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HOOT ! 

W. 몸





“ 넌 나한테 돈이 필요했지. ”

“ ... ”

“ 나도 너한테 이게 필요했어. ”


민규가 굳은 표정으로 남자의 얄쌍한 허리를 그러쥐며 쓸었다.


“ 이게 필요한건 아니었지. ”


남자의 심장 부근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



민규는 업부 상황을 보고하러 온 서 대리와 이 사원 앞에서 지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이 다른 곳에 신경을 빼앗긴 민규를 번갈아가며 불렀지만 민규는 대답만 할 뿐 테이블 끝이나 두 사람 사이의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 1팀 리서치 결과가 저희 팀 분류와 맞지 않아 활용할 수 없는 자료들이.. 팀장님? ”

“ 어 계속해. ”

“ 자료들이 많아서.. ”

“ ... ”

“ 저희가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대리님. ”

“ 분명히 안 듣고 계신다. 분명히. ”

“ ... ”

“ 석민아. 팀장님 원래 저런 분 아니시다. 오해하지 마. ”

“ 알죠. 1팀 꼬투리 잡기 바쁘신 분... 아, 꼬투리가 아니고... ”

“ 우리가 이렇게 앞에서 말하는데도 못 들으시네. ”



서 대리가 입모양으로 마무리 하자. 신호를 보내니 이 사원이 입을 꾹 다물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팀장님. 저희 이지훈 팀장님께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

“ 지훈이? ”

“ 네? ”

“ 이지훈? ”



민규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이 사원을 바라봤다. 다정하게 불러재끼는 1팀 팀장의 이름이 낯선 두 사람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입에서 지훈이 랬어?



“ 안... 안되나요?... ”

“ 아니야, 다녀 와. ”



흐뭇하게 웃으며 서 대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민규가 소름끼치게 낯설어 두 사람은 얼어붙은 듯 쭈뼛거리며 뒤를 돌아 나갔다.



-



지훈이 풀어진 넥타이를 창문에 비춰보며 다시 고쳐 맸다. 외투를 팔에 걸치곤 사무실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췄다.



“ 오늘까지... 니까. ”



중얼거린 지훈이 걸음을 돌렸다. 형광등 몇 개만 켜진 빈 복도를 걸어 2팀 사무실 앞을 기웃거렸다. 불이 전부 꺼진 사무실 끄트머리에서 모니터 불빛이 번쩍였다. 지훈이 조심스레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모니터를 켜 놓고 선잠이 든 민규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열어 둔 창문 때문에 추운지 몸을 안쪽으로 마는 민규에 지훈은 최대한 소리가 안 나도록 창문을 닫았다.



“ 잘만 자네. ”



민규의 잠든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지훈이 팔에 들린 외투를 펼쳐 민규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 나가던 지훈의 뒤통수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 이 팀장 ”



민규가 자리에서 꾸물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본 지훈이 멈춰서 다가오는 민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친 듯 눈을 비비는 민규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 춥지 않아요? ”



다정하게 물어오는 민규의 목소리에 지훈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의도하지 않아도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들에 지훈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너랑 만난 이유가 저 남자를 만나는 이유와 같으니까. 넌 나한테 돈이 필요했지. 난 너한테...



“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막 벗어주고 그래. ”

“ ... ”

“ 이 팀장 옷은 작아서 덮이지도 않는데 ”



민규가 쥐고 있던 머플러를 들어 지훈에게 한 발 다가섰다. 지훈이 다시 한 발 물러섰다.



“ 회사라고 내외하는거야? ”

“ ... 추위 안 탑니다. ”

“ 추위를 안 탄다고 안 추울 날씨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



가까이 다가선 민규의 얼굴을 지훈이 가만히 바라보자 민규가 지훈의 목에 머플러를 감으며 지훈을 내려다봤다.



“ 내가 첫 인상이랑 다르게 좀 다정한 남자죠? ”

“ 언제 이런 거 받아보겠어. 우리 이지훈 인기도 없는데. ”



머플러를 다 둘러줬음에도 지훈은 여전히 민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너무 잘생겨서 쳐다보는거야? ”

“ 아뇨. ”

“ 그럼 보고만 있어도 내가 좋아? ”

“ ... 아뇨. ”



지훈의 양뺨을 붙잡고 마주한 두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곧았다.



“ ... 그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

“ 설레게. ”

“ 나 이지훈 들어오는 거 보고 자는 척 했다. ”

“ 설레서. ”

“ 이지훈이 겉 옷 덮어주는 것도. ”

“ 이지훈이 나 빤히 쳐다보는... ”



지훈이 민규를 허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가져다댔다. 당황한 민규가 잔뜩 얼어있었다. 몇 초간의 정적 후, 입술을 뗀 지훈이 입을 열었다.



