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블루(dazzling blue)

w.김목련(@magnolia_KV)

12



정국이 눈을 뜬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이미 하늘 높이 뜬 해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정국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가 이내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품 안에는 태형이 있었다. 우뚝 솟은 콧날에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색색 작은 숨을 뱉어내는 태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정국이 시선을 틀어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오후 두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다시금 고개를 아래로 숙인 정국이 태형의 얼굴을 확인했다. 태형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기억에 새기듯 뚫어지게 쳐다보던 정국이 이내 몸을 움직여 태형을 품에 안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오후를 맞이한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품 안에 자리한 온기와 손끝에 닿는 감촉까지. 마치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인 것 같았다. 태형에게 울며 했던 고백도, 그 고백에 달콤한 말을 한가득 뱉어내며 응하던 태형도. 모든 것이 다 너무 거짓말 같아서 간지러웠다. 결국 정국은 태형을 더더욱 힘주어 품에 안으며 제 감정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애기야, 나 숨 막힌데."





움찔. 정국의 떨림은 품 안의 태형에게 확연하도록 전해졌다. 덕분에 그런 정국의 반응에 정국의 품속에 얌전히 있던 태형 역시 큭큭 웃음을 흘려버렸다. 내 얼굴을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데? 내가 그르케 좋아? 장난기를 가득 담은 태형의 말에 정국은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 태형을 더더욱 품안 한가득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부끄러움에 발갛게 상기된 볼을 들킬 것만 같아서.


악, 애기야 나 진짜로 숨! 숨 막혀! 언제 일어났어요? 나 너보다 훨씬 전에! 근데 왜 자는 척했어요! 투닥투닥 침대 위에서 몇 차례의 장난기 섞인 뒤척임을 겪은 후에야 겨우 정국에게서 벗어난 태형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전정국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덕분이었다. 세상을 다 홀릴 것처럼 야하고 어른스럽던 처음의 모습은 죄다 과장이었는지, 한껏 부끄러운 얼굴을 한 게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 뭐 저렇게 귀엽고 난리야.


결국 고개를 숙여 정국의 볼을 앙 깨문 태형이 이내 정국을 품안 한가득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태형의 하나뿐인 애기는 동글동글 순한 눈망울을 가졌으면서도 단단한 몸 덕분에 품에 안기 벅차다. 결국 끌어안기는커녕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 모양새를 하게 된 태형이 정국의 볼을 냠냠 깨물었다.





“그야 우리 애기랑 더 침대에 있고 싶어서 그랬지.”





정국이 눈을 깜빡인다. 제 볼을 웅냠냠 깨물고 쪽쪽 소리를 내며 뽀뽀까지 하는 태형 덕분에 잠시 머리가 멍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이내 태형의 팔을 붙잡아 침대에 눕히려는데, 태형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태형은 몸을 웅크리며 정국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당겼다. 그리고는 이불을 품에 한가득 끌어안고는 침대 위를 데구루루 굴렀다.


덕분에 태형은 이불을 몸에 둘둘 감싼 모양새가 되었고 정국은 졸지에 이른 아침부터 나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팬티만 겨우 걸친 정국의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흐흥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흘리던 태형이 이내 중얼거린다.



나 몸이 너무 아파서 더는 못해. 단호한 태형의 말에 정국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다. 그러나 태형은 그런 정국의 표정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밤새 심각할 정도로 시달린 몸은 적어도 하루 이상의 휴식이 필요했다. 내가 무슨 불사신도 아니고. 안돼, 안돼.





정국은 말하지 않았지만 꽤나 양심이 찔리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초해서 태형의 시종 노릇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정국은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김밥 흉내를 내는 태형을 그대로 들어 안았다. 그에 놀란 태형이 귀에 대고 으악, 소리를 치는 덕분에 떨어뜨릴 뻔했던 것을 빼면 제법 완벽한 장면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태형은 돌돌말이 김밥이 된 상태로 정국의 품에 안겨 거실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라는 정국의 부탁 아닌 부탁에 응했다. 그 뒤 정국이 향한 부엌에서는 치익, 칙 무언가를 지지고 볶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났다.


