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 뒷일을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곧 돌아올 테니까.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까지 동료를, 모두를 지켜 주세요.

 

글쎄. 그를 탓할 자격이 있을까. 긴토키도 스승의 마지막 부탁을,

 

─약속이에요.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긴토키는 자신의 손에서 모래알처럼 흘러가 버린 사람들을 떠올렸다. 후회와 한탄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곱씹기 시작하면 밤을 새도 부족하겠지. 그는 누구보다도 상실의 두려움을 안다.

 

그렇기에.

 

“거기 서.”

 

사카타 긴토키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포승줄에 묶인 쇼요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보았다.

 

더 이상은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사람을 멀리했다. 그런데도 그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끌어안는 것을 포기한 손을 맞잡아준 이들이 있었다. 그때 긴토키는 깨달았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잃는 것이지,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긴토키는 강해졌다. 무력(武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애도를 휘두를 팔이 없더라도, 적을 응시할 눈동자가 없더라도, 그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긴토키는 더 이상 쇼요를 잃은 날의 무력(無力)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거기 서. 쇼요는, 선생님은 내주지 않겠어.”

 

“긴토키……?”

 

아, 드디어. 20여년 전에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긴토키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의 검이 적을 날렸다. 쇼요를 포박하고 있던 남자가 단번에 나가떨어졌다. 적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각각 무기를 꺼내어 긴토키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는 긴토키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긴토키는 날아오는 장침을 매끄럽게 쳐냈다. 검날이 달린 석장이 목검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달려드는 이는 묵직한 발길질에 정신을 잃었다. 긴토키가 쇼요를 잡고 있던 까마귀들을 모두 제압하는 데에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쇼요.”

 

긴토키는 기절한 적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스승을 보았다. 그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오. 뭐부터 말해야 하지. 긴토키는 곱슬머리를 벅벅 헤집은 후, 일단 가장 하고 싶던 말을 했다.

 

“이…….”

 

“긴토──.”

 

“바보 멍청아!!”

 

긴토키가 빽 소리를 질렀다. 긴토키는 잔뜩 열이 오른 얼굴로 쇼요의 어깨를 짤짤 흔들었다.

 

“뭘 얌전히 잡혀 가고 있어! 여기서 니가 제일 센 거 알거든?! 싸우라고! 너한테 저런 잡병들은 한 입 거리인 걸 모르는 줄 알아?!?!”

 

“아니, 그게. 여기엔 사정이…….”

 

“사정이고 뭐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아냐, 이 바보 선생!!”

 

“그…… 죄송합니다?”

 

쇼요가 엉겁결에 사과했다. 긴토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선 쇼요의 구속부터 풀어야겠다. 긴토키는 기절한 나락의 단검을 빼앗아 포승줄을 끊었다. 팔이 자유로워진 쇼요가 굳어있던 손목을 까닥였다.

 

“그래. 일단 들어나 보자. 왜 얌전히 잡힌 건데?”

 

긴토키가 턱짓을 했다. 쇼요는 나락이 쓰고 있던 삿갓을 주워들었다. 갈대를 엮어 만든 그 삿갓은 낡고 손때가 타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듯한 그의 눈동자에 우수가 젖었다.

 

“……그건 제가…… 아주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아뇨. 나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모자라겠네요. 악귀.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 저는 수많은 악행으로 이 손을 더럽혔습니다. 특히 어느 아이에게는 더 나쁜 짓을 하고 말았죠.”

 

쇼요의 입에 쓴웃음이 걸렸다.

 

“저를 잡는 것이 그 아이의 바람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저는 그 아이에게 속죄할 길이 없으니까. 하다못해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어요.”

 

“……‘그 아이’란 게 첫 번째 제자 얘기야?”

 

“……! 그걸 어떻게……?!”

 

쇼요가 놀랐다. 긴토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미련한 스승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 알아. 네가 나쁜 놈인 것도, 우리랑 만나기 전에 만든 제자가 있는 것도, 몇백 년 살아온 불로불사인 것도. 그걸 우리한테는 숨기고 싶어했던 것도. 다 안다고.”

 

“…….”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긴토키는 그렇게 단언했다. 그리고 수심에 찬 스승을 향해 딱 잘라 말했다.

 

“네가 나쁜 사람이든, 전에 제자가 있었든, 불로불사든. 무슨 상관이냐고.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냐. 그거랑 상관없이──.”