“ 좋아합니다. ”

“ 어? ”

“ 김민규씨 좋아합니다 제가. ”



지훈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제 허리춤에 붙은 민규의 손을 떼어냈다.



“ 저는 ”

“ 지훈아 ”

“ 저는 김민규씨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는데 ”

“ 사실 누구도 좋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 늘 이렇게 쉽게 넘어갔으니까. ”

“ 다들 질려 떨어져나갔죠. ”

“ ...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건데 ”



지훈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 물으셨죠. 저는 더 이상 상처받을 용기가 없습니다. 그게 누구든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 몸만 필요한 사람이라면 더욱.



지훈이 민규를 향해 웃어보였다. 민규는 지훈이 사무실을 빠져나갈 때 까지 그를 불러 세우지 못했다.




-



[지훈아 PM 11:11 김]

[내일 부장님이랑 같이 프레젠테이션 해야지. 내 얼굴 어떻게 보려고 이렇게 선을 그어? AM 12:39 김]

[계속 대답 안 할거야? AM 01:05 김]



지훈은 문자를 하나라도 더 보내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침대 위에 누워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내려놓았다. 괘씸하게도 답장 한 번 보내지 않았지만 민규가 매달려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민규는 제가 없으면 잠들지 못 할 것이었고, 머플러를 둘러 줄 만큼 제게 관심이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괜한 말을 했나 싶어 집에 돌아오는 길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갓 길에 차를 정차시킨 채 한 시간을 보냈다.


제 입으로 뱉고 나니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민규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었다.


지훈은 어두운 천장을 보며 민규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부러 핸드폰 진동이 느껴지지 않도록 무음으로 설정을 바꿔놓거나, 민규가 입사 이래 제게 저질렀던 악행들을 곱씹으며 안달난 제 마음을 달래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또렷해지는 민규가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지훈의 정돈된 머릿속을 한바탕 헤집었다. 지훈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이지훈이 옆에 없어서 잠이 더 안 오나보다. AM 02:45 김]



메시지함을 열어본 지훈의 심장이 추락했다. 김민규는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왔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붉어지는 얼굴과 가쁘게 뛰는 심장에 지훈은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두 번 다시 김민규 생각은 하지 않을거라고 다짐하면서.



지훈의 예상대로 민규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짧게 지나간 단잠의 아쉬움보다 지훈이 뱉고 간 말들의 의미를 되새기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혹시 홧김에 뱉은 말은 아닐까 싶어 몇 것의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지훈은 대답이 없었다.



“ 이거 분명히 읽고 답을 안 한거라니까. ”



넥타이를 바로잡은 민규가 조용한 핸드폰을 보며 중얼댔다. 평소보다 일찍 운전대를 잡은 민규는 잘 보이도록 핸드폰을 두고 혹시 몰라 알림의 볼륨을 최대로 설정했다.


지훈과 엮이면서 요 며칠간 하루가 짧게 지나갔다. 민규는 매우 정상적인 범주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 하고, 밤에는 잠들고.

몇 개월간 애인을 만나 겨우 잠들고, 몇 시간 잠들지 못해 깨어나고 혹은 한 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던 것을 반복했으니 말이다. 점점 늘어나는 양의 수면제와 싸워가며 민규는 차라리 다음 날 눈을 뜨지 못하기를 바랐었던 적도 있었다. 모두 잠드는 시간에 함께 잠드는 것만이 민규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원 나잇을 전전해가며 짧은 연애를 반복하기까지 민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적이 있나 생각했다. 매번 모든 것을 주고, 그래서 버림받기를 반복했을 이지훈은 아마도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


먼저 부장실 앞에 도착해있던 민규가 지훈을 흘깃 보고 말았다. 의식하지 않으려던 지훈이 은근히 속이 상해 들고 있던 서류철을 힘껏 쥐었다.



“ 저희 팀의 아이디어가 발전된 기획인 만큼 1팀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음,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왔습니다. 기본적인 컨셉은 자연과 건강을 주제로 친환경적이고... 죄송합니다. ”



지훈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 목차를 다시 짚어 보았다. 부장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으나 지훈은 스스로 제 실수에 당황해 연신 실수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민규가 자료를 쭉 읽다 말고 지훈의 말을 잘라먹었다.



