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킨 스카이워커. 기껏해야 스물 그 언저리. 지오노시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 예언의 주인공. 늘 전장의 선봉에 서서 다채로운 전략을 짜내는 유능한 장군, 타투인 콜로세움 출신 평판 좋은 자유의 투사, 그리고 생각보다 더 충동적이고 물불 안 가리는 잘생긴 젊은이.

오비완이 아나킨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동안 정리한 내용이다. 


비즐라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목표로 삼은 자를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서리치게 하는 것이 오비완의 장기이니. 물론 전부 필요에 의한, 계획적인 행동이었다. 제다이는 생명을 중시하기에 그 무엇이라도 함부로 찔러 죽이지 않는다. 혀로 찌르든 라이트 세이버로 찌르든.

목에 칼이 들이밀어질 때에도 그는 담담하였다. 오비완은 수완 좋은 협상가이지만 보통의 외교관이 그러하는 것보다 좀 더 날붙이나 총구가 신체에 가까워지는 일이 잦았다. 유독 특출 난 혀놀림 때문만은 아니고 그가 주로 파견되는 곳이 각별히 험악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수하고 값싼 인재란 광야의 덩어리풀보다 거칠게 구르는 법이지.
 하지만 갑자기 뛰어든 피투성이의 젊은 장수가 그를 낚아챘을 땐 오비완도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제가 가져가야겠습니다'라. 강압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출이군. 오비완은 제 팔목을 붙잡은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향후 그의 계획은 스카이워커 장군의 태도에 따라 전면 수정될 것이다. 일단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오비완을 가로채서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어 뛰어들었을 터였다.









놀랍게도 그딴 건 없었다.

스카이워커 장군은 막사 안에 들자 오비완을 놓아주곤 상당히 당혹스럽고 낯설다는 얼굴로 한참 자신의 전리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꼭 오비완이 그를 물기라도 할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그래, 제다이의 앞에 있는 것은 눈치 빠르게 입지를 다지며 챙길 것 다 챙기는 노련한 장수가 아니라 모두가 눈독 들이는 뼈다귀를 본능적으로 물고 달려온 애송이였다. 보아하니 그 자신도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의아해하는 게 훤했다. 저 멍청한 표정이 연기라면 오늘부로 당장 외교관 일은 그만둬야지.

물론 오비완이 은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스터 케노비는 뛰어난 협상가이며 그 말인즉슨 그를 상대했던 이들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은 정쟁의 승리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자들은 모두 오비완의 앞에서 패배자가 되었다. 그에 비하면 자기가 방금 어떤 암투 속에 뛰어든지도 모르는 젊은 전사 정도야 아주 손쉬운 상대임을 알 수 있다.
 좋아. 뜻밖의 고지를 선점한 오비완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그래도 저 충동만은 조심해야겠지.


계산을 끝낸 마스터 케노비는 행동을 보였다. 그가 내린 첫 번째 외교적 처방은 뻔뻔하게 드러눕기였다.









 "찻잎이 형편없군요."


마스터 케노비는 우아하게 티스푼을 톡톡 두드리며 평가했다. 동시에 맞은편의 잘생긴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빛나는 영웅의 기백치곤 조금 어두운 인상이었다. 살인적인 눈빛이란 바로 이런 걸까.


 "버리든지."

 "다음번엔 나부 산으로 가져다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곳 차에 길이 들어서요."


그 말에 청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오비완은 못 본 척 붉은 찻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고 보니, 아미달라 여왕께서 장군께 안부를 전해달라 하시더군요."

 "... 잘 지낸답니까."

 "예. 잘 지내십니다."


청년은 작게 고맙다 중얼거리고는 왠지 풀이 죽어 땅 한 구석을 노려보았다. 확실하군. 오비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미간을 찌푸리며 설탕 한 조각을 더 추가했다. 확실히 좋아하고 있어.
 지오노시스로 출발하기 전, 그의 오랜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겉보기엔 마냥 밝아 보이지만 사실 여리고 착한 아이예요. 단어 구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보자면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글쎄요, 파드메. 스카이워커 장군을 볼 때는 평소보다 더 따듯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십니다.

아마 파드메가 그런 따듯한 관점을 유지하게 된 것은 이 청년이 나부의 여왕에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젊은이들은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니까. 특히나 감정적인 편이라면 더욱.


 "너무 한가한 것 아닙니까. 적진 한가운데서."