그 후 정국이 들고 온 5첩 반상에 태형은 진지하게 정국과의 결혼을 고민해야만 했다. 하얗고 고슬고슬한 쌀밥은 물론이고 된장국에 예쁜 모양으로 말린 달걀말이, 오징어채볶음까지. 반찬을 하나하나 집어먹던 태형은 결국 아랫입술을 툭 내밀고는 저도 모르게 정국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애기야, 나 정말로 너 평생 끼고 살아야겠다.”





정국은 태형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잠시 알쏭달쏭 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작은 웃음을 띠며 고개를 슬쩍 숙인다. 태형은 그런 정국의 동그란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다시금 밥을 입안 한가득 넣을 뿐이었다. 몇 마디만 더 하면 전정국이 또 울 것 같아서였다.



전정국은 정말 태형이 중증 환자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허리가 조금 아프다고, 아니 솔직히 양심껏 말하자면 정말 아프다고 징징거리기는 했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 온종일 자신을 업고 다닐 판이었다. 태형은 다시금 자신을 둘러업고는 욕실로 향하는 정국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근데 사실, 나쁘지는 않아서 그냥 뒀다.


걱정이 한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자신을 번쩍번쩍 드는 이 근육질 토끼가 너무 귀여워서. 욕실에서 한가득 치약을 짠 칫솔을 입에 물고 치카푸카 아이처럼 양치를 했다. 양치 후에는 다시금 노예로 등판한 전정국이 자신을 소파로 옮겨주었다.



이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데. 소파에 드러누운 태형이 고개를 휙 뒤로 꺾어서 부엌의 정국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시야의 끝에 걸린 정국은 하얀색 무지 티를 꺼내어 입고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정국의 팔뚝에 자리한 손톱자국은 죄다 제가 밤에 새겨놓은 것이었다. 아침에 요리를 하면서 본 등짝은 더 화려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쩝, 입맛을 다신 태형이 이내 방향을 틀어 거실을 둘러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느긋하게 정국의 집을 둘러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정국의 집에 온 것도 이번이 고작 두 번째인데다가 저번에는 집안을 둘러보기도 전에 섹스로 이어진 덕분이었다. 거실에 자리한 인테리어 소품이라던가 가구 등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태형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정국이 보이도록 몸을 앞으로 쭉 숙인다. 소파에서 반쯤 벗어난 상체를 하고는 태형이 부엌의 정국을 향해서 소리쳤다.





“애기야, 나 네 집 구경해도 돼?”

“형 허리 아프잖아요.”





정국이 태형의 말에 화들짝 놀라 방향을 틀었다. 핫핑크 색의 고무장갑도 전정국이 착용하니 세상 제일 비싼 액세서리가 따로 없네. 태형이 입가를 당겨 웃으며 정국을 쳐다본다. 그리고 정국은 그런 태형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꼼질꼼질 손가락을 움직이던 정국이 결국은 작은 허락을 뱉어냈다.





“조심해서 움직여요, 알겠죠?”

“으응.”





제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파에서 내려온 태형을 정국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누가 보아도 엄살이 한가득 섞인 행동이었음에도 정국은 태형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태형의 행동거지를 가만히 살피던 정국이 결국 다시금 방향을 틀어 설거지를 재개했다. 벅벅 눌어붙은 밥알을 떼어내며 정국이 빠른 속도로 설거지를 해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형은 정국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온 집안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정국이 혼자 살기에는 제법 넓은 집이어서 구경할 것도 꽤나 많았다. 그리고 사실 정국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태형은 이 집안 구경의 목적이 있었다. 바로 집안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전정국의 취향을 담은 비디오 찾기.


킥킥 장난기를 가득 담은 웃음을 삼키며 태형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누가 보면 물이라도 만난 물고기로 착각할 정도로, 태형은 신이 나서 방안을 돌아다녔다. 정국의 책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태형은 이내 유독 두꺼운 표지의 책을 발견해냈다.