“ 광고주 측에서는 이 통계 자료를 강조할 것을 요청했으나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습니다. 이 점은 부장님께서도 동의하신 부분이고요. ”

“ ... ”

“ 이 팀장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이어서 해도 결례가 아니겠죠 부장님? ”



민규가 일어나 지훈의 어깨를 잡아 앉히며 부장에게 물었다. 부장이 불편한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규가 영업용 눈웃음을 흘리며 지훈의 손에 쥐어진 리모컨을 빼앗아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지훈은 민규가 보던 발표 자료를 자연스럽게 집어 넘겼다. 민규가 매끄럽게 보고를 진행하는 동안 지훈은 떨리는 손을 숨기며 시선을 고정한 것은 발표 용지 귀퉁이에 적힌 작은 메모였다.



[어제 내 생각 많이 했어?]



-


지훈이 자료를 챙겨 나오는 것을 급하게 뒤쫓은 민규가 복도 중간에서 지훈을 붙잡았다. 지훈이 맥없이 몸을 틀자 민규가 헬쓱한 지훈의 얼굴을 바라봤다.



“ 진짜 내 생각 많이 해서 볼이 반쪽이 됐나. ”

“ ... ”

“ 적어놓은 걸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예 나랑 말도 안 섞기로 했어요? ”

“ ... 예. ”

“ 걔한테 한 말 들었어요? ”

“ ... ”

“ 어제 아침에 찾아온 걔한테 한 말. 이지훈씨가 들었잖아요. ”

“ ...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

“ 다른 분한테는 제가 김민규씨의 친구로 언급되지 않을까 하는. ”

“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원래 저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

“ 지훈아 ”

“ 여기 회사고, 지금 근무중입니다. ”

“ 그래. 이 팀장이 무슨 생각 하는지 잘 알겠는데 내가... ”



민규가 말을 하다말고 지훈의 어깨 너머를 사납게 노려봤다. 지훈이 뒤를 돌아보려하자 지훈의 손을 슬그머니 붙잡고 지훈의 앞으로 한 발짝 나갔다. 민규의 뒤에 숨은 모양새인 지훈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꽤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 여기가 어디라고 와. ”

“ 너가 내 손바닥 안에 있는데 못 올 데가 어디 있어. ”

“ 니가 내 인생 쫑 내려고 작정을 했구나. ”

“ 니 인생이 왜 쫑 나. 나만 있으면 된다고 해놓고. ”

“ 나가. ”

“ 어제부터 나한테 계속 그 말만 하는데 나 좀 화나려고 그래. ”

“ 가라. ”

“ 어제 잔 그 남자 얼굴 좀 보여줘. ”

“ ... ”

“ 그런 구두 신었으면 회사원 아닌가? 너 시간도 없어서 다른 남자 만날 시간 없었을 거 아니야. 그럼 이 회사 사람? ”



지훈의 등 뒤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민규가 지훈의 손을 살짝 놓으며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지나가던 다른 팀 사원들이 나란히 선 남자와 민규, 지훈을 흘깃거리며 무어라 속닥였다. 지훈이 제 구둣발을 민규의 발 뒤에 숨겼다.



“ 쓸데없이 머리를 그런데다 굴리지. 어? ”

“ 진짜야? ”

“ 진짜면 어떻게 할 건데. ”

“ 누가 어떻게 한다고 했어? 그냥 얼굴만 잠깐 본다고. 나 거짓말 못하는 거 너가 잘 알잖아. ”

“ 니가 지금 거짓말 하는 것도 내가 잘 알아. 가. 남의 직정에서 뭐하는 짓이야. ”

“ 뭐하긴, 어머. 안녕하세요 민규 남자 친구예요. 너는 직장 동료 소개 안 시켜줘? ”



남자가 등 뒤의 지훈을 보며 말을 건넸다. 민규가 작게 한숨을 쉬며 손을 등 뒤로 돌려 주먹을 꽉 쥔 지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민규가 지훈을 옆으로 잡아 당겼다. 달달 끌려온 지훈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뭐하려고 이러는거야..



“ 알았어. 소개 시켜줄게. ”

“ 내 애인이야. ”





*

민규의 마음은 확실해진 것 같지만 집착남에게 향한 말을 듣고 맘이 싱숭생숭해진 울 지훈 ㅜㅜ

지훈과 집착남의 첫 대면식에서.. 굉장히 큰일이 일어날 것 같네요.. (스포 맞음)

지훈 덕에 민규는 점점 더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지만.. 상사병인지 뭔지 시름시름 앓는.. 그런..

아 맞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편이 쓰면서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요. 러브슛 속 제 규훈 캐해도 확실하게 볼 수 있고.. (대충 봐주셨으면 좋겠단 얘기)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편에서 봐요 :)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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