 

스카이워커 장군은 다시 시비를 걸려 시도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적진은 아니지만... 인질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요."

 "곧 목이 잘릴지도 모르는데 태평한 말이나 하는군. 아마 내가 나부 산 찻잎을 받아볼 때쯤엔 당신은 없을 수도 있겠어."

 

구해다 주겠다는 말이군. 감사해라.


 "글쎄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알지?"

 "장군이 저를 취하셨으니까요."

 "내가 언제... 아니,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아나킨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가 팔짱을 끼고 오비완을 노려보았다.


 "장군이 어제 저를 직접 가져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는 이제 장군의 것이지요."

 "당장 총사령관에게 돌려주고 와야겠습니다."

 "벌써 하룻밤을 한 막사에서 보냈는데 버리시겠다고요?"

 "무슨... 말 좀 이상하게 하지 맙시다."

 "아미달라 여왕께선 스카이워커 장군이 책임감 있는 사내라 하셨는데... "


오비완은 찻잔을 내려놓고 침울한 척 고개를 숙이며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아나킨은 파드메가 거론되자 바로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다 멈칫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말했다.


 "아니... 총사령관에겐 돌려보내지 않을 테니까... 설마 지금 우는 건 아니겠지?"


잠시 우는 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마스터 케노비는 눈썹을 까딱이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나 무슨 이미지로 자리 잡은 거지? 열심히 수염 기른 보람이 없네.


 "설마요. 일단 약속하신 겁니다."

 "......"


오비완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그리고 아나킨을 계속 쳐다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사실 굳이 약속하지 않으셔도 저를 돌려보내긴 곤란할 겁니다."


아나킨은 오비완이 바로 씨익 웃어 보이자 안도 반 짜증 반으로 한숨을 쉬었다. 도로 자리에 풀썩 앉은 그는 영 마땅치 않은 표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비완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표정이긴 했다.


 "왜지?"

 "어제 회의장에서 비즐라 총사령관이 저를 베려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장군이 중간에 저를 가로채갔고요.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말이지요."

 "... 그랬지."

 "장군께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예언의 주인공이며 아우터 림을 대표하는 자유의 투사 아닙니까."

 "뭐... 대표까지는 아니고."


아나킨은 멋쩍은 듯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대표 맞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장군이 저를 적극적으로 구한 모양새가 되었지요."

 "난 그런 적 없는데."

 "여태까지는 별 불만 없이 사령관과 부관이 싸우는 걸 방관만 하고 계셨다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

 "그런데 제가, 그러니까, 평화의 수호자이자 전쟁의 중재자가 위험에 처하자마자 회의장에 난입하셨고요."

 "......"


스카이워커 장군은 이제 좀 감이 잡혔다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오비완은 또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설탕을 한 조각 더 넣었다. 향이 엉망이면 달기라도 해야지.
 그보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나 보군. 처음엔 정말 열성적인 자유의 투사라 끼어들기라도 한 줄 알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사령부 입씨름을 참고 참다가 들이닥친 게 하필 그 시점이었던가. 그래도 난 왜 데려온 거지?


 "적어도 이미 이 전장 내에선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전쟁을 중재하러 왔다가 살해당할 뻔한 제다이 기사를 보호 중이라 소문이 나있을 겁니다. 곧 여기저기 퍼지겠지요. 덕분에 제다이 기사단의 평판도 함께 좋아지겠군요. 감사합니다."

 "... 젠장."

 "굳이 저를 돌려보내신다면 어쩔 수야 없지만 비즐라 측에서도 그리 반기지는 않을 것 같군요. 자유의 투사를 지위로 눌러 압박했다는 소리가 분명 나올 테니. 안 그래도 만달로리안 연합 측은 요즘 세간에서 말이 많지 않습니까."

 

아나킨은 의자에 한껏 늘어지며 금빛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급격히 피곤해진 눈을 문지르던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오비완에게 물었다.


 "그보다 비즐라는 평화 협정을 찬성하는 쪽이었는데 왜 갑자기 당신을 죽이려 든 겁니까? 제다이를 싫어하는 편이긴 했어도 회의장에서 목을 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고."


그거야, 음. 영업 비밀이지요, 장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카이워커 장군은 제다이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쏘아보더니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또 한참 난리겠군.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건지... "

 "...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라십니까?"

 "당연하지.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예언 같은 건 안 믿습니다."