이런 거 보면 대부분 표지 안에 막 야한 비디오가 들어있고 그렇던데. 아니면 야한 잡지? 호기심이 가득 담긴 손가락 끝이 톡 책을 건드렸다. 그러다가 휙 빼내는데, 빙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당겨 웃은 태형이 휙 고개를 틀어 제 뒤를 쳐다보았다. 정국은 아직 부엌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중인 듯했다. 어딘지 장난기가 가득 담긴 표정을 한 태형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기 취향은 뭘까. sm은 아닌 것 같고, 직업 플레이? 야외플? 흐흥 콧노래를 섞어 책을 뒤적이던 태형은 이내 손을 뚝 멈췄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깜빡깜빡. 긴 속눈썹이 몇 차례 들썩이고 난 후의 눈동자에서는 모든 장난기가 흘러내린 후였다. 잠시 제 손에 담긴 것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태형이 손을 들어 올려 제 볼을 긁적였다. 애기야, 내가 쓰레기라서 미안해. 괜히 정국에게 속으로 사과를 한 태형은 이내 손에 든 것을 느릿하게 넘겨보았다.



태형의 손에 담긴 것은 그림이었다. 풍경화도 있고 누군가를 그린 인물화도 있었다. 큰 사이즈의 종이에 그린 것과 작은 엽서 사이즈의 종이에 그린 그림. 노트에 그린 그림도 있고 색지에 그린 것도 있다. 대부분 연필로 그린 그림은 선이 힘 있게 쭉쭉 뻗어있는가 하면 한없이 섬세하고 부드럽기도 했다. 힘주어서 그린 듯 뚝뚝 끊어지는 선과 힘을 풀어서 그어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물결 모양의 선까지. 제법 잘 그린 그림들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차갑고 시린. 저마다 다양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 가진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그림의 모서리에 작게 새겨진 이니셜. JK.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태형이 그 이니셜을 쳐다보았다. 연필을 꾹꾹 눌러쓴 듯 자국이 난 이니셜은 전정국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가져다 대어 만져보고 싶지만 혹여나 연필 자국이 번질까 눈으로 그림을 하나하나 훑어냈다. 불순한 의도를 가득 담아서 집안을 둘러본 제가 들고 있기에는 너무도 미안한 그림들이었다.



결국 조용히 그림을 내려놓으려는데 불쑥 등 뒤에서 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그건 또 어떻게 찾았대.”





휙 고개를 돌린 태형의 시야에 정국이 담겼다. 장난기를 담아 웃는 정국의 말간 볼을 쳐다보던 태형이 이내 손을 움직여 두꺼운 표지 사이로 그림을 넣었다. 그리고는 책장에 꽂은 후 제 등 뒤의 정국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정국은 그런 태형에 당황한 듯 눈을 둥글게 뜨며 태형을 끌어안았다. 혹여나 아프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태형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정국이 태형의 어깨에 코를 파묻었다. 기분 좋은 태형의 체취를 들이마신 정국이 눈부시게 웃는다.




정국은 요리는 물론이고 과일까지 아주 예쁘게 잘 깎았다. 예쁘게 깎은 사과를 입으로 쏙 집어넣은 태형이 정국의 손길을 받으며 눈을 깜빡거렸다. 정국은 태형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중이었다. 흔한 예능 프로그램이라서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태형과 함께 보니 재미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뽀뽀도 조금 하고. 방안을 뒹굴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휴대폰도 조금 만지고. 다시 또 출출하다 싶을 즘 무언가를 챙겨 먹고 방을 뒹굴고. 간지럼도 좀 태우다가 눈이 마주치면 진득하게 키스하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이상하게 잘 흘러갔다. 착실하다 못해서 과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버린 시간에 태형과 정국은 함께 바닥에 누워서 키득거렸다. 분명 아무런 것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 평소라면 지루하고 지겹게만 느껴졌을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함께 있는 서로의 덕분이었을 것이다.


태형은 바닥에 누워 제 위로 몸을 기울인 정국을 쳐다보았다. 두 팔꿈치로 제 얼굴 옆을 지탱하고 선 정국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등의 아래에 자리한 덕분에 얼굴 위로 어두운 그늘이 졌다. 태형의 눈이 깜빡이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던 정국이 슬금 웃음을 흘렸다.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웃음은 태형을 마주하고 있으면 불가피한 것이었다.





