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socksbox19)님께서 열어주신 10인 릴레이 소설 현제유진 '나의 아저씨' 참가글입니다

*다음에 이어주실 분은 페가 @pegAgape 님이십니다

*스슥님께서 써주신 멋진 일편은 이쪽 입니다!







아저씨, ㄴㅏ의 아저씨



사라진 배구공이 뒤늦게 일을 한 건지 보상이 지급됐다는 문구가 눈앞에서 반짝거렸다.

지옥불이 불타고, 얼음이 창처럼 내리꽂히고 나서야 정리된 주위를 보던 한유진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 안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시가지에서 이런 꼴을 보였다면 송태원의 출동으로만 끝나지는 않았을 거였다.

신이 있다면 제발 알려주세요, 왜 이 사람입니까.

“이거이거, 문제는 우리만이 아닌 모양인데.”

한유진이 고개를 들자, 빙긋 웃고 있는 성현제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한유진은 그가 잘생겼다는 걸 알고 있다. 빌어먹게 잘생기고 스펙 좋은 에스급이라는 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를 쿡쿡 찌르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게 이렇게….

“그런 드라마에는 흔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남자.

나이가 어려보이는 게 콤플렉스라는 남자. 일부러 갖춰입은 쓰리피스 정장에 일부러 올린 머리카락까지 어울리지 않는 게 없는 남자. 그런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게 모두 시스템 오류라는 걸 알지만, 꼭.

“주인공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시누이, 도련님.”

분위기 깨는 데 5초도 안 걸리지.

한유진은 감상에 젖어 있던 머리를 탈탈 흔들었다. 그래. 몽롱한 시선으로 그의 외모에 정신을 놓는 건 저주저항이 꺼져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시스템 오류 때문에 성현제 한정으로 독저항, 저주저항, 공포저항이 꺼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태생 에스급들의 사람을 휘두르는 아우라에 휘말려 있다고 생각하면 될 문제였던 것이다.

“아니거든요!”

박예림이 씩씩거리며 발을 굴렀다. 한유진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성현제에게 딱 달라붙은 몸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까 썼던 방법을 또 써봐? 눈을 데구룩 굴려봤지만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그 뒤에 감격한 성현제가 또 여기저기 입을 맞추려 들면 곤란했다.

“아니, 유현아, 차라리 말을 해.”

“좋아.”

눈이 약간 맛이 간 동생이 턱을 치켜들었다. 태생 에스급들은 다 그래도 동생은 다를 줄 알았다.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뒤에서 든든하게 밀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한유진은 급격히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시스템이 막강하기는 했다. 상식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성현제는 자신을 좋아한다. 사실. 그는 자신을 좋은 아이템으로 보고 있고 자신은 그를 좋은 스킬로 보고 있었다. 서로를 밑바닥까지 긁어먹기로 나름의 합의를 보고 있었다. 굳이 시스템을 끼지 않더라도 하하호호 하는 좋은 관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성현제는 한유진을 사랑하는가?

“그럼 클리셰 대로, 힘으로라도 뺏겠어.”

“저런.”

한유현이 긴 칼을 바투 잡았다. 언제나 형을 먼저 생각하는 동생은 자신이 성현제의 품에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은혜도 있고, 던전도 클리어 되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둘 다 그걸 알고 있으니 호승심을 숨길 생각도 않는다. 한유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설마 이거 시스템에 사랑의 전쟁으로 판단하고 허용하는 거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는 조연들은 모두 리타이어 하게 된다네.”

“성현제씨!”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데 한 명은 기분이 좋다 못 해 우주를 돌파하고 있어서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상태로 혈압이 올라서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병원에 실려가면 큰일이 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불쌍한 다른 사람들이다. 정신을 바투 잡은 한유진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하셨잖아요.”

“무료 서비스 기간은 일주일 까지였지, 공주님.”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인 성현제는 그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심장이 뻐근했다. 쿵쿵 뛰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유료잖아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삐뚜름하게 늘어진 눈썹이 그래서?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쉰 한유진은 한껏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뭘 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라면 걸려들 것이다.

“저런.”

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 만큼, 그 또한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을 터였다. 한유진은 그와 자신의 관계가 철저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비즈니스라는 단어에 심장이 쿡쿡 쑤시는지는 시스템이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렇게 재밌는 얘기를 하면 기대할 수밖에 없지.”

커다란 손이 덥썩 허리를 붙들었다. 조금 멀어졌던 거리가 삽시간에 가까워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묘하게 금속성을 띄고 있어서, 위험한 분위기가 났다.

“그래서, 뭘 해줄 수 있지?”

진득하게 녹아드는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 그, 그러니까!”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한유진은 할 수만 있다면 시스템을 엿바꿔 먹고 싶었다.

“라면 먹고 가세요!”

뒤이어진 말은 그의 사고를 거치지 않은 말이었기에.

“…라면?”

성현제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한유진은 두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라면! 진짜 라면!”

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유진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집까지 가면 되는 거구나! 드디어 성현제와 한 발자국 이상 떨어질 수 있게 된 한유진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제가 끓여 드릴 테니까, 같이 가요.”

함빡 웃은 유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보는 성현제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지만 상큼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뭐.”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슬슬 다들 이 오류에도 적응하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할까.”
던전을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공략은 끝났다. 에스급이 셋이나 들어갔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강한 반발력이 없으면 아까처럼 뽀뽀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대강 눈치 챈 건지 유현이도 불퉁하게 볼을 부풀린 후 선선히 몸을 돌렸다. 유현은 게이트를 넘어서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향했다. 박예림도 흘끗 그를 돌아본 후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쟤들을 언제 다 키운담.

“떨어지자마자 다른 생각 하는 건 곤란한데, 공주님.”

“…아!”

“그것 봐.”

드디어 아무것도 없는데 넘어지는 클리셰냐.

밖을 향해 걷고 있을 뿐인데, 잠깐 애들 생각을 했을 뿐인데 발을 헛디뎌 비틀거린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와! 유진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시스템을 쥐고 탈탈 턴 것 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보상 뭐 나왔어요?”

떨어지는 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난번처럼 다리가 다쳤다고 뻥을 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에프급 던전이지만, 욕은 성현제가 먹을테니 괜찮았다.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에 눈을 접어 빙그레 웃은 성현제가 답했다.

“글쎄. 아직 확인해보지 않아서.”

눈동자 안에 번개가 친다. 한유진은 등줄기를 내달리는 찌릿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확인 해 보세요.”

“분부대로 하지요, 공주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진 또한 자신의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망할 시스템 새끼들!






-다음 타자는 페가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재밌으셨다면 좋겠습니다 ㅠㅠㅠㅠㅠ


레즐리Lesely Christmas=체리크렉Cherry Crack 마약처럼 중독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iss, 크리스마스라고 불리고 싶었던 라스트네임은 잊혀진 지 오래. with all my XO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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