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에 서서

가을이 종종걸음으로 해치를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이미 떠난 지 오래인가 생각해도

이제 막 12월인데 미련이 남은 것 같네


구성에 실패한 단어들이

날개를 펴는 법을 잊고 잠들어 있다

눈으로 바라본 하늘은 파련화*와 쇠코화**가 받친

단청 위 푸름은 맑음


파편이라 생각한 눈 아래는 특별 전시를 기획 중인

큐레이터의 사색이 차곡차곡 쌓아 올라간다

세계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것투성이


소나무에 걸린 솔방울 옆에 겨우살이가 자라고

모란은 그림자 아래에서 태평성대를 외친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관찰자

세계가 설계되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하루는

또 다른 시선으로 작은 이야기를 경청한다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희망을 듣고 읊는다


*파련화: 단청 문양 중 연꽃잎의 한 쪽이 나선형으로 꼬부라져 감긴 듯하게 된 꽃무늬

**쇠코화: 단청 문양 중 소의 고삐모양의 좌우에 감긴 곱팽이가 있고 중간이 블룩하게 된 녹색꽃무늬가 사용된다 


일반인, 특이사항은 글을 쓴다는 것. 가능하면 매일 시 씁니다. 프사는 라무님 커미션. 썸네일 사진 대부분은 언스플래시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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