“형.”

“응.”

“사랑해요.”





정국의 속삭임에 태형이 말간 표정을 하고는 웃는다. 입가를 최대치로 당겨 웃는 웃음은 사랑스럽다. 태형은 정국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하얗고 말랑한 볼 위로 쪽쪽 뽀뽀를 퍼붓는다. 그에 정국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태형이 작게 속삭였다.





“근데 섹스는 안돼, 애기야.”





아, 형. 풀썩 태형의 위로 몸을 겹치며 정국이 칭얼거렸다. 그에 뭐가 그리도 좋은지 꺄르륵 웃음을 흘리면서도 태형은 정국을 꼭 끌어안았다.




침대의 위에서 정국은 몇 번이고 위험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속으로 참을 인을 세 번은 무슨, 적어도 스무 번은 적었다. 야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태형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청하는 것은 이 세상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하물며 부처가 내려오더라도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태형은 전정국에게 그런 인물이었으니까.


전정국이 약 서른 번째 참을 인을 뇌까리고 있을 때, 문득 태형이 속삭였다.





“애기야.”

“…네?”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 덕분에 대답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겨우 침을 삼키고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아닌체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주하는 태형의 시선이 어딘지 묘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는 어딘지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우울한 것 같기도 했다.





“너는 나를 믿니?”

“…네.”

“얼마나?”

“음…. 형이 저를 사랑하는 것만큼?”





태형이 정국의 말에 잘게 웃는다. 푸스스 흩어지는 웃음을 뱉으며 태형이 정국을 끌어안았다, 품안 한가득 정국을 끌어안은 태형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멍하니 정국의 뒤 어둠을 쳐다보던 태형이 눈을 감았다. 느리게 감긴 시야에는 어둠을 제외한 그 무엇도 담기지 않는다.





“너 그림 좋아하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만약 좋아하면, 계속해도 돼.”

“….”

“내가 다 도와줄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잖아. 태형의 속삭임은 어느덧 수마를 한가득 달고 있었다. 졸린 듯 잠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를 하고서도 제법 단단하고 확고한 태형의 목소리에 정국은 작은 웃음을 흘렸다. 태형의 등을 토닥이는 손바닥이 제법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법 상쾌한 아침이었다. 꿈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잔 덕분이었다. 물론 상쾌한 아침은 눈을 뜨기 전까지. 마주한 침대가 텅 비어있을 때, 정국은 어딘지 모를 우울을 느껴야만 했다. 딱 하루 태형과 함께 느긋하게 보냈다고, 이젠 그게 너무도 그리웠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집을 뒹굴며 보내는 시간들.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이 들고 나란히 맞이하는 아침.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욕심났다. 결국 정국은 침대에 드러누운 그대로 입술을 내밀고는 툴툴거렸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고. 파드득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든 정국은 급히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러나 발신인은 정국이 그토록 학수고대한 인물이 아닌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예전이라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졌을 그 이름이 어딘지 낯설다.





“…네.”

[얘, 너 지금 어디야.]

“집인데요.”

[너 지금 당장 여기로 뛰어와.]





달갑지 않은 목소리는 꽤 한가득 날이 서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담이었다. 한동안 태형의 덕분에 일을 쉬면서 듣지 않던 목소리였다. 물론 예전에는 꽤나 달가운 목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제는 썩 반갑지 않은 목소리. 돈에 환장하는 전정국이라면 두 손 두 발을 들고 반길 그 목소리. 그리고 김태형에 환장하는 전정국은 불쾌하게 느껴지는 높은 톤의 목소리였다.


느긋하게 침대에 누운 정국이 베개에 깊숙이 머리를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아직 졸음이 완벽하게 가시지 않은 덕분이었다. 귀찮아. 태형을 제외한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느릿하게 하품을 하며 언제쯤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는데 휴대폰 너머로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그 T그룹 막내가 우리 애 다 조져놨으니까 빨리 튀어오라고!]





그리고 놀랍도록 전혀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고 온 이슈거리는 정국의 잠을 한순간에 몰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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