 이제 잠을 잘 시간이야.’ 그의 앞에서 영롱하게 미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에게 비친 유일한 빛이었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인상을 찌푸리던 그는 그 통을 엎었다.


균일한 소리를 내어가며 몇은 바닥에 그리고, 또 몇은 그의 손바닥에 떨궈졌다. 요 며칠 밤을 지새우기라도 한 것일까. 열댓 개는 되어 보이는 양을 그는 눈길 한 번 하지 않고 단숨에 입으로 모두 쑤셔 넣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또 몇은 그대로 그의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그렇게 이를 몇 번이나 맞닿았다. 굳건했던 알약이 그의 입 안에서 부서지도록. 알약이 가루로 변할 때쯤에서야 그의 미간은 좁혀졌다. 입 안 가득 쓴 것이 느껴졌다. 앞에 세워둔 물병을 집어 든 그는 고통스러웠는지 빠르게 뚜껑을 열어 입 안 가득 물을 들이부었다. 몇 번의 헹굼 끝에 가루들은 금세 물에 융합됐다. 하지만, 그뿐. 물은 한참 동안 그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의 입 안에서,

한참이나.








[윤기야, 수능 잘 봤어? 어땠어?]

“잘 보긴 뭘 잘 봐. 공부도 제대로 안 했는데. 아, 몰라. 배고파.”

[아, 우리 아들 배고파? 그래, 다 끝났는데 얼른 밥 먹어야지. 간만에 다 같이 외식이나 할까, 아들?]

“뭐 그러던가.”

[응, 아들. 시내로 나와. 엄마도 아빠랑 같이 빨리 나갈게. 형도 학교 끝났다고 집으로 온댔어, 바로. 형 오면 바로 출발할게.]

그것은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배고프다는 투정은 괜한 것이었을까. 가족들과 주로 갔던 고깃집 앞에서 한 시간을 족히 기다리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그의 어머니였다. 당장에라도 달려올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순 거짓말이었던 것일까. 그는 숱하게 울려대는 핸드폰을 퉁명스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화가 난 그의 속을 모르는지, 끊길 생각을 하지 않는 벨 소리. 그는 두 통의 부재 끝에 온갖 짜증을 부리며, 세 번째 발신에서야 응답하였다. 온 힘껏 퉁명스러움을 담아내며.



“내가 지금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대체 언제 올 건…….”

[전화 받으시는 분 혹시 핸드폰 주인 보호자 되십니까? 여기 효성병원 응급실입니다. 현재 핸드폰 주인 되시는 50대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 그리고 2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남성 한 분이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서 곧장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 우선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 분.]



핸드폰을 떨궜다. 위태로이 흔들리는 그의 동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의 긴 기다림 속에는 끓어오른 화가 전부인 줄만 알았다. 그 속에 혈연의 죽음이 있을 줄이야.
전율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가에 주저앉아버린 그는 머리를 쥐어짰다. 발이 너무 무거워서 차마 뗄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애절했기에, 한동안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왜, 왜 하필 지금… …, 왜. 왜 갑자기 왜 하필 오늘이냐고. 왜!”



결국은 고개를 파묻고 울분을 토한 그였다. 그들의 변고, 그 모든 근원이 자신이라는 것, 그 사실 하나가 그의 발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왜 하필 오늘일까. 왜 하필 오늘 잘 쓰지도 않던 떼를 부렸을까. 왜 하필, 왜 하필 오늘 ……오늘일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틀어진 날, 왜. 왜 하필, 그 끝이 꼭 사고였어야만 했나.

서러운 울음 너머로 익숙한 벨 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동일한 발신자로부터의 전화. 점차 부재가 쌓이자,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모든 것이 멎었다.



[11월 18일 오후 7시 32분, 일행분들 전원 사망했습니다. 속히 내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완벽하게 세상에 홀로 남겨졌음이 선언되었다.

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장례를 마친 후, 그의 일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에게 남겨진 일말의 유산마저도 외딴 피붙이들이 단숨에 빼앗아갔기에 모든 것이 무無의 상태였다. 의식주 모두 해결할 수 없는 상태.
어떠한 선택의 기로도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택해야만 했던 것은 안전모를 쓰고 일하는 것뿐. 그렇게 하루살이마냥 연명하며 살아왔다. 큰 돌덩이에 깔려 죽기를 매 순간 고대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옥상에서 철봉을 매달고 있던 인부 하나가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모두 얼어붙었다. 하얀 시멘트 위를 적셔가는 선혈을 보며 발을 뗄 수 없었는지 다들 먼 발치에서 그의 숨통이 끊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희미해져 가는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던 유일한 사내는 오로지 윤기뿐이었다. 그의 식어가는 몸체를 매만진 것도, 구급차를 부른 것도, 현장의 피를 신속히 닦아내어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바른 것도 모두 그가 해낸 것이었다. 인부들은 그 뒤로 그를 얼음덩이라 칭했다. 사고 현장을 모두 목격하면서 눈 한 번 껌벅이지 않은 무심한 놈. 한 생명이 잃어가는 것을 생생하게 접했음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던 무서운 놈. 하지만, 그 칭호는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이유 모를 해고가 그 근원이었다.



“네 마음대로 현장을 훼손하면 어떡해, 인마! 너 오늘부터 해고야.”

그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은 이틀 뒤였다.


