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역시 맞춰둔 알람은 중간에 꺼버렸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나서 조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언니랑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듣고 친구와 잠결에 역시 학교 가기 싫은 건 만국공통이라며, 우리도 학교 가기 싫어...라고 작게 대답해주고 다시 잠에 들었다.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은 건너뛰고 어제 사온 아이스크림부터 찾았다. 아이스크림은 역시 항상 옳다. 오늘 일정은 조금 빠듯했기에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2. 첫 목적지는 몽마르뜨 언덕. 몽마르뜨에 도착한 것이 11시 반쯤이었기 때문에 구경에 앞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어젯밤에 레스토랑을 미리 찾아놓은 덕분에 헤메지않고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레스토랑은 Le Relais Gascon. 오픈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손님이 한명도 없었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지금 식사 가능하냐고 묻고 들어갔다.

 


3. 직원분이 우리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셨고, 그렇다고 대답하니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주셨다. 블로그에 많이 나와있던데로 한국인 손님이 꽤 많은 듯 했다.


4. 메뉴들을 보고 열심히 무슨 음식일까 유추해가며 에피타이저와 스테이크, 디저트를 고르고 마지막으로 곁들일 와인을 골랐다. 와인은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고, 혹시라도 숙취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와인을 마시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와인의 나라 프랑스인데 한번쯤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직원분께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내 취향은 달달한 것! 직원분은 달달한 것을 찾는다면 화이트 와인이 좋다며 화이트 와인 중에 추천을 해주셨고, 나는 추천해주신 것을 택했다.

 


5. 와인과 식전빵이 가장 먼저 나왔다. 나는 화이트 와인, 친구는 레드 와인을 골랐다. 내 화이트 와인은 냉장고에 보관된 걸 주셔서 시원했다. 처음 먹어본 와인의 맛은, 전체적으로 달달한 맛이었지만 끝부분에 술 맛이 확 올라온 다는 것. 그래도 처음 먹어본 와인치고 맘에 들었다. 이제 숙취가 없기를 바래야겠다.


6. 프랑스에 오고 나서 레스토랑에서 정식으로 먹는 식사가 얼마 없었다 보니 식전빵을 3일째나 되서야 처음 먹었다. 한국에서의 딱딱하고 질긴 바게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겉바속촉이 따로 없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식전빵을 비웠고, 직원분께 식전빵을 다시 요청해야했다.


7.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사진을 찍고 얘기를 하는 사이에 주방에서 주방장분이 쏙 나오시더니 우리에게 웃으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세상에. 우리는 방금 들은게 한국어냐며 놀라워하다가 우리도 한국어로 대답해드렸다. 주방장분이 되게 부끄러워 하시면서 다시 주방으로 쏙 들어가셨다.

 


8. 에피타이저로 시킨 파테 드 캉파뉴가 나왔다. 아무래도 메뉴판에서 글자만 보고 골랐다보니 처음보는 비주얼에 살짝 놀랐다. 무슨 음식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 입 먹어보니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한 맛이었다. 어디서 먹어본 맛인지 바로 생각나지 않아 몇 번 더 먹어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긴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순대 간? 또는 피순대?와 굉장히 비슷한 맛이었다는 것. 다소 당황스러운 맛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9.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 처음에 메뉴를 고를 때, 그래도 프랑스에 왔는데 에스카르고를 한번쯤 먹어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고민을 했지만, 평소에 소라나 조개류를 못 먹기 때문에 안전빵으로 스테이크를 선택했다. 스테이크도 맛있었지만 스테이크와 같이 나온 감자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12. 대망의 디저트. 나는 크림 브륄레를, 친구는 레몬 타르트를 골랐다. 크림 브륄레가 조그마게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거대한 크림 브륄레가 나왔다. 디저트만 먹어도 배가 어느 정도 찰 것 같았다. 맛은 당연히 좋았다! 아무렴 프랑스인데 디저트가 맛 없을까! 



13.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소화를 시킬 겸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몽마르뜨 언덕을 찾아가기로 했다. 지도에 몽마르뜨 언덕을 치고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는 도중에 발견한 물랑 루즈. 물랑루즈가 주 목적이 아니라서 짧게 휙 사진만 찍고 다시 지도를 따라갔다. 



14. 무언가 잘못되었다. 우린 분명 구글맵에 몽마르뜨 언덕을 검색했는데, 언덕은 코빼기도 안보이고 묘지인지 관인지 모를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구글맵이 가라는 대로 얌전히 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묘지가 가득...한 이곳은 몽마르뜨 묘지였다. 묘지의 한 가운데에서 서둘러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원했던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려면 지도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검색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몽마르뜨 묘지와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었기에, 우린 과감히 몽마르뜨 언덕을 포기하기로 했다. 몽마르뜨 묘지에 몇몇 유명인의 묘지도 있다는 글을 보고 유명인의 묘지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프랑스어를 1도 못읽는 관계로 이것 역시 패스했다. 



15. 땡볕에 묘지 탐방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 근처에 보이는 '라뒤레' 글자에 흥분에 친구를 잡아끌었다. 내 위시리스트 중 하나인 '라뒤레' 마카롱을 난 꼭 먹어야했다! 난 당연히 라뒤레가 베이커리일 줄 알고 자신있게 들어갔는데, 아니었다. 카페...인 듯 했다.


