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올렸던 글을 수정했다가 아예 비공개로 돌렸지만- 논컾과 무성애자에 대해서 다소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요. 이 자리를 빌어 그 부분을 보고 상처받으신 무연정자-무성애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이전 글에서 "장르/작품을 비평하되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표출하진 말자", "장르를 비평하려면 적어도 조사하고 하자"는 말을 했었지요. 그리고 그 글이 "결국 빻은 거 먹고싶어서 빤스벗은 거 아니냐, 응 개빻은 오타쿠~~ 여혐!"이라는 반응을 많이 보았습니다...

적어도 원글을 다 읽으신 분이라면 "뭔가를 비판할 때 자극적이고 정보값 없는 용어만 쓰면서 패는 데에 열중하지 말자."라는 이야기도 보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아니면, 저에게 그런 반응을 주신분들 중 일부는 글을 다 안 보고 다른 사람의 몇줄 요약만 보고 비판만 하신 걸까요...


원글에서 글자들에 일곱빛깔 무지개빛 칠을 한 건... 사실 사람들이 장문의 글을 안 읽는 걸 많이 보고 겪어서였어요. 색칠해놓으면 칠해놓은 부분이라도 읽겠지, 하고요. 다른 사람이 장문의 글을 올렸을 때, 글이 아주 쉽거나/누가 형광펜을 칠해두지 않으면 맥락도 못 읽고 딴소리 하는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냥 볼 사람만 보면 되는 소설 리뷰글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길어도 색깔칠을 한 적 없지만(그냥 소수만 보면 되기 때문에), 지난번 글은 달랐으니까요.

물론 아주 결점 없고 전문적으로, 공들여 쓴 글은 아닙니다. 사실 돈을 받거나 어디 제출할 글도 아니고, 논지 전달만 되면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애초에 주된 예상/타겟 독자가 교수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라, 트위터의 서브컬쳐 2차 팬덤이기도 했고요. 오히려 그래서 트위터에서 말하듯 구어체에 가깝게 쓴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쓴 글의 요지를 이해하고 공감했다는 분도 많고 이해 못하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일부러 맥락을 이상하게 꼬아 요약하시던(=빻은 거 파고싶어서 자기합리화 오진다든가) 분들도 계시니 그냥 언제나와 같네요...


사실 지난번 글이 2차판/조슈바네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평소 제 계정이나 포타에서 로오히를 분석하며 다른 인물들의 가해자성과 피해자성 얘기 등을 자주 해왔고 그 부분을 각잡고 정리해야지,라는 트윗도 쓰곤 했으니까요. 로오히와 제국주의, 같은 제목으로요.

그러다보니 글을 쓰며 무심코 그 부분을 "해당 글에 굳이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평소 제 계정이나 포타를 구독하던 사람들은 제가 언제나 하던 말이 있으니 <소위 빻은 내용도 다 괜찮다>는 얘기가 아닌 걸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포타의 다른 로오히 관련 글을 봐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2차 씬에 대한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로오히 서사와 인물들에 대해 다루는 건 아예 미뤄졌고...

트위터에서 그 부분을 마저 얘기하려다, "어쨌든 빻은 거 눈치 안 보고 먹고싶다고 빤스 벗었다"는 식으로 요약하는 사람의 인알을 여러 건 보고는 너무 허탈해서 그만둬 버렸어요. 사실 원글을 다 읽으면, 최소한 "스토리/인물에 대한 토론은 좋지만, 그걸 좋아하는 타인을 공격해서 <스트레스 풀려고 하지는 말자>."라는 메세지는 전해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말이에요...


저는 애초에- 로오히가 (최소한 "아예 빻은 거 없고, 피씨한 걸 원한다고 흔히 말하는 서브컬쳐-2차팬덤 덕후들 사이에서는) 길티 플레져로 먹는 게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판타지- 신분제 세계관이라는 것부터가 보수성에서 자유로운 세계는 아니지요. 특히 주인공이 일반 평민이 아니라 군주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고, 그가 입헌군주정의 군주가 아니라 "아무리 선의를 가졌다 해도" 타국을 침략하고 실력행사를 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뻗어나가는- 유형의 군주라면 더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신분제에서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주연급이며 긍정적으로 그려진다면, 신분제 미화와 낭만화의 위험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거니까요.

그런데 주인공의 "선한 침략"에 대해서는 단지 긍정하고 군주-부하 관계도 잘만 낭만화하고 먹다가, "가상 서사물의" 제국측 인물 하나...에 대해서는 갑자기 극도로 한국 역사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당시는 딱히 어떤 조합을 파거나, 연성하고 있지 않던 때였고요.


저는 분명히 로오히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이게 길티 플레져인 걸 알고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잘못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게임이니까>라고 용납하면서 파고 긍정적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에요. 이상했지요.