 

긴토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내 하나뿐인 스승이니까.”

 

“……긴토키.”

 

“보아하니 그 오보로란 놈한테 죄책감을 가진 거 같은데. 그 놈이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널 잡으려 하니 순순히 따라가려고 한 거지? 하지만 난 그게 진정으로 그 놈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그렇다고 어떤 게 정답인지 아는 건 아니지만…….”

 

긴토키는 쇼요에게 손을 뻗었다. 수많은 시간 검을 휘둘러 굳은살이 배긴 손바닥은 단단했고, 흔들림 없었다. 긴토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이 고민해보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쇼요의 손이 머뭇머뭇 내밀어졌다. 두 개의 손이 맞닿았다. 따뜻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온기였다.

 

 

 

 

 

* * *

 

 

 

 

 

긴토키와 타카스기, 쇼요는 카츠라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카구라 일행도 무사히 신파치와 타에를 데려온 뒤였다. 예상 외였던 것은 생각지 못한 얼굴들이 있다는 점이다.

 

“타카스기?!”

 

“……막부의 개들인가.”

 

타카스기가 허리춤에 차인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바로 콘도, 히지카타, 오키타였다. 사복을 입고 있기는 하나, 진선조의 고위 간부 셋을 못 알아볼 그가 아니었다. 설마 경찰이 양이지사의 아지트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타카스기는 방금까지 있었던 나락과의 전투가 피로하지도 않는 양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기다려라 해, 신노스케. 괜찮다 해. 싸우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렇지?”

 

카구라가 진선조를 향해 눈짓했다.

 

“그래. 싸울 생각은 없다.”

 

콘도는 양손을 가볍게 들며 적의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히지카타와 오키타는 거물이 눈앞에 있어 근질근질해 보였지만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긴토키가 물었다.

 

“이 녀석들은 왜 데려온 거야?”

 

“카구라짱이 데리러 왔을 때 마침 스토커가 저희 집에 숨어들어 있었거든요.”

 

신파치가 대신 대답했다. 콘도는 격렬하게 부정했다.

 

“스토커라니! 카부키쵸가 흉흉하다는 얘기를 듣고 오타에 씨가 걱정되어서 안부를 확인하러 갔을 뿐이라고!!”

 

“안부를 물으러 온 사람이 마루 밑에 숨어 있나요?”

 

타에가 주먹을 들며 화사하게 웃었다. 콘도는 바로 쭈그러들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와 오키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고릴라는 그렇다고 쳐. 너네는 왜 왔냐?”

 

“오늘 진선조는 통상 임무도 수행하지 말고 둔영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거든.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고 말야.”

 

히지카타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대꾸했다. 오키타가 부연했다.

 

“그런 와중에 카부키쵸에서 괴한들이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신경 쓰일 수밖에 없잖아요? 콘도 씨가 먼저 형수님이 걱정된다며 뛰쳐나갔고, 저희도 별수 없이 상사 뒤를 따른 거죠 뭐.”

 

“안 그래도 지난번 부랑자 납치와 터미널 사건 때부터 불길함을 느끼던 차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대놓고 소란을……. 윗놈들은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히지카타는 기분이 몹시 언짢아 보였다. 대기하라는 윗선의 지시에도 불응하고 몰래 적대하는 양이파의 아지트까지 찾아왔을 정도이니 말이다. 최대한 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노력하던 히지카타였지만, 이번 일은 이래저래 선을 넘었다. 그때 쇼요가 온화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긴토키. 처음 뵙는 친구들이군요. 소개해주시겠어요?”

 

“이딴 녀석들이 친구일 리가 없잖아.”

 

긴토키는 투덜대면서도 진선조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대답했다.

 

“스토커 고릴라, 니코틴 마요네즈, 새디스트 왕자다. 일단은 경찰이야.”

 

“스토커 고릴라 씨, 니코틴 마요네즈 씨, 새디스트 왕자 씨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상하게 가르쳐 주지 마! 누가 니코틴 마요네즈냐!!”

 

히지카타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담배를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진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로다. 이쪽은 국장 콘도 이사오, 저쪽은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다. 넌 누구지?”

 

“요시다 쇼요라고 합니다. 긴토키와 신스케, 코타로의 스승 되는 사람이에요. 저희 아이들이 폐를 많이 끼치고 있습니다.”

