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과 톡을 하니 10분은 금방 흘렀다. 다 왔다는 택시 기사님의 말에 나는 돈을 지불한 뒤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홍지수 집은 포근하다. 내가 유일하게 찾았던 안식처다. 너무 오랜만이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저에요, 승철이'


'어머! 정말 승철이니?'


'네,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얼른 열어줄게~'

'잘 왔어~ 무슨 일로 왔어? 우리 지수는?'


'하하...하나씩 물어보세요'


'너무 반가워서 그렇지~ 무슨 일 있어서 왔니?'


'아니요, 휴가 받아서...그리고 아버지도 만나려고 왔어요'


'어머...지금 우리 남편이랑 낙시하러 갔는데...'


'아...지금 아침 9시지...'


'그래~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됐구나?'


'네...ㅎㅎ'


'우선 들어와~ 밥은? 먹었니?'


'네'


'그럼 씻고 얼른 자~ 아버지 오시면 깨워줄게!'


'네, 감사해요'


역시...아주머니는 여전하시네. 나는 아직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왔다.

예전에도 지수방에서 자주 잤는데...여기가 포근하단 말이지...하아암-

우선 한숨 자는게 좋을 것 같다...아주머니가 깨워주신다고 하셨으니...


.

.

.

.


'승..ㅊ..아!'


'으음...'


'승철아!! 일어나!! 아버지 오셨어!'


'아...네...일어났어요...'


'아휴..얘도 참...여전하네~'


'저 부지런해요...정신 차리고 내려갈게요'


'어머, 알겠어~ 얼른 내려와!'


'네에~'


아주머니가 나를 깨우셨다. 나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시간을 봤다.

여기에 온 지 6시간이 지났다. 대박...완전 많이 잤네? 평소에는 3~4시간 밖에 못 잤는데...

오랜만에 늦잠이라고 해야 할까? 이럴 때가 아니다. 아버지가 오셨다.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다.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심호흡을 많이 하네...


계단을 내려가자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표정도 살펴볼 겸 살짝 보니 즐거워하신다. 화가나네

누구는 심란하고 원망스러워 죽겠는데 하하호호 하고 있으니 괘씸했다.

나는 머리와 옷을 간단히 정리한 후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일어났어? 하도 안 내려오길래~ 다시 올라가려고 했던 참이야!'


'예전의 승철이 아니에요~'


'어서 앉아! 배고프지?'


'네, 와아- 많이 하셨네요?'


'으응~ 너가 왔으니 내가 솜씨 좀 발휘했지!'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우선 배가 고프니 배 부터 채운 뒤 이야기를 나눠야 겠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 너무 맛있다. 나는 아주머니 밥이 너무 그리웠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뒤 또 한 그릇을 먹었다.

너무 오랜만인지...폭식을 했다. 이런 내 모습에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내가 쳐다보니 시선을 돌렸다. 흥 다 봤거든요?

배가 꽉차 속이 더부룩했다. 배를 살살 만지며 산책을 하려고 나갈려는 순간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너는 오랜만에 보는 애비한테 인사도 안 하냐?'


'진짜 제 아버지는 맞아요?'


'승철아'


'괜찮아, 나둬'

'그래서 어디를 갈 거냐?'


'너무 많이 먹어서 산책 좀 하려고요'

'같이 가실래요?'


'그래, 같이가자'


아버지한테 조금 쌀쌀하게 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저씨는 내 이름을 불렀다. 한 마디 하시려는 아저씨를 막은 건 아버지였고 나는 옷을 챙겨 입은 뒤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디를 가냐며 말을 걸었고, 나는 산책을 간다고 했다. 어차피 할 이야기도 있는데.. 같이 가자고 권유를 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옷을 챙길 동안 나는 현관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 아저씨'


'그래'


'지수가 안부 좀 전해달래요'


'그 놈은 뭐가 바쁘다고 집에 한 번 안 오는 거냐?'


'하하- 마법부 준비로 많이 바빠요~'


'다음에는 너 혼자 오지 말고 걔도 데리고 와'


'네, 그럴게요'


'가자, 승철아'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와라'


나와 아버지는 밖으로 나왔다. 둘이 걷는 건 어색하다. 어떤 말 부터 꺼내야 할까?


'...아버지'


'그래'


'왜...그러셨어요...?'


'...미안하구나'


'사과는 됐구요, 왜 그러셨어요...?'

'제가...얼마나 힘들었는데....'


'면목이 없다...'


'하아...저 한솔이 미워요'

'그 여자 아들이라서 미워요'


'그치만, 그 아이는 죄가 없어...'


'아버지가 죄 있죠, 애들은 죄 없어요'

'있다면...태어난게 죄죠'


'......'


'저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다 잘못했다...'


'다 아버지 잘못이에요'


'그래.. 다 내 잘못이야'


'하아...'


'미안하다...'


'저 어릴때도 그렇고...아버지는 정말...'


'......'


'집에는 무관심에 제가 어떻게 컸는지도 모르고...'

'밖에서는 위대한 사람이었도, 아버지로는 최악이에요'


'...미안하다'


'어렸을 때...왜 그렇게 몰아부치셨어요?'


'내가 너무 약했거든...너라도 강하게 자랐으면 해서 그랬어...'


'냉정하게 몰아부치면 그 아이는 상처투성인 아이로 자라나요'

'지금....제가 그래요'


'그래도...잘 컸구나'


'그렇게 보이시겠죠, 저는 아버지한테 배운 건 눈치밖에 없어요'

'매일 아버지의 기분만 살피는 나는 눈치만 늘어났고, 여전히 남들 눈치를 보며 살아요'


'......'


'아버지는 한 게 없어요, 다 나 혼자 컸어요'


'......'


'먼저 들어갈게요, 나중에 들어오세요'


'잠깐, 승철아!'


아버지가 나를 부르신다. 나는 모른 척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니라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여기에 못 있겠다. 남은 휴가는 킵 해두고 바로 짐싸서 가야겠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의 곁으로...지금 그 사람이 보고싶다.


내가 울면 옆에서 가만히 있어주는 그런 사람, 보고싶어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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