 

오비완은 조용히 찻잔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딘가에선 차 찌꺼기나 남은 찻물로 점을 친다고도 하는데. 물론 오비완은 그런 종류의 미신에 회의적인 편이었지만... 이 젊은 전사에 관한 예언은 좀 더 무게가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평생 싸우다 갈 인생인데 뭐, 죽으려면 전장이 더 낫지 않습니까? 이런 더러운 전쟁에서 개죽음당할 생각이야 없지만."


아나킨은 심드렁히 말을 내뱉으며 눈썹 뼈 밑을 꾹꾹 눌렀다. 오비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또한 썩 나쁜 심성을 가진 것 같지는 않은 이 청년이 개죽음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예언에 따르면 명예롭게 죽을 것이라 했지만 그것 역시도. 어쨌든,


 "죽는 것보단 사는 것이 낫지요."

 "뭐, 제다이들이 할 법한 말이긴 합니다."

 "장군께선 아직 젊지 않습니까."


젊다기보단 어리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직 젖살도 덜 빠졌는데.


 "세상 질릴 만큼은 살았습니다."

 

오비완은 굳이 나이를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비완보다 10살은 더 넘게 연하일 것이 뻔했고 저 나이 때의 청소년-청년들은, 특히 싸움질하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자신이 다 컸다 생각하기 마련이다. 오비완도 브레이드가 치렁치렁 늘어지다 못해 거의 허리에 닿을 쯤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난 갑니다."

 "가시게요?"

 

아나킨은 돌아서서 손을 몇 번 휘젓더니 쌩하니 막사 밖으로 사라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하네.
 그래도 스카이워커 장군이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고 말도 통하는 인물이라 다행이었다. 하긴 어제의 그 충동적인 면모가 쭉 유지되는 성정이었다면 지금 여기 있을 수도 없었겠지. 오비완이 상대해온 인사 중 가끔 드물게 그런 성정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이들이 있었다. 높은 확률로 두 번 이상은 마주칠 수 없었는데, 그야 고인과 겨우 얼굴 한 번 본 사람을 장례식에 부르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나름 도움도 받은 데다 한동안 신세 지게 될 테니 잘 지내봐야겠네. 오비완은 그렇게 한가로운 생각이나 하며 남은 차를 호로록 들이마셨다.

 

이 차엔 설탕 네 개는 넣어야겠군.








제다이 마스터는 하루 종일 막사에서 뒹굴거리며 지난 일과 앞의 일을 고심했다. 솔직히, 비즐라가 정말 그를 베려 들 줄은 몰랐다. 그건... 좋지 않은 신호지. 이미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려 마음을 먹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감금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거, 잘못 휩쓸리면 정말 사원에 목만 돌려보내질 수도 있겠군. 
 그는 '마스터 케노비, 어찌 목만 오셨소...!' 하며 눈물 흘리는 평의회 위원들을 떠올려보았다. 즐거운 상상이긴 하지만 마스터 씩이나 되는 제다이들이 빙 둘러서서 눈물을 흘릴 일은 없을 테니 아마 그냥 경건한 분위기 속에 장례나 치르겠지.

절대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오비완도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며 그걸 잃고 은하 전체에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싶진 않으니까. 


3년째 이어지는 '다크 세이버 전쟁'. 시작할 즈음에는 분명 만달로리안 연합이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령부의 거물 둘이 몇 달째 입으로만 싸우고 있는 모양에 은하민들은 이제 누굴 지지하지도 않고 그저 원성만 높이고 있다. 
 처음에는 비즐라와 보카탄, 둘 모두 강경한 '승리' 지향자들이었다. 특히나 비즐라는 원래 끔찍할 정도로 극단적인 전통주의자이다. 그러니 표면상 명목은 전쟁에 지친 은하민들을 위한 배려이지만, 이제와 갑자기 평화 협정을 부르짖는 이유는 따로 있을 테지. 오비완은 믿을만한 정보원과 뛰어난 두뇌를 통해 그가 다크 세이버를 손에 넣고 만달로리안 왕좌에 앉아 '은하 평화 협약'을 깨트리려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은하 평화 협약이 깨지든 말든 상대편인 분리주의 연합에서도 결국 대규모(정말 대규모)의 정복 전쟁을 반길 것이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 무기를 팔아먹고 남을 많은 돈이니까. 두쿠 백작은 좀 다른 걸 원하지만. 
 따라서 마스터 케노비는 두 연합을 중재하려기보단 또 한 번의 은하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제다이가 개입할 적극적인 건수를 만들려 파견되었고, 도착하자마자 작업에 착수했다: 프리 비즐라 도발하기. 그리고 겉보기에 가련한 인질 되기.