 

쇼요가 꾸벅 인사했다. 긴토키, 타카스기, 카츠라의 스승이라는 말에 진선조가 경악했다.

 

“이놈들의 스승이라고?!”

 

“이야, 형씨도 스승이 있었군요.”

 

진선조에게 쇼요의 존재를 드러내도 되나 걱정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만나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긴토키는 혹시나 하여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쇼요는 시골 서당의 평범한…… 아니, 평범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냥 선생이니까 말이야. 이상한 짓 하지 마라?”

 

등 뒤에서 서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타카스기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쇼요를 건드렸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히지카타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안다고. 일반인을 건드리는 짓은 안 해.”

 

“그 말, 기억해 둬라.”

 

타카스기가 마지막까지 쏘아붙였다. 그제야 팽팽한 대립 상태가 깨졌다. 곧 병원에 갔던 카츠라도 돌아왔다. 그도 자신의 아지트에 진선조가 있는 것에 놀라기는 했으나 설명을 듣고 금세 납득했다.

 

“츠쿠요 공을 입원시키고 왔네. 무사히 해독도 끝났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하니 안심해라.”

 

그렇게 피상적인 상황 공유는 끝이 났다. 진선조와 양이지사와 해결사, 그 외 일반인들 몇 명이라는 기묘한 조합이 카츠라 일파의 아지트에 둘러앉았다. 이제는 대책을 논하기 시작할 때였다. 나락은, 천도중은 지금도 눈에 불을 켜며 그들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파할 길을 찾아야 했다.

 

“……뭐야. 왜 나를 봐.”

 

긴토키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긴토키에게 모였기 때문이다. 카츠라가 대답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저들은 네 주위를 뒤지고 있다. 네가 목표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네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여. 긴토키, 너는 이 일과 관련하여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

 

긴토키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했다. 드디어 이때가 왔다. 모든 것을 밝힐 때가.

 

약 2주일간 부닥치고 어울리며 마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사정을 밝히자니 다소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결심하지 않았던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로.

 

긴토키는 심호흡을 하여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평행세계에서 왔어.”

 

“…….”

 

“…….”

 

“…….”

 

“…….”

 

“……정신 나갔냐?”

 

긴 정적 끝에 타카스기가 물었다. 긴토키가 소리쳤다.

 

“아니야! 긴상의 정신은 아주 멀쩡하다고!!”

 

카츠라도 거들었다.

 

“점프는 역시 졸업해라. 서른이 먹도록 공상의 세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점프랑 상관없어! 난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거든?! 그보다, 너네는 내가 진심으로 이런 때에 농담을 할 거라고 생각하냐?!”

 

긴토키가 씩씩댔다. 그러나 이해는 갔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니까. 카츠라와 타카스기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납득시키면 좋을지 궁리하고 있는데, 신파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긴상을 믿어요.”

 

“신파치…….”

 

“긴상은 확실히 변변찮고 모범도 되지 않는 아저씨지만, 헛소리는 조금 더 그럴 듯하게 하거든요.”

 

“나 좀 상처 받는다, 야.”

 

믿어준 건 고맙지만 말이 너무 신랄하지 않아? 긴토키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엎어져 있는데, 신파치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 다들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을 거예요. 한두 주 전부터 긴상의 상태가 이상했던 것은.”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동의의 무언이었다. 그들도 모두 느끼고 있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들이 아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차마 의심할 수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는 사카타 긴토키였고, 그 사실에 변함은 없었으니까.

 

불편한 정적을 깬 것은 긴토키였다. 긴토키는 여상스레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여하튼 내가 평행세계에서 왔다는 것은 납득해준 거지? 그럼 다음으로 나간다?”

 

“……그래.”

 

“사건의 시작은…….”

 

긴토키는 자신의 사정을 모두 말했다.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아르타나의 폭주가 일어난 것, 폭주에 휘말려 평행세계로 온 것, 시공간에 균열이 생겨 위험한 상태인 것 같으며 자신이 돌아가면 균열도 수복된다는 것, 천도중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열쇠’ 같다는 것, 그리고 ‘열쇠’를 찾아 ‘문’을 열면 자신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까지.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가벼이 듣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지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되려 현실감이 없었으나, 위기감 정도는 제대로 전해진 모양이다.

 

“그럼 긴짱은, 우리가 아는 긴짱은 어디 갔냐 해?”