16. 라뒤레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니, 직원분이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직원분이 주고 가신 메뉴판을 열심히 보며 무엇을 시켜야할지 고민했다. 긴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마카롱 4개와 정체모를 티. 항상 주문을 할 때 직원을 부르면 안되고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열심히 직원분과 아이컨택을 시도했다.


17.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분은 남자분이셨는데, 잘생겼다! 굉장히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받아주셨고, 우리가 고른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시고, nice choice라며 칭찬(?)해주셨다. 설명 중간중간 미소를 보여주셨는데, 웃는 게 정말 예뻤다! 웃는 게 이쁜 남자가 이상형인데, 역시 청혼을 했어야했나...

 


18. 주문한 마카롱 4개는 맛있었다. 사실 삐에르 에르메 마카롱이 좀 더 내 취향이었다. 고민 끝에 시킨 티는 직원분이 설명을 해주실때는 분명 되게 맛있는 조합으로 만들어진 티인 것처럼 들렸는데, 아니었다. 이건 뭐... 굳이 설명을 하자면 티를 좀 오래 우려서 쓴맛이 가득하고, 거기에 아이스티 가루를 아주 조금 타서 싱거운 맛이 더해진 묘한 맛...이랄까. 한모금 마시고 포기하기로 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마실까 했는데, 역시 아닌 것 같다. 



19. 여유롭게 마카롱을 먹으며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 중간중간 처음에 주문을 받아주신 직원분이 와서 필요한 것은 없는지, 여행을 온 것인지, 여러가지를 물어보셨고, 그 때마다 나는 직원분의 미모에 감탄했다. 마지막에 계산까지 그 직원분이 해주셨고, 라뒤레에 들어간 순간부터 우리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에, 나올 때도 기분이 정말 좋았다.


20. 사실 나는 박물관, 미술관보다는 음식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오랑주리 미술관에 굉장한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프랑스에 왔으니 친구를 따라 오랑주리 미술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들어가기 전에 친구와 한가지 약속을 했는데, 친구는 미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나는 별로 없기 때문에 각자 미술관을 관람하고,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21. 오랑주리 미술관은 국제학생증 할인이 되서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 오디오가 있기 때문에 한국어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기세좋게 한국어 오디오를 들고 미술관을 돌아다녔는데, 한국어 설명이 나오는 작품이 몇 개 없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아무래도 모네의 작품이 많았다. 아무리 미술에 관심이 없다지만 모네의 작품은 정말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언젠가 미술책에서 본 그림들!이 나오면 너무 반가웠다. 



22. 친구가 미술관을 천천히 관람할 동안 나는 기념품샵에 가서 엽서를 몇 장 골랐다. 미술관에 있던 작품들 중 내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 위주로 골랐다. 아무래도 아까워서 엽서를 써서 부치지는 못할 것 같다. 



23. 마지막 코스는 루브르 박물관. 지도상으로 루브르 박물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걸어서 가는 것을 택했다. 사진에는 날씨가 굉장히 좋아보이지만, 엄청난 더위였다. 특히나 인도에 그늘이 없어서 주구장창 땡볕 속을 걸었다. 센강을 따라 걸었는데, 한강이 정말 크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24.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는 알고보니 입장하는 입구였다. 사람이 많아 좀 기다렸는데, 피라미드 안은 유리온실이 따로 없었다. 정말 너무 더웠다... 




25. 루브르는 정말 넓었다. 이미 오랑주리 미술관도 다녀온 우리에게 루브르는 좀 무리였다. 걸어다니다 쉬고 걸어다니다 쉬고를 반복했다. 와중에 목 말라서 물을 샀더니 탄산수라 실망했다... 탄산수를 싫은데... 루브르를 배회하다가 도저히 발 상태가 말이 아니라 유명한 작품들을 휘리릭 보고 나가기로 했다. 비너스 조각상도 보고 모나리자도 보고 잔다르크도 봤다. 다행인건 모나리자 앞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 불행인건 잔다르크를 찾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


26. 루브르는 정말 미로였다. 우린 분명 3층에 있었고,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을 찾아 내려왔는데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없었다. 2층에는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조각상과 여러 유물이 전시중이길래 이왕 온 김에 구경도 했다. 난해한 조각들이 많았다. 그리고 길을 못찾아서 다시 3층을 올라갔다. 3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2층으로 내려가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과 마주쳤다. 3층에서 또 다른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서 2층으로 내려왔는데, 다시 아프리카 부족의 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데자뷰인걸까... 아까 마주친 한 무리의 외국인들과 또 마주쳤다. 당황하며 다시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데, 아까 마주친 한 무리의 외국인들도 다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 사람들도 길을 잃은 것 같았다. 3층에서 다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는데, 아까 찾은 계단인건지 잘 구분이 안갔다. 그래서 다시 2층으로 내려가봤다. 눈 앞에 아프리카 부족의 전시가 펼쳐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2층으로 내려오는 아까 마주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을 또 마주쳤다. 우리가 다시 올라가고 있으니, 이사람들도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그 사람들도 우리를 따라 다시 3층으로 올라왔다. 우린 아프리카 부족 전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27. 오늘의 저녁은 돈까스와 삼계탕이었다. 한국에서보다 한식을 더 먹는 기분이다. 삼계탕이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하루종일 쉼없이 걸어다닌 것이 문제였다. 내일은 니스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미리 짐을 싸놓기로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져온 캐리어 2개를 다 들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체력적으로도 무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장아찌 냄새가 밴 캐리어에 내 옷을 넣고싶지는 않았다- 작은 캐리어는 언니네 집에 놓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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