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토니 전력 2회. 주제는 kid,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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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는 손에 든 서류를 팔락이다 얼굴을 쓸었다. 최신 기술의 정점에 서있는 스타크 인더스트리라고 해도 아날로그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일반 사무 쪽에서는 여즉 아날로그의 인기가 더 높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내내 사랑받는 것이 있듯이.

 그렇지만 이럴 때는 은근히 귀찮단 말이지. 하다못해 쉴드라도 온전히 디지털로 돌아서주면 좀 좋았을 것을, 어째 그렇지도 않았다. 탁자 위로 수 겹씩 쌓여있는 종이 무더기들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날로그도 좋지, 좋은데.

 어느 정도는 미래 기술에 의존해도 괜찮지 않아? 누군가는 퓨처리스트의 디지털 찬양론이라고 할 만한 생각이었지만, 컵 하나 얹어놓기 힘들 만큼 꽉 들어찬 공간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다.


 가장 위쪽의 종이를 집어 들자 손끝에서 가벼운 부피감이 흔들렸다. 하나하나로썬 가볍기 그지 없었다. 전부 모으게 된다면 어느 정도 무게를 얻게 될 지도 모르지만, 탁자를 가득 메운 모든 정보를 합쳐도 메가바이트 단위도 되지 않을 테다. 미약하기 그지없는 합들.

 그럼에도 현실로 끌어내니 이렇게 가득했다. 또한 아득하고. 예전에는 그저 단순한 활자의 나열이라 치부했을 것들이 이제 와서는 종종 무게를 가진다.


 무게에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무언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저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야 떨쳐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익숙하지 않은 무게는 종종 걸음을 삐끗거리게 했다. 휘청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이런 거 익숙하지 않은데. 너무 무거워. 몇 번이고 넘어지고 나서야 나온 말에 다들 뭐라고 했었지? 페퍼는 이제야 철이 들었다고 했고, 해피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로디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에도 과연 이게 좋은 징조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물었다.



 "...피터?”



 어느 순간 입술 위로 다가오는 손길이 있었다. 손끝으로 천천히 매만지는 감촉에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기척이 커졌다. 한참 전부터 닿아오던 시선은 여전히 고정된 채로, 날 때부터 방 안의 조형물이었던 마냥 고요하던 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네, 토니.”

 “왜 그래?”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어느 샌가 훌쩍 큰 청년이 시야에 담겼다. 가끔 언제 저렇게 자랐을까, 하는 낯선 생각도 들었지만 시선만큼은 여전한 채로.



 “그냥요.”

 “그냥?”

 “네, 그냥.”



 그냥. 힘주어 말하는 단어가 도리어 확연한 의미를 가졌다. 그래도 이제 제법 돌려 말할 줄도 알고. 어딘가 뿌듯해지는 기분에 입 꼬리를 슬몃 올리자 이번에는 그 근처로 손길이 닿아왔다.

 매만지는 손길이 퍽이나 다정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마냥, 연약한 것을 다루는 듯한 손길. 다섯 살 때도 이정도로 조심스럽게 다뤄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피터는 종종 제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라도 되는 양 굴고는 했다. 얇게 빚은 도자기 인형이나, 갓 태어난 짐승의 새끼라도 되는 양.



 “뭐하고 있었어?”



 부러 모른 척 묻자 입술을 만지던 손끝이 멈추었다. 소파보다는 탁자에 가깝게 기울어져있던 몸을 뒤로 젖히자 천천히 깜빡이는 눈꺼풀이 보였다. 선해 보이는, 끝이 둥글게 휘어진 눈매가 더욱 휘어지는 것도 보였다.



 “토니를 보고 있었어요.”

 “왜?”



 괜히 물어보는 말에 성실하게 답해주는 것도 여전했다. 짓궂은 질문을 할 때면 입술을 한 번 감쳐무는 것도.

 다 자라버린 청년에게서 종종 보이곤 하는 소년은 이리도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찔러보듯 물어보는 버릇을 놓지 못하는 걸 테다. 이제는 훌쩍 자라버린 청년 위로 겹치는, 저보다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작았던 소년이 자꾸 떠올라서. 눈이 마주칠 때면 달아오른 뺨을 숨기지 못하던, 어느 날의 그 아이가.



 “...좋아서요.”



 한숨 같은 목소리에 미약한 열기가 스몄다. 한때는 이게 가벼운 감기라고 생각했었는데. 토니는 얼핏 드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애매하게 기울어진 몸을 온전히 젖히자 뜨끈한 체온이 닿았다.

 자연스레 어깨를 감싸 안는 손이 단단했다. 비어있는 손을 휘감는 온도도.



 “왜요?”

 “그냥, 좋아서.”



 알맞게 들어맞는 몸에 익숙해진 건 언제부터였지? 좋아서, 라는 말을 머뭇거리지 않고 꺼낼 수 있게 된 건?



 “저도 그래요.”



 속삭임이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다. 길게 자욱을 남기며 미끄러지는 위로 열기가 올라탔다. 감기가 아니라, 불치병일 줄은 몰랐던.

 시선을 맞추자 설핏 휘어지는 눈매가 보였다. 그 사이로 가늘어지는 눈동자가 짙었다. 진한 초콜릿색의 눈동자가 뚝뚝 녹아내릴 것 같은 온도를 품고 있었다.

 저 위로 입을 맞춘다면 단 맛이 날지도 몰라. 조금 쌉쌀한 맛이 섞여있을 지도 모르지. 비과학적인 상상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금만 쉬어요, 토니.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그냥 이렇게, 같이 있기만 해요.”



 아니,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거의 매번 그랬다. 어째서인지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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