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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 예전에 썼던 글 다시 씀. 오탈자/맞춤법 어김 더러 있음. 


쿠로신


난 좀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야. 키사라기 신타로의 손아귀에 둥글게 뭉쳐져 있던 작은 꽃잎이 바닥으로 하늘하늘 떨어진다. 먹먹한 향만큼 짙은 보랏빛의 포물선, 새하얀 나무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은 그것들은 꼭 희게 질린 피부 위에 자리한 멍자국 같다고 쿠로하는 생각했다. 신타로는 빛 잃은 눈깔로 앙상하게 남은 가느다란 줄기와 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별안간 히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래서. 매정한 어조로 대꾸하자 그냥 그런 거지, 나는 외로움을 잘 탄다고. 하는 답변이 돌아온다. 구역질이 치민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면서. 죽은 사람처럼 핏기없는 얼굴에 뱀과도 같은 노란 눈깔 밑 방금 막 적신 듯 반들대는 붉은 입술 사이가 벌어지기 전에 구멍을 급하게 틀어막는 사람처럼 신타로는 입을 열었다. 나는 별로 다른 녀석들을 가까이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친구라고 해도, 결국 걔들이 채워줄 수 있는 감정엔 한계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결국 혼자야. 아니, 토노가 있으니까 완벽한 혼자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래. 나는 혼자야. 혼자라고.

다다다 껍질이 벗겨진 말들이 다급하게 꽃잎 위로 쏟아진다. 빠르게 뛰는 심장 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숨을 고른다.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가끔이지만. 내 앞에 네가 있잖아. 해는 반대 방향에서 떴고 지천이 무너질 셈인가, 평소에는 뭘 물어도 대꾸 하나 없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말을 박박 긁어 쏟아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장 끄트머리가 반으로 조용히 접히고 심사가 뒤틀렸다. 그러나 차분하게, 말을 끊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래서 넌 지금 내가 없으면 너는 쓸쓸해서 죽어버릴 거고 외로움을 잘 타는 그 귀찮은 성질 때문에 끝내는 죽어버릴 거라는 얘길 하고 싶은 거냐? 철창에 갇혀 힘없이 색색 숨을 내뱉는 토끼처럼. 노란 눈깔이 방구석의 작은 철장으로 향했다.

까만 눈동자 안에 비친 한없이 검은 인영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원하는 바는 간결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은데. 차분하게 감겼다가 뜨였다가를 반복하던 살색 셔터가 완전히 위로 자리를 잡는다. 기다란 두 팔이 천장을 향하고 굳은 몸이 파르르 떨린다. 까만 티셔츠 위에 덧입은 아이보리색 카디건이 가느다란 허리선을 타고 올라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자리를 찾는다. 어두침침하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바닥으로 처박힌다. 숨 막힐 듯 새카만 정수리를 마주하며 쿠로하는 혀를 찼다.

손끝에서 피어난 불꽃은 온몸에 퍼져있는 가느다란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이게 타버리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신타로는 손에 들린 것을 꼭 붙들었다. 어느새 바짝 다가온 캄캄한 인영을 마주 올려다보았다. 샛노란 눈동자는 손 끝에 걸린 열기에 비하기엔 너무 찼다.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희고 커다란 손에 온전히 얼굴을 맞붙이고 고개를 기울이면 얼굴로 열이 몰리는 듯 했다. 제 의사를 온전히 따른 생체적 반응이 아니었다. 쏘아진 화살이고 더는 걷잡을 수 없는 통제 불가한 감정이었다.

 

“대답 잘 해. 너는 똑똑하니까.”

 

이마를 짚은 손이 외곽을 타고 흐르며 부드럽게 뺨을 쥐었다. 신타로는 눈을 뜨지 않았다.

 

“너는 그게 진짜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붉게 일렁이는 그것은, 어둠 속에서 더 뚜렷했다. 신타로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가늘게 뜨인 두 눈 사이로 얇은 커튼이 미처 막지 못한 빛이 새어들었고, 벌어진 입술이, 그리고 그늘 속에서 먹잇감을 찾아 일렁이는 새빨간 살덩이가 차례대로 눈에 들었다. 불꽃처럼 끝을 모르고 빨갛게, 마냥 붉다. 손끝에서 비죽 튀어나온 하얀 손톱을 탁탁 두드려 튕기며 신타로는 입을 열었다. 그 안에서 흐르는 것을 받아먹고 싶었다. 입술이 마주 부딪히고, 보다 가까운 곳에서 딱딱 서로를 튕겨내면 발밑으로부터 흙내음이 일렁였다. 너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올바른 이해(利害)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신타로는 줄기를 바짝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처럼 얽힌 혀의 끝으로부터 툭 떨어진 침방울에선 옅게 피비린내가 풍겼다. 살갗 위에 으깨진 안개꽃 이파리가 얹혔고 손가락으로 밀어내도 끝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일은 모독이었다. 발 디딜 수 없는 지옥에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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