그때부터였다. 그가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산 것은. 유독 유년 시절을 그리워한 것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생각한 것은. 그리고, 순간에 비어가는 지갑을 바라보며 죽음을 망설이게 된 것은.



“어릴 때는 참 편했는데. 편히 쉴 수 있는 깨끗한 집이 있었고, 실컷 놀다 오면 맛있는 간식이 차려져 있었고. 떼를 써도, 화를 내도, 징징거려도 아이니까. 아직 어리니까. 그렇게 다 넘겨줬는데, 다들.”

그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바라보았다.


“어른이라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고작 몇 살 더 먹었다고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키냐. 하늘도 존나 무심하지, 씨발. 힘들 때 위로해주는 사람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버텨내야 하는 거였나. 원래 어른이라는 게… …. 하, 왜 이렇게 궁상맞냐, 나. 비참하다, 민윤기. 너 지금 존나 찌질해보여.”

그리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조함을 넘어서 퍽퍽하고도 흐릿한 눈을 비볐다. 간신히 벽을 짚으며 껌벅이던 그는 옆에 걸려있는 겉옷을 하나 빼입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만 원을 소중하게 붙들며.


“간만에 엄마나 보러 가야겠다.”



그가 걸음 한 곳은 묘도, 봉안당*납골당도 아니었다.

“졸피뎀 하나 주세요.”


그저 동네 약국이었다.








분명 삼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넘어간 것일까. 천천히 눈을 뜬 그를 반긴 것은 암흑이 아닌 광명이었다. 찬란한 광명. 이상하게도 익숙한 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런 오묘한 공간. 고목으로 지어진 집이라도 되는 건지, 내벽은 충분히 껍질의 우둘투둘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뭇잎의 푸른빛이 눈앞에 만연했다. 그래, 나무 같았다. 나무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어, 윤기! 뭐야 지금 온 거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렸잖아!”

외딴 세상에서 처음으로 그를 맞이해준 것은 뒤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윤기는 재빨리 뒤돌아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의 뒤편에는 미성년같이 보이는, 그런 사내아이가 한 명 서 있었다. 어른이 되지 않은 듯한, 아이의 명랑함이 물씬 풍기는 풋풋한 아이가.



“언제 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너무 지루해서 악어의 개울에 사는 시계를 삼킨 악어나 찾아볼까 했었거든? 그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그거라도 좀 세어보려고 했었어.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더라……, 뭐 윤기 눈에는 보이겠지만, 그렇지?”

“… ….”

“엥. 뭐야, 윤기. 왜 그러고 서 있어. 어디 아파? 윤기, 왜 그래.”



아이는 한참이나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지인을 대하는 듯 환대해주는 아이가 낯설기도, 낯설지 않기도 한 윤기는 잠시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괴이했다, 모든 것이. 분명 다량의 수면제를 입 안에 쏟아부었던 것 같은데 너무나도 멀쩡히 바닥에 딛고 있는 두 다리가 참으로 어색했다. 환각일까. 그러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보이는 것들이, 그리고 들려지는 것들이. 이 신비하고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고민에 잠겼다. 혹여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와 닿자 윤기는 눈을 크게 떴다.



“꿈인가?”



분명 마음속에서 내뱉은 것 같은데, 입 밖으로 잘못 튀어나왔다. 그는 아이의 앞에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는 그의 말에 왼쪽 눈을 사납게 뜬 채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가 무안함을 몸소 느낄 정도로. 집중하는 시간의 끝에는 왜인지 모를 아이의 서러움이 내비쳐졌다. 아이는 그의 얼굴을 보던 시선을 낮추고, 입을 비쭉 내밀었다.



“또 까먹었어. 미워, 윤기.”

“저기 그러니까 여기가 대체 … …,”

“아무 말도 하지 마! 오늘은 안 까먹는다고 했잖아!”

아이의 고함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씩씩거리던 아이는 그의 앞에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구시렁거리더니 그의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왔다.


“진짜 미워, 윤기. 알지? 어떻게 나를 까먹을 수 있어. 속상해… ….”

표정에 걸맞게 모든 감정을 표출한 아이는 뒷말을 흐리더니 그의 품속에 안겼다. 손쓸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이였기에. 투정부릴 수 있는 어린아이였기에 그 또한 그의 품에 안긴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으나.



“내가 미안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연신 사과를 했다.



“이번에는 잊지 마. 자, 따라 해보세요. 박 지 민.”

“박지민?”

“응, 맞아. 내 이름! 제발 까먹지 좀 말라고요. 이 네버랜드야 까먹어도 내가 계속 알려주면 되지만, 내 이름을 까먹은 사람을 보면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요? 나 진짜 울 뻔했어. 다음에 또 까먹으면 진짜 혼나!”


아이는 윤기의 품에서 고개만 쏙 뒤로 빼내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모든 말에 장단 맞춰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해맑음이 다시 아이의 얼굴에 자리 잡았다. 약속하라는 말을 숱하게 내뱉고, 그의 새끼손가락이 아이의 것과 몇 번을 더 마주한 후에서야 아이는 그의 품을 벗어났다. 그의 손을 맞잡은 아이는 앞장서 그를 이끌었다.



“자, 그럼 이제 가자!”

아이 본연의 미소가 돌아왔다.



E-mail | hervan.b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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