 

“아마 여기에.”

 

카구라가 물음에 긴토키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 쳤다.

 

“빙의 같은 거라고 들었거든. 내가 돌아가면 알아서 깨어나겠지.”

 

“그 열쇠라는 건?”

 

히지카타도 질문했다. 사정은 이해했다. 얼마나 심각한 일이든 해결책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진선조의 귀신부장은 오늘도 거침이 없었다.

 

“그건…….”

 

긴토키는 고개를 돌려 쇼요를 보았다. 쇼요는 미동도 없이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쇼요. 난 네가 알 거라고 생각해. 맞지?”

 

“긴토키. 당신의 세계의 열쇠는 무엇이었나요?”

 

“…….”

 

긴토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것은 전부 밝혔지만, 그것만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긴토키가 망설이자 쇼요가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군요. 열쇠가 막대한 아르타나가 뭉친 것이라면……. 그래요. 저와 관련이 있겠어요.”

 

카츠라와 타카스기가 인상을 썼다. 이쪽 세계의 그들은 쇼요의 사정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 쇼요는 담담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지구의 아르타나 변이체입니다. 아르타나 변이체란 용혈이 만들어낸 이레귤러. 제 몸은 아르타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탓에 늙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이미 몇백 년간 살아왔지요.”

 

“……!”

 

긴토키를 제외한 그 자리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긴토키가 평행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밝혔을 때만큼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다릅니다. 저는 더 이상 불사자가 아닙니다.”

 

“뭐?”

 

이번에는 긴토키도 놀랐다. 쇼요는 자신의 오른쪽 가슴, 심장이 있을 곳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제 몸에는 심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심장을 직접 끄집어내어, 스스로의 불사성을 없앴습니다.”

 

“어째서……?”

 

“인간으로서 죽고 싶었거든요. 평생을 괴물이라 불리며 살아온 저지만…… 마지막 정도는 인간으로서 눈을 감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르타나의 영향은 남아있는지 늙지는 않는 것 같지만요. 쇼요는 덧붙였다.

 

“2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저는 우연히 심장을 끄집어내어 불사성을 없애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나락을 제자 한 명과 함께 나왔습니다. 끄집어낸 심장은…….”

 

쇼요는 긴토키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긴토키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요시다 쇼요의 인생이 바뀐 날이었다.

 

“당신에게 주었습니다. 긴토키.”

 

“뭐?!”

 

심장 같은 걸 받았다고? 이쪽 세계의 내가? 당황한 긴토키를 두고 쇼요는 후후 웃었다.

 

“물론 심장을 그대로 준 건 아니지만요. 처음 만난 날 제가 준 검. 그것이 바로 저의 심장입니다.”

 

“……!”

 

긴토키는 자신의 집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검을 떠올렸다. 원래 세계에서는 전쟁 중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어째선지 그 검이 건재했고, 긴토키가 여전히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손질도 안 한 거 같은데 멀쩡하더니만…… 그런 거였을 줄이야.’

 

카무이가 준 아르타나 결정석과 부딪혔을 때 빛이 튀긴 것도 이해가 갔다. 서로 다른 별의 아르타나 결정석이니 반발한 것이다.

 

“아무래도 천도중이 찾는 것이 그것이겠군요. 하지만 천도중은…… 아니, 제 첫 번째 제자는 제가 심장을 빼놓은 것만 알고 어떤 형태로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나 긴토키를 붙잡아 열쇠의 행방을 찾아내려 하는 거겠죠. ……제가 감춘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쇼요는 말을 맺었다. 모두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카츠라와 타카스기는 더더욱 그랬다. 선생님이 심상치 않은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전 나락 소속이었다는 것까지는 바로 납득했다. 그러나 몇백 년 살아왔다거나 불사였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상상의 범주 바깥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받아들였다. 여태껏 감춘 것에 대해 유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쇼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앎에도 차마 묻지 못한 그들도 피장파장이었다. 오히려 후련하기도 했다. 쇼요는 말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준 제자들을 향해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긴토키. 모두에게 할 말이 있죠?”

 

“……음.”

 

“이런 건 직접 말해야 한답니다.”

 

쇼요의 말에 긴토키는 시선을 잠시 돌렸다. 왠지 쑥쓰러웠다. 그냥 분위기에 틈타 넘어갈 수도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스승은 엄격했다. 하지만 쇼요의 말이 맞다. 이것은 직접 입 밖으로 내어야 하는 말이다.