일단 이 게임은 신분제-군주를 낭만화하는 위험성이 있지만, 동시에 그걸 세일즈포인트 삼아서 "좋은 정치란, 인권이란 무엇인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가해자이자 피해자, 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조슈아를 제외하더라도요)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에서 "절대악"은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아, 아직 안 나온 시스템-상위의 신은 어쩌면 절대악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사람들의 서사도 다양해요. 대제 카르티스는 세계를 구하려다 무한루프를 하고 있지요. 아무리 회귀하고 다시 반복해도 개선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선한 목적을 가지고, 악한 수단을 휘두르"게 되었고...

조슈아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학대 및 사육당하고, 세뇌 마법"에 걸려 살아온 사람이지요.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최면>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병기로 길러진 그에게 주체성과 자유의지, 선택권이라는 게 존재했는지부터가 의문이고요. 사실 제대로 된 자아가 형성됐는지도 좀 불확실하지요. 

로판 중에 "내가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했는데 그 몸 주인이 악녀인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주인공들이 "어쨌든 몸 주인의 업도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까" 속죄를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차라리 그런 상황과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지요. 그러나 더 나쁜 건, 조슈아는 제대로 된 자아상이 형성된 적도 없다는 거고요. 그러나 그의 신체나이는 아마 성인인 듯 보이니, 더 복잡하지요. 바네사가 그에게 책임을 물은 것도 그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미성년자였다면 조금 더... 보호가 필요할 거라는 판단이 있었겠지요.

나인은- 호문쿨루스고 어린 아이이고 애정결핍이며, 아마도 학대를 당하며 자라온 듯 보이지요. 그를 대하는 로드와 주변인의 태도는- (지적능력, 그리고 그가 호문클로스라 인간처럼 청소년기-성년기가 인간처럼 엄밀히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그가 비록 제국측의 인물이고 명한대로 이쪽편과 싸워왔지만 "학대받던 어린아이"를 구한 듯한 반응입니다. 솔피의 경우는... 끝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반항아에 가깝고요. 

그가 실제로 살아온 햇수, 외견 나이의 문제도 있겠지요. 아마 나인 캐릭터는 (인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성된 호문클로스라 법적으로는 미성년자가 아니고, 전장에 나갈 수 있더라도) 학대받고 제국의 가해행위에 동원된 소년병...의 이슈를 다루기 위해 등장시킨 듯하죠. 그가 조금 크면(/더 오래 살면) 조슈아가 되는 거고요.

나인과 솔피는 비록 신체와 정신이 모두 "(아동기를 거치지 않고) 성숙한 채 태어난" 개체들이라도 인생경험이랄까, 제대로 된 애착-형성의 경험이 없기에 자아도 청소년기 정도의 성숙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죠. "인간이 아닌 개체이기에" 인간처럼 대우받지 못하는 지점도 짚어볼 수 있고요. 물론 조슈아의 경우 인간인데도 인권을 존중받지는 못했고, 그 역시 나인처럼 어린 시절부터 학대받고 실험받고(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청소년기부터 세뇌 및 최면을 당해 병기로 길러졌지만요.

솔피와 나인은 비록 인간 기준 청소년은 아니라하나 자아가 아직 미숙한 듯 보이는데, 제국의 정복과 전쟁사업에 동원되지요. 인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지성체에 대한 윤리성, 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겠군요. "인간의 창조물-지성체는 지성체로 완성되어 있는데, 보호받아야 할 시기가 있는가? 처음부터 법적 성인 취급을 하면 되는가?" 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겠죠. 물론 인권도 망한 제국은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 안 이루어진 것 같지만요... 아무리 인간 어린아이와 달리 지성과 능력이 처음부터 뛰어나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애착형성이 되지 않으면" 끝내 불안정한 자아를 가질 수도 있겠죠.

프라우의 경우 노멀 때는 제국 편, 하드 때는 바네사와 아발론의 편이었지요. 프라우는 게임을 하듯이 이 세계를 노닐고, 자신의 재미를 지고의 가치로 추구하며 인간들이 죽고 사는 일에 그닥 신경쓰지 않습니다.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제국의 편에서 유능한 전력이 되지요. 강자들과만 싸웠다고 해도, 그의 승리가 제국 측에 유리한 판세를 제공하긴 했을 테고요. 그런 점에서 도덕적 해이함을 논할 수는 있을 테고... 하드 때는 바네사와 아발론의 편에 섰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적인 도덕률이 없는 듯 보이지요.

노멀 때 바네사가 프라우의 영입에 격하게 반대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바네사도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제국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직접 원인, 그리고 자신과 전장에서 직접 마주하지 않은 사람은 다르니까요. 프라우는 재미만을 쫓는 사람이기에 "강자들과만 싸웠지 민간인과는 관계되지 않았다"는 면죄부도 존재하고요. 어쨌든 그도 제국 8검이었지만...