그렇게 두 연합 사이를 원만하게 중재하려 파견된 제다이가 이렇게 이상한 모양새로 붙들려 인질이 된 것이다. 물론 오비완은 스카이워커 장군의 막사에서 지내려는 생각은 없었다.

제다이와 인질이라는 단어는 서로 썩 익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은하의 그 누가 무력 충만한 평화 수호자 집단을 적으로 돌린단 말인가. 유일하게 시도해볼 만한 것은, 그래. 만달로리안 정도이다. 그리고 지금 그쪽 총사령관이 정말 시도하고 있고. 비즐라는 분명 오비완이 라이트 세이버를 빼어 들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충분히 뛰어난 마스터 케노비는 거의 목이 잘릴 뻔했음에도 제다이 기사단에 누를 끼칠만한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무수한 외교적 결례에도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였던 그 아닌가.


계획이 나름 긍정적이지만 원래와는 한참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으니 당분간 오비완은 이 생활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작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만 중요한 것은 도대체 스카이워커 장군이 오비완을 그 사이에서 건져온 이유가 무엇이냐인데... 당사자도 몰라 보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리고 오비완이 그 연유를 찾아 고민하는 동안 해질 무렵이 되었고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은 모양새로, 하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피를 묻히고 스카이워커 장군이 막사 안에 황급히 뛰어들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나킨은 숨을 몰아쉬며 오비완을 멍하니 바라보다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당신이, 밖으로 나가기라도 했을까 봐... 혹시... 비즐라가... "

 "제가 걱정돼서요?"

 

그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청년은 오비완이 샐쭉 웃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걱정까지는 아니고...!"

 "급하게 달려오신 듯한데, 좀 앉아서 숨이라도 고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별로 급하게 온 거 아닙니다!"


뭐 그렇게 열렬히 부정할 것 까지야. 오비완은 혼자 씩씩거리는 아나킨을 보며 수염을 쓰다듬다 불쑥 말했다.


 "혹시 저희 어디서 본 적 있던가요?"

 "또 무슨 수작을... "

 "수작이라니요. 파드메, 아니, 아미달라 여왕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아나킨은 오비완이 파드메를 친근하게 부르자마자 그를 노려보더니 곧 풀이 죽어 의자에 털썩 앉았다. 흠...


 "... 파드메가 제 이야기를 하던가요."

 "가끔 하더군요. 10년 전쯤에 타투인에서 아미달라 여왕을 도왔다고 들었는데, 그때 저도 여왕을 호위 중이었던지라 혹시나 해서 그럽니다."

 "그거라면 마주친 적 없습니다. 살다가 어디서 스쳐 지나갔다면 모를까."

 "흠."

 "... 또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제 눈치를 살피며 툭 던지는 질문에 오비완은 속으로 조금 웃었다.


 "착한 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동생이요... "


이제 짝사랑에 푹 빠진 이 청년은 완전히 낙심하여 자기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장에 와서 이런 구경을 할 줄은 몰랐다.


 "나도... 파드메에게 당신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래요? 뭐라 하시던가요."


그러자 아나킨은 예의 그 살인적인 눈빛으로 오비완을 째려보았다. 


 "기억 안 납니다."

 "그래요, 뭐 그럼."

 "...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제다이라고. 아, 어쨌든... 막사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당신 부고를 전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나킨은 성을 내며 쿵쿵 걷더니 욕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다 말할 거면서 뭘 그리 성질을 부리는지.
 이제야 대충 감이 잡히는 것도 같다. 아미달라 여왕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이 청년은 그녀를 위해 무작정 오비완을 구출한 것이다. 그걸 또 말하기엔 부끄러워 저렇게 툴툴대는 거겠지. 좋아하는 누나의 친구가 자기 없는 사이 죽어버릴까 봐 저렇게 호들갑 떨며 달려오기도 하고.
 그렇다 쳐도 무모하네. 오비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랑에 빠진 멍청이를 가엾게 여겼다.


실제로 그의 추측은 대충 들어맞는다. 하지만 오비완이 놓친 점이 하나 있다면, 아나킨은 통성명 직전까진 자기가 무작정 끌고 온 인물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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