 

긴토키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신파치, 카구라, 사다하루, 타에, 쇼요, 타카스기, 카츠라, 엘리자베스, 콘도, 히지카타, 오키타, 오토세, 타마, 캐서린. 제법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이 꽤나 어색한 조합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이쪽 세계에서나 저쪽 세계에서나 긴토키와 가까운 이들이며, 언제나 그를 믿어주는 아군이라는 것이다.

 

긴토키는 볼을 긁으며 눈동자를 굴리다가, 결국 결심한 듯 주먹을 고쳐 쥐었다. 긴토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얘기했다시피 나는 너희가 아는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야. 어쩌면 생판 남이나 다름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걸 부탁하는 게 염치없는 건 알지만…….”

 

알지만, 그럼에도 긴토키는 부탁한다. 그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 그러나 이들과 함께 간다면 분명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 왜 이렇게 멋쩍은지 알았다. 긴토키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들 때가 많으며, 도움을 받을 때도 대개 상대가 자진하여 다가왔다. 그러니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자신의 사정에 다른 사람을 멋대로 휘말리게 한 주제에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그런 흔하디 흔한 일을 저지르는 건.

 

“나 좀 도와주라.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긴토키는 평소와 같이 얼빠지게 히죽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이다 해.”

 

그 바람을 카구라가 웃으며 받아주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해결사는 어떤 사고든 같이 해결해왔잖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에요.”

 

“왕왕!”

 

신파치와 사다하루가 화답했다.

 

“긴상도 참 사고뭉치에요. 나이도 적지 않으면서 기운이 넘치신다니까요.”

 

타에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지구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데 선택지가 없지 않나? 그나저나 스케일 참 크구만.”

 

“지구까지 안 가더라도, 저 검은 옷 놈들이 멋대로 설치는 꼴은 못 봐. 경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형씨한테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콘도, 히지카타, 오키타가 각각 말했다.

 

“네 부탁이라면 얼마든 들어주지, 긴토키. 평행세계니 뭐니 하지만, 여하튼 우리는 오랜 친우가 아닌가.”

 

[카츠라 씨가 그렇다시니 저도 손을 보탤게요.]

 

“긴토키만이 아니라 선생님도 노려지고 있어. 까마귀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성이 안 풀리지.”

 

카츠라와 엘리자베스, 타카스기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뒤에서 응원하도록 하마. 네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긴토키 님, 부디 몸조심하시길.”

 

“습격자 놈들한테 술집이 부서진 것에 대한 배상 청구도 같이 하고 와.”

 

오토세, 타마, 캐서린이 격려의 말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쇼요와 시선이 맞았다. 스승은 ‘참 잘했어요’라며 도장이라도 찍어줄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렇게 그들이 할 일이 정해졌다.

 

 

 

 

 

* * *

 

 

 

 

 

해결사 사무소로 돌아가서 검을 가져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락은 무엇이 열쇠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해결사 사무소 안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곳을 봉쇄했을 뿐이었다. 긴토키는 나락이 수비하고 있는 해결사 사무소에 난입하여 검을 들고 다시 카츠라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그러나 적어도 나락의 삼익쯤 되는 이가 가로막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잡병을 상대로 잠시 소란을 피우는 정도로 끝이 났다. 일이 너무 술술 풀리는 것 같아 오히려 찜찜했다. 신파치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요?”

 

“아네랑 모네한테 연락해봐야지. 열쇠를 찾으면 연락하기로 했어.”

 

긴토키는 옷 소매에 넣어둔 부적을 꺼냈다. 이것을 태우면 연락이 가능하다고 했던가. 긴토키는 눈앞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고 있는 히지카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 내놔.”

 

“왜?”

 

“됐으니까 줘.”

 

히지카타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라이터를 건넸다. 긴토키는 불씨를 피워 부적에 붙였다. 종이 부적이 화르르 타오르더니 별안간 허공에 무슨 빛의 법진이 생겨났다.

 

“뭐, 뭐야?”

 

히지카타가 당황했다. 긴토키는 라이터를 휙 던져서 그에게 돌려준 뒤 법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이. 들려?”

 

조용했다. 긴토키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아네, 모네! 들려?”

 

[흐음. 법술인가. 재미있군.]