로드는 마치 플라톤이 얘기하던 철인 군주 그 자체같지요. 선량하고 정의로우며 억압하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챙겨주는" 지배자... (물론 휴일은 안 챙겨주는 듯) 그는 이입하고 공감하기 좋은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왕정제-신분제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게 될 위험성이 있긴 하지요. "닭다리 한 개" 발언에서도, 저는 그게 매우 온건가부장같으며 사소해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고요. 한국 가정도 아버지에게 닭다리나 좋은 부위는 가장 먼저 드리지 않습니까... 그게 작은 권력일까 하면?

그리고 그는 심지어 "정의로운 목적으로, 최대한 타인을 죽이지 않고, 상대국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쳐들어가서 실력행사를 하지요. 그건 매우 소년만화 문법같고, 기본적으로 로오히가 그런 쾌감을 위한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스토리 자체가 그렇다는 건 변하지 않지요. "선량한 철인군주가 타국에 내정간섭을 한다"... 한국인들은 혁명의 민족이라더니 다 거짓말이에요. 한국사람들 정말 성군 좋아하죠. 2차 연성에서도 로드는 여전히 "주군"인 걸 봐도 그렇고요. 왕은 목 베야 진정한 혁명이라던 인간들 어디갔냐... 

그래서 노멀을 플레이할 때 그런 부분에서 길티 플레져를 느끼며 현타를 맞으면서도, 중간중간 "분명히 알고 메타-적으로 얘기한 부분들"을 보면서... 게임을 계속 해봐도 되겠다, 대체 어떤 스토리인지 궁금하다...고 생각했었지요. 하드 버전에서는 노멀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직구로 얘기한 부분 흥미로웠고요. (그게 오히려 기만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요)


뭐 아무튼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로오히 세계관 자체가 "철인-군주"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피씨한 인물은 없다는 것부터(..) 결함 있는 인물들이 인간적으로 마주했을 고민에 대해서 좀 길게 풀어나가고 싶었어요. 이 게임이 "절대 용서하지 못할 <인간>"을 징벌하는 쾌감을 주려고 의도하진 않았던 것 같고... "내가 저 사람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의도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황제인데 아무리 루프해도 세계를 구할 수 없다면, 조슈아인데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허상이었고 모든 가치관과 신념이 세뇌-최면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네사인데 내가 미워하는 가해자가 사실 세뇌-최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같은 딜레마를 고민하게 만들려고 했다, 고 느꼈지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딜레마에 대한 얘기가 "이 캐 파지 마라"라는 말을 할 때만 나오는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팬덤/팬질 검열용이 아니라, 그냥 스토리 자체로 너무 재미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이길 바랐어요. 캐릭터들 자체의 얘기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으니까요. 서로 공격하고 날선 말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그런 분석이나 담론은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조슈+바네 관계성을 파는 사람들도 원작 스토리라인과 감정선에 충실하게 파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저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봤고, 그런 연성도 많이 봤으니까요. 그걸 "빻은 것"이라고 하면 글쎄, 원작의 그런 스토리라인 자체가 "나쁜" 건가요... AU로만 성애를 먹겠다는 분도 계셨고, 그냥 적폐라고 얘기하면서 썰을 푸는 분도 계셨고... 나름 고민하면서 소비하는 사람들 많이 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게 "그 사람들을 <공격하고 언어폭력을 휘두르며 통제를 시도할> 타당할 이유가 되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그리고 원글에서 얘기했던 "비평하라면 그 씬의 작품을 다 보고 오라"든가, "반박은 똑같은 분량의 글로만 받는다"는 거... 물론 과장법입니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 안 했고요(..) 저 역시 조슈바네 연성 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작품을 비평하려면 그 작품을 다 보고 얘기하는 게 좋고, 장르나 커플링 소비의 경향성을 얘기하려면 그만큼 작품이나 팬덤 분위기를 알아볼 필요는 있지요. 그게... 소위 "빤스 벗었다"라든가 얘기 나오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백합이나 로판 등 다른 장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작품 몇 개는 읽어보고 와라"라고 하는데 "싫어! 안 보고 그냥 깔 거야!"라는 반응 굉장히 많이 봤고, 트윗 몇 개로 자극적인 단어와 욕설만 끄적이며 "타당한 비판"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봤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기에 제발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내용을 비판하더라도 나름 정성들여서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공격성을 빼고 얘기해달라고 한 말이었고... 어떤 작품이나 팬덤 분위기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너무 손쉽게 비판하려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환멸감을 느낍니다.


이번에는 목차를 만들지도, 글씨에 색깔을 칠하지도 않았는데 보기 편하셨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핵심은 공격성 없이 서사나 인물에 대해서 재미있게 논하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팬덤/장르/커플링에 대해서 논할 거면 어느정도 알아보고 얘기하자, 상대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낙인찍기와 구분짓기부터 시도하지 말자... 뭐 이런 이야기였지요.


이번에는 이 글이 오독되거나 악의적으로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해서 속 시끄러웠던 분들도 그냥 행복한 덕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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