 

“……?!”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긁는 듯한 저음. 여러 번 들은 적 있는 목소리였다. 쇼요의 안색이 나빠졌다. 긴토키는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보로?”

 

[그렇다. 백야차.]

 

“이 자식! 아네랑 모네를 어떻게 했어!!”

 

긴토키가 격분하여 외쳤다. 신파치와 카구라도 숨을 들이켰다. 오보로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황룡문의 무녀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함께 있다.]

 

“무사한 거지?!”

 

[안심하도록 해라. 생각보다 순순히 협조해주어 거친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만.]

 

아네와 모네가 무사하다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허나 적의 수중에 떨어진 이상 언제 위험에 빠질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들만 용혈에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위기의식이 부족했다. 완전히 그의 실수였다.

 

[백야차. 열쇠를 가지고 있나.]

 

“……그렇다면 어쩔 건데?”

 

[이곳으로 가지고 와라. 무녀들이 있던 곳이라고 하면 알아듣겠지?]

 

“…….”

 

시공간을 잇는 균열이 생긴 장소. 사카타 긴토키가 이 세계에서 처음 눈을 떴으며 끝내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오보로가 부르고 있었다. 그곳으로 오라고.

 

[그리고 또 하나. 그 분도…… 쇼요 선생님도 이 대화를 듣고 있나?]

 

사람들이 쇼요를 보았다. 쇼요는 가만히 이쪽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긴토키는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오보로는 멋대로 말을 속행했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

 

[함께 와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법진이 공기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카츠라 일파의 아지트는 다시 조용해졌다.

 

“큰일이다 해. 아네랑 모네가…….”

 

“어차피 가야 하는 곳이었어. 그 김에 그 녀석들도 구하고 오면 돼.”

 

긴토키는 카구라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카츠라가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문 근처에는 까마귀들이 총집결해 있다고 보아야겠군.”

 

“나락만이 아닐 수도 있어. 관군을 동원하지는 않겠지만, 사병을 쓰거나 용병을 고용했을 수도 있으니까.”

 

타카스기도 말했다. 막부에게 대항하는 활동을 벌이는 양이지사인 만큼 그들은 적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양이사천왕 중에서도 리더격에 해당했던 카츠라는 능숙하게 지시를 내렸다.

 

“우선 제1목표는 긴토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두지. 아르타나라는 것의 불안정함도 긴토키가 돌아가면 해결될 것이라 하였으니. 아네 공과 모네 공은 별동대를 따로 편성하여 구출한다. 괜찮겠는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문’으로 향하기로 한 것은 해결사, 타에, 카츠라, 타카스기, 진선조였다. 비전투원인 오토세와 타마, 캐서린은 아지트에 남고 그들을 엘리자베스가 남아 지켜주기로 했다. 이렇게 아홉 명이 전투 인원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쇼요는.

 

“너는 여기 남아.”

 

긴토키가 쇼요를 쳐다보며 말했다. 쇼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까 전에는 싸우라고 하지 않았나요?”

 

쇼요가 나락에게 연행되어 갈 때 긴토키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쇼요가 가세해준다면 천군만마보다도 든든할 것이다. 쇼요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그 하나를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사이다. 하지만 긴토키는 쇼요의 참전을 말렸다.

 

“그건 아까 일이지. 그놈이 너를 굳이 오라고 하는 게 왠지 불길해.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몰라.”

 

“그건…….”

 

“거기다, 너도 아직 첫 번째 제자와 만날 준비는 안 된 것 같아서.”

 

“…….”

 

쇼요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보로의 뜻을 존중해 얌전히 잡혀가려던 쇼요였다. 긴토키의 말에 마음을 돌이키기는 했지만, 아직 망설임은 남아있을 것이다.

 

같이 고민하자고 한 만큼 긴토키도 쇼요와 오보로를 대면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의 속셈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대면시키는 건 좋지 않았다. 쇼요는 조용했다. 긴토키는 그것을 납득으로 받아들이고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한 문젠데.”

 

긴토키의 말에 사람들의 의식이 집중되었다. 현재까지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긴토키가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긴토키는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귀를 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

 

아니, 그치만 말야. 내 스쿠터에는 두 명밖에 못 타고, 경찰 놈들의 순찰차를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긴토키가 중얼거렸다.

 

결국 그들은 렌트카를 빌리기로 했다. 결전은 하/허/호가 달린 하얀 차들과 함께!

 

 

 

 

 

* * *

 

 

 

 

 

은밀 행동에 가장 익숙한 카츠라와 타카스기가 렌트카를 빌리러 간 사이, 그들에게는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 긴토키는 TV를 켰다가 아무런 속보도 소식도 없는 방송들에 금세 흥미를 잃고 꺼버렸다.

 

“카부키쵸랑 요시와라가 이 꼴인데 뉴스도 없나?”

 

“나락은 천도중 직속. 당연한 거지요.”

 

긴토키의 투덜거림에 쇼요가 대답했다. 옆으로 삐딱하게 누워있던 긴토키가 코를 파며 말했다.

 

“그게 짜증나는 거라고. 늘 그랬지만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야.”

 

“당신의 세계에서도 그랬나요?”

 

“……뭐, 비슷해.”

 

긴토키는 대충 대꾸했다. 코 파지 마세요. 쇼요는 긴토키에게 딱 혹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매서운 꿀밤을 날렸다. 드럽게 아팠다.

 

“당신의 세계의 저도 나락에 몸담고 있었겠지요?”

 

“관심 있어?”

 

“약간은요.”

 

“그것도 대강 비슷하다고 해둘게.”

 

긴토키는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긴토키가 그 화제를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앎에도 쇼요는 다시 한번 물었다.

 

“당신의 세계의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귀찮아. 꼭 말해야 해?”

 

“분명 변변찮은 사람은 아니었겠죠. 제 안에는, 아직도 악귀가 살아 있으니까. 까딱 잘못했다간 세계를 정복해버리겠다! 같은 짓을 벌일지도 몰라요. 후후.”

 

쇼요가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긴토키는 웃을 수 없었다. 차라리 세계 정복이면 좀 나았을 텐데 말이지. 긴토키의 뺨이 어색하게 굳어있자 쇼요는 다 알아들은 듯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긴토키. 당신도 알듯이.”

 

“그게 갑자기 왜?”

 

“‘요시다 쇼요’는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당신들에게는 자신의 나약함과 맞서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하지 못했던 거죠.”

 

쇼요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 아이가 홀로 나락에 남게 된 것도 그 탓입니다. 그 아이는 나락의 눈을 저에게서 돌리기 위해 많은 고통을 감내해왔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껏 제가 무사할 리가 없으니까.”

 

“…….”

 

“제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양이전쟁이 끝나고 어느 마을에 자리 잡은 후였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 아이를 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서당의 제자들을 버릴 수도, 저를 지키고자 하는 그 아이의 각오를 저버릴 수도 없고…… 무엇보다 제 과거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지금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요?”

 

오보로의 의사를 그대로 따르는 길은 긴토키가 부정했다. 쇼요도 그것이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는 방황했다. 긴토키는 몸을 일으키고 양반다리로 앉았다.

 

“나야 모르지. 니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너만 아는 거잖아.”

 

“그렇네요. 우문이었어요.”

 

“그렇지만 급하게 대답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만 해도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10년 넘게 못 찾았었는걸. 느긋하게 생각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고집쟁이 사형을 두들겨 패서 끌고 오는 거 정도야. 그 다음에 그 놈이랑 찬찬히 얘기해보던가. 아, 하극상은 어쩔 수 없으니 이번만 봐줘. 선생님.”

 

이번만 봐달라는 것 치고는 이쪽 세계에서나 저쪽 세계에서나 이미 사형에 대한 예의는 밥 말아 먹은 긴토키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능하면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그였지만, 쇼요를 위해서라면 사형을 끌고 에도로 돌아오는 시간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찾았나요?”

 

쇼요가 불쑥 물었다. 긴토키의 입가에 희미한 곡선이 걸렸다.

 

“아마도?”

 

“애매하군요.”

 

“걔네들 얼굴을 한 번 더 보면 알 것 같아. 그래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고.”

 

불명확한 지칭이었지만 긴토키의 의지는 충분히 전해진 모양이었다. 쇼요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다행이에요.”

 

어느 세계든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서.

 

곧 카츠라와 타카스기가 하얀 렌트카 2대를 몰고 돌아왔다. 긴토키를 비롯한 이들은 차에 몸을 실었다. 조수석에 앉은 긴토키는 품 안의 검을 쓸어내렸다. 결의는 끝났다. 반격의 시간이다.

아무거나 끄적이는 잡덕 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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